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9
6. 검과 권
‘0.22면 정상적인 수련과정으로 쳤을 때 대략 2년분의 내공. 비무 한 번으로 엄청난 시간을 절약한 셈이잖아? 뽑기 이거 상당히 쓸 만한데?’
모든 걸 운에 맡겨야 한다는 점이 조금 그렇긴 하지만, 일단은 마음에 드는 결과였다.
이런 보상을 두 번만 더 받을 수 있다면, 대주급의 생도들과 내공 면에서는 동수를 이룰 수 있다는 뜻 아니겠는가?
‘추혼퇴도 제법 괜찮은 무공이었고. 이대로 영약으로 내공을 계속 쌓고, 보다 높은 등급의 무공들을 뽑아서 익히게 된다면…… 3년 뒤에 졸업할 때쯤엔 대단한 고수가 되는 거 아냐?’
모든 무인에게 추앙받는 젊고 출중한 고수의 탄생.
아직 이쪽의 세상에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지만, 그런 상상을 하니 이런 생활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마음이 살짝 생겼다.
‘게임의 스토리…… 만약 목표대로 마교를 몰아내고 나면 어떻게 되는 거지? 원래 세상으로 돌려보내 주나? 만약 그대로 이곳에 눌러살아야 한다면, 무공의 수위는 높을수록 좋겠지. 위험한 세상이니까.’
끝을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상상.
잠시 감상에 빠져 있자니, 소종천을 업고 있던 생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다 왔네.”
고개를 들자 커다란 전각이 눈에 들어왔다.
의룡전이라는 글자가 현판에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하여간 여긴 뭐만 하면 다 용이야.’
약재를 달이는 듯한 특유의 냄새가 안에서 솔솔 풍겨오는 걸 보니, 이곳이 잠룡학관의 의료 시설인 모양이다.
내부로 들어서자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관계자 중 한 사람이 다가온다.
“어이쿠! 잔뜩 두들겨 맞았군. 황룡단 생도들은 아직 집단전 수업이 없지 않나?”
단에서 지급받은 무복을 입고 있기에 누구나 바로 소속을 알아볼 수 있다.
의원으로 보이는 남자는 온몸이 부어오르기 시작한 소종천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비무로 생긴 상처입니다.”
“비무? 허어, 어지간히도 격하게 싸운 모양이구먼. 저쪽 침상에 눕히게.”
환자를 업고 온 생도들이 안내에 따라 침상 쪽으로 이동해 조심스럽게 두 사람을 내려놓았다.
“고마워.”
소종천의 감사 인사에 여기까지 그를 업고 온 생도가 씨익 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고맙긴 무슨. 네 싸움은 꽤 인상적이었어. 다음엔 나랑 한번 붙어보자고? 아! 내 이름은 조영이야.”
“아…… 뭐, 그래.”
주먹을 흔들어 보이는 모습에 살짝 당황했지만, 모용설호와 달리 악의가 없는 순수한 대련 의도를 느끼고 고개를 끄덕였다.
또 그 수업을 참여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무인들끼리 실력을 겨루는 거야 빈번한 일이니 언제고 다시 그런 자리가 마련될지 모르는 일이다.
“몸조리 잘하고. 혹시 보여주지 않은 수가 더 있으면 그거 열심히 수련해라. 나는 저기 기절한 녀석에게 써먹은 방법으로는 쓰러뜨릴 수 없을 거니까.”
자신의 가랑이 사이를 툭툭 치며 낄낄거리는 상스러운 모습에, 소종천은 넋 나간 얼굴로 입을 벌린 채 대답하지 못했다.
‘거참…… 털털한 여자애네.’
조영이 떠나가고 나자, 의원이 다가와 소종천의 옷을 벗겼다.
“으윽! 살살해 주세요.”
“쯧쯧,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구먼! 특히 얼굴이 큰일일세.”
“예? 목 위쪽으로는 안 맞았는데요?”
“그래? 얼굴이 제일 많이 뭉개진 것 같은데?”
“말씀이 심하시네! 이 정도면 호남 상 아닙니까?”
“껄껄! 보아하니 상처 부위는 넓어도 심각한 부상은 없으니 금방 가라앉을 걸세. 우리 의룡전의 고약은 이런 타박상에 특효니 말이야.”
농지거리를 주고받은 뒤, 의원은 약단지 하나를 가져와 손으로 내용물을 듬뿍 퍼 담아 소종천의 몸에 골고루 바르기 시작했다.
퀴퀴한 냄새가 코끝을 찌른다.
“이거 향이 좀…….”
“구리지? 어쩔 수 없으니 참게나. 잘 듣는 약이란 다 그런 법이라네.”
약이 아니라 거름이라도 바르는 줄 알았다.
그래도 의원의 말대로 약효는 확실한지, 화끈거리던 상처의 통증들이 가라앉으며 몸 전체가 시원하게 느껴진다.
