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05
금안 (3)
‘끝이다.’
내력대결 중 입을 여는 것은 금기나 마찬가지.
때문에 소리를 내어 말하진 않았으나, 날 내려다보는 금안마군의 눈은 분명 그리 말하고 있었다.
이대로 끝날 수밖에 없는 건가.
점차 짙어지는 죽음의 향기에 이를 악물던 그 때,
쐐애액-!
허공을 가로지른 검은 번개가 금안마군의 복부에 작렬했다.
“커헉!”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던 금안마군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
허공에 흩뿌려진 핏방울이 새하얀 대지 위를 붉게 물들이는 가운데, 그를 습격한 자의 정체가 뒤늦게 밝혀졌다.
“끼잉···.”
툭, 소리와 함께 눈밭 위로 굴러 떨어진 복슬복슬한 털 뭉치의 정체는 다름 아닌 고든람쥐.
친구를 살리기 위해 제 한 몸을 불사른 작은 열사는, 충돌의 충격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 채 한참을 위태로이 비틀거렸다.
금안마군과 전투를 벌이는 3시간 동안 계속 내 뒤를 쫓았던 걸까.
전투가 끝날 때까지 멀찍이 대피해 있으라 그리 일렀건만, 내 위기에 자기도 모르게 몸이 움직인 걸까.
작은 충격조차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바로 내력대결이다.
하물며 몸은 가벼워도 속도만큼은 절정고수를 웃도는 시송서의 돌진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고든람쥐의 깜짝 등장 덕에, 더 이상 아무런 가망도 없어보이던 전투는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욱.”
부르르 떨던 금안마군의 입에서 또다시 피가 울컥 쏟아져 나왔다.
색깔도 조금 전과는 다른 검고 탁한 피.
역류한 진기를 다스리는 데 실패했다는 증거다.
그리고 난 간신히 얻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뿌드드드득-.
젖 먹던 힘까지 동원해 모든 기운을 내력대결에 밀어 넣는다.
눈 위로 불거진 핏줄이 투두둑 터지며 시야가 붉게 물들었지만 난 멈추지 않았다.
고든람쥐가 목숨을 걸고 만들어준 소중한 기회를 허무히 날릴 수는 없으니까!
뿌드드득-.
“욱···.”
마침내 입장이 역전됐다.
상대의 허리춤에 머무르던 시야가 서서히 상승하고, 반대로 금안마군의 신형은 점점 바닥과 가까워졌다.
어느새 난 조금 전과 정반대로 금안마군을 내려다보는 입장이 되어 있었다.
통제를 벗어난 기는 맹독이나 다름없다.
기가 멋대로 날뛴 탓에 붉으락푸르락해진 노인의 얼굴을 보며, 끝이 머지않았음을 직감한다.
그리고 머잖아 그의 입에서 최후를 알리는 피분수가 터져 나왔다.
푸화아악-!
“···끅, 그륵. 한낱 미물···따위가아···!!!!”
눈밭 위에서 기절한 고든람쥐를 죽일 듯 노려보던 샛노란 안광이 이어서 날 향해 번뜩였다.
“네 노옴···! 네깟 놈이, 네깟···!”
믿기지 않겠지.
승리를 코앞에 두고 한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얼마나 원통하고 억울할까.
저주의 말이라도 쏟아낼 듯 핏발 선 눈을 부릅뜬 노인에게, 난 나지막이 속삭였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오.”
“뭐···라.”
“제자조차 승리의 도구로 선택한 당신과 달리··· 날 위해 목숨을 걸어주는 친구가 있으니··· 말이오. 잘 가시오.”
파앙-.
가볍게 내지른 일장이 그의 심장을 두드렸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
한평생 수많은 강호인과 백성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벽려군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멍에를 씌운 희대의 거마는 그렇게 기련산의 이름 없는 산봉우리에서 생을 마감했다.
어쩌면 내 무덤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장소에서.
털썩.
두 눈을 부릅뜬 채 쓰러지는 금안마군의 뒤를 이어 나 역시 실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하아, 하···.”
“쮸-.”
뒤늦게 정신을 차린 고든람쥐가 내 뺨에 복슬복슬한 털을 비벼댔지만, 더 이상 내겐 대답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뼛속까지 스며드는 차디찬 한기로도 멀어지는 의식을 붙잡지는 못했다.
그렇게 난 한겨울의 설산에서 의식을 잃고 말았다.
***
“쿨룩, 쿨룩···. 허억, 헉.”
메마른 기침과 함께 눈을 뜬 나는 정신없이 주위를 살폈다.
시야에 금안마군의 싸늘한 주검이 들어올 때까지.
“하···.”
“쮸! 쮸!”
“어, 살아 있어. 오빠 안 죽었어. 괜찮아.”
