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89
45. 점창파(5)
“스승이 누구더냐?”
“누구라고 대답할 만큼 아는 게 없습니다. 무공을 배우긴 했지만, 제게도 정체를 알리지 않으신 탓에…… 때가 되면 듣게 될 줄 알았으나 이제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십니다.”
“그런가. 아쉽구먼, 분명 내가 이름을 알 만한 인물이었을 텐데. 하긴 나도 슬슬 흙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지.”
노인의 말에 주변인들이 황망해 하며 머리를 숙인다.
“사조님! 어찌 그런 말씀을…….”
“부족한 저희를 더 이끌어주셔야지요.”
“에잉, 쯧쯧! 언제까지 이런 늙다리를 붙잡아 둘 셈이더냐? 늙으면 죽는 게 당연한 순리이거늘.”
혀를 차는 노인의 말에 사람들은 더욱 고개를 조아렸다.
소종천은 감정을 사용해 노인의 정보를 엿보았다.
[이름 : 황석호] [별호 : 섬전검제]‘섬전…… 검제?’
초라해 보일 정도로 구부정한 외형과는 다른, 범상치 않은 노인의 별호.
소종천의 눈빛이 변했다.
‘단지 나이 많고 배분만 높은 사람이 아니구나. 그러고 보니 수준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데?’
막연히 대단한 무언가가 다가온다는 느낌만 받았지, 어느 정도의 경지인지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인즉슨 저 황석호란 노인이, 절정 지경에 들어선 소종천보다 월등히 뛰어난 단계에 있는 무인이라는 의미.
[재능] [오성 7.55] [근골 9.17] [감각 8.08] [내공 12.75]‘내공 수치가…… 역시나.’
정보를 마저 확인한 소종천이 탄성을 터뜨렸다.
120년을 넘어선 노인의 내공.
1갑자의 내공이 절정의 벽이라면, 2갑자의 내공은 초절정에 진입하기 위한 관문이다.
임맥과 독맥으로 일컬어지는 인체의 두 경맥을 온전히 뚫어 소주천을 이룬 자만이, 1갑자가 넘는 내공을 쌓아 절정의 경지를 밟을 수 있다.
그리고 임독양맥을 포함한 인체의 여덟 가지 주요한 경락,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모두 타통하는 대주천(大周天)을 이룬 자만이, 2갑자의 내공을 몸에 담아 초절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
정보창에 기록되어 있는 120년을 넘는 내공의 수치는, 황석호가 초절정의 경계를 허문 위대한 무인이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점창파 제일의 고수 황석호.
그는 소종천이 처음으로 마주하게 된, 지고의 경지에 도달한 무인이었다.
‘초절정 고수가 펼치는 무공은 대체 어떤 느낌일까? 아…… 관전 마렵다.’
황석호의 무공을 구경하고는 싶지만, 그렇다고 한 수 보여 달라며 까부는 것은 자살 행위가 될 것이다.
‘몸으로 직접 체험한다면 구경 값으로 목숨을 내놓아야 하겠지?’
절정에 이르며 목에 제법 힘이 들어가게 된 소종천이지만, 하늘 위의 고수라 할 수 있는 초절정의 무인 앞에선 겸손해야 한다.
얌전한 태도를 유지하며 소종천은 황석호의 정보창을 닫았다.
10성으로 가득한 무공목록은 굳이 하나하나 살필 필요 없고, 감정 관계가 관심이라는 것까지는 확인했다.
그간 알아본 바로는, 접점이 아예 없는 인물과의 감정 관계는 무관심으로 시작한다.
호의적인 관계라면 관심, 호감, 신뢰 등의 단계를 거치게 되고, 부정적인 감정을 가진 이는 비호감, 경계, 불신 등의 상태로 표시가 된다.
‘감정 관계가 관심이라면 그래도 긍정적인 신호라는 거지.’
물론 고작 관심이라는 단계는 소종천의 행동에 따라 얼마든지 급변할 수 있는 상태지만, 당장 악감정을 가지진 않았다는 말이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래. 잡담은 이 정도로 하고, 무슨 연유로 이런 소란을 피웠더냐?”
황석호의 질문에 소종천은 어떠한 가감 없이 방금까지 있었던 일에 대해 털어놓았다.
몇몇 나이 들어 보이는 무인들이 조용히 주변을 돌아다니며, 처음부터 상황을 지켜본 인원을 찾아 소종천이 한 말의 진위 여부를 확인했다.
“사조님.”
소종천의 이야기가 사실임을 확인한 점창의 무인 중 하나가, 황석호에게 조심스럽게 보고를 올린다.