“진통 효과도 탁월하니 곧 아픔도 느껴지지 않을 걸세.”
“그러네요.”
“한숨 자도록 하게. 약효가 돌고 있으니 운기행공은 참았다가 저녁에나 취하고. 내일 침으로 어혈을 풀고 나면 그럭저럭 움직일 만해질 걸세.”
“네.”
환자가 되었으니 의원의 지시를 얌전히 따르기로 한다.
거동이 어려운 소종천은 숙소로 돌아가는 대신 의룡전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 * *
모용설호와의 비무 이후, 소종천에 대한 주변의 시선이 제법 바뀌었다.
비무 결과에 관한 이야기가 알게 모르게 퍼진 것이다.
주력무공이 아닌 권법만을 이용한 비무였지만, 그래도 최고 성적을 가진 생도 중 하나인 대주를 꺾은 것 아니겠는가.
물론 비무를 지켜본 이들은 소종천이 완전한 실력으로 승리를 거둔 것이 아님을 알지만, 그래도 전보다는 훨씬 긍정적인 평가가 돌았다.
정체불명의 머저리에서 그나마 최소한의 실력은 갖춘 괴짜 정도?
그렇다고 생활이 딱히 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 왜! 왜 바뀌는 게 없는 건데?”
비무 이후로 3일째.
의룡전에서 치료를 받고 이제 슬슬 몸의 붓기가 빠지고 있으나, 아직은 거동에 불편함이 있는 상태다.
그래도 움직일 수 없는 건 아니라서 매일같이 만룡각을 들락거리며 비급을 들여다보고 심법을 수련하고 있지만, 여전히 반야신공의 성취는 없었다.
‘공부를 예전에 이렇게 했으면 명문대를 갔겠다!’
오늘도 비급에 적혀 있는 선문답에 가까운 아리송한 무공 구결들을 열심히 암기하다가 나왔다.
그나마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닌지 생각보다 빠르게 외워지고 있긴 한데, 그래도 아직 초반부에 머물러 있을 뿐.
워낙 두꺼운 비급이라 아직 전체 내용의 반도 다 외우지 못했다.
‘그냥 운기를 하는 것만으론 계속 변화가 없을 것 같은데. 진짜로 구결까지 완전히 다 습득하고 나야 성취를 볼 수 있는 건가? 아니, 뭐 상승의 공부는 깨달음의 과정이 필요하단 소리는 어디서 주워듣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고작 1성부터 이렇게 막힌다고?’
답답함에 몸부림을 쳐봐야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그래도 비급의 구결을 전부 외우고 나면 진전이 있겠지 하는 생각으로 죽어라 암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좀 눈에 확 띄게 계속 성장하면 좋겠는데.’
3일 동안 얻은 거라곤 일일 보상으로 얻은 700은이 전부.
기존에 있던 600은에 더해 인급 뽑기를 한번 돌렸고, 무색 영약을 얻어 내공이 또 0.01 상승했다.
그로 인해 내공 수치가 1.60이 되었지만, 은색 영약을 먹었을 때와 비교하면 이 정도는 딱히 차이를 느낄 만한 변화도 아니다.
‘저번처럼 지급 보물을 얻을 수 있는 임무 같은 거 안 주나. 은색을 또 뽑아야…… 아니, 하다못해 동색이라도.’
징징거리면 뭐라도 임무가 발생할까 싶어 이런저런 생각을 해봤지만, 알림은 잠잠하기만 하다.
“쳇.”
만룡각을 나선 소종천은 의룡전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몸 상태를 빨리 회복하려면 아침저녁으로 매일 치료를 받으러 오라고 했다.
다른 바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귀찮아도 며칠은 더 방문을 해야 한다.
의룡전에 도착하자 뭔가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뭐지?”
무인들이 널린 곳이라 평소에도 왕래하는 사람이 많은 장소지만, 어째 오늘은 더 소란스러운 것 같아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향해 기웃거렸다.
그러다가 충격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허미, 시펄?”
고통스러운 표정을 한 사람이 부축을 받으며 막 침상에 눕고 있는데, 팔 한쪽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아니, 잘 살펴보니 근처에 있던 다른 사람이 잘린 팔을 들고 있었다.
‘뭐야? 뭐하다가 팔을 잘라 먹고 온 거야?’
제대로 지혈을 했는지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진 않지만, 심각한 부상이라는 건 의원이 아니라도 알 수 있는 상황.
‘저건…… 백룡단 무복인데?’
단별로 지급받는 복장이 있기에, 부상자가 두 단계 위의 선배라 할 수 있는 백룡단 소속의 무인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크으으…….”
“빨리 안으로 들이게! 어서!”
의룡전의 관계자 몇 사람이 달라붙어 부상자를 데리고 시야에서 멀어져간다.
멍하니 보고 있자니 남겨진 사람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같은 복장을 입고 있는 걸 보니 이들 역시 백룡단의 무인들이다.