코끝을 적시는 고든람쥐의 혀에 비로소 기절하기 전에 겪은 일들이 꿈이 아님을 깨닫는다.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난 눈을 감고 시간의 경과부터 확인했다.
[펭귄목살 : 10분이요] [빅그림 : 10분]내·외상에서 비롯된 통증, 특히 금안마군의 검에 관통 당했던 상처의 통증 때문에 의식을 잃은 듯 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정신을 잃은 시간이 길지 않았다는 것.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그렇지, 한 겨울의 설산에서 잠들 생각을 하다니.
하마터면 전투에서 이겨 놓고 허무하게 죽을 뻔 하지 않았나!
즉시 간단한 응급처치를 마친 나는 서둘러 운기요상에 들어갔다.
신산심적공의 요결에 따라 전신에 기를 퍼뜨리니 숨 쉬는 것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다.
“스흐, 하···.”
차가운 공기를 폐부에 머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노곤한 몸을 억지로 일으켜 금안마군의 시신을 뒤지기 시작했다.
[래치하 : 파밍 야무지게 해야지?]벽려군에게 원수의 죽음을 알리려면 뭐라도 증거가 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러나 노인의 몸에선 신분을 증명할 물건이나 무공비급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모옥에 보관하고 있나?”
고개를 들어 모옥 있는 방향을 바라본다.
목적지까지 도달하기 위해 넘어야 할 언덕의 개수를 세니 한숨이 절로난다.
“힘들어 죽겠는데··· 죽어서도 고생시키네.”
짙은 한숨과 함께 시신의 두 다리를 들어 올린다.
마음 같아선 버리고 가고 싶지만 벽려군에게 보여줄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
겨울이라 시신이 금방 부패할 것 같진 않지만, 언제 굶주린 야생동물의 먹이가 될지 모른다.
그 이유가 아니더라도 일단 모옥에 들러 하루 쉬지 않고선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 같다.
“허억, 헉···.”
스윽- 슥-.
금안마군의 시신이 지난 자리에 긴 도랑이 파인다.
평소라면 눈 깜짝할 새 도달할 거리가 천년만년 멀게만 느껴진다.
모옥에 도달하기까진 무려 이 각이 걸렸다.
“스흐-, 하아···.”
금안마군의 시신을 모옥 밖에 기대어둔 뒤, 문을 향해 쓰러지듯 몸을 기울인다.
끼익-.
의외로 모옥 안은 화면으로 보던 것보다 넓고 아늑했다.
거기에 이 순간 가장 필요한 화로를 비롯해 불을 지필 숯마저 구비되어 있었다.
“쯋.”
“너도 추워? 잠깐만··· 금방 되니까···.”
오래 전 사부님께 배운 대로 불씨를 일으켜 화로를 덥히자, 머잖아 훈훈한 열기가 모옥 안을 가득 채웠다.
“하···.”
따스함과 함께 찾아온 나른함에, 잠시 멈췄던 졸음이 급격히 쏟아진다.
꾸벅, 꾸벅.
점차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앞뒤로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내 검지에 머리를 맡긴 고든람쥐도 덩달아 꾸벅꾸벅.
그렇게 우린 고된 전투 끝에 찾아온 잠시의 평화를 만끽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꼬박 하루가 지나 다음날 아침이 되어 있었다.
말 그대로 누가 업어 가도 모를 만큼 깊게 곯아떨어진 모양이다.
잠들기 직전까지 뜨끈뜨끈 했던 화로는 어느새 차게 식어 있었다.
하지만 내 단전에 남은 또 하나의 불씨와, 자기 전 주위에서 있는 대로 끌어 모은 모피 덕에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왜 이렇게 조용하지?
시청자들이 이 시간까지 날 가만히 놔둘 리가 없는데.
의아함에 방송화면을 확인하다 음소거 기능이 활성화 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잠결에 나도 모르게 끈 걸까?
“피곤하긴 했나보네.”
방송 시작 멘트를 날리다 말고 인상을 찌푸린다.
가슴에서 비롯된 극심한 통증 때문이다.
[카신 : 많이 아파요?]옷을 벗고 가슴의 검상을 드러내니, 시청자들로부터 ‘극혐’이란 채팅이 쇄도했다.
평소 어쩌다 근육이 드러났을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WingLord : 람쥐가 밤에 과일 물어다놓음]시청자의 제보에, 고개를 돌려 책상 위를 바라본다.
거기엔 고든람쥐가 간밤에 이산저산을 뛰어다니며 모아온 과일들이 한 가득이었다.
이 눈 덮인 곳 어디에 저리도 다양한 먹거리가 숨어 있었을까.
딴 지 얼마 되지 않은 싱싱한 과일들 사이에서 곤히 잠든 녀석을 발견하자 눈물이 핑 돈다.
“람쥐야아.”
“···쯋?”