“쯧. 개판이구먼.”
“송구스럽습니다.”
못마땅하다는 듯이 지팡이 끝으로 땅을 툭툭 두드리던 황석호가, 잠시 뒤 소종천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상황은 알겠다만 마냥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넘길 수는 없겠구나.”
황석호는 쓰러져 있는 고궁하를 보며 말을 이었다.
“꼴이 저러해도 어쨌거나 본파의 장로직에 있는 녀석이다. 네 대응은 본파의 입장에서 보자면 과한 감이 없잖아 있구나.”
“끙…….”
황석호의 말에 소종천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역시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건가? 이 노인네가 내 편을 들어주지 않으면 이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을 것 같은데.’
쉽게 놓아주지는 않겠다는 말에, 입맛을 다신 소종천이 입을 열었다.
“그러면 저를 어찌하실 겁니까?”
“비무로 인해 시작된 소동이라니 비무로 끝내도록 하겠다.”
황석호가 빙긋이 웃으며 대답했다.
“오랜만에 소림의 무공을 보고 싶구나. 아해야, 네 밑천을 털어놔 보거라. 좋은 구경을 하게 해준다면 더는 이번 일을 문제 삼지 않으마.”
소종천이 눈치를 살피며 질문을 꺼냈다.
“설마 제가 어르신을 상대해야 합니까?”
“허헛! 내가 누군지는 아느냐?”
“섬전검제 어르신 아닙니까?”
“응? 나이도 어린 녀석이 그 호칭은 또 어찌 알았누? 본산에 틀어박힌 지가 못해도 이십 년은 넘었거늘.”
“그렇게 말씀하시면 잊혀진 지 수십 년은 지난 소림의 무공을 이어받은 저는 어떻겠습니까?”
“그것도 그렇긴 하다만. 끌끌! 여러모로 신기한 놈이로구먼.”
재미있다는 듯이 웃어 보인 황석호가 지팡이를 들어 소종천을 겨누었다.
“자, 내가 누군지 알고 있다면 어디 전력을 다해 덤벼 보거라. 내 성에 차지 않는다면 다시는 소림이란 이름을 내세울 수 없을 것이야.”
부드럽게 말하는 것 같지만 엄중한 경고가 깃들어 있었다.
검도 아니고 고작해야 나무 지팡이가 자신을 향하고 있을 뿐인데, 소종천은 목에 칼날이 닿은 사람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이런 미친…….’
공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은 것처럼, 온몸이 무겁게 느껴지며 호흡을 내뱉는 것조차도 벅찬 느낌이 들었다.
눈앞의 상대는 더 이상 등이 굽어 초라해 보이는 노인이 아니다.
검 한 자루로 천하를 호령할 수 있는 거인이 우뚝 서 있었다.
8성에 이른 반야신공이 아니었다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서 있다가 그대로 당했을 것이었다.
웅혼한 내력이 전신을 감싸며 소종천의 심신을 보호했다.
압박에서 벗어난 소종천이 다급하게 불영선하보를 펼쳤다.
방금까지 머리가 있던 자리를 지팡이가 꿰뚫고 지나간다.
잠깐이나마 일흔검 맹두산의 힘을 몸에 품었고 장자군의 무공을 여러 번 봐오기도 한 소종천은, 그것이 점창파의 기본 검공인 분광검법의 초식임을 파악할 수 있었다.
‘썅! 사기 치지 마! 저게 어떻게 분광검법이야!’
기감으로는 파악했지만, 머리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기본공이라 해도 대문파의 무공답게, 분광검법은 분명 쓸 만한 쾌검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렇지만 아무리 분광검법을 극성까지 익힌다 해도, 점창의 대표 절기인 사일검법에 비교할 바는 못 된다.
한데 방금 보였던 황석호의 검격은, 소종천이 알고 있는 사일검법의 검초에 전혀 뒤지지 않는 속도였다.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이마가 찢어질 뻔했다.
“끌끌! 기이한 방식으로 내공만 비약적으로 올린 건 아닌가 싶었더니, 제대로 기본은 되어 있었군.”
웃음을 흘린 황석호가 다시 한번 지팡이를 찔러왔다.
뭉툭한 나무 지팡이가 초절정 고수의 손에 들리자, 세상에 다시 없을 명검처럼 날카로운 기세를 뿜어낸다.
이번에는 분광검법이 아닌 사일검법의 검초였다.
깡!
“으윽!”
체감하기로는 방금보다 두 배는 빨라진 것 같은 속도.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완전히 피하지 못해, 팔을 들어 가까스로 튕겨낼 수 있었다.
