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21
파벌 (2)
하루 12시간씩 총 5일, 중간에 쉰 시간을 제외하면 도합 50시간.
그 시간동안 내가 스캔한 명교의 비급 개수만 해도 물경 2천 권에 이르렀다.
가만히 서서 기계적으로 책장만 넘기는 일이 얼마나 지겨운 지.
오죽하면 내가 잘 때도 접속하는 성골 팬들조차, 작업이 끝나면 스트리밍 제목을 바꿔달라는 말과 함께 탈주했을 정도이니 말 다했지.
허나 고진감래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깨툭 : 정파 사람인데 왜 마공이 더 많음ㅋㅋㅋㅋ] [구시렁입 : 걸어 다니는 광명각ㄷㄷ] [배고파양 : 스캔 그만하고 감씨 쌍둥이는 언제 홀려줄 건데] [양뽈락 : “내가 먼저 홀려줄게” – 실제로 한 말] [장봉 : 싱글벙글 마교라이프] [HogTr : 방송 끝나자마자 위키에 흑역사랑 어록 갱신됐던데 ㅋㅋㅋ] [원퉁사 : 우희랑 약빈이 꼬신 순간 정파에서 볼 일은 끝났다] [비굴링 : 마공 언제 익히나요?]아… 내가 왜 부끄럼도 모르고 그런 말을 했을까.
과거에 짓눌린…다!
엄격한 분류 절차를 거쳐 위력과 안전성이 검증된 무공들만 보관되어 있던 천무비고와 달리, 광명각에는 온갖 잡스럽고 기괴한 무공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분류되지 않은 무공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된 무공을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아직 남들의 손이 닿지 않은 보물을 발견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나 마찬가지.
하루에 조금씩 살펴봐야지.
당분간은 금안마군의 무공을 익히는 것만도 빠듯할 테니까.
그렇게 포상으로 주어진 닷새간의 기간이 끝난 뒤, 난 다시 일과로 돌아왔다.
다만 휴식 끝에 향한 곳은 성염대가 아닌 집법당이었다.
본단 주변의 순찰 및 경계 외에 아직까지 별다른 임무를 받지 못한 성염대와, 교주가 직접 간자 색출을 지시한 집법당 업무 중 어느 쪽이 중요한지는 명백했으니.
내가 집법당으로 출근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이번 포달랍궁의 내통자 사태는 마구잡이식 촬영에 운 좋게 얻어 걸린 케이스지만, 카메라를 수십 대 씩 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누가 간자인 줄 알고 일대일 밀착촬영을 계속 하겠는가.
더구나 이번에 교주가 공개석상에서 직접 안보를 강조한 탓에 당분간은 세작들도 납작 엎드려 몸을 사릴 터.
일단은 집법당에서 기존에 수사한 자료들을 바탕으로 서서히 수사 범위를 좁히는 것이야말로 간자 색출의 지름길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에 집중하기 위해선 다른 한 가지를 포기해야 하는 법.
졸지에 공석이 된 성염대주의 자리는 경험 있는 신입인 홍사강에게 잠시 대리를 맡겼다.
나 하나만 보고 성염대로 이직한 그녀는 서운함을 감추지 않았지만, 매일 점심 식사를 함께 하기로 약속하는 것으로 불만을 달랠 수 있었다.
[sub2006 : 깐휘 이 새끼 맨날 일편단심인 척하는데 오는 여자 죽어도 안 막잖아ㅋㅋ 순애파면 철벽을 치던가] [a2s1df : 우희랑 약빈이한테 그렇게 말하면 되겠네^^]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집법당 생활도 결코 편치만은 않았으니.
“금일부로 감찰부에서 일하게 된 성염대주 천서원이오. 모두들 잘 부탁드리오.”
“…….”
끼얏!
인사이동 첫날부터 사내 따돌림 실화인가.
집법당주와의 갈등 때문인지, 아니면 교주발 낙하산이란 인식 때문인지 다들 날 없는 사람 취급하고 있었다.
그래도 책상이라도 놔준 게 어디냐.
그나마 이번 금영당 부당주 체포 과정에서 나를 도와 공을 세운 오유심만은 슬쩍 눈인사를 건네며 아는 체를 했지만, 그마저도 눈치를 보느라 대놓고는 못하고 전음으로 말을 주고받은 게 전부였다.
