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2
최초공개 (1)
나와 우희가 언제나 장원 내에만 머무르는 건 아니었다.
때때로 우린 가까운 시장에 나가 먹거리를 즐기거나 놀이패를 구경하며 휴식을 즐겼다.
다만 그날은 평소와 한 가지가 달랐다.
“단예.”
“네, 아가씨.”
우희의 부름에 잽싸게 튀어나온 제갈세가의 무사가 그녀 앞에 공손히 시립했다.
“나, 휘아의 방에 전낭을 두고 왔어. 가져다주겠어?
“제게 은자 몇 냥이 있으니 우선은···.”
“오늘은 내가 휘아에게 대접하기로 했단 말야. 설마 내게 창피를 줄 셈이야?”
“하지만 아가씨, 임무 중에 자리를 비울 수는···.”
“응? 안 될까? 여기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게.”
우희의 간절한 표정에 단예라는 이름의 무사가 졌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서둘러 다녀올 테니 어디 가지 마시고 이 자리에 가만히 계셔야합니다?”
“응. 알았어.”
“조 공자, 아가씨를 부탁드려요.”
“네, 다녀오세요. 여기 있을게요.”
우희에 이어 내게도 꾸벅 고개를 숙인 그녀가 이내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잠시 뒤, 그녀의 모습이 인파속으로 완전히 사라지자 우희가 기다렸다는 듯 내 소매를 잡아당겼다.
“휘아, 가자.”
“어딜?”
“구경하러.”
“전낭 가져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잖아. 너 설마?”
내가 낌새를 챈 순간, 우희가 배시시 웃으며 내 손에 무언가를 올려놓았다.
잘그락-.
동전이 가득 든 예쁘장한 비단 주머니였다.
내 얼굴이 왈칵 일그러졌다.
“좀 전엔 거짓말한 거야?”
“화났어?”
“······.”
내가 불편한 기색을 보이자 우희가 시무룩한 얼굴로 어깨를 기대왔다.
“···그냥 휘아랑 둘만 있고 싶어서 그랬어. 앞으론 안 그럴게. 화내지 마.”
“화내는 게 아니라, 하···.”
잔뜩 주눅 든 얼굴을 보자 목구멍까지 올라왔던 쓴 소리가 도로 내려갔다.
비록 그녀의 철부지 행동이 조금 과하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녀는 아직 5살에 불과했다. 평범한 아이 같으면 한창 떼를 부릴 나이인 것이다.
나는 깊은 한숨과 함께 근처의 포목점으로 향했다.
“조 공자. 오늘은 어찌 오셨습니까?”
“안녕하세요. 조금 있다 저희를 찾는 무사님이 오시면 남쪽으로 갔다고 전해주시겠어요? 당과 가게 근처라고 하시면 아실 거예요.”
“물론입죠. 반드시 전해드리겠습니다.”
“여기···. 오는 길에 더 사례할 테니 꼭 좀 전해주세요.”
“감사합니다, 공자.”
동전 이십 문을 건네자 포목점 주인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한편, 내가 전언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도 우희는 불안한 눈빛으로 내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비록 우희가 바르게 자라나길 바라는 마음에 한 마디를 하긴 했지만, 나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었다.
아이가 간만에 어른 눈치 안 보고 놀고 싶었다는데.
나는 굳었던 안색을 풀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정말 앞으론 안 그럴 거지?”
“응. 미안해.”
“이따 단 무사님께도 사과드리고. 안 그래도 고생하시는데 그러는 거 아니야.”
“그럴게.”
“약속한 거다?”
혼나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이의 주먹은 서운함과 부끄러움으로 꽉 닫혀 있었다.
하지만 내가 먼저 손가락 틈새를 간질이며 화해를 청하자, 이내 그녀는 못 이긴 척 손아귀의 힘을 풀며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그렇게 우린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시장 안쪽으로 향했다.
우희는 머지않아 웃음을 되찾았다.
“휘아, 이것 봐. 요즘엔 이렇게 주름이 많은 치마가 유행이래.”
“여기 연분홍색이 잘 어울리겠다. 내가 하나 사줄게.”
“으응, 오늘은 내가. 저번에 조 부인께선 홍차를 좋아한다고 하셨지? 정산소총이 있으려나?”
