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96
48. 도마(2)
도마는 원래 말이 많은 성격이 아니다.
거슬리는 것이 있으면 입을 놀리는 것보다 도를 휘두르는 편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뒤로는 같은 오악에 속한 대장로들을 제외하면, 그의 흥미를 끌 만한 상대를 찾기 어려웠기에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젊다 못해 아직 어리다 할 수 있는 소종천이 보인 무위에, 입을 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종천과 한수를 교환하며 동일한 초절정의 경지임을 확인했기에, 평범하게 생각해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인지라 오해가 벌어졌다.
반로환동(返老還童).
나이 많은 늙은이가 건강한 아이의 몸으로 돌아간다는 것으로, 그런 게 있다, 정도의 소문으로는 알려져 있지만 진실인지 허구인지 확실치 않은 이야기다.
상당한 세월을 보낸 노인인 도마 또한 경지가 높아지며 중년에 가까워 보이는 외형으로 회춘한 것을 보면, 아주 불가능한 현상은 아닌 것 같긴 하다.
물론 반로환동이 실존하는지 어떤지는 소종천과 전혀 관계없는 소리였다.
‘엄청 경계하고 있는 것 같은데.’
경지와 맞지 않는 나이 덕분에, 상대가 방심하는 틈을 타서 이득을 취한 적이 지금까지 적지 않았다.
하지만 도마는 뽑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초절정에 오른 소종천에게서 경지에 걸맞은 내력을 감지하지 못했고, 어린 외형 탓에 반로환동을 떠올리며 자신보다 윗줄의 고수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게 되었다.
말로는 재미있겠다느니 떠들어놓고, 경계하느라 쉬이 거리를 좁히려 들지 않는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 허점을 찌르는 것은 불가능해진 것이다.
소종천은 신중하게 주변을 맴돌며 이쪽의 수준을 파악하려 애쓰는 도마에게서 잠시 눈을 떼었다.
‘쓸 수 있는 무기가…… 없나?’
지금 이렇게 여유가 생긴 시간에 무기를 찾아본다.
근처에는 쓰러져 있는 사파의 무인들과 그들이 쓰던 병기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소림의 무공이라 하면 권법이 가장 유명하긴 하지만, 병기를 다루는 몇 없는 무공 중에서도 권법과 명성을 나란히 하는 무공이 분명히 존재한다.
소림곤법천종.
천하의 모든 곤법 중에서도 으뜸이라 칭해지며, 신승 백진이 평생을 연마한 무공이기도 했다.
‘아! 저거라면…….’
가장 손에 익은 소림제미곤을 당장 구할 방법은 없지만, 비슷한 형태의 무기라도 찾을 수 있다면 곤법을 펼칠 수는 있을 터.
소종천의 시선이 조금 떨어진 곳에 죽어 있는 하균에게로 향했다.
그가 쓰던 무기는 평범한 일반 창들과 달리 탄성이 굉장히 뛰어나, 목재로 만들어지는 곤과 매우 흡사한 성질을 지녔다.
게다가 마침 도마의 일격으로 머리가 날아갈 때 창날 부분까지 깔끔하게 잘려, 창이 아니라 그냥 철곤이라 불러도 될 법한 모양새가 된 상태.
적합한 병기를 찾은 소종천이 그것을 획득하기 위해 도마의 눈치를 보며 움직였다.
신승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났던 백진이지만, 익힌 소림의 무공 중 칠십이종절예에 속하는 종류는 소종천이 익힌 절기의 수보다 오히려 적다.
뽑기의 힘으로 아무런 고생 없이 배웠기에 가능하지, 사실상 한 사람이 그만한 절기를 세 가지 이상 익히는 경우는 굉장히 드문 편.
신승 역시 심법으로 반야신공을, 주력 무공으로는 소림곤법천종을 배웠지만, 그 외의 절기로는 보법이자 신법인 불영선하보 하나밖에 익히지 못했다.
하지만 가짓수는 적을지언정 배움의 깊이는 소종천보다 깊다.
‘반야신공이 9성, 곤법천종과 불영선하보는 10성인가.’
초절정에 오른 무인인 신승조차 반야신공을 대성하진 못했지만, 9성의 성취도는 소종천의 수준보다 한 걸음 앞선 단계.
내공의 양만 아니라 질이 더욱 상승했기에, 무공을 펼침에 있어 더욱 효율적인 내력 운용을 보장해 준다.
게다가 10성의 불영선하보는 이제 겨우 5성을 익힌 소종천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수준의 신법이었다.
같은 초절정의 고수인 도마의 기감마저 혼란시키는 기묘한 잔상으로 몸을 보호하며, 소종천의 신형이 빠르게 쏘아졌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
그리고 그 소리보다 빠르게, 태산도 잘라낼 수 있을 듯한 도격이 날아온다.
