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90
45. 점창파(6)
약관에 이르기도 전에 절정 지경에 닿는 것은, 보편적인 시선으로 보자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절대로 불가능하냐고 물으면, 아주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긴 했다.
천금을 주고도 구입하기 어려운 약재를 여러 개 구해 영약을 제조할 능력이 있고, 절정 이상의 무인들이 내공에 영구적인 손실을 입을 것을 감안하고 번갈아가며 운기를 돕는다면, 나이와 관계없이 막대한 내력을 쌓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내공만 늘려 만들어낸 절정의 경지를, 제대로 된 무인이라고 부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정말로 소림의 무공을 온전히 물려받았군.’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지만, 황석호는 소종천을 보며 계속 놀라움을 느끼고 있었다.
비정상적인 방식으로 단순히 내공만 무식하게 늘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했었는데, 보여주는 무공 하나하나마다 신묘한 절기가 아닌 것이 없다.
확실히 그가 기억하고 있는 예전 소림의 절학들이었다.
저 나이에 반쪽짜리가 아닌 진정한 절정 지경의 무인이라니.
이미 초절정에 들어 남부러울 것 없는 위치에 오른 황석호조차, 질투가 날 정도의 재능이었다.
‘이만한 인재가 주축이 된다면 소림이 재건되는 것은 정말로 시간문제일 뿐이겠군. 그런데 그건 과연 본파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인가?’
바깥으로는 도의를 중요시한다 말하지만, 대형문파만큼 자신들의 실리를 지독하게 챙기는 곳도 없다.
무당, 화산, 점창, 개방.
구파일방의 몰락에서 살아남아 세를 보존한 네 문파는, 기존보다 훨씬 커다란 기득권을 차지하고 몸집을 불려가고 있다.
이제 와서 과거의 잔재가 다시 부활하는 것을 반기기란 어렵다.
특히 그것이 한때 무림 최고의 문파로 군림했던 소림이라면 더더욱.
추잡하고 저열한 행동이 되겠지만, 혹시나 싹을 잘라내고자 한다면 지금만 한 기회도 없을 것이다.
여유롭게 소종천과 어울리고 있던 황석호의 시선이, 자신이 보여주고 있는 점창 무공의 극의에 경탄하는 중인 장자군에게로 향했다.
만약 장자군의 존재가 없었더라면, 황석호는 소종천에게 치명상을 입혔을지도 몰랐다.
소림의 이름을 내건 눈앞의 아이에 비해 내공은 부족하지만, 절정의 무인과 견줄 정도로 검법에 높은 성취를 보인 본파의 제자.
황석호의 눈에는 소종천도 그렇지만, 장자군 역시 불가사의한 재능을 가진 것으로 보이기에 충분했다.
‘저쪽의 다른 아이들도 비범해 보이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군. 장강의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더니, 이런 게 세월의 흐름이라는 건가?’
한사혜와 남궁건을 거치며 소종천의 일행들을 전부 살펴본 황석호가, 지팡이에서 내력을 거두어들였다.
‘본파의 제자 중에도 저리 뛰어난 인재가 있으니, 뒷일은 젊은 놈들에게 맡겨둬도 충분할 테지. 말년에까지 오물을 더 묻히고 갈 필요야 없을 터.’
내구도의 한계치를 넘어선 기운에 억지로 붙잡혀 있던 나무지팡이가, 먼지가 되어 바스러졌다.
몸을 꿰뚫릴 뻔했던 상황에 아찔해 하던 소종천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공격을 멈춘 황석호를 바라보았다.
‘방금 공격…… 저쪽에서 멈추지 않았다면 과연 막을 수 있었을까?’
약간 늦긴 했지만, 상대의 움직임에 아예 반응하지 못한 건 아니긴 하다.
흉부 중앙의 단중혈을 노리고 찔러오는 섬광에, 불영선하보와 금강부동신법을 동시에 펼치며 일부러 심장부를 상대의 투로에 가져다 대긴 했다.
물론 자살을 하려던 것이 아니라, 심장부를 보호하는 용린으로 공격을 막아내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과연 시도한 대로 되었다고 해도, 초절정 무인이 펼친 절초를 용린이 견딜 수 있었을지는 그로서도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검이었다면 버티지 못했을 테지만, 강도가 떨어지는 지팡이라서 막아낼 수 있었을지도…… 에이 망할! 이런 무의미한 가정 따위를 하는 게 무슨 소용이야?’
