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87
45. 점창파(3)
챙!
굳건한 수비 초식으로 이회의 공격을 튕겨낸 남궁건이 한 발 전진하며 검을 찌른다.
검격 하나하나에 묵직한 힘을 싣는 중검식에 감각을 교란시키는 환검식이 더해진, 남궁세가 특유의 무공을 익힌 남궁건.
간결하고 표홀한 쾌검식에 중점을 둔 점창파의 무공을 익힌 이회.
무공의 특징을 따지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고, 무엇이 무엇보다 낫다고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렵다.
남궁세가와 점창파는 둘 다 거대한 세력을 일굴 만한 저력을 가진 곳들이고, 당연히 두 곳의 무공 모두 우위를 따지기 어려운 뛰어난 격을 가지고 있었다.
‘건이가 분명 불리하기는 한데, 그래도 제법 잘 싸우고 있네.’
익힌 무공의 수준이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아무래도 나이가 많은 쪽이 승기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대상이 삼, 사십 대의 중년인들이라면 별 차이가 없겠지만 십 대에서 이십 대 사이의 청년이라면, 한 살이라도 더 먹은 쪽이 경험을 살려 유리하게 승부를 이끌어가기 마련.
하물며 팔 년의 시간이라면 그동안 비운 밥그릇 개수의 차이만 해도 상당하다.
그럼에도 남궁건은 이회를 상대로 호각지세에 가까운 비무를 보여주고 있었다.
‘저걸 단순히 재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간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짓이 되겠지.’
학관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남궁건이 소종천과 가까이 지내며 함께 겪은 경험들이 어디 가벼운 것들이었던가?
마인을 상대로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검을 휘두른 것만 해도 수차례다.
게다가 소종천이라는 비정상적인 존재를 계속 옆에 두고 장자군과 한사혜의 급격한 성장을 지켜보며, 남궁건은 자신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알게 모르게 피땀을 흘려가며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
천하에서도 손꼽힐 만한 재능에 자신을 극한까지 쥐어짜 내는 노력이 더해졌으니, 결실을 맺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지내온 시간의 양이 부족할지언정 그 질만큼은 알차기 그지없으니, 학관 시절보다 비약적으로 성장한 남궁건의 무위는 이회를 당혹스럽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이 자식은 뭐지? 이제 고작 열여섯 살에 불과할 텐데?’
가볍게 자신의 우세함을 보이며 상대에게 망신을 주려던 계획은 이미 어그러졌다.
나이 차를 생각하면 승부가 길어지며 여기까지 끌고 온 것만으로도, 오히려 체면을 상하게 된 것은 자신 쪽이었다.
감정이 상한 이회는 점점 평범한 비무에서 보이기엔 아슬아슬하게 여겨질 정도로, 살기가 짙은 검초를 뿌리기 시작했다.
‘저 새끼 보소?’
분위기가 좋지 않게 흘러가는 것을 감지한 소종천이, 사고가 나기 전에 두 사람 사이로 끼어들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
남궁건이 먼저 검을 뒤로 물리며 비무를 중단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쪽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충분히 보여주기도 했고, 대결이 너무 과열되는 듯해 예의를 차리는 선에서 슬슬 멈추려던 생각이었다.
한데 이회의 검은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 거칠게 움직이며 기어코 남궁건의 어깻죽지를 베고 지나갔다.
“읏!”
“이런! 괜찮은가? 내가 남궁가의 검식을 견식 하는데 너무 심취한 나머지, 제때 멈추지 못하고 말았군. 정말 미안하네!”
미안하다고 사과는 하지만 눈빛은 속으로 웃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똥파리 같은 새끼가!’
멈출 수 있었음에도 일부러 검초를 이어갔다는 것을, 나름대로 경지에 오른 소종천이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저따위 짓으로 동료의 피를 보게 하다니.
머리에 열이 오른 소종천이 놈의 손모가지를 부러뜨릴 셈으로 뛰쳐나가려는 차에, 남궁건이 먼저 나서지 말라는 듯이 일행들에게 손짓을 보냈다.
그리 깊은 상처인 것은 아니니 문제를 더 키우지 않겠다는 의도인가 싶다.
“우리 점창의 검법이 쾌에 중점을 두다 보니, 한번 검식을 펼치면 거두기가 어렵지. 결코, 고의는 아니었으니 오해하지 말아 주게.”
“미리 신호를 정해둔 것도 아니니 실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오.”
“역시 명가의 후손답게 호탕한 친구로군! 이해해 줘서 고맙네.”
