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91
46. 환경미화
사천성 서부 신룡현.
“죽여!”
“끄아악!”
“아, 맵다. 거기 물 주전자 좀 이리 줄래?”
“여기.”
“크하하! 이 어르신의 칼침 맛이 어떠냐!”
컵에 물을 따라 들이켠 소종천은 창밖으로 시선을 주었다.
식당 바깥의 길가에서 고성과 비명이 오가며, 수십 명의 사내가 뒤섞여 한참 난투가 펼쳐지고 있었다.
“시끄럽구만.”
“조용히 시킬까?”
“응? 아냐. 일부러 그럴 것까진 없고.”
벌떡 일어나 뛰쳐나가려는 한사혜를 붙잡아 다시 앉혔다.
바깥에서 싸우고 있는 자들은 무인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하류 잡배들이 대부분.
일행 중 누가 나서도 순식간에 소란을 종결시킬 수 있겠지만, 고작 밥 먹는데 조금 시끄럽다는 이유로 남의 싸움에 끼어드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그나저나 하루에 꼭 한 번 이상은 저런 광경이 보이는 것 같네.”
“사천에는 흑도방파가 굉장히 많다고 듣기는 했소. 그러다 보니 세력 다툼이 잦아 흔히 눈에 띄는 모양이오.”
“맞아. 사천성은 연맹의 세력권 내이긴 하지만, 영향력이 그리 큰 편은 아니거든. 성도를 비롯해 대도시들은 당문이 꽉 잡고 있긴 한데, 이렇게 중심지에서 벗어난 작은 현들은 무주공산이지.”
현재 사천에서 당문의 권위는 절대적이다.
다만, 혈족 중심으로 돌아가는 세가이다 보니, 사천성 전부를 아우를 만한 통제력을 갖추기는 어려웠다.
과거에는 구파일방에 속한 아미파와 청성파가 존재해, 당문과 함께 사천성을 삼분하는 강자로 군림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아미는 소림과 마찬가지로 무력을 완전히 잃어 이름조차 잊혀 버렸고, 청성 역시 간신히 명맥만 이어갈 뿐 과거의 영광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렇기에 당문의 본가가 위치한 중부 외에 다른 지역들은 군소문파들이 수시로 만들어졌다가 사라지며, 이권을 차지하기 위해 쉴 새 없이 다툼을 벌이는 판이었다.
“그래도 사천은 조용한 편이라던데? 청해 쪽은 진짜 무법천지라고 소문이 파다하더라.”
“흠. 여기보다 더하면 대체 어느 정도인 건지.”
젓가락을 놀리며 잡담을 하고 있자니, 객잔의 문이 열리며 핏물을 묻힌 남자 셋이 안으로 들어섰다.
밖이 조용해진 것을 보니 싸움이 끝난 모양이었다.
“주인장! 술 한 동이 내오쇼!”
“어떤 종류로 드릴까요?”
“거, 꼭 말로 해야 알겠어? 제일 좋은 술로 알아서 가져와야지!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장사는 어떻게 하나?”
“내가 정신 똑바로 차리게 만들어줘?”
사내들이 눈을 부라리며 위협적으로 말하자, 겁에 질린 주인이 굽실거리며 주방으로 들어간다.
“죄, 죄송합니다. 금방 내오겠습니다요.”
딱히 관심은 없었지만, 소종천의 예민한 감각이 자동적으로 사내들을 살피고 지나갔다.
‘거의 일류에 근접해가는 정도쯤인가.’
그나마 무공을 배우긴 했다고 말할 수 있는 실력.
아마도 이긴 쪽 세력의 우두머리급에 있는 자들인 것으로 보였다.
‘딱 조그만 흑도방파에 어울리는 수준이고만.’
사내들이 요란스럽게 자리에 앉아 몸에 묻은 피를 닦아내고 있자, 식당의 손님들이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빠져나간다.
소종천에겐 눈감고 싸워도 이길 수 있는 상대지만, 일반인들에게 저들은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한 존재이긴 할 것이다.
도망치듯 밖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킬킬거리던 사내들이,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종천 일행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모두가 자신들을 두려워하는 모습에 쾌감을 느끼고 있었는데, 웬 어린 것들이 이쪽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여전히 식사에 열중하고 있다.
“크흠!”
눈을 굴리며 탐색하던 남자들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
장자군과 남궁건이 차고 있는 검을 보고, 일행들도 무인이란 것을 눈치챘기 때문.
그들은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생각은 없는지 소종천 일행을 못 본 것처럼 행동하며, 이내 자신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철각파를 꺾었으니 당분간은 조용하겠어.”
“이제 이 근방에 더 이상 우리의 적수는 없다고 봐도 되겠군요. 크하하!”
