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0
우희가 온다! (1)
뒤뜰을 거닐던 교은의 눈에 기묘한 자세를 취한 어린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우리 휘아, 뭐하니?”
“운동이요!”
내공의 재능이 없다는 사실에 혹여나 시무룩해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염려한 것이 무색할 만큼 씩씩한 대답이 돌아왔다.
누굴 닮아 저리 똑 부러질까?
육아는 처음인데다 조언을 해주실 양가 부모님마저 타계하신 터라 걱정도 많이 했지만, 가휘는 그녀가 아는 어떤 아이들보다도 바르게 자라나고 있었다.
또 하는 짓은 어찌나 귀여운지, 교은은 뒤뚱거리며 앉았다 일어나길 반복하는 아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
“서책에서요. 어머니도 같이 하실래요?”
“응? 나도?”
아장아장 다가온 아이가 고사리 같은 손을 내밀자 교은은 기꺼운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아이가 하던 동작들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었다.
“다리를 어깨보다 살짝 넓게 벌리고 뒤로 앉는 거예요.”
“이렇게?”
“더 많이. 중심을 좀 더 뒤에 두고 그대로 밑으로···. 상체도 더 세우셔야 돼요. 그리고 올라올 땐 무릎이랑 골반을 동시에 펴면서.”
“이렇···게?”
“네, 그렇게. 내려갈 때 들이쉬고, 올라올 때 내쉬고. 스읏, 후우-.”
비록 아이가 실망할까봐 억지로 따라 하긴 했으나 금세 허벅지와 엉덩이가 아파왔다.
더구나 그저 다리를 넓게 벌리고 버틸 뿐인 마보와 달리, 엉덩이를 뒤로 쑥 내밀어야 하는 자세가 어딘지 남세스럽기도 했다.
결국 몇 차례 아이와 함께 동작을 반복하던 교은은, 이쯤이면 충분하겠지 라는 생각에 몸을 일으켰다.
“후···.”
“아직 더 하셔야 돼요.”
“엄마 힘든데? 이거 하면 어디에 좋아?”
“엉덩이가 올라가서 다리가 늘씬하고 예뻐 보인대요.”
“···그래?”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아내던 교은은 가휘의 말에 주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혼인을 하여 자식까지 보긴 했으나 그녀 또한 여인, 이 시대를 살아가는 여인들에게 있어 늘씬한 다리는 크나큰 자랑거리였다.
더구나 그 어린 나이에 새로운 세목제를 만들 만큼 영특한 아이의 말이 아닌가.
잠시 제자리에서 머뭇거리던 교은은 이내 엉덩이를 다시 밑으로 떨어뜨렸다.
***
부모님께 걱정을 안겨드리기 싫어서 억지로 밝은 척을 하긴 했지만, 내공을 익히지 못한 아쉬움은 컸다.
그러나 언제까지고 실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법, 난 가망도 없는 내공에 매달리느니 트레이닝으로 몸을 단련하는 길을 택했다.
어린 나이에 근육운동을 시작하면 키가 안 큰다던 루머가 떠올랐지만, O튜브에 검색해본 결과 말 그대로 루머였음을 알 수 있었다.
오히려 근력 운동이 성장에도 도움을 준다는 사실에 나는 안심하고 홈트를 시작했다.
전생에서도 헬스장은 종종 나가는 편이었기에 운동별 발달 근육과 루틴 정도는 숙지하고 있었다.
지금은 제대로 된 운동기구마저 없으니 당분간은 맨몸으로 때울 수밖에.
나중에 대장간에 가서 덤벨을 만들 수 있는지 물어볼까?
현대처럼 정교한 제작은 무리겠지만 가재도구를 들고 설치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다.
곧 적당한 영상을 찾은 나는 유명 트레이너의 동작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가벼운 워킹과 스트레칭으로 몸을 풀고 이어서 스트레칭과 상·하체, 복부와 코어 운동을 순차적으로 진행했다.
“후욱, 훅···. 으아아-.”
