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88
45. 점창파(4)
꼬장꼬장한 분위기를 가득 풍기는 노인이, 눈을 부릅뜨며 일행들과 쓰러진 이회를 살폈다.
“네놈들은 누구지?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행패를 부리는 게냐!”
장자군이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친구들을 돌아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대사형의 스승이야. 하필이면 저분을 제일 먼저 마주치다니…….”
“하는 짓도 비슷하냐?”
“대사형 정도는 아니지만…… 우리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니지.”
“뭘 속닥거리고 있는 게냐! 거기 너! 현도 사제의 제자렸다? 냉큼 나와서 상황을 고하지 못할까!”
“……예. 사백님.”
자신을 알아보고 지목하는 모습에, 장자군이 고개를 숙이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사태가 엄청 심각해지진 않겠지?’
누가 봐도 문제의 시작은 이회에게 있었다.
주변에 보는 눈이 적지 않으니, 앞의 상황에 대해 증언해 줄 만한 사람은 충분하다.
과한 대응이라고 말이 나올지언정 시시비비 자체는 정확히 가릴 수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일이란 게 항상 옳은 방향으로만 흐르진 않는다.
“비무 과정에서 생긴 작은 실수를 트집 잡아, 본파의 제자를 저 꼴로 만들었다는 소리 아닌가!”
“예? 그게 아니라 문제를 일으킨 것은 대사형 쪽이…….”
“닥쳐라! 외부인을 끌어들여 하극상을 벌이다니! 네놈 역시 엄벌을 면치 못할 것이야!”
“…….”
장자군은 주먹을 부르르 떨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이쪽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려고도 하지 않으니, 정상적인 대화가 될 리가 없다.
이회의 스승이자 점창의 장로인 고궁하.
‘회아 녀석이 저리 다치다니…… 간만에 사돈댁에 시달리게 생겼군.’
그는 이회와 단순히 사승 관계인 것만 아니라, 외가 쪽의 친척이기도 했다.
이회의 가문은 운남에서 꽤 큰 유지라 할 수 있는 집안이다.
매년 점창파에 들어오는 원조금은 물론이고, 고궁하에게 특별히 부탁한다며 찔러주는 금액만 해도 적지 않다.
이회가 개차반 같은 성품으로 지저분한 행실을 보여도, 그가 뒤를 봐줄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이보세요. 그쪽이 저 쓰레기의 사부라던데, 맞죠?”
보아하니 공정하게 잘잘못을 가릴 생각은 없는 것으로 보여, 소종천은 장자군을 잡아당기며 앞으로 나섰다.
“이놈! 감히 그따위 말투로…….”
“매번 보는 인간마다 감히는 무슨, 지들이 왕족이야 뭐야. 아무튼, 됐고! 저놈 두들겨 팬 건 나니까, 나하고 해결을 봅시다.”
“건방진 놈! 재촉하지 않아도 네놈들은 마땅한 처벌을 받게 될 거다!”
“네놈들이 아니라 나 하나로 끝내자니까? 잘못의 대가로 내가 그쪽 어르신의 일검을 받겠수다. 내 단전을 찌르는 거로 하고, 뒷말 나오지 않게 끝내시죠?”
“……종천?”
“자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가?”
소종천의 말에 일행들이 황당해하며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무인에게 단전이란 두 번째 심장이나 마찬가지인 곳.
생명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전의 손상이 심할 경우에는 다시는 내공을 사용하지 못하는 몸이 될 수 있다.
내공을 쓰지 못하는 무인은 당연히 제대로 된 무인취급을 받을 수 없으니, 대부분 자괴감을 견디지 못하고 폐인이 되거나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한다.
그렇기에 무문에서 단전을 폐하는 처벌이란, 아주 큰 죄를 지은 이들에게나 내려지는 형벌이다.
물론 소종천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기에 꺼낸 말이긴 하다.
‘용린이 있으니 다칠 일은 없지. 저 양반이 그 이후에 납득하고 물러나느냐가 문제지만.’
팔짱을 끼며 어쩔 거냐는 듯이 시선을 보내는 소종천.
소종천의 제안에 당황한 것은 고궁하 역시 마찬가지였다.