-미안하오. 천 대주께 절대 협조하지 말라는 당주님 엄명이 있었소.
-이해하오.
-모르는 것이 있거든 언제든 전음으로 물어보시오. 나라도 괜찮다면 답해 줄 터이니.
-고맙소.
아오, 집법당주 그 쪼잔한 새끼.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렇게 집법당 생활은 시작부터 난항을 맞이하는 듯 했으나, 낭중지추라는 말처럼 뛰어난 이는 원치 않아도 두각을 나타내는 법이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두각을 나타내려 안간힘을 쓰긴 했지만.
벽을 통과하는 투명 카메라같은 사기템이 이쪽 업계에 또 있을까?
“음… 공우양이 이번 사건의 범인인 것이 분명한데 증거가 없으니….”
“집은 뒤져봤어?”
“처가까지 샅샅이 확인했습니다.”
“일이 잘 안 풀리나 보오?”
“으흠….”
내가 끼어들기 무섭게 대화를 멈추는 두 집법당 무사에게, 난 지난 밤 카메라로 엿본 용의자의 사생활을 슬쩍 흘렸다.
“소문을 듣자하니 공우양이 요즘 환희궁의 화부용이라는 기녀에게 푹 빠졌다고 하더이다.”
“어허, 천 대주. 이것은 우리가 맡은 일이외다. 함부로 엿들어서야 되겠소?”
“같은 집법당 식구가 어려움에 빠진 듯하여 본의 아니게 오지랖을 부렸구려. 사과드리오.”
“아니, 뭐 사과까지 할 것은…. 크흠, 앞으로 조심하시오.”
그로부터 이틀 뒤, 내게 귀띔을 받은 집법당 무사들이 무사히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로도 그런 일들이 수차례 반복됐다.
난 카메라를 통해 얻은 핵심 정보들을 곤란에 빠진 집법당 당원들에게 은근슬쩍 흘렸고, 그 때마다 수사는 탄력을 받았다.
어차피 내 입장에서는 무림맹 세작만 안 잡히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수시로 정보를 제공한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범죄자 검거율이 증가하니 교내에서 집법당의 위세는 나날이 높아졌고, 자연히 당원들이 받는 성과급도 늘어났다.
내 경우 그림자 속에서 모든 공을 다른 당원에게 양보했기에 실적은 늘지 않았으나, 그 이상의 호감을 쌓을 수 있었다.
다들 집법당주의 눈치를 보느라 말은 안 했지만 내게 고마워하는 눈빛이 역력했고, 이는 머잖아 ‘천서원의 유능함과 이를 꿰뚫어본 교주의 혜안’이라는 주제로 교내에 알음알음 퍼져나갔다.
난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꾸준한 회식 참여는 물론, 카메라를 통해 알아낸 당원 개개인의 취미나 가족관계 등을 주제로 업무 외 시간에도 호감도 올리기에 공을 들였으니.
“한 사사(四仕). 며칠 뒤면 따님 생일이라 들었소.”
“천 대주께서 그걸 어찌 아시오?”
“당원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을 뿐이오. 그나저나 따님 올해 나이가…?”
“…일곱 살이오만.”
“아하…. 그럼 이걸 참 좋아할 텐데….”
품에서 말랑말랑한 젤리를 꺼낸 순간, 그의 눈에 놀란 기색이 어렸다.
“그건 액체괴수!”
“이 물건을 아시오?”
“부교주님 따님과 놀고 온 아이가 어찌나 보채던지…. 본교에 애 키우는 부모들 중엔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오. 헌데 그걸 어찌 천 대주께서…?”
“사실 부교주님 따님께 액체괴수를 드린 것 역시 나요. 이래봬도 중원생활이 길지 않았소.”
“아…!”
손에 쥔 액체괴물을 흔들자, 그의 시선 역시 내 손을 따라 이리저리 흔들렸다.
“이걸 한 사사께 드릴 테니, 따님께는 아빠의 선물이라 전해주시오.”
“그래도 되겠소?”
“중원에선 그리 구하기 어려운 물건도 아니니…. 어떤 물건이든 필요한 사람에게 지녔을 때 빛이 나는 법 아니겠소.”