한번쯤은 견뎠을지 몰라도 어차피 그게 큰 변수가 되진 않는다.
상대가 봐주지 않았다면 죽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나니, 혼란스러운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대단할 줄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나는 거였나.’
역시 괜히 무의 종착점이라 부르는 경지가 아니다.
조금 침울해진 소종천에게 황석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까지 하지. 그래도 소림의 전인이라 내세우기에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로구먼.”
“……귀중한 경험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착잡한 심정으로 소종천은 머리를 숙였다.
황석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좋은 구경했지? 이제 각자 할 일로 돌아가도록 해라!”
“하오나 사조님…….”
“두 번 말하게 할 셈이냐?”
“아, 아닙니다.”
문파의 가장 큰 어른이 나선 일이었기에, 점창의 인물들은 다른 말을 더 꺼낼 수 없었다.
소란스러웠던 이번의 사건은 그대로 마무리가 되었다.
소종천으로서는 절정 지경이 되었다고 마냥 안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해주는 계기가 되는 경험이었다.
* * *
잠시 머물다 떠나려고 했던 점창파에서의 일정은, 생각보다 좀 더 길어지게 되었다.
장자군의 무위를 본 점창의 고위층 인사들이, 그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았기 때문.
어린 나이에 장로급에 견줄 만한 무공 성취를 보여주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점창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로 재평가된 장자군은, 장문제자로 삼고 지원을 몰아주어야 한다는 의견까지 나오며 문파 내의 위상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져만 갔다.
곧장 떠나지 못하고 시간을 뺏기긴 했지만, 소종천의 입장에서도 마냥 이득이 없던 것은 아니긴 했다.
소종천은 제법 권한이 높아진 장자군을 통하여, 점창파의 조력을 받아 필요로 했던 정보들을 몇 가지 알아낼 수 있었다.
“곽진 교관님…… 지금은 교관이 아니시지만 어쨌든, 그분은 지금 연맹의 무인들과 함께 산서성 인근에서 활동하신다고 하셔.”
“그렇구나.”
점창산을 떠나면 사천으로 향할 예정이었는데, 산서라면 한참 떨어진 곳이니 우연으로라도 마주칠 일은 없겠거니 싶었다.
‘마교와의 싸움을 위해서라면 결국 그쪽으로도 가긴 해야 할 텐데. 음…… 노사님을 다시 뵙게 되면 크게 한 소리를 듣겠지? 하남의 소림사로 가지 않은 덕분에 결과적으로 심 사형을 만났으니, 마주치게 되어도 변명거리는 있긴 하다만.’
여차하면 아직 생존해 있는 소림의 무승에 대한 이야기를 여행길에 우연히 들어, 그를 만나기 위해 하남행을 미루고 운남에 다녀왔다고 핑계를 댈 수는 있으리라.
“그리고 네가 말한 그 녹옥불장이라는 물건 말인데. 그것도 약간이지만 정보가 들어오긴 했어.”
“어? 그래? 물어보길 잘했네. 어떤 건데?”
사천에서 열렸다던 암시장은 돈푼깨나 만진다는 사람들을 위한 비밀리에 이루어진 거래였기에, 그곳의 출품 내역이나 참가자의 신상 등은 아무나 접근할 수 있는 정보가 아니다.
이미회에서도 그냥 그런 게 있다더라 하는 정도만 들었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지는 못했었다.
때문에, 무작정 암시장이 열린다는 장소를 찾아가 조사를 해야 하나 싶었는데, 대형문파인 점창파의 힘이 동원되니 제법 수월하게 관련된 정보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알아보니 그 암시장이라는 곳이 연맹 쪽의 사업이랑도 관련이 있다더라. 그래서 물품이 거래되었던 기록 자체는 어렵지 않게 찾은 모양이야.”
“과연. 그래서 자세한 내용은?”
“일단 물품의 출처는 무당파의 관계자에게서 나왔다는 듯하고, 구매자는…….”
“엥? 무당파라고?”
“어. 그렇다고 하던데?”
소종천의 입장에선 녹옥불장의 최종소유자가 누구인지만 알아내면 되지만, 뜻밖의 이름이 등장하는 바람에 잠시 이야기가 지체되었다.
‘묘하게 자주 엮이는 곳이네. 안 좋은 쪽으로 말이야.’
소림이 망하게 되면서 무문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무공 비급은 이미 다른 문파들에게 탈탈 털린 마당.
그런 와중에 녹옥불장을 무당파에서 보유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는 이상한 일은 아니긴 하다.
