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85
45. 점창파
“몸은 조금 어떠십니까?”
“많이 좋아졌다네.”
제법 호전되긴 했지만 아직은 요양이 필요한 심익한과 마주하며, 소종천은 가벼운 한담을 나누고 있었다.
분위기가 무르익어 소종천이 슬슬 본론을 꺼내야겠다고 생각할 때쯤, 심익한이 먼저 옅은 웃음을 흘리며 선수를 쳤다.
“떠날 생각인가?”
“예? 어…… 음, 티가 났습니까?”
이대로 마냥 수왕채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제대로 된 절정의 경지에 발을 디디기도 했으니, 슬슬 중원으로 돌아가 분위기를 살필 때도 되었지 싶었다.
“그냥 그런 느낌이 들었네.”
“그래요? 하하…… 뭐 그렇게 되었습니다. 마침 이미회의 운송단이 들어와 있으니, 그쪽을 따라 움직일까 합니다. 사실 사형이 완전히 쾌차하시는 걸 보고 떠나야 하기는 한데…….”
“마음을 정했으면 머뭇거리지 말고 행동해야지. 마침 잘 되었네. 미안하지만 자네에게 짐 하나를 얹어주어야 하겠구먼.”
“음?”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하는 소종천에게, 심익한은 살짝 미안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공교롭게도 얼마 전 이미회를 통해 녹옥불장의 소재에 대한 단서가 들어왔다네. 조사를 하고 싶지만, 부족의 상태가 이러하니, 사사로운 이유로 외부에 신경 쓰기가 어렵지 않겠는가?”
“아아?”
“마침 사제가 중원으로 돌아간다 하니, 도움을 받았으면 싶…… 으음! 설마 자네 녹옥불장이 무엇인지 모르는 겐가?”
멍한 얼굴로 의문을 표하는 소종천을 보며, 심익한은 자신의 이마를 탁 때렸다.
“정말로 무공 외에는 아무것도 전수받지 못한 모양이로군. 허허!”
대부분의 문파에는 장문령부라 하여, 세력의 수장인 장문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신물이 존재한다.
아주 오래전 불가에 귀의한 한 장인의 손에서 탄생한, 녹옥(綠玉)을 세공해 만든 지팡이.
녹옥불장은 소림방장에게 전해져 내려오는 물건으로, 타 문파의 장문령부와 같은 위치에 있는 소림의 보물이다.
설명을 들은 소종천이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예, 뭐…… 중요한 물건이군요.”
“이를 말인가! 소림이 그 꼴을 겪게 되며 결국 지켜내지 못하고 분실하고 말았지만, 언제고 반드시 되찾아야 할 사문의 신물일세.”
“……그렇겠네요.
진짜 소림제자가 아닌 소종천에게는 그깟 게 뭐라고 하는 생각이 드는 이야기였지만, 그런 내색을 보일 수는 없기에 적당히 맞장구쳐주었다.
“이미회가 이곳 수왕족 사람들의 눈과 귀가 되어주긴 하지만, 상회의 특성상 운남 지역을 벗어난 곳에서까지 영향력을 끼치긴 어렵다네.”
녹옥불장에 대한 소식은 그나마 운남과 맞닿은 사천 지역에서 전해져 왔다고 한다.
거부들이 이용하는 암시장에 매물로 올라와 거래가 되었다는 이야기.
“자세히 알아보고 싶지만 내가 동원할 수 있는 정보력으로는 한계가 있고, 이런 시기에 무리하게 사람을 더 끌어 쓰기도 어렵지. 결국 더 직접적인 조사가 필요한데…… 마침 사제가 외부에서 활동하겠다고 하니 딱 맞아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으음. 그럼 제가 한번 잘 알아보겠습니다.”
크게 관심은 없는 안건이지만 심익한의 부탁을 아주 무시하기도 그렇다.
게다가 어차피 중원 활동에 대해 뚜렷한 지침을 정해둔 것도 아니니, 기회가 되면 그 건에 대해서 알아보는 시늉이라도 하자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제가 있어서 정말 안심이라네. 필시 소림의 재건을 위해 부처님께서 내려주신 은덕이겠지.”
‘아뇨. 괜히 심심풀이로 모바일 게임이나 쳐하려고 했다가 이 꼴이 난 겁니다만.’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이게 어떤 존재의 개입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그게 부처는 아닐 것이다.