“안됐군. 검수가 팔을 잘렸으니 무인으로서의 생명이 거의 끝난 거나 다름없지.”
잘린 팔을 들고 있었던 남자가 말을 받았다.
“고작 비무일 뿐인데 왜 그런 무리를 해서…… 후!”
“안타까운 사고지. 둘 다 너무 흥분해서 전력을 다하다 보니 제때 멈추지 못했던 거야.”
“진급한 지 며칠이나 지났다고 이런 사고가 생기는지. 분위기가 뒤숭숭해지겠어.”
“할 수 없지. 칼밥을 먹다 보면 생기는 일이니 누굴 탓하겠나?”
본의 아니게 대화를 듣게 된 소종천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무슨 엄청난 사건에 휘말린 것도 아니고 그냥 비무 중에 다친 거야? 아니…… 이거 생각 이상으로 위험한 곳이네?’
무인이 부상을 달고 사는 거야 새삼스럽게 꺼낼 필요도 없는 이야기지만, 저런 모습을 보고나니 머리로만 알고 있었던 것과는 또 느끼는 것이 틀리다.
절로 몸에 힘이 들어갔다.
‘권법은 차라리 안전한 거구만. 나중에 칼 든 놈들이랑 저번 같은 비무를 하다 보면 나도 저 꼴이 나는 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며 바닥에 찔끔 질끔 흘려져 있는 핏자국들을 보니 소름이 돋는다.
떨떠름한 얼굴로 소란을 지켜보고 있는 그때.
[임무 발생!]소종천이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바라던 좋은 보상의 임무가 생겨났다.
[진검승부] [예병을 든 상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십시오.] [보상 : 인급 보물 상자 3개]“미친?”
보상은 좋긴 하다.
인급 보물 상자 3개면 여태까지 모은 은으로 뽑은 숫자가 그만큼이니까.
하지만 임무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예병(銳兵).
즉, 날붙이를 든 상대와 싸워 승리하라니.
방금까지 비무하다가 팔이 잘려 나간 사람을 보고 있었는데, 퍽이나 수행하고 싶은 임무겠다.
‘아 이거 느낌 안 좋은데.’
무인으로 생활하는 이상 언제고 겪게 될 일이긴 하다.
아니, 무기를 든 상대와 싸우는 것은 결국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리라.
그렇지만 변변찮은 무공 실력의 소종천으로선 최대한 피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임무를 깨야 보상을 받는 건 그렇다 치고, 괜히 원치도 않는 판이 깔릴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지.’
왠지 이런 임무를 질질 끌고 있으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전투의 상황이 들이닥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예를 들어 치욕스러운 패배를 당한 모용설호가 복수전을 신청하기라도 한다면?
본인은 당연히 거절하고 피하겠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이 악물고 억지로 덤벼들기라도 하면 막을 방법도 없다.
권법 대련이야 기회를 잡아 운 좋게 이겼지만 검을 들고 본 실력을 다하는 상황이라면, 설마 죽지야 않겠지만, 자신도 백룡단의 무인처럼 팔이 잘려 나가는 꼴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것이다.
‘그건 안 돼!’
상상하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런 상황에 놓일 바에야 임무를 미루지 않고 주도적으로 움직여서, 조금이라도 안전한 상황에서 빨리 해결하는 것이 낫다.
이 위험한 세계에서는 조금이라도 빨리 성장을 해야 위험에서 몸을 지킬 가능성이 올라가고, 그러기 위해선 뽑기만 한 방법이 없기도 하다.
보상으로 얻는 인급 보물 상자 3개면 뭐라도 하나쯤 나와 주지 않겠는가?
‘싸움이라고 해서 꼭 실전을 뜻하는 건 아닐 테니, 적당한 녀석을 골라잡아 비무를 치르면 되겠지. 근데 내가 이길 만한 녀석이 있긴 있으려나?’
목표인 승리를 거두려면 아마 성적 최하위권의 생도 중에서 찾아야 할 텐데, 솔직히 그런 상대라 해도 확실히 이길 수 있을 거란 자신이 없었다.
비슷한 실력이라도 맨손보단 무기를 든 쪽이 유리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에이 모르겠다. 횟수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길 때까지 하다 보면 깰 수 있겠지. 나한테 악감정 없고 좀 살살 대해줄 만한 녀석을 찾아야겠는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한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같은 조의 장자군.
‘자군이가 검을 쓰지? 실력은 모르겠지만, 성격은 괜찮은 녀석 같은데. 경험을 쌓게 도와달라고 대련 몇 번 하다 보면 내가 이길 기회가 한 번쯤은 오지 않을까? 그 녀석이라면 그래도 모질게 칼침을 놓지는 않을 것 같은데.’
생각을 정리한 소종천은 장자군에게 이야기를 꺼내보기로 마음먹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