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94
47. 독심방(2)
가지각색의 무기를 제각각 꺼내든 무인들이 소종천의 앞을 막아섰다.
아무리 경지의 차이가 있다지만, 다수가 만든 진형을 피해 없이 돌파하는 것은 상당한 집중을 요하는 일이다.
시간이 조금만 지체돼도 뒤에서 다른 적들이 합세하는 상황.
그나마 다행히 소종천은 혼자가 아니고, 제법 신뢰할 만한 동료들이 옆을 받쳐주고 있었다.
“토하압!”
“차핫!”
적의 머리를 바로 치겠다는 노림수를 파악한 일행들은, 곧바로 뒤를 따르며 소종천에게 가해지는 부담을 덜어내 주었다.
동료들이 무인들을 막아서며 공격을 분산시키는 동안, 소종천은 부딪힘을 최소화하며 적들의 진형을 빠져나갔다.
“나 하균이 우습게 보이더냐!”
자신을 노리고 쏘아지는 소종천을 향해 일갈하며, 독심방 방주 하균이 등에 멘 창을 잡아당겼다.
창대가 낭창낭창하게 흔들리는 움직임을 보이며, 창날이 시야를 어지럽힌다.
분명 금속 재질로 만들어진 듯한 창대인데 버들가지처럼 유연하고 탄력 있게 휘어지는 모습을 보니, 특별한 재료와 기술로 제작된 병기로 짐작되었다.
소종천의 눈이 바쁘게 움직였다.
‘어렵구만.’
장병기(長兵器)의 대표격이라 할 수 있는 창이란 무기는, 권각을 주력으로 삼는 무인에게 있어 아주 까다로운 상대다.
가장 짧은 공격 범위라 할 수 있는 맨몸과, 투사 무기를 제외하면 가장 긴 공격 범위를 가진 장병기의 싸움.
내 무기를 상대에게 가깝게 만들고 상대의 무기를 내게서 멀어지게 간격을 조절하는 것이, 전투 행위라는 개념의 기본적인 틀이다.
그런 점에서 장병은 단병보다 확실히 유리한 이점을 가지고 있으니, 쉽지 않은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한번 기회를 잡아 창날을 피해서 파고들었다고 해도 끝이 아니다.
무기를 거두는 대신 중심축에 약간의 변화를 가해 회전시키면, 창의 자루 끝은 강력한 둔기로서의 면모를 드러내기도 한다.
진짜 창술의 달인이라면 간격을 뺏겨 장병기의 이점을 잃었다고 해도, 결코 약하기만 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무작정 거리를 좁히기만 한다고 해서, 완벽하게 유리한 기회를 잡게 되는 것도 아니란 뜻이다.
‘그냥도 거리를 좁히기 쉽지 않은데, 특이한 무기와 초식이 더해져 변화막측한 투로까지 보이네.’
무림 전역에 이름을 떨치는 연맹의 대형문파들에겐 못 미친다지만, 독심방은 청해성의 흑도방파 위에 군림하는 사파 중에서도 꽤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는 세력이다.
그런 곳의 방주이자 절정의 무인인 하균은, 대형문파로 치면 장로급에 해당하기에 충분한 무위를 지녔다.
여러 절기와 양질의 내공 덕분에 비슷한 경지의 무인에게도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소종천이지만, 한순간에 제압할 수 있는 상대는 결코 아니란 의미.
물론 하균을 빠르게 제압하자는 소종천의 계획이, 자신의 실력에 대한 자신감 때문은 아니긴 했다.
‘믿는다, 용린! 지금이 장비빨 덕을 볼 때지!’
괜히 어렵게 기회를 찾는 대신, 속도를 줄이며 일부러 빈틈을 살짝 드러낸다.
용린의 보호를 받는 위치로 공격을 유도하기 위함.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이런 이야기가 있다.
비무에서 하수가 위력적인 공격을 일삼다가 실수를 하면, 의도와 달리 상대에게 작은 피해만을 입히거나 공격이 빗나가게 된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고수가 실수를 하게 되면, 상대를 죽여 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가벼운 동작과 작은 몸짓 하나하나에도 적의 급소를 노려 치명상을 입히는 습관이 배어 있기에, 비무에서는 오히려 상대를 죽이지 않도록 투로를 조절해야 하는 것이 고수라는 이야기.
