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Repair RAW novel - Chapter 159
159화 동반회귀 (完)
도박장에서 눈을 뜬 내게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것이었다.
‘앞으론 불가능하다고 했었지.’
내가 너무 강해진 탓에 옥비녀의 기운이 전부 소모될 것이라고 했다.
‘지금이 마지막이라는 소리인가.’
문득 아쉬우면서도 홀가분한 기분이었다.
드디어…….
내게 진짜 삶이 주어졌다는 생각이었다.
무엇부터 해야 될까.
가장 큰 문제는 호선(狐仙)이다.
그 전에 황제와 요왕을 처리해야되지만 그리 큰 걱정은 들지 않았다.
이전 삶에서 내가 깨달은 천뢰무극의 힘이면 그들 따위는 손짓 한번에 정리할 수 있으니.
그리고 금모신검을 가져오지 않았으니 호선은 고작 1할의 힘밖에 강림할 수 없다.
‘그래도 훗날 완전한 호선이 강림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
몸속에서 어떠한 기운이 솟구치는 것이 느껴졌다.
나의 내면 깊숙한 곳에서 두 종류의 기운이 서로 다투고 있었다. 하나는 내게 친숙한 천뢰무극의 힘. 벼락에 별빛이 공존하는 신비로운 힘이었다. 그리고 그에 대적하고 있는 것은 보랏빛 광채를 띠며 흉포하게 달려드는…….
‘호선의 요력!’
이전 삶의 마지막 순간, 내 몸을 빼앗으려 들었던 것이 함께 전이된 것이었다.
요력이 발작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나는 곧장 눈을 감고 가부좌를 틀었다.
곧 종팔이 소리를 지르며 달려올 것을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명상에 빠진지 얼마되지 않았을 때 시간이 급격히 느려지기 시작했다. 천뢰무극의 힘에 정신을 집중시키자 요력이 조금씩 분해되는 게 보였다.
파스스스…….
마치 소멸하는 것 같은 그 힘.
깊은 원한과 탐욕이 느껴지는 흉포한 기운, 요(妖)는 조금씩 분해되더니 밝은 광채를 내뿜은 무언가로 변모했고 나에게 흡수되기 시작했다.
호선의 2할 진력이던 막대한 양의 기운이 조금씩 조금씩 내 것으로 변화된다.
* * *
허겁지겁 뛰어오던 종팔이 도박장 사무실 앞을 막아선 두이를 보았다.
“두이 형님! 크, 큰일… 읍?!”
밖에서 보았던 일을 말하려던 도중 종팔의 입에서 나오던 소리가 뚝 멎었다.
인식하지 못한 사이 아혈을 짚은 것이었다.
두이가 매서운 눈초리로 말했다.
“이곳은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서슬 퍼런 기세에 종팔이 고개를 끄덕였다.
밖에서 큰일이 닥쳐오고 있었지만 눈앞의 두이가 더 무서웠기 때문이었다.
두이가 다 안다는 듯 말했다.
“내가 처리할 테니 걱정 마라.”
이윽고 반월남이 쳐들어왔지만 두이가 검기를 발휘하자 겁에 질려 도망갈 수밖에 없었다.
* * *
요력을 굴복시킨 나는 호법을 서고 있던 두이를 발견했다.
“어……?”
두이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이 보통이 아니었다.
절정고수도 아니고, 거의 노화순청의 극에 달하는 수준임이 느껴진다.
“두, 두이야. 이게 어떻게 된 거냐? 설마?”
내 물음에 두이가 무릎을 꿇는 게 보인다.
“형님… 그동안 정말 감사했습니다.”
격정이 차오른 두이 녀석이 설명해주었다.
내가 진선을 만나는 동안, 그동안 겪은 열 번의 삶을 모두 보았다는 것.
그리고 마지막 순간에 함께 별빛에 휩싸이며 회귀하게 된 것이었다.
“이럴 수가… 그럼 나머지 셋도…….”
“예, 함께 회귀했을 겁니다. 아마 지금 다들 어리둥절하고 있을 테죠.”
헛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럼 동료였던 이들이 전생의 힘을 품은 채 과거로 거슬러왔다는 것이다.