운동 첫날임을 고려해 강도를 약하게 조절했음에도 난생 처음 혹사를 당한 근육들은 금세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웨이트 트레이닝 뒤에 이어질 종합격투기 훈련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포기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다시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홈트 7일차.
난 옆에서 가쁜 숨을 내쉬는 엄마와 항아를 바라봤다.
확실히 운동도 같이 해야 의욕이 솟는 법이었다.
우리 장원의 소식통이라 할 수 있는 항아는 그새 엄마에게 홈트의 효능에 대해 들었는지, 씩씩거리면서도 곧잘 훈련을 쫓아왔다.
아무래도 청년 석단과의 썸을 염두에 둔 듯 했다.
나는 두 여인에게 내가 하는 운동과는 조금 다른 뷰티 운동을 전수했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자리한 또 다른 한 사람에게도.
“휘아, 이렇게 하면 돼?”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깜찍한 꼬마 손님의 정체는 다름 제갈우희였다.
얼마 전, 조가장의 호위를 위해 파견된 제갈세가의 무사들 사이에는 놀랍게도 제갈세가주의 딸인 그녀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 장원에 빈 객실이 있음에도 괜한 부담을 주기 싫다며 굳이 근처의 작은 가옥 하나를 매입한 그들은, 둘씩 짝을 지어 교대로 경계 근무를 서는 한편, 양 가문의 창구 역할도 수행했다.
문제는 매일 사시 무렵(오전 9~11시), 교대하는 제갈세가의 무사들을 쫓아 제갈우희도 꼬박꼬박 출근 도장을 찍는다는 점이었다.
처음 무사를 대동하고 나타난 그녀를 보았을 땐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제갈세가에서 파견된 무사 중에 여고수들의 비중이 제법 큰 것 역시 딸을 배려한 제갈가주의 결정이었으리라.
근 20일 만에 재회한 그녀는, 또래 중 유일하게 말이 통하는 나와 다시 만나기 위해 삼촌과 아빠에게 얼마나 떼를 썼는지 자랑하며 해맑게 웃었다.
문제는 그 억지가 내게도 해당한다는 점이었다. 지난 만남에서 내게 라이벌 의식을 품은 그녀는 매일처럼 나와 지식을 겨루려했다.
귀찮다고 무시하기에는 꼬맹이의 배경이 무시무시했다. 현대로 치면 재벌 3세가 아닌가!
거기에 부모님 역시 나를 따로 불러 우희와 친하게 지내기를 당부하시니, 나로서는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천재소녀를 만족시키는 게 그리 쉬운 일이겠는가.
저번엔 스트리밍을 이용한 꼼수와 전생의 지식 덕에 간신히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지만, 애초에 난 천재도 뭣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패배만 거듭했다간 나와 만나기 위해 거처까지 옮긴 소녀가 실망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니, 결국 그녀를 만족시킬 방법은 O튜브밖에 없었다.
그 날 이후, 내 검색창 대부분의 지분은 퀴즈, 수수께끼, 넌센스, IQ 테스트 따위로 채워졌다.
하지만 영상 속 수많은 문항들 중 실제로 우희에게 낼 수 있는 문제는 극히 드물었다.
현대와 고대 상식 사이의 메울 수 없는 간극 탓이었다.
전화기의 최초 발명가나 미국 대통령의 이름, 지구와 태양 사이의 거리 따위는 우희에게 아무런 감흥도 주지 못할 게 분명했다.
아니, 그래도 마지막 건 관심이 있으려나?
하지만 기초 과학을 이해시키려면 일단 수학부터 선행이··· 그래, 수학!
순간 머릿속이 환해졌다.
우희에게 수학을 가르쳐보는 건 어떨까?
처음에야 기초를 가르치느라 조금 고생하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훨씬 이득이었다.
바쁠 땐 어려운 문제 몇 개로 수업을 대신할 수 있고, 정 안 되면 7대 수학 난제라도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잽싸게 O튜브 검색창에 초등수학을 입력하자 진도별로 정리된 인강 수백 개가 눈앞을 채웠다. 그것도 무려 EBS 채널에서 제공하는 영상이었다. 고등수학 역시 마찬가지였다.
