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07
성···녀? (1)
어쩌다 일이 이 지경이 됐지?
‘난 누구? 여긴 어디?’
식상하지만 이만큼 지금의 내 심정을 잘 표현하는 말이 또 있을까?
마교도들의 추궁에서 살아남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금안마군의 제자 행세를 시작한 지 어느덧 보름, 난 지금 신강의 마교 본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언젠가 마교에 들려 볼 생각은 있었지만 이런 방식으로 가게 될 줄이야.
“본단까지는 얼마나 남았소?”
“앞으로 한 달 정도는 더 가야 하오.”
“후··· 알겠소.”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지대를 몇 날 며칠 째 꾸역꾸역 걷고 있자니, 마교놈들이 자꾸만 중원 영토를 넘보는 심정이 이해가 갔다.
[양갱양갱이 : 15일 내내 사막 걷는 것만 보는 내 인생이 레전드] [양뽈락 : 보기만 해도 숨 막힘··· 오아시스 안 나옴?]채팅 말마따나 오아시스가 간절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입가에 덧댄 젖은 천 쪼가리로는 뜨거운 열기 속에 솟구치는 갈증을 해소할 수 없었으니까.
그나마 ‘싫어요’ 영상에 담긴 마기를 각성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벌써 수차례 고비를 맞이했으리라.
그나저나 설마 ‘싫어요’ 개수와 내공의 성질에 연관이 있다니.
그래서 억지로 내공을 일으키려 할 때마다 그렇게 속이 거북했던 걸까?
‘좋아요’가 많을수록 정순하며 선기에 가깝고, ‘싫어요’가 많으면 마기에 가까워진다.
만약 중원이 아닌 마교에서 환생했다면 어떤 일들을 겪었을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마공을 익히기 위해선 마기가 필요하고, 마기를 모으려면 ‘싫어요’를 받아야 한다.
즉, 일부러 비호감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촬영해야 한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말이야 쉽지, ‘싫어요’가 개수가 많으면 오튜브 메인 화면에 노출이 감소할 뿐더러, 신고를 많이 받으면 영상자체가 삭제될 가능성도 있으니 결코 만만히 볼 일은 아니었다.
마교에서 환생해 싫어요를 받기 위해 온갖 어그로를 끄는 내 모습을 상상하자 절로 소름이 돋았다.
그 순간, 질색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떠는 내 모습을 본 영검대주가 넌지시 다가와 말을 건넸다. 이름이 신주원이였지 아마?
“신군 어르신 또한 신교로 향하는 이 길을 그리도 질색하셨다 들었는데, 그대도 그러한가보군.”
“···스승님께서는 늘 신교가 얼른 비옥한 중원 땅을 가져야 마땅하다 하셨습니다. 직접 보니 스승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는군요.”
“몸은 떠나도 신군께선 늘 신교를 생각하고 계셨군요. 과연···.”
마음에도 없는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난 끊임없이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을 궁리하고 있었다.
문제는 마기를 각성했음에도 탈출이 요원하다는 것.
진기의 회복이 부상의 완쾌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니.
여전히 내 가슴엔 깊은 검상이 남아 있으며, 혈도 역시 무리해서 내공을 끌어올린 부작용으로 너덜너덜했다.
이런 상태로 도주를 감행해봤자 결과야 뻔하다.
숨을 곳도 없는 이곳에서 이 상태로는 길어야 이삼일 안에 잡힐 게 분명하다.
거기다 스승이 어쩌니 제자 된 도리가 어쩌니 하던 놈이 스승의 시신까지 버리고 달아났으니, 내 정체에 대한 놈들의 의심은 확신이 될 것이다.
설령 부상이 아니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마기를 다룰 수 있게 되었으면 뭐하겠는가, 쓸 줄 아는 마공이 없는데.
짬짬이 실험해 본 결과, 마기와 정파 무공의 조합으로는 원래 실력의 십분의 일도 낼 수 없음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기껏 익힌 관조신안신공 역시 아직까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했다.
관조신안신공.
방송편의상 현재는 금안마공으로 칭하는 이 무공은, 간단히 말해 기를 시각화하는 공능을 담고 있다.
자기 자신은 물론 천지만물의 기의 흐름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기에, 경지에 이르면 상대의 다음 공격이 어디를 향할지 예측할 수 있는 것은 기본이오, 이론상으로는 상대의 무공을 즉석에서 따라하는 것조차 가능했다.
물론 그러자면 어마어마한 두뇌회전과 전투센스가 필요하겠지만.