적운자, 두이, 화련, 주 노조.
갑자기 그들이 보고 싶어졌다.
지금 그들은 뭐하고 있을까.
“아마 형수님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아, 화련이?”
화련이라면 지금쯤 양씨세가에 볼모로 잡혀있을 텐데.
어서 구하려가야 한다고 생각하다가 멈칫했다.
“화련이는 원영기일 거 아냐? 알아서 빠져나오겠네.”
나머지 동료들도 위기랄 것이 없으니 일단 뒤로 제쳐두었다.
지금 가장 급한 것은…….
* * *
나는 황산에 올라 가장 먼저 백년삼을 캐냈고, 미치광이 산적 놈을 처리했다.
그러고 기다리니 수풀을 해치며 다가오는 관식이 형을 볼 수 있었다.
“어? 두철이? 여기 웬일이냐?”
“형수님이 형 찾아달라고 해서 와봤어. 새벽부터 나와서 뭐하는 거야?”
내가 타박하듯 말하자 관식이 형은 머리를 긁적였다.
“어서 들어가봐. 그리고 이거 받아.”
“이, 이건 영약이잖아!”
백년삼을 내밀자 펄쩍 뛰며 놀란다.
“나는 됐으니까 이거 들고 집에 가. 형수님한테 선물이라고 하면 되겠네. 알았지?”
“…저, 정말로 괜찮겠냐?”
“괜찮다니까. 다음에 몸에 좋은 거 캐면 나 주든가.”
형이 감격한 눈초리로 머뭇거리더니 고맙다는 말을 하며 떠나갔다.
한 가지 문제를 처리하니 가슴이 편안해지는 느낌이다.
어차피 나에게 더 이상 영약은 의미가 없었다.
몸속에서 굴복시켜둔 요력이 조금씩 녹아들며 내 힘을 계속해서 키워나가고 있기 때문.
과연 호선의 힘은 대단했다.
요력은 단순히 기운뿐만이 아니라, 내 격(格) 자체를 상승시켜주고 있었다.
천뢰무극의 경지가 끝을 모르고 치솟는다.
* * *
내가 황산에 오른 사이 두이는 무력으로 북창을 굴복시키고 있었다.
가장 먼저 대오방과 진씨세가를 찾아가 모두를 때려눕혔고, 다음으론 상응방주 모진평에게 향했다.
모진평은 특별한 사연이 있는 놈이었다.
때문에 두이는 더욱 더 놈을 신경써서 다루고 있었다.
퍼억!
“으윽……! 이런 썅!”
벌써 몇 번이고 나가떨어졌음에도 모진평의 기세가 꺾이지 않았다. 평소 자신의 휘하였던 두이에게 당하기 때문일 터.
이미 연무장의 주위엔 상응방 소속 무인들이 너부러져 있었다.
가장 강한 그조차 두이를 당해내지 못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너, 너……! 죽고 싶으냐! 내 스승님이 누구인지 알고!”
결국 적운자를 들먹이며 협박이라도 하려는 찰나.
우우웅!
두이의 검에 적운, 황운, 백운, 청운의 순서로 기운을 일으켰다.
“스승님을 모를 리가 있겠소?”
“어, 어……!”
말도 안 되는 광경에 모진평의 두 눈이 한없이 커졌다.
“서, 설마!”
이제야 두이를 사형으로 인식한 모진평.
두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 날부터 특별 훈련이 시작됐다.
술만 퍼마시던 모진평의 개고생이 시작된 것이었다.
* * *
북창을 두이에게 맡기고, 나는 가장 먼저 영계종에 잠입해 백리영을 처리하고 금모신검을 회수했다.
그리고 제국의 황성으로 향했다.
수도를 지나칠 무렵 양씨세가가 멸문당하고, 그 자리에 새로운 세가가 세워졌는데 얼핏 이씨세가라고 들었다.
보나마나 화련이가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문득 그녀가 보고 싶었지만 일단 큰일부터 처리하기로 했다.
황제가 머무는 거처.
놈은 내가 잠입한 것도 모르고 두 명의 수도자 놈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혼(魂)의 수급은 어떠한가?”
황제의 물음에 병부, 예부 대인 중 하나가 답했다.