다만 장문령부쯤 되는 물건이면 탐내는 세력이 많았을 텐데 그중에서도 무당파의 손에 들어가 있다는 것은, 주인이 어려운 상황에 가장 앞장서서 빈집을 턴 쥐새끼가 그들이었다고 생각해도 크게 무리는 없을 것 같았다.
‘여러모로 악연이 깊은 놈들이구만.’
잠시 멈추었던 이야기를 다시 재개하며, 소종천은 녹옥불장의 구매자가 청해성에 본거지를 둔 대형 상단의 주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시 거래 가격은 이 정도 된다고 하던데.”
“으음. 역시 비싸긴 하네.”
가격에 대해서 들은 소종천이 신음을 흘렸다.
장문령부라는 것이 해당 문파에겐 무가지보라 해도, 단순히 상징적인 물건일 뿐이니 외부에서까지 엄청난 가치를 지니진 않는다.
하지만 망했다고는 하나 무림의 역사를 만들었던 거대 문파의 신물.
특별한 내력을 지닌 희귀한 물품이 있다면, 거액을 주고라도 수집하고 싶어 하는 부자들은 어디에나 있다.
자연히 녹옥불장 역시 헐값에 거래되진 않았다.
평범한 소시민이 평생 동안 일해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합쳐야 나올 법한 금액에, 소종천은 절로 혀를 차게 되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내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돈은 아니네. 심 사형이라면 가능하려나?’
아무리 원래 소림의 물건이라 해도 이제 와서 소유권을 주장하긴 어렵다.
일단은 그 구매자라는 사람까지는 만나 거래 의사나 조건 등을 알아보고, 심익한에게 소식을 전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청해로 갈 셈이야?”
“그래야겠지? 직접 대면하지 않고는 세세한 이야기를 나눌 수 없으니까.”
“지금의 청해성은 무법 지대나 다름없다고 들었는데, 별일 없으려나 모르겠네.”
장자군의 말에 소종천은 의문을 품은 눈빛을 보냈다.
“그 동네에 뭐 문제라도 있나?”
“일단 연맹의 입김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니까.”
사천성의 북서쪽에 위치한 청해성은 신강과도 맞닿아 있어, 마교의 중원침공에 발판이 되었던 지역이다.
한때 구파일방의 하나였던 곤륜파가 있었지만 이제는 유명무실한 문파로 전락해 버렸고, 현재는 연맹에 속하지 않은 사파의 세력들이 기득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마인들이 자주 출몰하고 있는 산서성이나 하북성 같은 분쟁 지역과는 다른 성격이지만, 연맹의 세력권에 속한 다른 지역과 비교해 위험도가 높은 장소라는 것은 동일했다.
“그래도 다녀오긴 해야지. 그런데 넌 괜찮겠냐? 점창에서 놓아주지 않을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선 이미 이야기를 끝냈어. 내 실력이 급증한 것은 너를 포함해 친구들과 함께 경험을 쌓은 덕분이라고 박박 우겼거든.”
“흠. 너 요즘 그 사저 아가씨랑 잘 되고 있는 것 같던데. 이대로 떠나도 되겠어?”
장자군의 위상이 크게 높아지게 되며, 아래 배분의 제자들 사이에서 왕 노릇을 하던 이회는 더 이상 제멋대로 설쳐대지 못하고 조용히 틀어박혔다.
이회에게 당한 게 많던 제자들은 전부 장자군의 편이 되어 호의를 보냈고, 특히 사저인 유서교와는 꽤나 분홍빛 분위기를 만들고 있는 것을 소종천도 알고 있었다.
“사저에게는 미안하지만 네게 은혜를 갚는 것이 더 중요하니까. 이해하고 기다려 줄 거야.”
저리 이야기하는데 뭐라 더 할 말은 없었다.
“그럼 슬슬 떠날 준비를 하자.”
“알았어. 청해 쪽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는 분을 찾아 조언을 구해보고, 내가 경로와 일정을 짜도록 할게.”
“좋아. 부탁한다.”
청해성은 염호(鹽湖)가 많아 소금의 산출지로도 알려진 곳이다.
녹옥불장의 구매자는 소금 거래로 부를 축적한 상단의 주인으로, 돈 많은 재력가답게 성도 안에 큰 장원을 두고 거주하고 있다고 했다.
청해성의 성도인 서녕을 목적지로 정하고, 일행들은 운남에서 사천을 거쳐 청해까지 이동할 채비를 갖추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9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