금안마군과의 전투 당시 동작이 자꾸만 읽히는 기분이 든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허나 이처럼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무공에도 한 가지 단점이 존재했으니···.
바로 동공이 금빛으로 물든다는 것! 그것도 영구적으로!
비록 각성 당시의 영상은 ‘자, 이제 누가 금안이지?’라는 제목으로 엄청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지만, 한 번 금빛으로 변한 눈은 다신 원래의 색으로 되돌릴 수 없다는 문구를 뒤늦게 발견했던 그 때, 난 정말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이게 웬 날벼락인가!
금안마군 후인이라고 동네방네 소문 낼 일 있나!
마교에 뼈를 묻을 생각이 아니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내 눈 색깔이 영구적으로 변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마기 대신 선기가 담긴 스페어 내공으로 교체한 순간, 눈 색깔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것을 확인한 것이다!
즉, 세상에서 오직 나만이 가능한 일이란 거다.
참고로 해당 현상은 단전 스위치라고 명명했다.
부작용을 제거한 금안마공은 내게 신공이나 다름없었지만, 여전히 보조적인 성격의 무공이라는 점엔 변함이 없었다.
전투에 활용하기 위해선 다른 마공을 익힐 필요성이 있었다.
그러한 이유로 나머지 마공들을 부랴부랴 익히기 시작했지만, 보름 동안 익혀봤자 얼마나 익히겠는가.
결국 난 울며 겨자 먹기로 마교도 루트를 탈 수밖에 없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마음가짐에 변화가 생긴 것은 불과 며칠이 되지 않았다.
“···이왕 할 거 제대로 해봐?”
애초에 내가 천무학관에 입학한 이유가 무엇인가.
시작은 그저 멀리 떨어지게 될 소꿉친구 우희가 걱정이 되어서였지만, 결국은 다가올 마교와의 전쟁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지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다.
그런 의미에서 눈앞에 굴러 떨어진 ‘금안신군의 제자’라는 타이틀은 위기가 아닌 기회였다.
이대로 정체를 들키지 않고 잠입에 성공한다면, 중원무림 입장에선 최고의 스파이를 얻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내겐 보통의 세작에겐 없는 비장의 무기, 카메라가 있으니까.
비가시, 벽뚫, 사거리 반경 600m!
정보를 얻겠답시고 설치지만 않으면 절대 걸릴 수 없는 환경이다.
그 외에도 역정보를 흘리거나, 마교에서 무림맹에 심어둔 간자를 알아내어 일망타진하는 일 등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어쩌면 내 활약에 따라서는 전쟁이 빨리 종결될 수도 있겠어.
그리하여 난 며칠 전부터 마교 생활에 적응하기 위한 특훈을 시작했다.
일단은 마교의 기본적인 상식부터 하나씩.
다행히 나를 호위하는 영검대원 중 홍일점인 양여림이라는 여교도는 내 질문에 언제나 친절하게 답을 해줬다.
“양 소저. 내가 중원에서만 살아 교의 법리에 어둡소. 부디 가르침을 내려주시오.”
“교리요?”
“아시다시피 스승께선 그런 쪽으론 무심하셔서. 혹여 교주님의 앞에서 무례를 범하면 안 되지 않겠소.”
“뭘 그리 어려워하세요. 얼마든지 알려드릴게요. 그래도 삼대령과 오소령 정도는 아시죠?”
“···부끄럽소.”
멋쩍게 웃는 내게 그녀는 오히려 위로의 말을 건넸다.
“이제라도 배우려는 마음이 중요한 거죠. 그럼 삼대령부터 말씀드릴게요. 첫째, 명교의 신도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벼슬에 오르거나 군주를 칭할 수 없으며···.”
그렇게 난 마교의 교리를 비롯해 교주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의 이름과 별호, 인상착의, 성격 등 다양한 정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개중에는 교주와 부교주 사이의 알력이나, 각 파벌에 소속된 인물 등 마교의 정세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고맙소, 소저. 교에 도착한 뒤에도 그대의 호의를 잊지 않겠소.”
“같은 교도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건데요···. 그보다 슬슬 붕대를 갈아야 하실 것 같은데.”
“아, 나 혼자 할 수 있소.”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 말이 있잖아요. 이런 건 남이 해줘야 꼼꼼한 법인데···. 상의를 벗고 뒤돌아보세요. 제가 해드릴게요.”
“고맙소. 소저의 마음씨가 참으로 자상하오.”
[펭귄목살 : 될놈될이네 여기서도 여자가 꼬이네 ㅋㅋ] [래치하 : 깐휘형 양심이 있으면 역용은 못 생긴 얼굴로 해야 하지 않을까?]아, 역용!