“네가 진짜 내 생명의 은인이다.”
소란에 부스스 눈을 뜬 녀석과 한참이나 볼을 비벼댄 뒤에야 뒤늦은 아침 식사를 시작했다.
사각-.
“스읏, 아따가···.”
시큼한 과즙이 상처 난 입 안을 씻겨내며 쓰라린 통증이 몰려들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후···.”
적당히 배를 채운 뒤엔 고든람쥐를 머리에 태우고 모옥 내부를 뒤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모옥 안에는 금안마군과 그의 제자가 익힌 것으로 추정되는 무공 비급들이 나란히 꽂혀 있었다.
[관조신안신공] [음양일원대법] [구유무상검]···.
전날 나를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절세의 무공들이다.
그래봤자 난 익히지 못할 사이한 마공이겠지만.
마교의 모든 무공이 사악한 것은 아니라지만, 금안마군 만큼은 예외다.
전날 그가 펼친 채음보양에 당해 마른 나뭇가지처럼 변해버린 피해자를 두 눈 똑똑히 보지 않았나!
그나저나 이 정도 증거라면 시체가 없어도 벽려군이 믿어주겠지?
아니야, 그래도 스승의 원수인데 시신을 직접 봐야 원한이 풀리려나?
영화나 만화를 보면 적의 머리를 전리품으로 베어가는 장면이 심심찮게 나오지만, 차라리 시신을 통째로 짊어지고 말지, 찝찝해서 그 짓은 못하겠다.
상처만 어느 정도 회복되면 시신 하나 들쳐업는 건 일도 아니니까.
비급 더미 앞에서 고민에 잠겨 있자니, 시청자들이 한 목소리로 비급을 읽어보길 권한다.
팔락, 팔락··· 탁.
관조신안신공이라 적힌 비급을 몇 장정도 넘겨보다가 다시 덮는다.
도무지 독서를 할 컨디션이 아니다.
비급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은 뒤,
다시 빈집털이로 관심을 돌린 난 머잖아 단약 몇 개와 약간의 은전을 찾을 수 있었다.
희대의 거마가 남긴 유품이라기엔 다소 초라했지만, 수십 년 간 정파무림의 추적을 피해 은둔 생활을 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 못할 것도 아니다.
다만 의아한 것은, 그렇게 조심성 많은 자가 왜 갑자기 꼬리를 드러냈냐는 건데.
생각에 잠긴지 얼마 되지 않아 난 그 해답을 알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교로 돌아간다는 말을 했지.
어차피 마교로 복귀하면 기나긴 도피생활도 막을 내릴 터, 중원을 뜨기 전에 그간 참아온 악행이나 마음껏 저지르자는 심사였겠지.
난 어쩌다 거기에 말려든 거고.
분명 마교 측과 주고받은 서신이 어디 있을 텐데······ 찾았다.
전날 정찰 중에 엿들은 대화를 바탕으로 파밍을 이어가던 나는, 머잖아 목표했던 물건을 발견하곤 눈을 빛냈다.
마교 본단과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여러 장의 서찰들은 발신인이 크게 두 종류로 나뉘었다.
교주, 그리고 부교주.
그리고 각각의 서신들을 확인한 결과, 양측 모두 금안마군을 자기 진영으로 초빙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당대 마교주와 부교주의 사이가 앙숙이나 다름없다는 것은 중원에서도 모르는 이가 없는 사실.
교주 측에선 과거 죄를 짓고 교에서 쫓겨난 금안마군을 사면한 것이 현 교주임을 누차 강조하며 온갖 재물과 권력을 약속했다.
[교주께서 신군께 호교법왕 중 한 자리를 약속하셨소.또한 중원에서 받아들였다는 제자에게도 교의 중책을 맡길 생각이니, 부디 현명한 판단을 바라겠소.]
반면 부교주 측에서 제시한 조건들은 교주 측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했다. 다만 교주 진영에 비해 인재가 부족한 만큼, 핵심적인 자리를 보장하겠다는 약조가 적혀 있었다.
금안마군은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서신들을 펼쳐 놓고 양측의 조건을 저울질하며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으리라.
참고로 가장 최근에 도착한 서신은 교주 측에서 보낸 것이었다.
[영검대주 신주원이 신군께 소식을 전합니다.제가 이끄는 영검대가 이제 막 위리현을 지나 남하하고 있으니 사흘 뒤 오후에는 신군을 모실 수 있을 듯합니다.]
그 글귀를 보는 순간, 전날 금안마군의 제자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스승님, 교의 형제들은 모레 오후에나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럼 내일 오후에 도착한다는 건데···.
혹시 모르니 오늘 점심쯤에는 여길 떠나야겠지?
몸이 휴식이 부족하다며 비명을 지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지금의 몸 상태로는 천무학관 동기들 중 누구와 싸워도 필패할 테니.
