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28
복귀
“천서원, 실패의 변명은?”
벽려군과 헤어진 뒤 본단으로 복귀한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토벌 실패에 대한 매서운 추궁이었다.
더구나 단순히 명령에 따른 것도 아니고 자신 있다며 직접 지원까지 했으니.
“그저 검후의 무공이 제 밑이 아니었을 뿐입니다.”
투둑, 툭-.
내 대답을 들은 교주가 태사의 손잡이를 두드리며 장고에 빠지자, 추국장에 자리한 나머지 수뇌부들 또한 지존의 사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침묵을 지켰다.
그렇게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릴 정도의 고요 속에, 유일하게 소란스러운 것은 날 놀리는 데 혈안이 된 시청자들뿐이었다.
[래치하 : 벽려군이랑 물고 빨고 할 땐 좋았겠지] [펭귄목살 : 깐휘님 키스 당할 때만 반응속도 찐따되는 거 사실인가요?] [louise0912 : 무술은 일류지만 입술은 삼류예요옷!] [또똠얌꿈 : 좆뱀깐휘] [폴리페뇰 : 우희랑 약빈이 자택에서 오열한 채로 발견]그래…. 이게 다 내 업보지. 누굴 탓하겠어.
벽려군과의 키스신은 생방송 당시에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로부터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도 심심찮게 언급이 되는 이유는 추후 업로드된 편집본의 어그로성 제목 때문이었다.
[시청자 만 명 앞에서 교관님이랑 키스했습니다. ※칼찌주의] [려군 눈나랑 좁은 벽 틈새에서 있었던 일] [천라지망 안에서 두근두근 사랑의 도피]…뽀미 님. 매니저 일 맡아주신 건 정말 감사드리는데 이 제목은 아니잖아요.
한편,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나를 씹어대는 시청자들 외에도 이 상황을 달가워 이는 또 있었다.
“임무에 실패했을 뿐 아니라, 교주님과 본교의 명성에도 먹칠을 한 천서원을 엄벌에 처해야 합니다!”
저 아저씨 신났네, 신났어.
예전부터 나와 대립각을 세우던 집법당주는 이 기회에 날 실각시킬 생각인지 교주 앞에서 날 헐뜯기 바빴다.
“천서원! 입이 있다면 답해 보아라! 어째서 검후를 놓아줬느냐!”
“변명하지 않겠소. 그녀의 화후는 듣던 것 이상이었소.”
“흥! 그게 변명이 아니고 무엇이더냐! 사내다운 척으로 교주님의 환심이라도 살 속셈인 게지!”
개쉑… 날카롭네….
하지만 집법당주의 지적질이 아니라도, 단순히 반성하는 태도만으로 이번 사태를 헤쳐 나가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였다.
여태껏 여러 차례 유능한 모습을 보였음에도, 날 바라보는 교주의 눈빛은 싸늘하기 그지없었으니.
동시에 그의 눈에는 약간의 흥미 또한 섞여 있었다.
자신의 심복이 되려면 이 정도 위기는 너끈히 극복해 보라는 듯이.
그 순간, 나직한 전음이 귓가에 울렸다.
-가만히 듣게.
중후하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부교주 혈옥소 강유였다.
-내가 도와주지. 지금 내가 자네의 처벌을 주장하면 의심 많은 교주는 자신의 세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선동을 한다고 생각할 것이네. 그리 되면 처벌의 수위도 좀 낮아질 것 같네만.
그럴 듯한 계책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계획은 실현되지 못했다.
다음 순간 부교주보다 한 발 앞서 나를 두둔하고 나선 이가 있었으니.
***
“마, 말씀이 심하시오, 집법당주!”
용감히 앞으로 나선 중년사내의 정체는, 지난 집법당의 조사에서 무림맹의 세작으로 밝혀진 만종걸에 이어 새로이 병기부주의 자리에 오른 장상철이란 인물이었다.
예상치 못한 등장으로 장내의 시선을 집중시킨 그는, 이어서 떨리는 목소리로 집법당주를 꾸짖었다.
“비록 천 대주의 소속이 애매한 감이 있지만, 어찌 당주 되는 자로서 수하를 아끼기는커녕 선두에 나서서 비방하고, 나아가 처벌을 주장한단 말이오!”
“네 이놈, 공석이 된 병기부주 자리를 운 좋게 차지하더니 눈에 뵈는 게 없더냐! 여기가 어디라고 나서느냐!”
순식간에 제식구도 감싸주지 못하는 무능한 상관으로 매도당한 집법당주가 버럭 언성을 높였으나, 장상철은 삿대질까지 해가며 열변을 토했다.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소. 듣기로 이번 작전에서 천 대주가 검후와 대등한 대결을 벌이는 와중에도, 집법당주는 계속 엄한 곳으로 병력을 몰았다고 들었소. 천 대주가 임무를 실패한 데는 당신의 탓도 있는 것 아니오?”