짬짬이 역용술을 수련하는 것도 잊으면 안 되지.
불과 얼마 전 시청자들에게 역용만큼은 사부님이나 맹주님이 와도 속일 자신이 있다며 큰소리를 뻥뻥 치긴 했지만, 말이 그렇다는 거지, 정말 자신 있어서 한 얘기는 아니었다.
마교주와 부교주의 무공 경지가 그렇게 높다던데, 역용을 들켰다간 스파이고 뭐고 그 자리에서 끝이니까.
그날부로 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카메라로 얼굴을 확인하며, 보다 완벽한 역용 마스터가 되기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는 사이, 어느새 우리는 마교의 본단이 위치한 곤륜산맥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
일곱 개의 산봉우리와 열세개의 절벽으로 둘러싸인 천험의 요새.
그 골짜기 안에서도 깊숙한 곳에 명교의 지존이 머무는 광명정이 존재한다.
나무가 아닌 암반을 깎아 만든 거대한 건축물은, 천장까지의 높이가 무려 십여 장에 달해 사람보다는 신장이 머무는 신전처럼 보였다.
그 광명정의 심처.
석조 건물 특유의 서늘한 회색빛이 감도는 알현실에는, 명교를 대표하는 이십여 명의 고수가 횡으로 시립하여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행렬의 중심에서 태사의를 향해 한쪽 무릎을 꿇은 한 사내가 있었으니···.
‘아··· 안 들키겠지? 긴장 돼서 미치겠네.’
기련산을 떠난 지 한 달 보름 만에 얼렁뚱땅 마교의 최심부에 도달한 나는, 고개를 숙인 채 마교주가 등장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물론 그 동안 마교 수뇌부의 면면을 카메라에 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일렬로 선 수뇌부의 면면은 그야말로 개성이 넘쳤다.
중원 사람들이 생각하는 마교도의 이미지를 형상화한 듯 험상궂은 얼굴에 지독한 마기를 흘리는 괴인부터, 구미호가 환생했다고 해도 믿을 요염한 여인, 명망 높은 문사 못지않은 청수한 인상과 기도를 지닌 사내까지.
‘저 할아버지는 한 성격하시겠네.’
검버섯 핀 얼굴에 고집이 가득한 노인을 마지막으로 제단 아래쪽을 모두 살핀 카메라가, 태사의 부근의 상석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제 남은 사람은 총 넷.
먼저 태사의의 좌우를 호위하듯 선 남녀 한 쌍.
그들이야말로 교주와 부교주를 제외하고는 명실상부 마교에서 가장 강력한 무력과 권위를 지닌 좌우광명사자!
실력도 실력이지만 특히 여인, 광명좌사의 외견이 심상치 않다.
매끈하고 새하얀 백발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깜찍한 소녀.
얼핏 보기엔 열다섯도 안 되어 보이는 용모지만, 실제로는 주안술을 익힌 일흔 살 할머니라고.
[닷디저아 : 헤응, 할마망] [세제로 : 어린애 그려 놓고 할머니라고 우기네 아ㅋㅋ] [잠유류 : 200살 넘으면 가능인데 70은 묘하게 현실감이 있어서 좀···]시청자들의 짧은 감상을 뒤로 하고 카메라가 다시 전진한다.
좌우광명사자로부터 몇 보 떨어지지 않은 곳, 태사의보다 한 계단 낮은 장소에서 날 유심히 관찰하는 한 사내가 있었으니.
그의 곧고 짙은 눈썹과 맑고 그윽한 눈은, 남자가 보기에도 멋지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다.
그가 바로 명교의 부교주인 혈옥소 강유.
전대 교주를 진심으로 따르던 인물로 현 교주와는 앙숙 사이.
명교 내에서 인망이 두텁기로 유명하며, 전대 교주와 마찬가지로 온건파.
중원 침략에는 반대하는 입장.
오는 길에 들었던 교의 정세를 떠올리며 다시 카메라를 이동시킨다.
이제 남은 인물은 단 하나.
알현실의 중심에서 제법 벗어난 위치, 허나 태사의와 동등한 높이에 세워진 옥좌는 그녀의 신분이 결코 교주 못지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저 여자가 바로 성녀···?
먼지 한 톨조차 허락지 않는 순백의 의상을 입은 면사 여인에게 카메라를 접근시킨 순간,
“교주님께서 드시오!”
“광명천하!”
교도들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저벅저벅 나타난 한 사내가 태사의에 엉덩이를 붙였다.