그나저나 이 높은 산맥을 다시 내려갈 생각을 하니 눈앞이 캄캄하다.
스페어 내공은 얼마나 남았으려···나?
“아···.”
남은 내공량을 확인한 내 입에서 탄식이 쏟아졌다.
축적된 내공에 따라 밝기가 달라지는 스페어 내공의 빛이 확연히 줄어 있었다.
“아까워 죽겠네. 이걸 언제 다 모아.”
금안마군과 싸우기 전과 비교하면 십분의 일이나 될까말까 한 내공을 보며 한숨을 푹푹 쉬던 그 때,
“······!”
전신의 털이 곤두섰다.
강대한 기운을 지닌 누군가가 내공의 감지 범위 내로 들어섰기 때문이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다수가.
아마 상대 역시 내 존재를 눈치 챘으리라.
“뭐···.”
난 황급히 두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동시에 여태껏 파밍 중계를 위해 모옥 안에 머물던 카메라 역시 하늘로 솟구쳤다.
나는 곧 불과 이백 미터 남짓한 거리에서 모옥을 향해 다가오는 일단의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높은 곳까지 유람을 왔을 리 없으니 금안마군에게 용무가 있는 자들임이 분명했다.
문득, 내일 오후 도착예정이라던 마교도의 편지가 뇌리를 스쳤다.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왔다.
이 정도로 접근할 때까지 눈치 채지 못하다니.
컨디션이 많이 안 좋긴 한가 보다.
“아니야, 아직 몰라. 혹시 금안마군을 토벌하러 온 정파의 고수들일 수도 있으니까.”
억지로 행복회로를 돌려봤으나, 곧 카메라를 통해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전해들은 난 눈앞이 노래졌다.
“무언가를 끌고 간 흔적이 보인다.”
“눈 밑에 파묻혀 있던 시신은 금안신군 어르신의 소행일까요?”
“글쎄. 모옥에 도착하면 알게 되겠···음?”
“왜 그러시···?”
“···모옥 앞에도 시신이 있다.”
“머리가 흰 것이 노인 같습니다만··· 설마!”
씹, 그러고 보니 밖에 시체가!
더구나 금안신군 어르신이라니.
그들이 마교도란 이야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산 넘어 산이라더니.
급히 몸 상태를 체크해보지만, 죽다 살아난 신체가 갑자기 멀쩡해질 리 없었다.
전투가 아닌 도주를 고려해도 절망적인 것은 마찬가지.
절벽 위에 위치한 모옥에서 산을 내려가는 길은 단 하나, 그 과정에서 마교도와 마주치는 것은 필연이다.
설령 어떻게 운이 좋아 몰래 빠져나간다 한들, 수색이 시작되면 따라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다.
카메라에 비치는 십여 명의 사내들은 하나같이 태양혈이 불룩하여 고수 아닌 자가 없었으니.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고민에 빠진 사이, 그들과 모옥 사이의 거리는 한층 더 가까워졌다.
더구나 금안마군의 시신을 발견했기 때문인지 아까는 없던 살기마저 가득한 채로.
난 되살아나는 죽음의 공포에 입술을 잘근거리며 주위를 살폈다.
그러나 모옥 안에 있는 것이라고는 금안마군과 제자가 실생활에 쓰던 흔한 가재도구들 뿐.
“람쥐야, 일단 너라도 숨어. 빨리.”
“쯋!”
급한 대로 람쥐라도 피신시킨 뒤, 다시 생각을 이어간다.
허나 마지막까지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까득, 까득-.
전생에서도 안 하던 손톱 깨물기로 조급한 마음을 달래던 그 때,
벌컥-!
모옥 문이 활짝 열리며 병기를 든 사내들이 우르르 들이닥쳤다.
두두두두-.
일사분란하게 날 둘러싼 십여 명의 사내 가운데, 수장으로 보이는 자가 내 얼굴을 향해 검 끝을 들어올렸다.
“···넌 누구냐.”
미간을 저릿하게 만드는 살기 속에는, 허튼 대답은 용서치 않겠다는 단호함이 담겨 있다.
여기서 삐끗했다간 내 몸은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겨 넝마 쪼가리가 되리라.
바로 그 때, 내 생존본능이 내게 어떤 단어를 속삭였다.
얼핏 생각하면 말도 안 되지만, 어쩌면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마법의 단어를.
그래, 말하든 안 하든 죽는다면 시도라도 해봐야지!
눈을 질끈 감은 나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입을 열었다.
“금안···신군.”
“···무슨 헛소···!”
“···의 제자.”
“뭐?”
“내가 바로 억울하게 돌아가신 금안신군 사부님의 제자요!”
울분 섞인 외침이 모옥 안에 울려 퍼졌다.
조가휘 약관 19세의 겨울.
일생일대의 도박이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