“문제없사옵니다. 구자성주 또한 그 점을 가장 신경 쓰고 있사옵니다.”
“그렇습니다. 요왕 또한 요수들을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으니 너무 심려치 마시옵소서.”
황제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자 보고를 마친 두 놈이 곧 물러갔다.
그리고.
스스스스…….
허공에 녹아있던 내 신형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아니?!”
대경실색한 황제 놈이 팔검법보를 내던지고, 거대한 종, 거울 등을 꺼내들었지만 별빛이 담긴 내 손짓 한번에 모든 것이 가루로 흩어져버렸다.
“이, 이럴 수가……!”
말도 안 되는 힘에 황제 놈의 넋이 나가버렸다.
“이봐 천기상인.”
그의 진짜 정체를 언급하자 놈이 흠칫하는 것이 보였다. 구중천의 문주였던 천기상인. 주로 천기를 살펴 앞날을 굽어볼 수 있는 것이 그의 권능이었으나, 유감스럽게도 오늘의 재액은 살피지 못한 듯 했다.
나는 놈이 정신을 차릴 틈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
“타인들을 희생시켜 생을 연명하니 기분이 좋더냐?”
놈은 곧바로 대답하지 못하고 눈을 굴리고 있었다.
내 정체를 파악하려는지 정신이 없는 모습이었다.
하계의 절대자로 군림하는 요왕과 황제다.
이토록 무력해질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을 터.
그의 대답 또한 정해져있었다.
“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요? 어찌 하계에 위선이 강림할 수 있단 말이요?”
“내 정체가 그리 중요한가? 지금 네 목숨이 달려있는데. 네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지더구나. 그리하여 나서게 되었다. 살고 싶으면 대답을 잘 해야 될 것이다.”
마치 모든 것을 아는 듯한 내 말에 황제가 입을 꾹 다물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놈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었소. 살아남기 위해선 뭐든 해야 했단 말이요! 아무 잘못도 없던 우리를 몰아붙인 것은 호선이었소. 갑자기 나타난 별빛을 보고선 우리에게 보물을 내어놓으라 했소. 없는 것을 어찌 준단 말이요! 해서 우리는 도망쳤을 뿐이외다!”
놈은 마치 피를 토하는 듯 호소했다.
누가 보아도 억울하게 휘말린 피해자인 것처럼.
“신혈석(神血石)이란 것을 알 테지? 무고한 범인들이 이유도 모른 채 끌려와서 솥에 삶아지더군. 고작 수도자들의 수련을 위해서 말이야. 또 그런 수도자들은 너를 위해 죽도록 싸운 뒤엔 혼이 제물로 바쳐진다. 너무 억울하지 않겠어?”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오. 어디를 가든 그럴진대 뭐 그리 큰 문제란 말이오! 그들의 희생이 없다면 이 하계가 무사할 수 있을 것 같소!”
한데, 놈이 은밀히 영력을 움직이며 어딘가로 신호를 보내는 것이 느껴졌다.
거의 위선에 필적한 경지를 이룩한 나는 볼 수 있었다.
‘요왕을 불러들이는 건가? 잘됐군. 두 놈을 한꺼번에 처리해야겠어.’
혼자선 감당할 수 없는 강적이 나타났으니 그녀를 불러 합공을 하려는 것일 터.
이로써 두 놈이 공동운명체였단 것이 확실해졌다.
‘천인 둘이면 나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 보는 건가?’
그야말로 가소로운 발악이었다.
천뢰와 심검이 합쳐진 천뢰무극은 그들의 힘으론 도저히 감당하지 못한다.
맞닿는 즉시 가루로 분쇄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가소로운 마음에 기다려주기로 했다.
“얼마나 많이 희생시켰나?”
“그걸 어찌 알겠소? 천문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제물을 바쳤을 뿐이오.”
마치 길가에 차이는 돌멩이들을 언급하는 것 같았다.
무수한 저계 수도자들을 희생시켰음에도 놈은 한없이 억울한 기색이었다.
정말이지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놈이다.
“기다려주기 지루하구나. 언제 오느냐?”
“뭐, 뭘 말이오?”