교육방송 고마워!
이 정도면 나라도 가르칠 수 있겠지.
검색을 마친 나는, 오늘도 나와 두뇌 싸움을 벌일 생각에 벌써부터 두 눈을 반짝이는 어린 악마를 향해 사악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우희야. 내가 재미있는 거 가르쳐줄까?”
“뭔데?”
“네가 아직 모르는 거.”
그 날 이후 내 일과에는 꼬꼬마 수학 과외가 추가되었다.
***
놀랍게도 제갈우희는 이미 아라비아 숫자를 알고 있었다.
비록 내가 아는 숫자와는 사뭇 다른 형태였지만, 0부터 9까지 10개의 숫자체계를 가진 것으로 보아 아라비아 숫자인 것만은 분명했다.
내가 지식의 출처를 묻자, 그녀는 제갈세가의 서고에 보관 중인 후이족의 한 서적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봤다고 했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 이국의 숫자체계가 갖는 장점이나 그것을 다루는 방법까지는 알지 못했다.
난 계획대로 수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은 열두 냥과 십 문짜리 동전 오십 개, 삼 문짜리 동전이 일곱 개 있으면 총 몇 문일까?”
“일만이천오백이십일 문.”
“그걸 후이족의 방식으로 나타내면 ‘12521’이야. 훨씬 간단하지?”
“어···?”
숫자의 세계를 맛본 우희의 얼굴이 충격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에 난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설명을 이어갔다.
“숫자를 가감할 때도 이 방식이 훨씬 편해. 오늘은 덧셈 뺄셈에 대해 설명해줄게.”
내가 종이 위에 붓으로 ‘+’와 ‘-‘를 그리자 우희가 눈을 깜빡이며 나를 바라봤다.
“너는 이런 걸 어떻게 알아?”
“우리 아버지가 서역에 자주 다녀오시잖아? 가끔 서책 같은 걸 가져오시면 그걸 보고 익혔어.”
“아-. 나도 아빠한테 사달라고 해야지? 서책 제목이 뭐야?”
“어? 아, 그건 까먹었는데. 그러지 말고 계속 나한테 배워. 내가 가르쳐줄게.”
“······좋아.”
어휴, 구라치다 걸릴 뻔했네.
가슴을 쓸어내린 나는 우희의 순진무구한 눈빛을 피해 슬며시 한쪽 눈을 감았다.
일시정지해둔 인터넷 강의를 다시 재생시키기 위함이었다.
곧 눈꺼풀 안쪽에서 EBS키즈 채널에서 제공하는 교육용 애니메이션이 재생되자, 영상을 컨닝 중인 나 역시 덩달아 바빠졌다.
[도와줘요~ 더하기 요정!]“도와줘요, 더하기···.”
“응?”
“어? 아니, 아니야. 그게 아니고, 어···. 여기 봐봐? 여기 양을 기르는 목장이 있는데···.”
그림을 곁들인 설명에 우희의 눈이 다시 반짝이기 시작했다.
그 날 난 기본적인 사칙연산을 모두 가르친 뒤에야 그녀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다.
***
우희의 존재가 마냥 귀찮은 것만은 아니었다.
하나를 배우면 열을 아는 아이다보니 성장을 보는 재미가 쏠쏠했고, 무엇보다 전생에는 없던 귀여운 여동생이 생긴 것 같아 기뻤다.
게다가 내가 우희에게 수학 스승이자 놀이 친구이듯, 그녀 역시 내 훈련 상대가 되어주었다.
“이렇게 서 있으면 돼?”
“어, 잠깐만?”
우희와 침대 위에서 마주본 나는 O튜브에서 찾은 태클 강의를 따라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여기서 자세를 낮추고 안으로 파고들어서···?”
“아?”
“오금을 낚아채면···.”
“으아!”
나는 균형을 잃은 우희와 함께 침대 위로 풀썩 넘어졌다.
“오케이. 한 번만 더 해보자.”
“······.”
내 손을 잡고 일어나는 우희의 얼굴이 새빨갰다.