하균의 목을 치며 보여주었던 한 수보다 더욱 강맹한 공격.
평상시대로였다면 이 일격으로 하균처럼 목이 날아갔을지도 모르겠지만, 신승의 힘을 등에 업은 소종천은 극성으로 펼친 불영선하보로 가볍게 도격의 범위에서 빠져나왔다.
애초에 도마를 노리고 움직인 것도 아니니 피하기가 어렵지 않았다.
가뿐하게 도마의 곁을 스쳐 지나간 소종천이, 목표로 삼았던 하균의 창을 주워들었다.
‘이제 뭐 창이 아니라 그냥 쇠막대지만.’
창대만 남아 볼품없어진 생김새.
“……뭐 하자는 거지?”
뜬금없이 남의 무기를 챙겨 드는 모습에 도마가 이맛살을 찌푸린다.
소종천은 대답하지 않고 손에 쥔 철곤을 한차례 휘둘러 보았다.
‘이 정도면 딱 적당하네.’
무게와 길이, 재질의 차이 등.
신승이 평생을 다뤄온 제미곤과는 약간씩 다른 점이 있지만, 곤법으로 정상에 올라섰던 무인에게 사소한 차이쯤이야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으음…….”
도마가 침음을 흘렸다.
가볍게 한번 휘두르는 모습이었지만, 그 짧은 동작에 녹아들어 있는 대가의 기술을 알아본 것.
더욱더 경계심을 드러내는 도마를 향해, 소종천은 씨익 미소를 지어 보였다.
“쫄기는.”
“……감히 내게 그따위 소리를.”
도마는 소종천이 엄청난 실력을 지닌 반로환동한 노고수일 것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오랜 시간 절대적인 강자로 군림해 왔던 그가, 적에게 꼬리를 말고 도망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농밀한 살기가 뿜어져 나오며 도마의 도가 춤을 추었다.
두 자가량 솟구친 파괴적인 도강.
소종천 역시 도강에 맞서기 위해 강기를 덧씌우고 철곤을 휘둘렀다.
곤법의 집대성이라 불리는 소림곤법천종에 수록된 모든 형과 묘리들이, 소종천의 머릿속에서 번뜩이며 지나간다.
제 일로보. 사평답외답리(四平搭外剳裏).
소림곤법천종에는 곤봉을 다루는 형을 크게 여섯 가지로 나눈다.
그중 첫 번째 형에 속하는 사평답외답리의 투로에 따라, 소종천의 신형이 부드럽게 움직였다.
‘쌍봉단폐(雙封單閉), 방창쇄구(封槍鎖口), 대량창(大梁槍), 구괘경고(句掛硬靠).’
생전 처음 펼쳐보는 초식들이지만, 신승의 능력이 깃든 소종천은 완벽하게 철곤과 하나가 되었다.
짧은 순간 총 열두 번의 도격이 소종천의 몸을 난자했다.
하지만 벼락 같은 연환초가 끝난 후에도, 소종천의 몸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했다.
상대의 연격을 모조리 흘려낸 것이다.
“큭…….”
빠드득.
부러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거칠게 이를 악문 도마가, 다시 한번 도초를 펼쳤다.
머리와 가슴, 복부를 노리는 세 개의 변초가 담긴 도격.
휘두르는 횟수는 줄었지만, 위력만큼은 앞에서 펼친 연환격보다 더욱 살벌했다.
하지만 갓 잡아 올린 생선처럼 팔딱거리는 움직임을 보인 철곤이, 이번에도 변화의 맥을 찌르며 도마가 펼친 초식의 흐름을 끊어냈다.
제 이로보. 외곤수흑풍안시(外滾手黑風雁翅).
‘경봉진보쇄구(硬封進步鎖口), 각하창제수(脚下槍提手), 전보군란(剪步群欄), 구괘오운조정(句掛烏雲罩頂).’
찌르기, 휘감기, 끌어당기기, 후리기.
곤법으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묘리가 능수능란하게 펼쳐진다.
“이놈…… 좋다! 어디 얼마나 막아낼 수 있는지 보자!”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린 도마가 팔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도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쾅! 까그극!
도와 곤이 붙었다 떨어지길 쉴 새 없이 반복하며 시끄러운 소음이 공간을 가득 채운다.
흩날리는 강기가 주변을 문자 그대로 초토화시켰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켜보던 사람들이 침을 삼키며 혹시라도 휘말릴까 혼비백산하며 뒤로 점점 물러났다.
소종천의 동료들과 사파 무인들의 전투는 사실상 소강상태에 들어섰다.