“정말 고맙소. 우리 딸이 너무 좋아할 거요.”
그렇게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여 호감도를 쌓으니, 한 달 가량이 지났을 무렵 집법당에 나를 무시하는 이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단 한 사람만 빼고.
“성염대는 할 일이 없나 보지? 대주란 자가 늘 집법당에만 눌러 앉아 있으니.”
“최근 중원이나 서장과의 마찰이 소강상태를 맞이해 우리 성염대가 나설 일이 많지 않소.”
“한 마디로 하는 일도 없이 본교의 재정을 축내고 있다는 말이군.”
첫 단추를 잘못 꿴 여파는 한 달이 지나도록 사그라질 줄 몰랐다.
집법당주 소면추혼 가염무는 최근 들어 교에서 상한가를 달리는 나의 인기를 대놓고 시기했다.
“교주의 총애를 받는다하여 기고만장 말거라. 누군들 너 같은 시절이 없었을 줄 아느냐.”
“아, 예.”
뭐, 어쩌라는 건지.
허나 내가 대꾸를 하든 안 하든, 갈굼은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싶어 나도 몇 차례 화해를 시도했으나, 그럴수록 상대의 태도는 기고만장해질 뿐이었다.
찌질하게 느껴지던 괴롭힘이 어느덧 일상생활에 차질이 생길 정도로 영향을 주기 시작하자, 나도 더 이상은 참기 힘들었다.
그래. 어차피 예쁨 받기는 글렀으니까.
한 번 기세에서 밀리면 계속 밀리게 되는 법.
자고로 이런 상황에서 자유로워지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자존심을 접고 완전히 굽히고 들어가든가, 아니면 관심병사가 되든가.
난 후자를 택했다.
“사람들이 금안룡이라 추켜세우니 네가 금안신군이라도 된 듯 싶더냐? 하긴 스승과 제자가 합심해도 결국 정파의 새파란 놈 하라 못 이기는….”
“당주. 말씀이 좀 심하시오?”
“뭐라?”
“내 비록 입교가 늦어 지위가 보잘 것 없으나, 스승께서는 이미 수십 년 전에 본교의 중직을 맡으셨던 분이오. 까마득한 후배인 당주께서 함부로 왈가왈부할 분이 아니란 말이오.”
“후배? 지금 네놈이 선후배를 논하느냐?”
기가 차다는 헛웃음을 터뜨리는 그에게 난 한껏 띠꺼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엄밀히 말해 스승님의 제자인 내 배분은 결코 당주님의 밑이 아니오. 평소 시비를 거는 것은 참았으나, 스승까지 욕보이는 것은 도저히 참지 못하겠소.”
“천둥벌거숭이 같은!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어디서…! 너희들은 뭘 보고만 있는 게야! 하극상을 벌인 이놈을 당장 잡아들이지 않고!”
빌미를 잡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것은 서로 마찬가지였는지, 그는 내가 반기를 들자마자 수하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난 한 달간의 노력이 마냥 쓸모없지는 않았는지, 집법당원들은 양쪽 눈치를 보며 뭉그적거릴 뿐 누구 하나 먼저 나서는 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였다.
아무리 사적인 친분을 내세워도, 대놓고 상관의 명령을 무시하는 것은 그들로서도 부담되는 일일 테니.
난 변수가 생기기 전에 곧장 승부수를 던졌다.
“이치로 상대가 안 되니 계급을 내세우는구려. 허나 당주께서 직접 말씀하시지 않았소? 나는 집법당 소속이기 이전에 성염대라는 별개의 조직을 이끄는 대주요. 이는 교주님께서 명백히 인정하신 사항이니, 날 집법당의 규율로 얽매려하지 마시오.”
“혀가 길구나!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무어냐.”
“본교에는 강자존이라는 훌륭한 방식이 있지 않소? 내 집법당주의 무공을 오래 전부터 견식하고 싶었소. 당주께선 나와 자웅을 겨뤄볼 마음이 있으시오?”
“허! 어린놈이 겁을 상실했구나. 겨우 대주 따위가 내 상대가 될 성 싶으냐!”
“그것은 싸워보면 알지 않겠소?”