‘무슨 수작이지? 허세를 떠는 건가?’
잠시 머릿속이 복잡해진 고궁하는 일행들의 면면을 살폈다.
‘그렇군. 현도의 제자놈이 잠룡학관에서 돌아왔다고 했던가? 저 녀석들도 그럼 제법 이름 있는 문파의 출신들이겠지.’
눈앞의 녀석은 뒷배를 믿고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못할 거라 여겨, 배짱을 부리고 보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묻지 않았군. 자네들은 누군가?”
마냥 윽박지르기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님을 깨달은 고궁하가, 슬쩍 기세를 떨어뜨리며 질문을 던졌다.
그로인해 남궁세가와 적사방의 이름이 나오게 되었고.
“소림 제자. 소종천.”
소종천의 소개가 뒤를 이었다.
“소림? 소림의 무공을 익혔다고?”
“그런데요?”
뭐 어쩔 거냐는 듯이 턱을 들어 올리는 소종천의 모습에, 고궁하의 이마에 핏줄이 돋는다.
‘이 어린놈이 나를 우롱하는 건가?’
워낙 자신만만한 태도에 믿는 구석이 대단한 놈인가 싶어, 뒤늦게라도 조심히 대하려고 했었다.
한데 뜬금없이 소림이라니?
이런 상황에서 출신이나 뒷배를 숨기려들진 않을 테니, 정말로 뭣도 없는 놈인 모양이긴 했다.
‘이 멍청한 녀석이 친구들을 믿고 기고만장했던 모양이군.’
적사방도 사파에서는 꽤나 강성한 세력이고, 남궁세가는 말할 것도 없이 정파의 중심이 되는 세력 중 하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놈이 우정 놀이에 취해 있다 보니, 자신도 다른 이들처럼 뭐라도 되는 듯 행세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현실이 그리 만만치 않다는 것을, 굉장히 비싼 대가를 치르고 배우게 될 것이야.’
고궁하는 비웃음을 삼키며 검을 빼들었다.
“아주 대범한 소협이군. 좋네. 노부의 일검으로 자네들이 벌인 소동에 대한 처벌을 마무리 짓도록 하지.”
절정에 이른 무인인 자신의 검격이라면, 이깟 애송이 놈이 무슨 수작을 부린다 해도 일검에 단전을 파괴할 수 있다.
물론 이회를 아예 불구로 만들었다면 모를까, 적지 않은 부상을 입혔다고는 해도 단전을 폐하는 것은 너무 과한 처사긴 하다.
다른 장로급 인사들이 상황을 파악하고 나면, 필시 뒷말이 나오긴 할 터.
하지만 제안을 먼저 꺼낸 것은 소종천 쪽이기에, 고궁하는 아무런 부담 없이 검을 내질렀다.
‘단전이 파괴되고 나서 울며불며 난리 쳐봐야 때는 늦었다. 미련한 애송이 녀석.’
고궁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이만하면 이회의 집안에서 잔소리를 조금 듣기는 해도, 상대에게 정도 이상의 대가를 치르게 해주었다고 목소리를 높일 순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궁하의 그런 상상은, 검끝이 소종천의 복부에 닿는 것과 동시에 사라졌다.
“이, 이게 무슨!”
“남아일언중천금이죠? 이제 이번 일에 대해선 두말 안하깁니다.”
처음부터 내력을 전혀 쓰지 않았던 건가하고 착각할 정도로,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검력.
다른 사람들의 눈엔 고궁하가 소종천의 복부 앞에서 정확하게 검을 멈춘 것처럼 보일 것이었다.
근처에서 지켜보고 있던 일행들이 긴장을 풀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종천의 자신만만한 태도에 뭔가 수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더 나서진 않았지만, 혹시나 일이 잘못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이었다.
“그러면 우리는 이만 물러납니다.”
“멈춰라! 이놈! 대체 무슨 사술을 쓴 것이냐!”
소종천은 짧게 혀를 찼다.
‘또 사술이냐? 하여간 지들이 모르면 다 사술이지. 거참 편리하게 써먹을 수 있는 단어야.’
이대로 조용히 끝나면 좋았겠지만, 역시나 상대는 납득하지 못하고 쉽게 놓아주지 않는다.
