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158
158화 굴레를 벗어나다 (2)
눈을 뜬 나는 우주의 한복판에 홀로 놓여있었다.
도무지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
호선의 진짜 꼬리가 움직였고, 술법이 발동됨과 동시에 그녀의 눈에서 보랏빛이 빠져나오며 내 손바닥을 파고들었다.
마치 혼이 움직이는 것처럼.
설마.
“차시환혼인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시환혼을 당하게 되면 이렇게 우주의 한복판에 덩그러니 던져지는 걸까?
아무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온통 암흑천지였다.
그야말로 진정한 무(無)의 세계…….
“결국 여기까지 왔군.”
누군가의 목소리.
얼핏 들어본 기억이 있다.
“다, 당신은……?”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사람이 저런 위용을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는 흑동과 아주 가까운 곳에 떠오른 채 가부좌를 틀고 있었다. 흑동(黑洞)은 현대의 말로 블랙홀을 뜻했다.
그는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전혀 빨려 들어가지 않고 담담한 모습이었다.
그것이 오히려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조금 전 겨뤘던 호선이 어린아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다, 당신이 옥비녀의 주인입니까……?”
그 존재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
“세간에선 나를 진선(眞仙)이라 부르지.”
“진선…….”
“뭐, 물어볼 말은 없나? 모처럼 만나게 되었는데. 이 순간이 지나면 다신 볼 수 없을 걸세.”
나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고 가장 시급한 것을 물었다.
“저는 어떻게 된 겁니까? 호선과 싸우던 도중 갑자기 여기로… 제 몸이 빼앗긴 겁니까? 그럼 동료들은?”
쉴 새 없이 이어지는 물음에 진선은 그저 손을 저으며 한쪽에 거대한 광막을 일으켰다. 그 광막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내 육신엔 별빛과 보랏빛이 공존한 형태로 부르르 떨리고 있는 것을.
누가 보아도 당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내가 허탈한 표정을 짓고 있을 때.
“걱정할 것 없네. 자네의 육신은 잘 해주고 있어. 그리고 곧 도착하겠군.”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았다.
잘하긴 뭘 잘하고 무엇이 도착한다는 소리인가?
하지만 진선은 설명 대신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사실, 오래전 이곳에서 수련을 하던 도중 내 힘이 담긴 물건을 잃어버렸네. 그때에는 내 깨달음이 부족해서 공간과 시간에 대해 많이 미숙했지.”
진선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신비로웠다.
이미 위선지경조차 뛰어넘은 그는 더 이상 상계에서 얻어낼 깨달음이 드물 지경이었다.
결국 성천으로 떠나 가장 위력적인 천체를 찾았고,
그 결과가 바로 블랙홀이었다.
그는 그곳에서 수천 년을 좌선하며 흑동의 원리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공간이 접어지고 시간마저 멈춰있는 블랙홀은 그에게 더없는 깨달음을 선사했다.
“자네가 얻은 그 옥비녀… 본래는 내 것이었네. 벌써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군. 한데, 그것이 갑자기 이 속으로 들어가 버렸지 뭔가.”
그는 블랙홀을 가리키고 있었다.
옥비녀가 그 속으로 사라지고, 되찾으려 해보았지만 우주의 전역에서도 감지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옥비녀가 나타났고, 제멋대로 인과(因果)를 만들어내며 상계와 하계를 관통했다는 것이었다.
“나로써도 이해하기 어려운 과정이었네. 해서, 곧바로 회수하지 않고 지켜보기 시작했지.”
그에겐 수천 년의 관찰 따윈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호선마저 신보를 노리려고 3,000년을 기다려왔지 않은가.
진선인 그에겐 더욱 쉬운 일이었다.
“자네가 살아온 삶을 무척 재미있게 지켜보았네. 수련을 하면서도 많은 도움이 되었어.”
그는 나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분노가 치솟았다.
왠지 모르게 내 모든 일생이 그에게 농락당했다는 기분이었다.
그가 손짓 한번만 하면, 지난 열 번의 삶 자체가 물거품이 되진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그때 진선이 내 마음을 읽은 것처럼 말을 꺼냈다.