농이긴 해도 아주 일리가 없는 소리는 아니긴 하다.
그렇기에 이건 수준 높은 무인일수록 더 걸려들기 쉬운 낚시였다.
창날이 가슴 쪽을 파고든다.
일격에 적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급소.
심장부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최우선 목표가 된다.
소종천의 신경이 하균의 창이 보이는 변화에 집중되었다.
‘놓치면 그대로 끝이야.’
용린의 방어력을 믿고 하는 짓이지만 긴장을 아예 안 할 수는 없다.
직접 용린의 효과를 확인하긴 했지만, 만에 하나 뚫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리고 혹시나 마지막 순간 심장이 아닌 다른 곳으로 변화가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의심.
심장이 외의 위치에 공격이 박히게 되면, 즉사는 면할지언정 중상을 입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럼 결국 뒤에 있는 다른 고수들의 합세에 목숨을 잃고 말 것이다.
‘집중만 하면 된다. 집중만!’
변화의 순간을 감각이 놓치지만 않는다면, 금강부동신법이라는 이치를 벗어난 무공이 있기에 변동의 폭을 따라잡는 것에는 무리가 없다.
최대로 끌어올려진 전신의 감각이 창날 끝에 쏠린다.
‘셋, 둘, 하나. 지금!’
마지막까지 약간의 변칙적인 떨림이 있긴 했지만, 용린의 보호 범위를 벗어나지 않은 선에서 변화가 마무리되었다.
창날이 용린에 닿는 것과 동시에 소종천의 몸이 물 흐르듯 움직였다.
용린의 특별함이 더욱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단지 뚫리지 않는 갑옷으로서의 효능이 전부였다면, 상처는 입지 않을지언정 충돌의 순간 몸이 뒤로 밀려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용린은 가해진 충격을 완전히 흡수해 소멸시키는, 물리법칙의 이해관계를 깡그리 무시해 버리는 기물이다.
창끝이 용린에 닿는 순간 하균의 일격은 모든 힘의 작용을 상실했고, 소종천은 적기에 맞춰 창날을 쳐내며 공격을 시도했다.
평생 동안 셀 수도 없이 창을 찔러본 경험을 가진 하균은, 손끝으로 처음 느껴보는 감각에 당황했다.
그래도 절정의 경지답게 무언가 잘못됨을 느끼자마자 반사적으로 몸을 피하려 했지만, 미리 때를 준비하고 있다가 달려든 소종천보다는 반응이 늦을 수밖에 없었다.
내공을 최대로 운용해 땅을 박차자, 흙덩어리들이 폭발하듯 사방으로 비산한다.
“억!”
경악한 표정을 짓는 하균의 안면부를 향해 내력을 가득 담은 주먹이 내질러졌다.
빠악!
광대뼈 한쪽이 함몰되며 깨진 이빨 조각들이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하균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충격에 순간 잠시 정신이 나갔지만, 머리 대신 몸이 먼저 움직이며 손에 쥔 창을 회전시켰다.
원심력을 통해 휘둘러진 창자루의 끝이, 가까이 접근한 소종천의 머리를 노리고 다가온다.
흠잡을 데 없는 매서운 반격.
그대로 직격했다면 머리가 박살 날 만한 공격이었지만, 소종천에겐 천하일품이라 할 수 있는 신법이 두 가지나 있다.
불영선하보와 금강부동신법이 합쳐지자 창자루가 아슬아슬하게 눈앞을 스치며 지나간다.
어느 한쪽의 신법이라도 없었다면 이마가 찢어지는 정도는 감수했어야 했을 것이다.
자세를 바로잡은 소종천이 권법을 펼치며 공격을 이어갔다.
회피 동작을 취한 그 짧은 순간에도 하균이 몸에 익은 습관대로 거리를 벌리고자 움직였기에, 소종천은 백보신권의 권력을 더하고 나서야 간신히 상대의 몸에 타격을 넣을 수 있었다.