“감히 괴이한 술수로 나를 농락하다니! 어디 이것도 막아보아라!”
고궁하가 다시 한번 검초를 펼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검이 소종천의 몸에 닿지 않았다.
캉!
그 앞을 막아선 다른 검이 있었기 때문.
“그만하십시오. 사백님.”
“이, 이것들이!?”
고궁하가 경악하며 말을 더듬었다.
방금 장자군에 의해 강제로 파훼되어버린 검초는, 자신이 펼칠 수 있는 전력의 8할을 넘어선 공격이었다.
결코 새파랗게 어린 사문의 제자가 막아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찌 사백님만 한 위치에 있으신 분이, 약조를 저버리고 까마득한 후배를 핍박하려 하십니까?”
“닥쳐라! 감히 존장에게 검을 겨누다니! 네놈 역시 엄벌 백계를 해도 모자랄 것이야!”
“사문의 어른께서 잘못을 저지르는 모습을, 마냥 모른 척하는 것이야말로 죄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놈이 그래도!”
고궁하가 고함을 지르며 재차 검초를 펼쳤다.
허공에 수차례 불똥이 튀며 검격이 오고 갔다.
접전을 이어갈 때마다 고궁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점창파 검공의 기초가 되는 분광검법.
그 안에 있는 고급의 묘리들을 엮어 만든 상승 무공인 분광십팔수검.
그리고 가장 정상에 놓이기에 부족함이 없는, 점창파 최고의 절학인 사일검법까지.
‘어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부족한 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자군이 펼치는 모든 검법이, 하나같이 그 무공이 가지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에 거의 근접해 있었다.
최소로 잡아도 소성(小成), 즉 8성 이상의 성취도라는 의미.
저 나이에 도달할 수 있는 경지가 아니다.
‘혹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환술에 당한 것인가?’
질 나쁜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허어…… 믿기지 않는구나.”
“저 아이가 저만한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니?”
고궁하의 검초들을 받아내는 장자군의 모습을 지켜보던 소종천이, 주변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존재감에 고개를 좌우로 돌려보았다.
점창의 젊은 제자들 사이로 나이 든 무인들이 드문드문 섞여 있는 게 보인다.
소란이 길어지니 문파의 고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것.
과연 대형문파라고 해야 할지, 절정 지경인 무인들의 수가 적지 않았다.
다만 하나같이 현재의 사태를 수습하려고 하기보단, 커다래진 눈으로 장자군의 무위를 감상하기에 바빴다.
그들의 입장에선 워낙 충격적인 광경이니 그럴만하긴 했다.
“검로가 점점 완벽에 가까워지고 있군!”
“보고도 믿을 수 없구나! 저러는 동안에도 점점 발전하고 있는 것인가?”
고수들이 뱉어내는 말에 소종천의 시선이 다시 장자군에게로 향한다.
‘어, 아까보다 안정적이게 변했네?’
앞으로 나서긴 했지만 차마 사문의 존장에게 위협을 가하긴 어려웠는지, 수비에만 집중하며 꽤 힘겹게 버티던 장자군이다.
한데 지금은 방금까지보다 편안해진 얼굴로, 좀 더 수월하게 검초를 받아내는 모습이 눈에 띈다.
슬쩍 감정을 해보니 역시나 무공의 성취도가 조금 변한 것이 보인다.
‘사일검법이 8성에서 9성으로 올랐구만.’
소종천은 잘 모르는 사실이지만, 점창의 여러 고수 중에도 사일검법의 성취가 9성에 도달한 이는 열 명이 채 넘지 않았다.
장로급은 물론 은퇴한 노고수들까지 전부 합쳐도 그 정도이니, 장자군에게서 무인들이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 장자군과 고궁하의 접전은 막상막하였다.
그렇지만 전투는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큿!”
검법으로는 전혀 모자람이 없었지만 역시 아직은 내공이 부족하기에, 싸움이 길어지면 불리함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내력이 다한 장자군이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하자, 소종천이 두 사람의 사이로 뛰어들었다.
“여기까지만 합시다.”
“비켜!”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린 고궁하가, 소종천을 무시하며 재차 검초를 이어갔다.