“다, 당신?”
“시기 질투로 부하를 사지로 내몬 이에게는 존칭도 필요 없소!”
그의 호기로운 외침을 들은 명교의 수뇌부 사이에 웅성거림이 번졌다.
“호오….”
“본교에 저런 인물이?”
“새 병기부주 이름이 장상철이라고? 기개가 제법이로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감탄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장상철은 죽을 맛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의 의지로 집법당주 앞에 나선 게 아니었다.
수십 일 전 자신을 찾아와 협박을 했던 끔찍한 목소리의 명령에 따랐을 뿐.
-약속의 때가 도래했다. 지금이야말로 네가 나서야 할 때다, 장상철. 더 몰아쳐라. 더, 더. 네가 무림맹의 세작임을 들키기 싫다면!
귓가에 울려 퍼지는 섬뜩한 목소리를 지워내듯 장상철은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집법당주! 입이 있다면 어디 말씀해 보시오! 매번 천 대주와 검후의 전투가 끝나기만을 기다려 어기적어기적 늑장을 부리며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오! 이는 이번에 복귀한 순찰무사들이 모두 증언한 사실이외다!”
“어기적…? 그건 천서원 저 놈이….”
“설마 검후와 일대접전을 벌이던 천 대주가 한두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수백 장 밖에서 접근하는 그대와 집법당을 눈치 채고 자리를 피했다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펼치진 않으리라 믿소.”
“이, 이놈이!”
“당초 교주님께서 그대에게 내린 명령은 천 대주를 도와 검후가 도망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소! 교주님, 검후를 놓친 죄를 묻는다면 집법당주도 결코 책임에서 자유롭진 못할 것입니다!”
무림맹 세작의 말로가 어떤 것인지 한 달 전에 두 눈 똑똑히 확인한 장상철의 말에는 거침이 없었다.
반면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집법당주의 얼굴은 분노로 붉으락푸르락 물들었다.
하지만 그는 곧 평화로운 신색을 되찾았다.
놈의 세 치 혀가 제법 매섭기는 해도, 겨우 병기부주 따위의 간언으로 뒤집힐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괘씸한 놈. 뭘 믿고 간덩이가 부었는지는 몰라도, 이번 일만 끝나면 먼지 한 톨까지 탈탈 털어주마.
집법당주는 부득부득 이를 갈았으나, 불행히도 그가 상대해야 할 적은 장상철만이 아니었다.
“교주님. 비록 천 대주가 검후를 놓치기는 했으나 결코 본교의 명성에 먹칠을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게 무슨 뜻이지?”
“스승의 원수를 갚기 위해 살초를 아끼지 않은 벽려군과 달리, 천서원은 벽려군을 자신의 여인으로 삼겠다며 결코 살검을 펼치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일을 그르친 천서원의 여색을 꾸짖으실지언정, 그의 실력과 교주님을 향한 충정마저 의심치는 마시옵소서.”
집법당주는 두 눈을 부릅뜨지 않을 수 없었다.
천서원을 두둔하고 나선 이가 평소 그와도 친하게 지내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호 당주, 네, 네 놈이 어떻게…?”
그와 눈이 마주친 호중원이 슬쩍 시선을 피했다
그러나 집법당주는 알지 못했다.
그 역시 누군가의 협박으로 어쩔 수 없이 나선 것일 뿐임을.
-때가 도래했다. 네가 집법당주의 어린 첩과 밀회를 즐기는 사이임을 들키기 싫다면 천서원을 변호하라.
그는 귀가에 들려오는 기괴한 목소리에 따라 집법당주를 압박했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현상들이 추국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교주님. 감히 한 말씀 올리자면 집법당주의 통솔력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면, 눈엣가시인 천 대주를 차도살인하려고 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5년 전 억울하게 죽은 네 아내와 자식의 암살을 사주한 배후를 알고 싶지 않나?
“천대주가 비록 패배하긴 했으나 그간 본교를 위해 쌓은 공이 적지 않습니다. 부디 이번 한 번만 하해와 같은 마음으로 자비를 베푸신다면, 본교의 모든 이들이 교주님의 아량에 탄복할 것입니다.”
-네 형제가 부모의 유산을 어디에 숨겨두었는지 알고 있다.
개중에는 목소리의 협박 없이도 평소 천서원에 대한 호감만으로, 또는 그저 분위기에 휩싸여 그를 두둔하는 자들도 적지 않았다.