“형님들! 저희 정도면 이제 맹우방 놈들과 붙어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음! 슬슬 준비는 해야겠지. 다친 녀석들이 회복되고 새 식구도 좀 늘린다면 가능성은 충분할 거다.”
“우리 삼형제가 신룡현의 패자로 올라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흐흐!”
“대협님들, 여기 술 대령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사내들의 사이로, 식당 주인이 들고 온 술동이를 내려놓았다.
“자, 우리 형님들께 이 막내가 한 잔씩 올리겠수다…… 잉? 이봐 주인장!”
“예, 옙?”
술을 따르기 위해 뚜껑을 연 사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물러나는 식당 주인을 불러 세웠다.
“지금 우리랑 장난하자는 거야? 누가 이런 싸구려를 달라고 했어!”
“옛? 하지만 저희 가게에는 딱히 고가의 술을 취급하지 않는지라…… 그나마 이게 가장 품질이 좋은 백주입니다요.”
백주(白酒)는 증류 방식으로 만든 술을 통칭하는 말로, 중원에서 가장 흔한 종류의 술이다.
주인이 가져온 술은 이과두주(二鍋頭酒)라는 이름의 백주로, 평범한 식당이나 객잔에서 주로 판매하는 백건아(白乾兒)보다는 조금 더 고급품의 백주라고 할 수 있는 물건이었다.
“젠장! 이런 거로 승리를 축하해서야 감흥이 나질 않지. 어이! 거기, 너!”
“옙!”
구석에 조용히 처박혀 있던 종업원이, 사내의 지목에 냉큼 달려왔다.
불안함에 떠는 종업원을 향해, 사내가 엽전 몇 개를 던져준다.
“일단 이거라도 아쉬운 대로 마시고 있을 테니, 다른 곳에서 검남춘 정도는 구해와. 이 어르신들은 주량도 대단하니까 부족하지 않게 지게로 지고 와야 할 거다.”
“에…….”
“뭐야, 불만이라도 있냐?”
검남춘(劍南春)은 사천의 면죽현에서 생산되는 명주로, 백주 중에서는 꽤나 비싼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유명한 술이다.
당연히 엽전 몇 개 가지고 구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사내가 요구하는 정도의 양이라면, 엽전이 아니라 은자를 내어줬어도 부족할지도 모른다.
“……아닙니다.”
그렇지만 강도질이나 다름없는 요구에도 종업원은 긍정을 표할 수밖에 없었다.
식당 주인이 썩어들어 가는 표정으로 종업원과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인다.
술값이 고스란히 손해로 남겠지만 어쩔 수 없으니 시키는 대로 하라는 뜻.
종업원이 안쪽에서 부족한 돈을 챙기는 동안, 주인은 계속해서 수난을 겪어야 했다.
“거, 주인장은 가만 있지 말고 간단하게 안줏거리도 좀 가져오지?”
“그럽죠.”
“푸짐하게 한 상 차려와.”
간단히 가져오라고 방금 말해놓고 푸짐하게 차리라는 것은 또 뭔가 싶다.
“아, 돈 줘야지? 자!”
사내가 튕긴 엽전 하나가 바닥을 굴렀다.
그 광경을 보며 나머지가 킬킬대며 웃는다.
“……금방 내오겠습니다.”
주인이 울분을 삼키며 주방으로 들어가려는데, 또랑또랑한 목소리가 실내에 울려 퍼졌다.
“당신들 돈 없어? 거지야?”
소종천의 목소리였다.
사내들의 인상이 딱딱하게 굳었다.
건들거리는 걸음으로 사내들이 앉은 자리로 다가간 소종천이, 재차 입을 열었다.
“나도 싸가지 없다는 소리는 많이 듣는 놈이라 예의 없는 태도 가지고 뭐라 하진 않겠는데, 최소한 뭘 시켰으면 값은 제대로 치러야지?”
“이봐, 젊은 친구. 우리는…….”
“입 다무시고. 하나만 물을 테니까 그거만 대답해.”
이러쿵저러쿵 귀찮게 떠들 마음은 없기에, 소종천은 짧게 말했다.
“돈 낼래? 처맞을래?”
“……이런 육시랄 놈의 새끼가!”
황당함에 입을 다물고 있었던 사내들이 분통을 터뜨리며 일어섰다.
처음 봤을 때부터 자신들에게 두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듯한 모습에, 유명한 문파에서 무공을 배운 젊은 실력자들인가 싶어 시비를 걸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무시당하고서까지 참을 수는 없었다.
‘형님들. 어쩔 거요?’
‘나이도 어린놈이 대단한 고수일 리는 없겠지.’
‘단숨에 처리하자.’
눈짓으로 의견을 교환한 사내들이, 동시에 무기를 빼 들며 소종천을 공격했다.
그리고 그것은 사내들이 살아오면서 겪었던 경험 중에, 가장 후회스러운 결정이 되었다.