난 성녀 근처까지 갔던 카메라를 곧장 급선회하여 태사의를 비췄다.
오늘 이 자리에서 내 생사여탈권을 손에 쥔 이는 다름 아닌 그니까.
카메라에 비친 사내는 마치 어둠을 영상화 한 듯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매를 닮은 눈동자에는 이글거리는 야망과 권태로움이 동시에 존재했고, 굳게 닫힌 입가에선 고집스런 무인의 기세가 엿보였다.
칠천수라 금양, 중원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현 마교주의 이름이다.
무림맹의 맹주 할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카리스마를 풍기는 절대고수의 등장에 침이 꼴깍 넘어간다.
혹여 역용이 들킬까 고개는 들지도 못한 채, 카메라를 통해서만 그의 안색을 살핀다.
곧 앉은 채로 턱을 살짝 치켜든 그가, 이번 금안마군의 마중을 맡았던 영검대주를 바라봤다.
“신군이 죽었다?”
“네! 애석하게도···.”
“그래서 신군 대신 데려온 것이 저 애송이고?”
-천 소협, 교주님께 인사 올리시오!
영검대주의 다급한 전음에 난 정중히, 그러나 비굴하진 않을 정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금안신군의 제자, 천서원이 교주님께 인사 올립니다.”
“으음···.”
시큰둥한 표정으로 품평하듯 내 정수리를 바라보던 그의 입가에 문득 묘한 미소가 걸렸다.
다음 순간, 내 어깨 위로 엄청난 압박이 밀어닥쳤다.
나 또한 이에 대응해 황급히 기세를 일으키니, 곧 알현실 안은 우리 둘에게서 흘러나온 마기의 격돌로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휘오오오-.
“으윽···.”
“교주님, 그는 아직 내상이···. 죄송합니다.”
날 두둔하고 나섰던 영검대주가 태사의에서 쏟아지는 서늘한 눈빛에 찍소리도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 사이에도 날 짓누르는 마교주의 기세는 점차 거세지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0년 넘게 차곡차곡 쌓인 마기의 양이 제법 많다는 점.
문제는 언제까지 버틸 지인데···.
분위기로 보아 이건 시험이 분명하다.
허나 실력을 전부 드러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자칫 교주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으로 비치면 큰일이니.
이럴 땐 적당히 눈치 보다가 빠지는 게 제일이지.
난 내력을 조종하는 와중에도 카메라를 통해 장내 인물들의 표정 변화를 예의주시했다.
그러다 이윽고 몇몇 수뇌부의 눈에 감탄의 기색이 어리고, 교주의 입가에 흥미진진한 미소가 떠오른 순간,
“쿨룩-.”
교주에 대한 저항을 멈추고 피를 울컥 토해내자, 조금 전까지 날 짓누르던 위압감이 씻은 듯 자취를 감췄다.
“제법 괜찮군.”
짤막한 감상과 함께 교주가 단상 밑의 한 사내를 호명했다.
“군사.”
“예, 교주님!”
“지금 성염대주 자리가 비어있지?”
“예.”
“맡겨봐. 당분간 지켜보지.”
성염···대?
내가 학관 친구들과 물리친 그 성염대?
그걸 나더러 맡으라고?
세상에 이런 우연이··· 아차.
순간 멍해질 뻔한 얼굴을 추스르는 사이, 교주가 미련 없이 태사의에서 몸을 일으켰다.
“오늘은 이만하지.”
“광명천하!”
성녀를 제외한 모든 이가 떠나가는 교주의 뒷모습을 배알했다.
잠시 뒤, 광명정에 모였던 다른 이들 또한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나 역시 안내역을 자처하는 영검대주를 따라 자리를 뜨려던 그 때,
-이제야 만났네요.
갑작스런 전음이 귓가를 간질였다.
“왜 그러시오?”
“···아무것도 아니오.”
영검대주의 물음에 고개를 저은 난, 잠시 성녀에게 향했던 시선을 다시 거뒀다.
아무래도 긴장해서 헛것을 들었나보다.
일면식도 없는 그녀가 내게 그런 전음을 보낼 이유가 없는데.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다시 영검대주를 뒤따르려던 순간,
-잠시만요, 천서원 소협. 아니, 천서원 소협은 죽었지?
등줄기에 소름이 돋았다.
의식하기도 전에 고개부터 뒤로 돌아간다.
이어서 몸이, 두 발이 등 뒤의 그녀를 향한다.
“······.”
아직까지도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한 내게, 성녀는 면사포 너머로도 알 수 있는 아찔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드디어 여길 봤네요. 멀리 중원에서 오신 조가휘 소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