속으로 중얼거린 소종천은 심익한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몇 마디를 더 나눈 뒤, 인사를 남기고 그의 거처를 떠났다.
그간의 정이 있는데 말없이 떠날 순 없기에, 소종천은 홍려아에게도 소식을 전해주었다.
“가긴 어딜 가! 그냥 여기서 나랑 살자니까!”
“할 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어.”
당연하게도 홍려아는 길길이 날뛰었다.
수왕족의 대왕은 강한 자손을 남겨야 할 의무가 있고, 홍려아는 그 상대로 소종천을 점찍어 놨다.
그런데 갑자기 그냥 이렇게 떠나겠다니, 마음을 거절당한 것이 된 그녀의 입장에선 크나큰 굴욕이다.
소종천은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가지 수단을 꺼내들어야 했다.
“그래도 오늘 밤에는 같이 있어 줄게.”
“흣!?”
너무 적극적인 점은 부담스럽긴 했지만, 소종천이라고 보기 드문 미녀의 구애에 마음이 없진 않았다.
하반신의 상태가 사고에 큰 영향을 끼치는 수컷이라는 생물에게, 독특한 풍습을 가진 수왕채의 환경은 사실 극락이나 다름없긴 하다.
‘모든 것이 다 끝나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만약 이 세계에 계속 남게 된다면…… 솔직히 여기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문란하다며 손가락질 받을 수도 있겠지만, 자신이 무슨 대쪽 같은 선비라고 그런 걸 따지겠는가?
소종천은 욕망에 충실해지기로 했다.
그리고 홍려아의 반응은 그보다 한술 더 떴다.
“어어? 아니, 밤에 가겠다니까?”
“나중 일이 또 어떻게 될 줄 알고! 지금부터 해!”
“크흠! 아직 환한 대낮인데…….”
소종천은 홍려아에게 붙잡혀 방 안으로 질질 끌려갔다.
힘으로 저항하려 한다면 못할 것도 없지만, 결국 못 이기는 척 그녀의 뜻에 따라 얌전히 발길을 옮겼다.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다.
반인반수의 피가 흐르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는 눈이 없는 장소에서의 홍려아는 그야말로 짐승 그 자체였다.
소종천 역시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한 마리 야수가 되었다.
성난 화룡이 무자비하게 날뛰며 뜨거운 불길을 수차례 토해냈다.
환한 낮부터 시작한 두 사람의 대결은, 한밤중이 되고 나서야 끝을 고했다.
“후우…….”
방문이 열리며 긴 시간 동안의 격한 싸움으로 달구어진 후끈한 공기가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살짝 핼쑥해진 소종천이 손등으로 땀을 훔치며 방을 나섰다.
‘영혼까지 빨려 나갈 뻔했네…… 그래도 이겼으니 남자로서의 자존심은 세웠다.’
그동안 여러 차례 행했던 뽑기에서 얻은 결과물 중 가장 뛰어난 것은, 사실은 화룡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올바른 용도로 쓸 일이 없어 이제야 알게 되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남자에게 대단히 좋은 효과를 가진 영약이었다.
오랜 격전 끝에 지쳐서 기절해 버린 홍려아를 뒤로 하고, 소종천은 탈력감과 만족감을 동시에 느끼며 뿌듯한 표정으로 방문을 닫았다.
* * *
날이 바뀌고 난 뒤.
일행들은 산채를 떠나기 위해 운송행을 들어온 이미회의 무인들이 출발준비를 하는 것을 기다렸다.
“종천?”
“응?”
팔짱을 끼며 달라붙은 한사혜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소종천의 옷에 얼굴을 묻고 코를 킁킁거렸다.
“윽! 뭐 하는 거야! 수왕족 흉내라도 내냐?”
“이상해. 고양이 냄새가 나는 것 같아. 암고양이의 누린내가.”
“……뭐라는 겨?”
뜨끔한 소종천이 입을 다물고 한사혜에게 붙들린 팔을 빼냈다.
‘깨끗하게 씻고 잤는데!?’
무슨 개코라도 가진 건지, 콧잔등을 실룩거리며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는 한사혜.
“뭐지? 뭔가 중요한 걸 빼앗긴 기분이 들어.”
“무슨 소린지 모르겠네. 어흠! 사람한테 냄새난다고 할 거면 붙지 말고 저리 떨어져.”
“……칫, 아냐.”