비록 연습이라곤 하나, 무가도 아닌 상가의 아이에게 기습을 허용한 게 분한 것이리라.
“우희야, 다시 갈게?”
“···응.”
“이번에는 너도 막아봐.”
경고를 마친 나는 수비 자세를 잡는 그녀를 향해 다시 한 번 돌진했다.
안 그래도 격투기 훈련을 도와줄 파트너를 찾던 차에, 나와 비슷한 체구인 우희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나 마찬가지였다.
타격기도 그렇지만 특히 그라운드 기술 연마에는 스파링 상대가 필수였기 때문이다. 쉐도우 복싱도 아니고, 혼자 방을 뒹굴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거기다 가문의 고절한 심법을 익힌 우희의 체력은 보통 아이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뿐만 아니라 힘도 장사였다. 관절기를 풀기 위해 발버둥치는 그녀에게선 어른 못지않은 힘이 느껴졌다.
덕분에 난 트레이너들로부터 전수 받은 기술들을 아낌없이 시험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침대 위를 뒹굴고 나면,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땀투성이가 되어 단내 섞인 헐떡임을 쏟아내기 바빴다.
“학, 학···.”
“후···. 도저히 못 빠져나올 거 같을 때는 손으로 툭툭 두드리는 거야. 그만하라고.”
“응! 휘아, 근데 이거 나려타곤···.”
“응?”
“아무것도 아니야.”
그 순간, 고개를 젓던 우희가 기습적으로 내게 입술을 내밀었다.
다행히 미리 대비하고 있던 터라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짐짓 엄한 얼굴을 하고 우희를 멈춰 세웠다.
“얘가 진짜. 이런 거 하면 안 된다니까.”
“왜?”
왜긴. 너랑 나랑 나이 차이가 몇 살인데.
이제 5살밖에 안 된 게 어찌나 조숙한지, 이 조그만 아가씨는 틈만 나면 이런 식으로 내게 뽀뽀를 시도했다. 특히 단 둘이 있을 때면 잠시도 방심할 수 없었다.
주변 어른들 눈에야 어린 아이들끼리 친하게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겠지만, 20대 후반의 자아를 지닌 나로선 그런 호의의 표현이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순수한 마음에서 한 행동을 꾸짖을 수도 없는 노릇, 나로선 조용히 타이르는 것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 건 나중에 어른 되면 하는 거야.”
“어른 되면 해도 돼?”
“그래. 어른 되면 하자? 알았지?”
“응.”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이내 몸을 일으키며 물었다.
“근데 휘아는 내공 수련은 언제 해? 나 가면?”
“아, 내가 얘기 안 했나? 난 내공 못 익히나봐.”
“······.”
“보름 정도 해봤는데 안 되더라. 어쩔 수 없지, 뭐.”
“난 네가 내공을 익힌 줄 알았는데.”
우희의 입에서 우리의 첫 만남이 흘러나왔다.
당시 나는 그녀와의 ‘눈 가리고 술래잡기’ 대결에서 스트리밍이라는 꼼수를 써서 이긴 바 있었다.
“그 땐 우연이었다니까? 의심스러우면 확인해 봐도 돼.”
“타인에게 단전을 함부로 내줘선 안 돼.”
“그럼 확인 안 할 거야?”
“···할 거야.”
눈을 흘기며 다가온 그녀가 내 아랫배에 손바닥을 붙였다.
잠시 그 상태로 가만히 있던 그녀는 이내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났다.
“정말 없어.”
“그치?”
“···나 오늘은 이만 가볼게.”
“어? 일찍 가네? 기다려, 나도 준비 좀 하고.”
“아니야. 내일 봐-.”
훈련으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듬은 그녀는, 뭐가 그리 급한지 내 배웅조차 마다하고 곧장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퇴장이었다.
왜 저러지? 혹시 내공 얘기 꺼낸 게 미안해서 그러나?
잠시 그녀가 떠나간 문을 바라보던 나는 이내 어질러진 침대 위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일찍 다시 우리 집을 방문한 그녀의 손엔 정체모를 비급 하나가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