“듣기로 검후는 천 대주와의 대결에서 나려타곤을 펼치거나 바닥의 흙을 뿌리는 등 무인으로서 부끄러운 짓도 서슴지 않았다고 들었습니다!”
“천 대주에게 살심이 없던 데다 그 계집의 성정이 그리 독했다면 놓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오히려 저런 큰 부상을 입고도 이틀밤낮을 검후와 추격전을 펼친 천대주의 성취와 집념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감숙의 교도로부터 전해진 소식에 따르면, 검후는 천 대주에게 당한 상처가 낫지 않아 아직도 사경을 헤맨다고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본교 입장에서도 결코 손해는….”
“크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져 나온 광소에 천서원 옹호에 입을 모으던 모든 이들이 일시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그런 일이 가능한 것은 단 한 사람, 명교의 지존인 교주뿐이었다.
***
“크하하하하하!”
집법당주는 웃음을 멈추지 않는 교주를 불길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는 평소 자신과 친분이 적지 않던 자들까지 나서서 천서원을 편드는 작금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영악한 놈!
도대체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그리 본교 사람들의 환심을 샀단 말인가.
도끼눈을 뜬 그는 황급히 천서원의 안색을 살폈으나, 장내에서 누구보다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놈 자신인 듯 했다.
천서원은 지금의 상황이 믿기지 않는지 금빛 척안을 껌뻑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었다.
놈의 수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뭐지?
그가 의구심을 품는 찰나, 교주의 광소가 우뚝 멎었다.
“천서원이 평소 형제들의 신뢰를 적잖이 쌓았군. 반면 가염무, 네놈은 집법당주직에 오른 지 벌써 10년이 흘렀건만, 누구의 마음도 얻지 못했구나.”
“교, 교주님. 그것이….”
“네가 천서원을 질투한다는 말은 누누이 전해 들었지만 참으로 한심하구나. 듣자하니 천서원의 대결 제안도 날 들먹이며 응하지 않았다지?”
“교주님…?”
다음 순간, 가염무의 막연한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언제부터 본교의 무사들이 검이 아닌 입으로 싸웠지? 본좌가 교주 자리에 오른 지 어언 팔 년, 내 누누이 강자존의 율법을 강조했거늘. 그리 원한다면 멍석을 깔아주지.”
노한 목소리로 으르렁거린 교주는, 특유의 권태로운 눈빛마저 지운 채 가염무를 응시했다.
“가염무, 네게 기회를 주마. 지금 이 자리에서 천서원과 생사결을 벌일 것을 명한다.”
교주의 입에서 흘러나온 생사결이란 단어에, 시끌벅적하던 추국장이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그리고 다음 순간,
“명에 따르겠습니다.”
저놈이…!
집법당주가 속으로 욕지기를 내뱉는 사이,
담담히 대답한 천서원을 제외한 모든 이의 시선이 집법당주에게 향했다.
“가염무 네놈의 대답만 남았다.”
“…….”
“이기면 모든 것을 얻을 것이오, 패자에겐 죽음 뿐. 겁이 난다면 물러나도 좋다. 그 경우 잃는 것은 명예뿐이겠지.”
가염무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빙글빙글 어지러이 돌고, 목덜미에선 식은땀이 흘렀다.
‘생사결’만 아니었어도, 아니 이번 임무를 겪기 전까지 만이었어도 망설이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이번 토벌전 때 그가 천서원과 검후를 쫓으며 확인한 대결의 흔적들은 결코 자신의 밑이 아니었다.
아니, 자신보다 훨씬 고강한 내공에 휩쓸려서 만들어진 흔적들이 분명했다.
더구나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도 자신과 집법당원들은 코빼기도 보지 못했을 정도로 빠른 신법까지 지닌 놈이 아닌가!
‘내가 이길 수 있을까?’
집법당주는 고개를 들어 천서원을, 붕대로 감긴 그의 흉터를 바라봤다.
추국 과정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검후에게 당한 놈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은 게 분명했다.
‘그렇다면 해볼 만하지 않을까?’
마른 입술을 축인 가염무는 이어서 주위를 둘러봤다.
자신보다 직책이 높은 고수들 비롯해, 한참 나이가 어린 후배들까지.
수많은 교의 중진들이 자신의 입술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서 싸우지도 않고 물러난다면 체면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앞으로도 두고두고 웃음거리가 되리라.
싸운다. 싸워야 한다. 싸워서 이긴다.
놈을 이기고 오늘 난 승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천서원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던 놈들에게 증명하는 거다.
놈들의 안목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누가 진정한 강자인지!
입술을 달싹거리던 가염무는 마침내 고개를 들어 교주를 바라봤다.