“어엇!?”
“헉!”
눈앞에서 뭔가 일순간 번쩍인다 싶더니, 금속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무기들이 전부 박살 났다.
일류에 근접했다는 것은 바꿔 말하자면 아직은 이류에 속해 있다는 의미.
절정의 무인인 소종천의 움직임을 제대로 인식하지도 못하는 수준이다.
“그래. 뒈지게 맞고 싶은 거구나.”
뭔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소종천의 주먹이 빠르게 사내들의 뱃가죽을 두들겼다.
“구웩!”
동일한 자세로 엎드린 사내들이 속을 게워내기 시작했다.
시큼한 냄새가 공기 중으로 번진다.
몸을 돌린 소종천이 식당 주인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주인아저씨.”
“예? 예! 대협! 말씀하십시오!”
“아니, 대협은 무슨. 딴 게 아니고, 여기서 장사 오래 하셨어요?”
“아마, 이십 년 조금 넘었을 겁니다요.”
“꽤 하셨네. 이 동네에 이런 쓰레기들이 많은가요?”
“그…….”
주인이 토사물을 내뿜고 있는 사내들을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소종천이 대단한 실력자인 건 알았지만, 주인은 이곳의 토박이로 지내오며 장사하는 입장이다.
사내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도 없었다.
“흠. 너무 무신경한 질문이었나.”
소종천이 다시 몸을 돌렸다.
속을 깨끗하게 비우고 일어난 사내들이, 파리한 얼굴로 주춤거리며 뒷걸음질 쳤다.
“무공을 그만큼 배운 놈들이, 건실하게 일은 안 하고 깡패 짓이나 하면서 사냐?”
“죄송합니다! 저희가 고인을 몰라뵙고…….”
“죽일 생각으로 칼을 휘둘러놓고 죄송하다면 다야? 뭐, 평생 그러고 산 놈들이 말로 훈계한다고 바뀔 리는 없을 테고. 보자, 너 왼손잡이구나?”
“예? 예. 맞습니…….”
소종천의 신형이 다시금 움직였다.
뿌드득.
“끄악!”
팔이 기괴하게 뒤틀린 사내가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다.
내공을 주입해 작정하고 망가뜨렸으니, 관절이 상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신경까지 심하게 손상이 되었을 것이다.
“아마 그 팔로는 이제 숟가락도 들기 어려울 거다.”
“으으…….”
“흠. 너는 오른손잡이네?”
“제, 제발! 대인! 어르신! 한 번만 용서해 주십쇼!”
“팔 대신 모가지를 꺾어줄까?”
“…….”
대답하지 못하는 사내에게 달라붙은 소종천이, 앞선 상대처럼 오른팔을 완전히 못 쓰도록 뒤틀어주었다.
“끄윽!”
사정 봐주지 않고 손을 쓴 소종천은 마지막 남은 사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그쪽도 뭐 할 말 있어?”
“아닙니다. 목숨을 살려주시는 것만 해도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오?”
기분에 거슬린다고 살인을 저지르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나는 게 흑도의 사정이니, 틀린 말은 아니긴 하다.
소종천이 사내를 바라보다가 눈가를 찌푸렸다.
“조금 전엔 분명 오른손으로 공격했었는데…… 왼손잡이냐? 오른손잡이냐? 어째 차이가 없어 보이네?”
마지막 사내는 양쪽의 팔 근육이 거의 균일하게 발달되어 있어, 어느 쪽이 주력인지 알아보기 어려웠다.
“저는 양손잡이입죠. 헤헤.”
“아하.”
고개를 끄덕인 소종천은 사내의 양팔을 꺾어주었다.
“끄아악! 어, 어째서!”
“왼손잡이는 왼팔을, 오른손잡이는 오른팔을 박살 냈으니까. 양손잡이는 양팔을 망가뜨려야 공평하지.”
고통에 몸부림치며 과연 그게 정말로 공평한 걸까 고민하던 사내는, 이내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처벌을 마친 소종천이 일행들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얘들아. 청해까지 가는 동안 청소 좀 할까?”
“청소?”
“눈에 띄는 쓰레기들 좀 치우면서 가자고.”
사파의 축에도 끼지 못하는, 건달패나 다름없는 중소규모의 흑도방파들.
무림에서는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조무래기들이지만, 힘없고 평범한 양민들에겐 충분히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물론 거대세력이 자리 잡고 지속적으로 통제하지 않는다면, 한번 정리를 한다고 해도 금세 다른 흑도 무리가 들어서기 마련이다.
‘그래도 그게 당장 눈앞에 있는 쓰레기를 내버려 둬야 할 이유는 되지 않지.’
어차피 일정이 엄청 급한 것도 아니기에, 소종천은 청해로 향하는 동안 눈에 보이는 흑도방파들을 때려 부수기로 마음을 먹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9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