“크윽!”
비틀거리면서 물러나는 하균을 보며 소종천이 연대구품을 펼쳐 신형을 늘렸다.
‘이쯤이면 됐어.’
용린으로 기회를 잡았음에도 적을 완전히 무력화시키진 못했다.
그래도 적지 않은 피해를 입혔으니 승산은 이제 거의 대부분 소종천에게로 넘어왔다.
다만 이 싸움은 하균과 소종천 일대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소종천의 분신들이 몸을 돌려 뒤를 향해 달려 나갔다.
하균을 제외한 세 명의 절정고수들이, 잔챙이들을 상대하고 있는 일행들의 지척까지 다가왔기 때문.
“멈춰라! 이놈들!”
“제법 날뛰었다지만 거기까지다!”
이쪽의 승부만 신경 쓰고 있다가는 동료가 목숨을 잃을 위험이 있기에, 분신은 곧장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보냈다.
“술법? 이런 조잡한 수를!”
“방심하지 마시오! 평범한 눈속임이 아닌 듯하니!”
“으음! 해괴한 무공이군.”
비록 오래 유지할 수는 없지만, 잠깐이나마 소종천 일곱 명분의 무위를 보일 수 있는 분신들이, 적의 앞을 막아서며 시간을 끈다.
‘승산은 지금으로도 충분하니 괜찮아.’
“크윽! 이놈…….”
이미 첫수로 상당한 타격을 입혀놔 기세가 약해졌기에, 소종천은 굳이 연대구품의 힘이 없어도 하균을 꾸준히 압박할 수 있었다.
아무 실수도 없었던 공격이 무효로 돌아가는 괴현상을 겪고 부상을 입기까지 한 하균은, 쉼 없이 몰아치는 소종천의 공격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
콰드득.
이윽고 공격의 연환 끝에 소종천의 발꿈치가, 하균의 한쪽 어깨를 박살 내는 것에 성공했다.
“끅!”
주력으로 사용하는 팔은 아니었지만, 중병기인 창은 양손을 전부 동원해야 온전히 사용할 수 있는 무기.
전력을 다할 수 없게 된 하균은 금세 두 번, 세 번의 공격을 허용하며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퍼엉!
“크악!”
허술해진 공격 범위 안으로 파고든 소종천의 일 권에, 하균의 몸이 붕 떠오르며 멀리 밀려난다.
‘이 정도면 충분해.’
소종천은 상대의 숨통을 끊기 위해 달려드는 대신, 몸을 돌려 일행들이 싸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아직 두 다리는 멀쩡한 하균이니 작정하고 도망치려 한다면, 괜히 마무리를 지으려다 시간을 오래 뺏길 수가 있다.
어차피 저만큼 손상을 입었으니 전투에 더 끼어들지는 못할 터.
뒤쪽에서 벌어지고 있던 집단전에 합류한 소종천이 다시 한번 연대구품을 사용하며, 힘겹게 버티고 있는 친구들을 보조하기 위해 움직였다.
‘으윽.’
내력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지만, 그와 별개로 연대구품은 기혈에 꽤 부담을 주는 무공이다.
짧은 시간 사이에 연속으로 사용한 탓으로 몸에 무리가 가, 전신의 혈도에서 찌릿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동료들을 버리고 혼자 도망갈 것이 아니라면, 무리임을 알면서도 감내하는 수밖에 없다.
아직 무위가 부족한 탓에 가장 위태로워 보이는 남궁건의 곁에 분신을 집중적으로 보내고, 장자군과 한사혜의 전투를 빠르게 훑어보았다.
“으윽! 무슨 이런 미친년이 다 있어!”
“제기랄! 잠깐이라도 붙잡아두란 말이오!”
“그럼 귀면도객, 당신이 재주껏 멈춰 세워보던가!”
“크르륵!”
파충류처럼 세로로 쭉 찢어진 동공으로 변한 눈을 한 채, 살기를 흩뿌리며 날뛰는 한사혜.