평생에 한번 마주치기도 어려운 초절정의 무인이 바로 곁에서 절초를 펼치며 격돌하고 있는데, 신경 쓰지 않고 싸움을 이어갈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은 당연했다.
“저게…… 나와 같은 인간이 맞는 건가?”
누군가가 구경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대변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 말대로 소종천과 도마의 격전은 완전히 다른 세상의 존재로 여겨지는 모습이었다.
신승의 능력에 힘입어 고절한 묘리를 담아 철곤을 휘두르던 소종천도, 극한의 경지를 몸으로 경험하며 경외의 기색을 얼굴에 떠올렸다.
‘이게 정점이라 불리는 무인들의 세계…….’
매번 목숨을 노려오는 마인들에게 느낄 수 있는 것은 악감정밖에 없기는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초인적인 경지를 이룬 무인에 대해 감탄하며 찬사의 눈빛을 보낸다.
그리고 소종천의 표정을 본 도마는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감히 나 도마를 조롱하는 것이냐!”
공격을 모조리 막아내며 저런 표정을 짓고 있으니, 소종천은 정말로 감탄한 것뿐이지만 도마의 입장에선 자신을 깔보는 것이라 오해할 만했다.
웅웅웅!
강기가 짙어지며 세찬 도명이 울린다.
가해지는 공격이 한층 매서워졌다.
둘 중 하나가 죽기 전에는 이 자리를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이런 씨? 여기서 더 위력이 올라가?’
평생을 연마해 온 기예를 전부 동원해 덤벼드는 도마에게 대항하며, 소종천은 거의 무아지경으로 철곤을 휘둘렀다.
제 삼로보 태공조어(太公釣魚).
제 사로보 소량창봉창(小梁槍封槍).
절정의 고수조차 제대로 인지하기 어려운 속도로, 수십 가지의 초식이 짧은 순간 연달아 쏟아져 나온다.
구경꾼들에겐 강기가 부딪히며 번쩍이는 것과 요란한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전부.
얼마나 수준 높은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인지 정확히 알아볼 수 있는 이는, 지금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이건 뭐 인간 믹서기가 따로 없네. 천급 영웅을 못 뽑았다면 정말 순식간에 갈려 나갔겠…… 으악!’
잠깐 잡생각을 떠올렸다고 턱이 잘려 나갈 뻔했다.
간담에 서늘해진 소종천은 머리를 비우고 오로지 신승의 능력에 동화되는 것에만 신경 썼다.
이 각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그리 긴 시간도 아니었지만, 소종천과 도마 두 사람 모두 지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높은 경지의 고수들이 몇 시진씩 지나도록 승부를 가리지 못해, 밤낮으로 싸움을 이어간다는 소설 속 이야기는 다 거짓말인 것이 분명했다.
강기를 다루는 초절정 무인들의 싸움에선, 단 한 번의 실수가 목숨을 잃는 결과로 다가온다.
모진 고문에 가까울 정도로 자신의 몸과 머리를 한계까지 굴려야 했으니, 내력과는 별개의 극심한 기력 소모로 피로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극도의 집중력을 팽팽하게 이어가는 소종천의 이마에서 흐른 땀이, 턱선을 타고 뚝뚝 흘러내렸다.
‘고안출군세(孤雁出群勢), 이환수일제금(二換手一提金), 뇌후일와봉(腦後一窩蜂)…….’
곤법천종의 형과 초식으로 가득 찬 머리가 시키는 대로, 살짝 의식이 멍해진 상태의 소종천이 몸을 움직였다.
철곤이 꿈틀거리며 뻗어 나간다.
이제는 내가 곤을 다루는 건지, 곤이 나를 조종하는 건지 구분하기 어려운 느낌이다.
이대로 무공을 펼치다 죽는다 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들 때쯤.
쩌저적!
도와 곤이 부딪히며 들려온 소리가 소종천의 정신을 일깨웠다.
“헙!?”
반복된 강기의 충돌을 견디지 못하고 철곤이 박살 나버린 것이다.
나름 명품이라 부를 만한 품질의 무구였음에도, 초절정 무인들의 전력을 다한 격돌을 버텨내기엔 부족함이 있었던 모양이다.
반면 도마의 도는 그보다 뛰어난 물건인지, 여기저기 잔금이 생기고 이가 나가긴 했지만 아직은 건재한 상태.
‘어. 잠깐, 어쩌지?’
머릿속이 온통 곤법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던 탓에, 소종천은 무기를 잃고 나자 순간적으로 혼란이 와 움직임을 멈추고 말았다.
“크핫! 끝이다!”
반 토막도 남지 않은 철곤을 들고 멈춰선 소종천을 향해, 도마의 도가 흉흉한 기세로 들이닥쳤다.
뽑기로 무림최강 9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