흐릿한 눈빛에 칙칙한 사기(邪氣)가 흐른다.
고작 사제의 제자를 상대로 전력을 다했음에도 전혀 압도하지 못했음에, 현실을 부정하며 반쯤 정신이 나간 게 아닌가 싶은 얼굴이었다.
‘이런! 상태가 이상한데? 저러다 심마에 빠지는 거 아냐?’
높은 경지를 이룬 고수가 어떤 일을 계기로 심상에 큰 타격을 입고, 스스로 쌓아 올린 깨달음에 의문을 가지며 혼란에 빠지는 것을 심마(心魔)라 부른다.
잘 극복한다면 한 단계 발전하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무공을 잃고 폐인이 되기도 하는 무서운 마음의 병이다.
“정신 차리쇼!”
소종천의 재빨리 손바닥을 들어 고궁하의 뺨을 후려갈겼다.
다행히 그리 심각한 단계는 아니었는지, 화끈한 통증에 고궁하가 정신을 차리며 안색이 돌아왔다.
“이, 이놈!”
“휴, 제정신이 들었나? 감사 인사는 안 해도 됩니다.”
물론 자신에게 어떤 위기가 왔다 갔는지 모르는 고궁하는, 고맙다고 말할 생각이 없었다.
“어디까지 나를 모욕할 셈이냐!”
“어라?”
목을 베어오는 검격에 소종천은 황급히 몸을 젖혀 회피했다.
‘이런 썅! 딴에는 도와준다고 한 일인데!’
억울하긴 하지만 상황을 모르는 사람이 봤다면 패륜적인 행동이긴 했다.
빛살처럼 쏘아지는 검격을 쳐내며 소종천이 주먹을 뻗었다.
장자군이야 얌전히 버티기만 했지만, 자신은 전혀 그럴 생각이 없다.
소종천의 주먹이 고궁하의 명치를 파고들었다.
“크억!”
경지만 놓고 보자면 소종천보다 조금 앞서 있는 고궁하다.
다만, 그는 장자군을 상대하며 큰 충격을 받은 탓에, 비효율적으로 기를 남발하며 날뛰느라 꽤 지쳐 버렸다.
게다가 방금도 심마에 빠질 뻔하며 정상이 아닌 상태였기에, 꽤나 쉽게 소종천에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고궁하의 몸으로 소종천의 권격이 연달아 퍼부어졌다.
파바바박!
“끄으…….”
심력이 크게 상한 탓에 몸도 쇠약해지게 되었는지, 고궁하는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매타작 속에서 기절하고 말았다.
“이런!”
“멈추시게!”
짙은 여운에 취한 눈빛으로 장자군을 구경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던 점창의 고수들이, 뒤늦게 뛰쳐나오며 소종천을 포위했다.
거품을 물고 쓰러진 고궁하를 내려다보던 소종천의 시선이, 자신을 둘러싼 무인들에게로 향했다.
‘으음…… 고수가 너무 많은데? 인생 조져 버린 각인가? 응? 저건 또 뭐야?’
그냥 항복하고 잘못했다 빌어야 하나 내심 고민하던 소종천은, 무언가 거대한 기운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감지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군. 에잉, 쯔쯔.”
“헉!”
“사조님을 뵙습니다!”
등이 구부정한 볼품없는 노인 하나가 지팡이를 짚고 장내에 들어서자, 점창의 무인들이 하나같이 머리를 숙였다.
소종천을 포위하고 있는 머리가 희끗한 고수들마저 예외가 없었으니, 노인의 신분이 보통 높은 것이 아님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았다.
왜소한 체구의 노인이 느릿한 걸음걸이로 소종천의 앞에 섰다.
시선을 마주한 채 잠시 침묵하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허헛, 참. 죽은 줄로만 알았던 소림이 괴물을 만들어 세상에 풀었구나. 천 년 역사의 저력이란 게 이런 건가? 아해야, 이름이 무엇인고?”
“소종천입니다, 어르신.”
분위기를 살피던 소종천이 과할 정도로 허리를 숙였다.
어째 눈치를 보아하니 이 노인에게 말만 잘하면, 상황이 좋게 풀릴 것도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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