넌지시 요왕을 거론하자 눈에 띄게 당황한다.
잠시 모르는 채 하고 있자, 머리 위 상공에 어마어마한 영력이 요동치며 요왕이 등장했음을 알려왔다.
쿠구구궁……!
[귀찮은 놈! 왜 나를 부른 것이냐!]금정을 일으켜 건물 너머를 바라보자, 그곳엔 한 젊은 여인이 있었다. 이전 삶에서 보았던 요왕의 모습이었다.
인간으로 둔갑한 모습이 요염하기 짝이 없었다.
이윽고 술법을 통해 공간전이를 일으킨 요왕이 거처 내부에 등장했다.
번쩍─!
아군이 생기자 황제 놈의 얼굴에도 작은 희망의 빛이 어린다.
요왕이 황제 놈에게 따지듯 물었다.
“왜 대답이 없느냐!”
내가 끼어들었다.
“어, 왔나. 요왕.”
요왕이 그제야 나를 발견하고 흠칫 굳었다.
“뭐, 뭐냐! 이놈은? 설마 나를 함정에 빠뜨린 것이냐!”
“그게 아니다! 저놈을 죽여야 된다!”
끝까지 잔머리를 굴리려는 황제의 모습에 나는 한숨을 내쉰 뒤 몸을 움직였다.
일순 내 신형이 흩어지듯 사라지며 황제 놈의 면전에 당도했고, 별빛이 흐르는 손으로 그의 미간을 짚었다.
파스스스…….
황제의 몸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가루로 흩어졌다.
원영신조차 남기지 못한 완전한 죽음.
하계를 지배하던 절대자 중 하나가 허무하게 사라졌다.
넋이 나간 요왕의 모습이 보였다.
“여우야. 너도 죗값을 치러야지?”
“자, 잠시!”
그렇게 한명의 천인이 더 사라졌다.
* * *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많고도 많았다.
당장 황성에 위치한 집혼각의 대진법을 무너뜨렸고, 다음으론 요수림의 혼번진을 지워버렸다.
그 과정에서 구자성주를 비롯한 만인장, 천인장들 역시 다수가 죽음을 맞이했다.
그리고 각 나라에 존재하는 혈석을 만드는 수도문파들을 하나하나 찾아가 모조리 멸문시켰다.
그렇게 하계 전체에 암운을 드리웠던 문제들을 모두 해결했을 때엔 꼬박 하루가 흘러 있었다.
지고한 경지에 오른 내가 전력으로 움직여 이뤄낸 결과였다.
“후우. 이제야 끝났구나. 그럼 이제 누구를 만나러 갈까?”
당장 생각나는 이들이 몇 있었다.
적운자, 두이, 화련, 주 노조, 천 공자…….
잠시 고민한 끝에 단문종을 먼저 살펴보기로 했다.
* * *
“노조님 다 외웠습니다!!”
당당하게 외치는 천 공자의 모습에 주 노조, 주은선이 작게 미소 지었다.
그녀 또한 함께 회귀함으로써 모든 기억을 간직한 이들 중 하나였다.
그렇기에 눈앞의 젊은 청년의 진심을 알고 있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거침없이 몸을 내던지던 모습.
평소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하던 못난 모습과는 상반되는 것이었다.
그전까지는 그저 젊은이의 풋사랑으로 치부했지만, 진심을 알게 된 후로 어느새 그녀 역시 천 공자를 마음에 두고 있었다.
하여, 회귀 직후 그를 제자로 받아들여 주었다.
뜬금없는 기연에 어찌나 놀라던지.
당시를 회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그래도 고작 연기기를 자신의 배필로 맞이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하루라도 빨리 성장시켜야한다.
그래야 잡아먹든 말든 할 테니…….
“그럼 약초 5권도 외우세요.”
“네, 네……?”
안간힘을 써서 외웠건만 또 공부를 하라니.
시무룩해진 천 공자의 모습에 그녀가 물어보았다.
“하기 싫으세요?”
“그, 그게…….”
아름다운 목소리에 천 공자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하지만 공부란 것이 워낙에 힘든 탓에 차마 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자 그녀가 넌지시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마음에 들더군요.”
“!”
천 공자의 고개가 번쩍 올라왔다.