조잘거리는 우희를 따라 걷기를 잠시, 저 멀리 아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당과 가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우희의 발걸음이 한결 빨라지자, 난 피식 미소를 지으며 그녀와 속도를 맞췄다.
뛰어난 천재성과 똑 부러지는 성격 때문에 종종 잊기는 하지만, 우희도 당과 앞에선 영락없는 어린 아이였다.
그녀의 들뜬 모습을 보자 문득, 현대의 디저트를 재현해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엄마랑 항아도 참 잘 먹을 텐데.
비록 정제 기술이 현대에 못 미치는 탓에 박력분이나 버터 등의 재료를 구하기가 만만치 않겠지만, 판매가 목적이 아니라면 간단한 레시피 정도는 어떻게든 될지도 모른다.
난생 처음 케이크를 맛본 가족들의 표정을 상상하며 미소 짓던 그 때, 우희가 당과를 다 먹었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뒤늦게 상념에서 깨어난 나는 당과 가게 주인에게도 추가로 20문을 건넸다.
“아저씨, 혹시 저희 찾는 무사님이 오시거든 저기 골목 안으로 오라고 전해주세요.”
“알겠습니다, 공자. 혹시 액괴방에 가시는 겁니까?”
“네.”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액괴방이란 단어에 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아이들이 몰리는 당과 가게 근처 완구상에 액체괴물을 공급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한 달 전.
우희의 건의에 반쯤 장난으로 벌인 일이었으나, 반응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여태껏 본 적 없는 신상 장난감의 등장에 당과 가게 주변은 순식간에 아이들의 핫플레이스로 등극했다.
자연히 코 묻은 돈을 노리는 가게 역시 우후죽순으로 늘어났다.
액괴 신드롬이 시작된 지 7일째, 자체적으로 액괴를 제조하는 상인들이 생겨났다.
비누와 달리 워낙 레시피가 간단했기에 벌어진 일이었다.
어차피 예상했던 일이기에 딱히 손해 보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액체괴수로 한 몫 단단히 챙겨보려던 시장 상인들의 포부는 삼일천하로 막을 내리고 말았다.
액체괴물을 사간 아이들이 점액질 파편으로 온 집구석을 어질러놓는데다, 슬슬 일을 시작할 나이의 아이들마저 손에서 액괴를 놓지 않으니 부모들의 불만이 극에 달한 것이다.
가정 내 단속이 심해지자 소비가 감소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에 따라 뜨내기장사치들 또한 거리를 떠나갔지만, 기존의 몇몇 상인들은 상품을 포기하는 대신 한 가지 꾀를 냈다.
집에 가져갈 수 없다면 놀 수 있는 장소를 만들어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그 이름도 해괴한 액괴방(液怪房)이었다.
일탈을 꿈꾸는 아이들이 모여드는 뒷골목, 액체괴수(液體怪獸)라는 네 글자가 대문짝만하게 적힌 깃발 밑은, 초록빛 젤리가 가득 담긴 나무 판을 둘러싼 광란의 파티가 한창이었다.
“야. 이거 봐. 강아지.”
“오오-! 얘들아, 이거 봐!”
빼어난 손재주로 단번에 인싸로 등극하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내게 훨씬 크다.”
“내가 더 질겨!”
액괴의 유지력을 주제로 갑작스런 듀얼이 벌어지기도 했다.
난 눈앞에서 벌어지는 혼란스러운 광경에 흡족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가 대륙에 액체괴물을 풀었다!
그러나 처음 잠시간은 재미있던 놀이구경도 1각 정도가 지니자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우희야. 단 무사님 올 때 되지 않았어?”
“응? 아···.”
나와 달리 여전히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놀이판 앞에 쪼그려 앉아있던 우희가, 조금은 아쉬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꼬르륵 소리가 나는 배를 움켜쥐며 수줍게 웃어 보였다.
“배고파.”
“당과 하나 더 먹고 있을래? 무사님 오면 바로 식사하자.”
“응.”
우희와 손을 마주잡고 다시 골목을 되돌아 나오던 그 때, 갑자기 머리 위에 그림자가 졌다.
우리보다 훨씬 큰 어른의 그림자였다.
“어?”
흠칫하여 뒤를 돌아본 순간에는 이미 커다란 손바닥이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으읍!”