“…아직…부상이 남은 천서원에게 생사결은 가혹합니다.”
결국 그는 최후의 순간까지 생사결이란 단어가 주는 부담감을 이겨낼 수 없었다.
생사결을 피하는 이유를 천서원에게 전가하는 것만이 그에게 남은 유일한 자존심이었다.
‘천서원, 이 여우 같은 놈! 내가 네놈의 사악한 술수에 놀아날 성 싶으냐!’
놈은 영악한 놈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수많은 교도들을 구워삶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놈의 가슴과 복부에 난 커다란 상처는 그를 함정에 빠뜨리기 위한 달콤한 미끼이며, 교주가 생사결을 제안한 이 상황조차 놈이 정교히 짜놓은 덫일지 몰랐다.
생사결이란 교주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 것이 그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는 그렇게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를 마쳤다.
어떻게 올라온 자리인데….
말년을 흥청망청 살기 위해 모아둔 재산은 얼마이며,
얼마 전에 얻은 첩년의 뽀얀 엉덩이도 눈에 밟히기는 마찬가지.
비록 오늘 이후 체면이 땅에 떨어지겠지만, 목숨만큼 아깝지는 않다.
살아 있으면 기회는 온다. 살아만 있으면…!
“…다시 한 번 묻지. 가염무. 생사결을 포기하겠느냐?”
“그렇…습니다. 포기를 인정….”
다음 순간, 집법당주의 머리가 바닥을 굴렀다.
투둑-.
“싸우지도 않고 꼬리를 말아? 내 앞에서 감히? 내가 패배한 개를 기르고 있었군.”
차가운 목소리와 함께 시야에 맺힌 기울어진 세계가, 그의 생애 마지막으로 본 광경이 되었다.
***
털썩-.
목을 잃은 집법당주의 몸이 맥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갑작스런 사태에 추국장은 침묵에 휩싸였다.
허나 정작 모두를 충격에 빠뜨린 교주의 안색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저 쓰레기를 내 앞에서 치워라.”
“조, 존명!”
어디선가 득달 같이 달려온 경비무사 둘이 공포에 질린 얼굴로 시신을 치웠다.
나와 집법당주의 알력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보던 사람들의 안색 역시 창백하게 질린 것은 마찬가지.
나 또한 티는 안 내려 부단히 노력했지만, 고개 숙인 얼굴 밑으로 입술이 살짝 떨리는 것까진 막을 수 없었다.
아무리 죽음을 겁냈다고는 한들, 자신을 10년 가까이 보필한 수하를 한 점 망설임 없이 참하다니.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하는 자의 잔혹함을 마주하자, 찬물을 뒤집어 쓴 듯 피가 식는 기분이었다.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을 보면서도 아무런 대꾸조차 못한 채 마른 침만 삼키던 그 때,
“판결을 내리겠다.”
교주가 다시 입을 열었다.
“천서원은 임무 실패의 죄를 물어 열흘 간 근신에 처하며, 이후 공석이 된 집법당주 자리를 계승할 것을 명한다. 이상이다.”
어느새 제자리를 찾은 권태로운 눈빛으로 담담히 선언한 교주는, 집법당주의 목숨을 거두고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지 시큰둥한 얼굴로 자리를 떴다.
그러나 그의 모습이 추국장 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입을 여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
입교한지 석 달 만에 집법당주직을 꿰차다니.
누구도 예상 못한 파격적인 인사였으나 지난번과 달리 내게 축하를 건네거나 눈도장을 찍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집법당주의 끔찍하면서도 허망한 최후를 목도한 사람들은 충격 속에 하나, 둘 조용히 자리를 떴다.
잠시 뒤, 나 홀로 남은 추국장에 섬뜩한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때가 도래했다.”
끈적끈적하고 기분 나쁜 목소리.
지난 수십 일 간 교단의 죄 많은 이들을 밤잠 설치게 만든 목소리는, 내 입을 통해 흘러나왔다.
성녀에게 협찬 받은 음성변조기와 전음의 수법을 융합하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던가.
허나 비장의 한 수로 통쾌한 승리를 거뒀음에도 웃음은 나오지 않았다.
소매 안쪽에 숨겨두었던 음성변조기를 품안에 갈무리한 나는, 마지막으로 바닥의 마른 핏자국에 시선을 던졌다.
“명복을 비오.”
집법당주의 죽음은 내게도 충격이었다.
평소 그와 사이가 안 좋긴 했어도 결코 이런 식의 파국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애도는 짧았다.
교주가 변덕을 부렸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내가 아닌 그였을 테니.
나라면… 교주의 일격을 피할 수 있었을까?
아직까지도 거세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가만히 억누른 채, 난 집법당주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흔적을 뒤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