일부러 조금 정색하며 말하자, 한사혜는 자신이 느낀 불쾌한 감각에 대해 더 물고 늘어지지 않고 다시 소종천에게 달라붙었다.
“야야, 더운데 너무 붙지 마.”
“괜찮아. 땀 냄새는 좋아.”
“허!”
뻔뻔한 대답에 할 말을 잃은 소종천이 혀를 찼다.
정보창 때문에 한사혜의 감정을 알았다지만 딱히 연인이 된 것도 아니니, 다른 여자와 깊은 관계를 가졌다고 해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없긴 하다.
그래도 마음을 알고 나니 조금 눈치가 보이기는 하는 지라, 소종천은 더 뭐라 하지 않고 그냥 팔 하나를 내주고 말았다.
‘보의에 열기를 차단하는 기능이 있으니 사실 전혀 덥지도 않고.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매정하게 밀어내기도 뭣하니.’
아옹다옹하는 동안 이미회 사람들의 준비가 끝났다.
이윽고 중원으로 복귀하는 여정이 이루어졌다.
능숙한 길잡이를 따라 정해진 경로의 산행이 며칠간 이어지고, 일행들은 다시 운남성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곳 생활도 제법 익숙해졌는데, 이리 떠나오고 나니 아쉬움이 드는구려.”
“그러게 말이야. 중원으로 돌아오니 다시 적응하기까지 여러모로 불편할 것 같아.”
남궁건과 장자군의 말에,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확실히 불편하긴 하다.
특히 의복에 관해서는 더더욱.
개방적인 공간에서 지내다가 돌아오고 나니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이랄까.
‘몸을 꽁꽁 싸맨 복장을 보고 있으니 마음까지 답답해지네. 수왕채가 진짜 매력적인 곳이긴 했구나.’
떠난 지 얼마나 지났다고 새삼 그곳의 생활이 그리워진다.
운남에 도착한 일행들은 가볍게 식사를 마치고, 차를 마시며 잠시 휴식하는 동안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의논했다.
‘일단 심 사형이 맡긴 일에 대해 알아볼까. 겸사겸사 마교의 동향은 어떤지 정보도 수집하고.’
사실상 소종천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무리이기에, 의논이라기보단 자신의 결정하고 통보하는 것에 가깝긴 하다.
그래도 이번에는 일행에게서 먼저 의견 하나가 나왔다.
“음…… 종천. 미안하지만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사문에 잠깐 들렀다 가도 될까?”
“점창파? 점창산이 있는 곳이 운남 서부라 했던가?”
“응. 퇴관 이후로 서찰을 보내두긴 했지만, 시간도 꽤 지났으니 한 번쯤은 들려야 할 것 같아서. 그동안 격조했으니 사부님께 인사를 올리고 싶기도 하고.”
“그래. 급할 건 없으니까 괜찮아.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미안할 것까지야.”
장자군의 말에 일단은 점창산을 통하는 일정을 잡는 것으로 결정을 내렸다.
‘점창파라. 그런 대형문파에 들려보는 건 또 처음이네.’
더 중요한 이야기도 없기에 찻잔을 만지작거리며 주변 사람들을 구경하던 소종천의 머릿속으로,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자군이가 사부 얘기를 하니까 곽진 교관님이 생각나네. 연세도 많으신 분인데 잘 지내고 계시려나?’
막판에 도망쳐 나온 탓에 다시 만나면 곤란해지긴 하겠지만, 그래도 그동안의 관계가 있으니 소식이 궁금하기도 했다.
‘연맹의 활동에 다시 복귀하신다고 하셨는데. 점창파도 연맹의 주축이고 하니, 그곳에 들리게 되면 혹시나 사정을 아는 사람이 있는지 자군이에게 수소문 좀 해달라고 해야겠다.’
학관에 있을 때도 사문의 소식통을 이용하곤 했던 장자군이니,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 여겼다.
그런 생각을 속으로 품으며, 소종천은 일행들과 함께 점창산으로 향하는 길에 올랐다.
“이런 건방진 놈! 어디서 무얼 하다가 이제 와서 낯짝을 드러낸단 말이냐!”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대사형.”
그러나 점창파에 도착하고 뭔가를 알아보거나 하기에 앞서.
‘어, 뭐야. 분위기가 안 좋은데?’
소종천은 다른 것보다 먼저, 장자군에게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8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