“그렇지 않을 걸세. 옥비녀는 이미 내가 손을 대기 힘든 물건이 되어버렸네. 흑동 속에 빠진 뒤로, 전혀 다른 물건이 된 셈이지. 예전처럼 아주 작은 단말 만이 나와 연결되어 있을 뿐.”
“그, 그럼…….”
“그래 자네의 인생은 헛되지 않았어. 자, 이제 저길 보게.”
진선이 만들어두었던 광막을 향해 턱짓했다.
그곳에선 아까 보았던 광경이 연출됐다.
차시환혼을 하려는 보랏빛 요기와 그것을 밀어내려는 별빛의 심검이 서로 호각지세를 이루는 모습이었다.
둘 중 하나라도 조금만 더 강했다면 곧바로 상대의 모든 것을 무너뜨릴 것처럼 아슬아슬한 광경이었다.
그때.
[여기다! 모두 이곳으로 오거라!]적운자의 목소리였다.
곧 사방에 흩어져서 나를 찾고 있던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장 먼저 적운자가 내 옆에 내려앉았고, 다음으론 두이, 화련이, 마지막으로 주 노조가 숨을 몰아쉬며 착지했다.
나머지 일행들은 무척 먼 장소에 있었는지 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떤가, 저들을 보고도 헛 산 것 같은가?”
진선의 목소리에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네 명의 동료들이 겁도 없이 나를 향해 손을 뻗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주화입마에 빠진 것 같으니 영력이라도 보태어 도우려는 심산인 듯 했다.
다른 때였다면 무척 위험한 행동이었겠지만.
공교롭게도 그것이 나를 구해주고 있었다.
파스스스…….
네 명의 힘이 합쳐지자 별빛의 심검이 요력을 쉬이 밀어내기 시작했다. 보랏빛 기운이 거세게 저항했지만 이미 승부는 갈린 상황.
점차적으로 보랏빛이 몸에서 걷어지고, 완연한 별빛이 영토를 넓혀갔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밀어낼수록 별빛은 더욱 더 찬란하게 빛났다. 모든 일행을 뒤덮을 정도였다.
바로 그때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어… 이게 뭐지?]화련이의 의아한 듯한 물음이었다.
[혀, 형님이 죽어……?]충격을 받은 두이의 표정.
[이, 이게 도대체…….]주 노조 역시 놀라고 있었다.
오직 적운자만이 이미 겪어보았다는 듯이 담담한 표정.
그들은 별빛을 통해 나를 보고 있었다.
위험을 무릅쓴 그들의 무모함이,
지금 이 순간 그들에게 심검을 읽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 * *
적운자는 의도치 않게 막내의 인생을 다시 살피게 되었다. 황제를 처치한 뒤로 보았던 게 훑어본 것이라면, 지금은 그야말로 정독을 하듯 세세하게 살피는 것이었다.
한 부분에서 그가 머리를 긁적였다.
광기에 시달리던 시절의 자신이, 막내의 동생을 납치해 꼭두각시로 삼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이었다.
[너한테는 쓰레기의 냄새가 난다. 수백 년간 맡아 온 그 냄새 말이다! 썩 꺼지거라! 더러운 놈. 당장 꺼지지 않으면 일수에 핏물로 만들 것이니라. 좋은 꼭두각시를 얻게 해 주었으니 한 번은 용서해 주마. …응? 너도 내가 만든 무공을 익혔느냐……?]‘크흠……!’
참을 수 없는 부끄러움에 그가 헛기침을 내뱉었다.
몸값이라며 기화초를 던져준 장면에선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이 일을 어찌 사과한단 말인가…….’
막막한 마음이 앞섰다.
나중엔 제자 녀석이 자신의 이름을 팔아대며 수도자들을 농락하는 장면도 있었지만, 차마 트집을 잡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
* * *
화련이는 말을 더듬고 있었다.
‘어, 어,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장철과 만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니!
지금 보여 지는 모든 장면들은,
믿기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가장 처음은 축기비경.
강제로 만역종에 팔아넘겨져 미쳐버린 양굉이 보였다.
화련의 팔뚝에 닭살 같은 소름이 돋았다.
저 모든 것들이 현실이란 걸 이제야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장철이 자신과 가족들을 양씨세가에서 구해주지 않았다면 정말로 가능한 일이었다.