당장이라도 공부하겠다는 듯 눈빛이 타오르고 있었다.
하기 싫어하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지경.
“걱정 마십쇼! 한 달 내에 외워보겠습니다! 하하하!”
나태한 천재는 그렇게 불타올랐다.
* * *
나는 남몰래 단문종을 살피며 흐뭇하게 웃었다.
그토록 갈구하던 사랑이 이어지다니.
감동적이어야 하건만 바보 같은 천 공자를 보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잘 됐구나. 축하한다!’
둘의 인연을 축복하며 다음으로 백혼종으로 향했다.
백혼종의 천무각에 도착해보니 삼화취정의 제자들이 수련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부웅! 부웅!
맹렬히 휘두르는 검 끝엔 백운의 기운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고.
파지직……!
사륜칠절공의 뇌기 또한 엿보였다.
‘적운자가 전수했나보군.’
내원 깊은 곳으로 이동하자 여섯의 사형들 또한 뇌기를 단련하는 모습이 보였다.
특히나 그들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는데, 아마도 뇌기를 통해 노화순청의 경지에 오를 생각인 듯 했다.
“흐으음…….”
이미 등봉조극에 올라 무극지경을 엿본 적운자는 하염없이 구름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했다.
스스스스…….
내가 모습을 드러내자 그가 말을 건넸다.
“왔느냐?”
“예, 스승님. 황제와 요왕을 처리하고 오는 길입니다.”
“그래도 조금 시간이 걸렸구나. 지금의 너라면 더 빨랐을 터. 다른 녀석들을 먼저 보고 온 것이냐?”
짐짓 서운한 듯한 물음.
“하하하. 단문종을 잠시 보고 왔습니다.”
“은선이 말이냐? 흠, 그 못난 놈도 있었겠군.”
적운자 또한 천 공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예, 스승님께선 뭐하고 계셨습니까?”
사륜칠절공을 전수한 뒤로 그는 딱히 할 것이 없는 듯 했다.
“…뭘 해야 될지 모르겠구나. 제자 녀석들도 이제 알아서 클 테고.”
“도움이 필요한 제자가 없나봅니다?”
적운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이미 최강자라 할 수 있는 그에게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대적할 수 있는 수도자도 없고, 해치워야 할 적 또한 내가 쓸어버렸다.
등봉조극의 다음 경지를 엿보기엔 너무도 이른 시점이기도 했다.
오직 복수만을 염원하던 삶의 목표가 한 순간에 사라져 버렸으니 어련할까.
문득 그를 도울 방법이 떠올랐다.
“그럼 도움이 필요한 제자를 보러 가시겠습니까?”
뜬금없는 내 물음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런 녀석이 아직도 있느냐?”
“예, 가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그렇게 우리는 북창으로 향했다.
* * *
북창으로 향하는 도중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웬 비행괴뢰 하나가 먼발치에서 자꾸만 우리를 엿보는 것이었다.
“화련이인가……? 이봐!”
내가 소리치는 순간 괴뢰가 화들짝 놀라며 도망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내 속도에 곧 붙잡혔다.
“화련이냐? 왜 나를 감시하는 거야?”
괴뢰에게서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화, 화련이라니! 무슨 소리야! 나, 난 양굉인데?”
양굉이라면 화련이가 만역종에 팔려갔을 때의 신분이다.
그러니 지금 삶에선 있을 수 없는 사람이지 않은가?
워낙 당황한 탓에 말실수를 한 게 분명했다.
정체를 들킨 그녀가 당황한 모습을 상상하자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때 괴뢰가 몸부림치며 기어코 내 손을 벗어나 저 멀리 도망쳐 버렸다.
나는 그녀가 나를 감시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며칠이 지났음에도 자신을 찾아오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이렇게 괴뢰를 보냈을 것이다.
‘차마 먼저 오진 못하겠지.’
그것이 바로 여자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 * *
북창에 도착한 적운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곳에 자신의 제자가 있다는 말인가?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었다.
자신의 손으로 거둔 녀석들은 대부분이 백혼종에서 머물고 있었으니.
의아한 듯 장철을 바라보았지만 그저 들어가 보라는 손짓뿐이었다.