“자군의 실력이었다면 충분히 검을 통제할 수 있었겠지만, 그 정도 수준이 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지 않겠소? 사형이라고 꼭 무공이 더 뛰어난 것은 아닐 테니 충분히 이해하오.”
일을 크게 만들지 않으려는 건 줄 알았는데, 남궁건도 화가 나기는 했는지 평소와 다른 비꼬는 말투로 말을 뱉는다.
남궁건의 말뜻을 이해한 이회의 얼굴에서 가식적인 미소가 사라졌다.
“마치 내가 장 사제보다 못하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내가 겪어본 바로는 그런 것 같소. 한 가지 더 말하자면, 내 동료 중에서 본인보다 실력이 떨어지는 이는 없다오.”
“하, 하하! 장 사제의 위신을 세워주고 싶었나? 친구를 위하는 우정이 아주 돈독한 모양이야. 오늘은 내가 실수한 것도 있으니 뭐라 할 말이 없군.”
서로를 노려보며 신경전을 벌이는 남궁건과 이회.
그런 두 사람 사이로 소종천이 끼어들었다.
“자자, 일단 치료부터 해야지?”
심하진 않다고 하나 검에 베였는데 가만히 둘 수는 없는 법.
“종천. 여기.”
“어.”
마침 한사혜가 응급용으로 지니고 다니던 붕대와 약을 건네주었기에, 소종천은 남궁건의 상처에 조치를 해주었다.
싸울 일이 많았다 보니 이제 이런 처리는 제법 익숙하다.
‘저놈을 어찌해야 하나?’
남궁건에게 붕대를 감아주며, 소종천은 곁눈질로 이회의 모습을 살폈다.
성질 같아서는 아주 박살을 내주고 싶은데, 점창산 내에서 점창의 제자를 두들겨 패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긴 하다.
‘자군이의 입장도 마음에 걸리고.’
장자군은 아침 일찍부터 자리를 비워 곁에 없는 상황.
학관이 임시 폐관을 하였음에도 바로 복귀하지 않고 반년씩 마음대로 본산을 떠나 있었으니, 여기저기 불려 다니며 한 소리씩 듣는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날 따라오기에 괜찮은 건 줄 알았더니만. 근데 그러면 다시 떠나는 것도 문제가 되는 게 아닌가?’
심익한의 부탁 때문에 사천으로 가 녹옥불장에 대해 조사해 보려던 차였는데, 어쩌면 장자군은 같이 떠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이제 돌아오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저 멀리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장자군의 모습이 보인다.
문파의 어른들에게 꽤나 시달렸는지, 핼쑥해진 얼굴에 피로감이 확연하게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지쳐 보이던 모습도 잠시.
부상을 입은 남궁건을 발견하자, 장자군의 눈에 불이 켜졌다.
“어? 무슨 일이야? 왜 다쳤어?”
“대련 중에 흔히 일어나는 작은 사고가 벌어졌을 뿐이다. 별거 아니니 신경 쓸 것 없다.”
냉큼 내뱉는 이회의 말에, 다른 사람들의 표정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변했다.
‘그걸 또 사고 친 놈이 저렇게 말하네?’
일행들의 표정을 읽은 장자군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정확한 상황은 몰라도 이회가 좋지 못한 수작질을 부렸다는 것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
“대사형. 공사가 다망하실 텐데, 이제 그만 제 친우들에게서 신경을 끄시지요?”
“뭐야? 감히 사형에게 그따위 불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장자군이 성난 눈빛과 목소리로 말을 꺼내자, 그렇지 않아도 남궁건의 말로 감정이 상했던 이회가 옳다구나 싶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잠깐 바깥 물을 먹었다고 잊어버린 게 많은 모양이지? 아무래도 내 오늘 너의 버르장머리를 다시 고쳐놔야겠구나!”
기세등등하게 외친 이회가 검을 잡았다.
하지만 뽑혀 나오던 검은 검집을 다 벗어나기 전에 멈춰졌다.
어느새 다가온 장자군이 손을 내밀어 검 자루 끝을 잡아 세웠기 때문.
“……이, 무슨!?”
“아무리 대사형이라 해도 더 이상의 행패는 참지 않겠습니다.”
담담하게 내뱉는 장자군과 경악한 이회가 시선을 마주했다.
이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변한다.
경계하고 있지 않았다고 하나, 쾌검수가 검을 뽑지도 못하고 제지당하다니.
상당한 수준 차가 있지 않고서야 벌어질 수 없는 일이니, 치욕스러운 경험이 아닐 수 없다.