수갑의 금속부를 이용해 막아내긴 했는데, 지팡이에 실린 내력을 온전히 해소하지 못해 충격으로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이게 초절정…… 더럽게 강하잖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 거지?’
답이 보이지 않으니 일단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는 수밖에 없다.
소종천의 신형이 여럿으로 늘어났다.
반야신공과 함께 연대구품 역시 8성에 도달했기에, 본체를 제외하면 실체화시킬 수 있는 신형이 7개.
‘그래도 이 정도면 어떻게 빈틈 한 번 정도는 만들 수 있겠지.’
실체화된 신형들이 정신 사납게 움직이며, 황석호를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수십 발의 기탄이 자신을 향해 날아드는데, 황석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어떠한 반응도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물론 초절정의 고수인 그가 기탄을 감지하지 못했을 리는 없다.
‘야이 씨! 아예 먹히지도 않냐!’
그저 피하거나 막을 이유가 없기에 가만히 있었을 뿐.
하나하나가 거목을 꿰뚫을 위력을 가진 기탄이지만, 황석호에겐 이슬비를 맞는 것과 다름없는지 아무런 피해를 입히지 못했다.
일류의 무인은 기로 검을 보하는 어기충검을, 절정의 무인은 검 밖으로 기를 방출시키는 검기상인을 사용한다.
그리고 초절정에 도달한 무인은 기를 압축해 위력을 극대화시키는 초현검강(初弦劍罡), 흔히 검강이라 부르는 수법을 사용할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가장 흔한 병기인 검을 기준으로 말했을 뿐이지, 도에 씌우면 도강, 손에 씌우면 수강이라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기를 그냥 방출하는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단계 더 강화시킨 강기(罡氣)를 다룰 수 있게 된다는 점.
그리고 이 강기를 무기 대신 몸에 둘러, 갑옷처럼 방어력을 갖추는 수법을 호신강기(護身罡氣)라 칭한다.
초절정 무인만의 전유물.
탄지신통의 성취도가 훨씬 더 높아진다면 모를까, 지금의 위력으로는 호신강기를 뚫을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지. 그냥 부딪히는 수밖에.’
조금이라도 빈틈을 만들어 공략해 보려던 소종천은, 속으로 욕설을 삼키며 황석호를 향해 달려들었다.
“좋구먼!”
흥겹다는 듯이 외친 황석호가 지팡이를 움직인다.
무형의 기운이 사방으로 퍼지며 소종천의 신형들을 옭아매는 그물이 되었다.
사일검법 최후의 초식.
구곡전척(九曲箭剔).
사일검법을 대성한 검사라 해도 만반의 상태가 아니면 쉽게 펼칠 수 없는 절초이나, 황석호는 몸풀기 동작처럼 가볍게 구곡전척의 검초를 따라 움직였다.
아홉 번 굽이치는 화살이라는 이름답게, 지팡이가 연달아 꺾이며 허공에 기묘한 검로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 검로의 끝에는 하나같이 낭패한 표정을 한 소종천의 신형이 놓여 있었다.
아홉 개로 갈라지는 검강.
마치 연대구품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기라도 한 것 같은 초식이다.
“좋긴 뭐가 좋아!”
소종천은 짜증을 담아 외치며 몸을 피했다.
아홉 줄기의 검강이 신형들을 관통한다.
그나마 소종천의 본체는 불영선하보에 금강부동신법까지 연달아 펼치며, 지팡이에 꿰뚫려 꼬치가 되는 신세는 면했다.
“끌끌! 재주가 많은 아이로구먼!”
“이거 비무 맞습니까!? 자칫하다간 죽겠구만! 증손주뻘인 후배한테 너무하시네!”
“원래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늙은이들은 심술궂은 법이란다. 어디 이것도 피해 보거라.”
황석호가 검을 뒤로 빼며 몸을 젖힌다.
사일검법의 일곱 번째 초식.
후예사일(后羿射日).
팔 번 초이자 최후 초식인 구곡전척보다는 한 끗 아래로 분류되지만, 단일 대상에게 가하는 공격으로는 명실공히 사일검법 최강의 초식이다.
‘아, 이건 진짜로 뒈질 것 같은데.’
소종천의 감각이 최고조로 활성화되었다.
시간이 느려진 것 같은 공간 속에서, 공중에 떠다니는 먼지 한 올까지 감각에 잡힌다.
그리고 그렇게 극대화한 기감으로도 온전히 감지해 낼 수 없는 엄청난 속도로, 한 줄기 섬광이 소종천을 노리고 번쩍였다.
뽑기로 무림최강 9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