창룡후의 심득을 받아 기존보다 발전된 무공을 익힌 한사혜였지만, 여전히 싸울 때는 흉포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내력의 고갈보다 출혈로 먼저 쓰러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온몸에 자상을 입은 채 핏방울을 튀기고 있는 광경.
외형만 사람이지 수왕족 전사들과 같은 반인반수가 아닌지 의심되는 야성적인 기세다.
그래도 그 난폭함 덕분에 그녀는 절정의 무인 두 사람의 발을 묶어두며, 불리한 전투를 악착같이 버텨내고 있었다.
‘자군이는?’
장자군에게 시선을 돌리자, 그 역시 절정의 검객 한 명과 대등하게 검격을 교환하고 있는 게 보인다.
다만 소종천이 느끼기에 장자군의 내력은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더 어려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은 한사혜지만 그녀는 조금 더 버텨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기에, 일단은 먼저 장자군의 옆으로 가세했다.
“이놈들! 그만한 무공을 가진 놈들이 비겁하게 합공을 한다니!”
장자군과 비등하게 싸우고 있던 사파의 검객이, 소종천이 끼어들며 협공을 당하자 억울하다는 듯이 욕설을 내뱉는다.
“뭐? 이야, 기가 막히네.”
절정의 무인 넷이서 부하들을 수십 명씩 끌고 와 습격해 놓고 한다는 헛소리에, 소종천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터뜨렸다.
어쨌거나 소종천의 합류로 장자군은 금방 승기를 잡을 수 있었다.
소종천이 주변을 맴돌며 계속 탄지신통으로 기탄을 쏘아대고 검을 부딪칠 때마다 배후를 노리고 찔러 들어가니, 장자군과 비등비등한 무위를 보이던 사파의 무인이 당해낼 재간이 있을 리 없었다.
“컥!”
장자군의 검격에 옆구리를 꿰뚫린 적이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고꾸라진다.
‘두 놈 처리. 됐어! 이제 그럭저럭 승산이 높아졌다.’
소종천은 아슬아슬하게 적들의 공세를 버티고 있는 남궁건에게 시선을 향했다.
이미 아까 보낸 분신들은 전부 소멸되었고, 남궁건은 본인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 일류의 무인들을 상대로 힘겹게 검초를 펼쳐내고 있었다.
또다시 연대구품을 펼쳐 분신들을 만들어냈다.
‘크으읏!’
전투 시작부터 지금까지 아낌없이 내력을 퍼부어 절기들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혈이 점점 들끓고 있는데 안정되지도 않은 상태로 세 번째 연대구품까지 시도하니, 평상시보다 내력이 더 크게 소모되며 임독양맥의 주요 혈들에서 아린 통증이 느껴졌다.
무리한 내력운용 탓에 살짝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자, 장자군이 걱정 어린 눈빛을 보내왔다.
“종천? 괜찮은 거야?”
피로감으로 인해 갈라진 목소리.
소종천은 걱정하지 말라는 듯이 손을 내저으며 자세를 바로잡았다.
“난 괜찮아. 어서 사혜를 돕자.”
“알았어.”
분신들은 남궁건을 보조하기 위해 보내두고, 소종천은 장자군과 함께 한사혜를 돕기 위해 발걸음을 내디뎠다.
삼 대 이의 수적 우세로 절정의 무인들만 마저 처리하고 나면, 나머지 무인들을 해치우는 것은 이제 일도 아니다.
마무리가 되기 전에 내력이 다 고갈될지도 모르겠지만 여차하면 영웅 뽑기로 내력을 회복하면 되니, 이제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움직이려던 소종천은, 갑자기 못이 박힌 것처럼 행동을 멈추었다.
‘이게…… 이런 썅…… 장난하냐!’
등 뒤의 방향에서 불쾌한 감각이 스멀스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왔다.
이제는 익숙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기운.
마기가 감지되었다.
하필 이런 힘겨운 싸움 중에 난데없이 마인이 등장하다니, 엎친 데 덮친 격이란 말이 이런 경우인가 싶다.
소종천은 이를 악물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 멀리 길목의 끝에서, 장포로 몸을 싸매고 있는 괴인 하나가 시야에 들어왔다.
뽑기로 무림최강 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