나는 안대를 거칠게 뜯어내며 ‘싫어요’영상의 기운을 단숨에 개방했다.
그 순간, 폭발하듯 터져 나온 묵빛 마기가 집무실을 가득 채우며, 두 개의 금안이 시린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당주. 검을 드시오.”
낮게 깐 목소리에 금안을 통해 보이는 집법당주의 기가 움찔 흔들렸다.
내 몸에서 흘러넘치는 짙은 마기를 보고 사부인 금안마군의 악명을 떠올린 것이리라.
잠시 나와 자신의 전력차를 분석하듯 제자리에서 침묵을 지키던 그는 한참이 지나서야 대범한 척 미소를 날렸다.
“…어린놈이 젊은 혈기만 믿고 설치는구나.”
야, 땀 흘리는 거 다 보인다.
내가 하도 당당하게 구니 숨겨둔 비장의 수라도 있나 싶어 눈동자를 데구루루 굴리는 모습에 난 차게 웃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나도 단순한 허세가 아니었다.
집법당주가 아무리 강해봤자 호교법왕의 자리를 약속 받았던 금안마군만 하겠는가.
비록 내가 금안마군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었던 것에는 고든람쥐의 공을 빼놓을 수 없지만, 그렇게 따지면 금안마군 역시 제자와 손잡고 날 협공한 것은 마찬가지.
더구나 패배가 곧 죽음이던 당시의 상황과 달리 이번에는 싸움을 말려줄 집법당원이 사방에 깔려 있었다.
이 정도로 사람이 많은데 설마 죽기 전까지 아무도 안 말리겠어?
그런 생각으로 던진 도박은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간 쌓아온 부와 명예로 잃을 것이 많은 그는, 결국 미친개와 싸우는 대신 물러나는 것을 택했다.
“영악한 놈! 교주께서 네 놈을 아끼는 것을 뻔히 알거늘! 네놈을 다치게 만들면 치도곤을 당할 것이 뻔한데, 내가 그 따위 싸구려 도발에 걸려들 줄 아느냐! 정 나와 겨루고 싶거든 교주께 허가부터 받아 오너라!”
버럭 소리친 그가 성난 얼굴로 집무실을 나가자, 여태껏 눈치만 보던 당원 중 몇몇이 서둘러 그 뒤를 쫓았다.
-천 대주, 우린 당주님 좀 달래고 오겠네.
-잘 부탁드리오.
곧 그들을 뒤쫓아 날아간 카메라에, 보기 안쓰러운 정신승리의 현장이 포착됐다.
“잘 참으셨습니다, 당주님.”
“좀 전에 마기 보셨지요?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놈입니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강해봤자 얼마나 강하겠습니까. 하지만 똥이 무서워서 피하겠습니까, 더러워서 피하지.”
수하들의 잇단 위로에 잔뜩 일그러졌던 집법당주의 표정이 조금이나마 풀렸다.
참 단순한 인간이었다.
“크흠… 너희 말이 맞다. 교주께 천가 놈과의 대결을 허락받으러 가려던 참인데, 생각해보니 연장자인 내가 참는 것이 옳은 듯 싶구만.”
“어유,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래도 이번까지야. 다음부터는 자네들이 말려도 어림도 없지.”
사회생활 만렙들 다운 눈물겨운 중재!
나도 질 수는 없지.
난 집무실에 남은 당원들에게 정중히 포권했다.
“내가 수양이 부족해 폐를 끼쳤구려. 다들 미안하오.”
“스승이 모욕을 당하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오.”
“그리 말해주니 고맙소.”
오늘의 일로 그동안 쌓은 호감도의 효과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아직 부족하다.
추후 나와 집법당주의 갈등이 재발할 때 내 편을 들진 않더라도, 적어도 집법당주의 편에 서지 않을 정도까지는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
자고로 사람을 부리려면 말뿐 아니라 좀 더 속물적인 것이 필요한 법이다.
난 지난 포달랍궁 사태 때 받은 포상금과 성녀에게 활동비 명목으로 지원 받은 자금이 담긴 전낭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열었다.
“사과의 의미로 오늘 저녁은 내가 거하게 사려는데, 다들 어떠신지 모르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