끼이이익─
이내 상응방의 문이 열렸고,
그곳엔 땀을 뻘뻘 흘리며 검을 휘두르는 자가 보였다.
적운자가 그를 바라보았다.
나이는 사십 중반의 남성이었다.
평소 몸을 관리하지 않았는지 배가 나와 있었다.
검술 실력 또한 그의 기준에선 형편없었다.
보나마나 검기도 제대로 깨닫지 못한 반푼이일 것이다.
적운자가 눈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더 이상 볼 것도 없었다.
수많은 제자를 키워본 적운자는 곧바로 알아챘다.
‘얼마나 형편없이 가르치면 저 지경이 되었단 말인가.’
만약 자신이었다면 저렇게 키우지 않았을 것이다.
저 지경이 될 때까지 내버려둔 스승 놈을 찾아가 혼쭐을 내고 싶어졌다.
저벅저벅 걸어간 그가 두이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이가 그 남자를 지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작게 고개를 숙인 두이가 한쪽으로 비켜서며 훈련을 중지시켰다.
적운자가 짐짓 무안한 표정이 되었다.
두이라면 기억에 있는 천재였으니…….
그때 훈련을 멈춘 남성이 땀을 닦으며 물주전자를 들어 올리던 중 적운자를 발견했다.
“어, 어……? 스승님?”
자신을 보고 스승이라니.
적운자가 당황했다.
혹시 다른 자를 부른 것인가 싶어 주변을 살폈지만, 모진평의 시선은 분명 그를 향하는 것이었다.
그제야 적운자가 모진평을 똑바로 마주했다.
미간을 찌푸리며 기억을 더듬었다.
점차 녀석에 대한 것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건 정말 못 쓰겠군. 실패작이야. 처리할까? 아니다. 50년만 더 두고 보자. 이 정도면 뭔가 성취가 있겠지?]차마 입에 담아선 안 되었을 폭언에 말문이 막혔다.
“…….”
한참의 시간이 지나서야 이름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모가 놈이냐…….”
“예, 예. 스승님.”
“오랜만이구나.”
“크흑…….”
모진평이 눈물을 터뜨렸다.
15년 만에 본 스승이 그를 기억해주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는 오열하고 있었다.
적운자는 자신이 버려두었던 제자를 한참이나 말없이 바라보았다.
광기에 파묻혔던 지난날의 그가 남겨둔 잔재였다.
“스승님, 절 받으십시오…….”
모진평의 절을 받으며 적운자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큰 상처를 준 녀석이 너무도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렇게 그는 남은 삶을 쏟아부을 대상을 찾았다.
‘반드시 고수로 키워주겠다.’
자질이 좋건 나쁘건, 그를 고수로 만들어줄 생각이었다.
그런 뒤에 녀석이 웃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 * *
적운자와 모진평을 이어준 뒤, 나는 드디어 제국에 도착했다.
미뤄두었던 마지막 만남을 위해서였다.
감시하던 걸 들킨 뒤로 괴뢰는 다시 오지 않았다.
‘괜히 아는 척을 했나?’
화련의 입장에선 무척 부끄러웠을 거라 짐작했다.
그렇게 이씨세가 앞에 도착했을 때.
“도대체 왜 안 오는 거야─!”
화련이 소리 지르는 게 들렸다.
“딸, 누구 오기로 했어?”
어머니의 물음에 화련이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나한테 먼저 오기로 해놓고 계속 다른 놈들을 만나러 다니잖아! 마음이 바뀐 것 같아! 아, 이게 다 양굉 때문이야!”
뜬금없이 축기비경에서의 양굉 탓을 하기 시작했다.
양굉이 괴롭혔기 때문에 오지 않는 게 아닐까 하고 자괴감에 빠지고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어머니는 일단 그녀의 편을 들었다.
“그런 녀석을 뭐 하러 기다려? 오더라도 쫓아 보내!”
“어? 그, 그럴 것까지야…….”
당황해하는 모습에 나는 피식 웃었다.
어서 들어가 그녀를 놀려 줄 생각이 들었다.
끼이이익─
이씨세가로 들어가는 내 얼굴엔 웃음꽃이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