“읍!”
채 대응할 시간도 없이, 입안으로 헝겊이 파고들었다.
이어서 양 손 역시 등 뒤로 결박당했다.
그동안 우희와 부단히 연습해온 각종 훈련들도 돌발사태라는 변수와 어른의 우악스런 힘 앞에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이익!”
발버둥을 치며 옆을 보자 나와 마찬가지로 헝겊이 물려진 우희가 보였다.
곧 그녀의 몸이 커다란 자루 안으로 사라졌다.
직후 내 시야 역시 어둠에 물들었다.
“으읍! 읍?”
몸이 하늘로 붕 떠오르는가 싶더니 배에 딱딱한 게 닿았다.
나를 제압한 남성의 어깨인 듯싶었다.
곧 나를 자루 째로 둘러멘 남자가 걸음을 옮기기 시작하자, 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몸을 바동거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순간 머릿속에 ‘납치’라는 단어가 떠올랐으나, 난 애써 내 생각을 부정했다.
이런 백주대낮에,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그러나 잠시 뒤, 나를 어딘가에 내려놓은 남자가 떠나가고 이어서 귓가에 바퀴 구르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하자, 난 그제야 현실을 직시할 수 있었다.
어딘가로 실려 가고 있어.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드러나자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러나 함께 납치당한 우희를 생각하면 마냥 떨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어른인 나도 이런데 우희는 얼마나 무서울까.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킨 나는, 헝겊을 질겅거리며 탈출 방도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생각해. 생각하자. 뭔가 방법이···.
좀처럼 떠오르지 않는 해법에 두 눈마저 질끈 감은 그 때, 시야 한켠의 붉은 버튼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아!”
나는 급히 스트리밍을 켰다.
평소와 달리 제목이나 설정 따위는 건드릴 여유도 없이 대충 시작버튼을 누르자, 어두운 자루 속이 적외선 촬영이라도 하는 듯 밝게 비쳐 보였다.
혼자서는 불도 못 밝히던 갓난아기 시절, 깜깜한 밤에 카메라를 켰다가 알게 된 기능이었다.
설마 이걸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이야.
하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기능은 따로 있었다.
난 몸을 꿈틀거리며 자루에 머리를 가까이 붙였다.
그러자 화면에 비치는 자루의 안쪽 면이 점점 확대대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포복에 맞춰 조금씩 전진하던 화면이 어느새 자루의 질감마저 담아낼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카메라가 자루 밖으로 쑥 빠져나오며 또 다른 풍경을 맞이했다.
다각, 다각, 다각-
덜그럭, 덜그럭-.
말발굽 소리, 마차가 구르는 소리.
뻥 뚫린 시야만큼이나 한층 선명해진 바깥 세계의 소리들이 귓가로 파고들었다.
가상의 카메라가 내 머리보다 한 뺨 정도 앞으로 나와 있는 것을 활용한 전법이었다.
난 이 방법으로 하다못해 납치범의 이동 경로라도 파악해둘 생각이었다.
그 전에 난 일단 짐칸의 상황부터 확인했다.
-으읍!
다행히 우희는 나와 한 공간에 실려 있었다.
그녀가 무사한 것을 확인했으니 이번에야말로 길을 녹화할 차례였다.
자루 안에서 꼬물꼬물 상체를 일으킨 나는, 무릎으로 바닥을 기어 짐칸의 후미로 이동했다.
짐칸은 외부에서 볼 수 없도록 천막으로 단단히 덮여 있었지만, 그 정도 두께라면 내 능력으로 충분히 투시하는 게 가능했다.
난 천막 너머를 향해 다시금 이마를 내밀었다.
쏴-.
시원한 바람 소리와 함께 눈부신 햇살이 화면을 채웠다.
하지만 한가로이 경치를 감상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난 천막에 이마를 맞댄 채 동영상 촬영을 계속하는 한편, O튜브 브라우저 상단의 +버튼을 눌러 새로운 탭을 활성화시켰다.
하다못해 납치당했을 시의 탈출법과 주의사항이라도 검색해볼 생각이었다.
우리를 실은 마차는 그로부터 대략 30분을 더 달려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난 서서히 속도를 줄이는 마차 속에서 조용히 결의를 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