문득 양굉이 장철을 죽이려고 발광하는 장면에선 화련의 애가 타기 시작했다.
‘왜 저리 바보 같은 짓을 하는 거야!’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양굉 녀석이 너무도 얄미웠다.
다른 인생에선 장철과 자신의 사이가 무척 가까운 것도 보였다.
지금도 내심 장철을 마음에 두긴 했지만, 저 장면에선 그야말로 노골적이었다.
어떻게 자신이 저렇게…….
‘헉……!’
갑자기 짐을 챙겨 한 동굴에서 함께 지내겠다고 말하는 장면.
아니, 아예 한 침상을 쓰자고 대놓고 말하는 것에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결국 그녀는 손을 들어 눈을 가리고 말았다.
이어질 장면을 상상하니 어느새 이마가 화끈거리고 있었다.
한데, 손가락이 스르르 벌어지며 시야를 열어준다.
분명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했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보았지만…….
‘아, 뭐야……!’
장철은 철벽처럼 그녀를 밀어냈다.
순간 자존심이 팍 상했다.
자신이 저만큼이나 들이댔는데도 퉁겨내다니.
이상한 상상까지 하고 말았다.
‘혹시 장철은 고자가 아닐까?’
아니야, 그럴 리는 없어.
‘내가 그렇게 매력이 없나……?’
그녀의 주먹이 불끈 쥐어지며 눈빛은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 달성해야할 목표를 찾은 것처럼.
* * *
진선과 나는 무수한 별빛으로 휩싸인 다섯 사람을 보았다.
내가 내 육신을 바라보니 감회가 무척 새로웠다.
“자네는 이제 갈 때가 되었네. 차시환혼이 있었기에 잠시 자네의 혼을 이곳으로 인도할 수 있었네. 곧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 것이야.”
진선의 말은 마치 미래의 일을 미리 언급하는 것 같았다. 아까 전에도 내 육신이 위험하지 않다는가, 곧 도움이 있을 것이라든가.
그는 내가 보지 못하는 어떤 것을 보는 듯 했다.
다신 그를 볼 수 없을 거라는 말도 떠올랐다.
‘혹시 시간과 공간에 대해 깨달은 게 아닐까? 그래서 미리 알고 있는 거고?’
그렇다면 반드시 물어야 할 것이 있었다.
“옥비녀의 회귀는 언제까지입니까……?”
이 질문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지금껏 회귀를 반복하며 깨달았다.
회귀가 끊이지 않는 한 나는 진정한 삶을 살 수 없다.
죽으면 부활할 것이고,
그런 뒤엔 모든 인연이 무로 돌아간다.
처음엔 그것이 특혜인 줄 알았지만, 인연이 쌓여갈수록 오히려 저주란 것을 깨달았다.
떨리는 내 목소리에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답해주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걸세. 자네의 힘은 급속도로 커졌지. 시간을 되돌리는데 막대한 힘이 요구되네. 자네 혼자뿐만이 아니라, 하계 전체의 시간을 되감아야하기 때문에. 아홉 번째 삶 수준이었다면 앞으로 수십 번도 더 회귀할 수 있었겠지만…….”
그의 설명을 통해 이해할 수 있었다.
누군가를 과거로 돌려보내는 것엔 합당한 대가가 필요했다.
우주의 법칙 상 얻는 것이 있다면 잃는 것도 있어야한다.
당연히 회귀의 당사자가 강할수록, 그 힘의 소모는 막대할 터.
“이미 위선지경에 필적하는 자네를 보내기 위해선 큰 힘이 소모되지. 지금 옥비녀에 남아있는 모든 힘이 요구될 게야. 아마 돌아가고 나면 더욱 더 힘이 커져있을 걸세. 그때부턴 불가능하네.”
진선인 그조차 불가능을 입에 담았다.
더 힘이 커져있을 거란 대목에선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받아들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 몸은 서서히 사라져가고 있었다.
광막 속의 육신에선 별빛이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마치 곧 회귀할 것이니 어서 돌아오라고 보채는 듯 했다.
이윽고 내가 우주에서 사라짐과 동시에 육신에서 눈을 떴고, 그 순간 별빛이 폭사되며 다섯 사람이 자취를 감추었다.
그것이…….
나의 마지막 회귀(回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