하물며 그 상대가 자신이 무시하던 사제이기에, 수치심과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놀란 얼굴로 눈빛이 흔들리는 이회를 내버려 두고 등을 돌린 장자군이, 표정을 풀고 일행들을 향해 말을 꺼냈다.
“질책을 받긴 했지만 내 문제는 해결했으니까, 이제 원래의 일정에 대해 얘기해 보…….”
“네깟 놈이!”
말을 내뱉고 있던 장자군의 뒤로, 날카로운 검격이 날아들었다.
일 년 만에 다시 만난 사제가 자신을 뛰어넘는 무인이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회가, 분을 참지 못하고 검을 내지른 것.
설마 저렇게까지 나올 줄은 장자군도 예상하지 못했기에, 자칫 크게 다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쾅!
하지만 제때 나선 소종천에 의해, 이회의 기습은 수포로 돌아가게 되었다.
“아악!”
내력을 조절할 새도 없이 전력을 다해 후려 찼기에, 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사방으로 흩어진다.
막대한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손목이 부러진 이회가, 팔을 붙잡고 뒤로 물러난다.
손아귀도 찢어졌는지 손가락 끝으로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는 모습.
“적당히 하지그래?”
“이, 이놈들! 감히 대점창의 본산에서 제자인 나를 암습하다니!”
“……뭐래? 자군이의 뒤를 친 건 너지 이 새꺄.”
“윗사람인 나를 욕보였으니 적당히 훈계를 내리려던 것뿐이었지. 관계없는 외부인이 끼어들 일이 아니다!”
“얼씨구.”
황당해하는 소종천을 두고, 이회가 장자군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
“네가 데려온 놈들이 이런 패악질을 부렸으니, 마땅히 네놈이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
장자군도 이회가 이렇게까지 적반하장으로 나올 줄 몰랐기에, 뭐라 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복잡한 표정으로 속마음을 표현했다.
대형문파다 보니 당연히 점창파 내에는 머무는 이가 적지 않다.
이회가 목소리를 높여가며 소란을 피우니, 무슨 일인가 싶어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여든다.
집중되는 시선이 늘어날수록 기가 살아나는지, 이회는 다시 자신을 막아선 소종천을 보며 마구 입을 털어대기 시작했다.
‘마교가 확실하게 상종 못 할 쓰레기이긴 한데, 솔직히 다른 무림 세력이라는 곳도 마음에 드는 데가 하나 없네.’
조용히 듣고 있던 소종천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교는 물론이고 정파니 사파니 따질 것 없이, 소종천이 보기에 무림이란 곳은 그냥 개잡놈들의 세상인 것 같았다.
‘다 이런 놈들만 있는 건 아니긴 하겠지만…….’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에 위축되었다고 생각했는지, 이회가 비릿한 표정과 함께 살짝 목소리를 낮추며 다른 말을 꺼냈다.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다면 적당히 성의를 보이며 사죄하도록 해라.”
“성의라?”
“그래. 마침 내가 조금 바쁜 몸이라 손을 보탤 사람이 필요한데…… 거기 귀여운 소저가 오늘 하루, 날 쫓아다니며 성심성의껏 요구를 따라준다면, 뭐 조용히 넘어가지 못할 것도 없지.”
한사혜를 향해 음탕한 시선을 보내는 이회의 모습에, 소종천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너는 계획이 다 있구나.”
“이놈이? 계속 그런 건방진 태도로…….”
“근데 나는 보통 그냥 꼴리는 대로 행동하는 편이라.”
신법을 펼치며 순식간에 이회의 앞으로 다가간 소종천이, 그의 정강이를 걷어찼다.
“끄악! 이런 미친 자식이!”
힘을 아낄 생각이 없는 발길질이었기에, 뼈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이회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는다.
소종천이 팔을 들어 올렸다.
“조용히 하세욧!”
익살스러운 말투와 함께, 욕설을 내뱉는 이회의 정수리로 소종천의 주먹이 내리꽂혔다.
뻑!
큰 충돌음과 함께 적막함이 찾아왔다.
뒷일을 어찌해야 할지 신경 쓰이긴 하지만, 내키는 대로 저지르고 나니 기분이 조금 풀리긴 한다.
일행들은 멋쩍은 표정으로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이제 어쩔 거냐는 의문들이 소종천을 향한다.
‘자, 그럼. 이대로 끝날 리는 없으니 뭔가 또 튀어나올 법한데…….’
“이게 무슨 소란들이냐!”
그런 생각을 하기가 무섭게, 묵직한 일갈이 들려왔다.
주변에 모여들어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뛰쳐나왔다.
뽑기로 무림최강 8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