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37
배반 (5)
‘좋지 않군.’
전황을 살핀 명교주 금양의 미간에 선명한 내 천 자가 자리를 잡았다.
전투가 시작된 지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도 않았건만, 벌써부터 수세에 몰리다니.
비록 숫자는 적다지만 개개인의 성취는 아군이 더 높을 터.
그는 순식간에 무너진 진영에 의문을 느꼈지만, 지금 중요한 건 원인파악 따위가 아니었다.
그는 슬슬 본 실력을 드러낼 때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여태까지는 무인으로서의 호승심과 부교주를 희망고문하려는 목적으로 건곤대나이의 사용을 자제해왔으나, 더 이상 유능한 가신들을 잃는다면 본말전도나 마찬가지.
그가 서둘러 결착을 지으려는 이유는 또 있었다.
‘건곤대나이의 부작용이 생각보다 심하다.’
신체의 이상을 깨달은 것은 전투가 시작된 직후.
건곤대나이를 익힌 이후 시도 때도 없이 존재감을 드러내는 아랫도리를 평소 내공으로 억눌러오기는 했으나, 오늘따라 그 정도가 한층 심했다.
자꾸만 하체 쪽으로 탈선하는 기운을 원래의 길로 되돌려 놓길 수차례.
비록 금양 정도의 경지에 이른 무인에게 있어 그것은 번거로울 뿐 어려운 일은 아니었으나, 비슷한 수준의 상대와의 대결에선 그 작은 틈조차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는 법.
카강-!
부교주와 검을 맞댄 그의 입에서 마침내 싸늘한 종언이 흘러나왔다.
“강유. 아쉽지만 장난은 끝이다.”
“장난?”
“네가 기습을 준비한답시고 시간을 허비하는 동안, 내가 무엇을 이루었는지 똑똑히 확인하거라.”
그의 단전에서 솟구친 대해와 같은 기운이 검으로 흘러들어간 순간, 검을 맞댄 부교주의 몸이 무게를 잃고 허공으로 둥실 떠올랐다.
“크윽?”
대경하여 공력을 끌어올린 부교주는 이어서 두 발을 대지에 박아 넣으며 거세게 저항했으나, 건곤대나이가 불러일으킨 막대한 인력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드드드득-.
대지에 발목을 잡힌 부교주의 신형이 긴 구덩이를 남기며 교주를 향해 끌려왔다.
이 순간 그는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맞붙은 검을 뗄 수도, 손에서 검을 놓을 수도 없이 그저 교주의 손짓에 따라 속절없이 흔들리는 허수아비.
“이건…!”
“으흐흐, 너도 은진천을 따라다니며 몇 번은 보았겠지. 이게 바로 건곤대나이다!”
일갈한 교주가 검에 가둬둔 인력을 단번에 척력으로 전환한 순간, 검에 아교처럼 붙어있던 부교주의 몸이 여태까지와는 정반대 방향으로 빠르게 튕겨나갔다.
쐐애애애액-.
매서운 파공성과 함께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속도로 날아간 부교주의 몸이 수백 장 밖의 거암절벽에 처박혔다.
콰과과과광!
“커헉!”
“으흐흐흐흐.”
하늘 높이 피어나는 흙먼지 속에서 아른거리는 부교주의 처참한 모습에 교주가 광소를 터뜨렸다.
처음 실전에서 사용해 본 건곤대나이의 위력은 만족스럽기 그지없었다.
명교의 지존들에게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호교신공 ‘건곤대나이’는 특별한 초식이 있는 무공은 아니었다.
그저 힘이 작용하는 원리를 이해하고, 막대한 내공을 일으켜 현상을 비트는 공부.
힘의 방향을 틀거나 흡수, 방출하는 것에서 시작해, 경지에 오르면 한 번 본 무공을 그 자리에서 따라할 수도 있다고 전해진다.
7단계 극성에 이르면 건곤대나이라는 이름 그대로 하늘과 땅이 뒤바뀐다는 말도 결코 과장이 아닐 터.
심지어 1단계의 수행만으로도, 조금 전까지 자신과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던 부교주가 저리 형편없이 나가떨어지지 않았나!
교주는 통쾌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하하하하! 으하하하하!”
분지 곳곳에서 벌어지던 전투는 어느새 멈춘 지 오래였다.
건곤대나이의 가공할 위력을 목도한 무인들은 모두 제자리에 얼어붙은 채, 광소를 터뜨리는 그를 두려운 얼굴로 바라볼 뿐이었다.
“네놈들이 누구를 적으로 돌렸는지 이제 알겠느냐? 두렵느냐? 암, 두렵겠지. 허나 이젠 무릎 꿇고 빌어도 소용없다. 예부터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으라 했지. 중원정벌에 앞서 반란에 가담한 네놈들과 일가친척들을 잔혹하게 처형하여 본보기를 보이리라.”
“쿨룩, 쿨룩…. 그 전에 나부터 쓰러뜨려야 하지 않겠소?”
갑자기 끼어든 목소리에 교주는 코웃음을 치며 절벽 쪽을 바라봤다.
“어리석구나, 강유. 힘의 차이가 이리도 명백하거늘.”
“적어도 준비한 수는 모두 사용해봐야 하지 않겠소.”
“그래, 어디 원 없이 덤벼 보거라. 이 자리에서 네놈과 나의 수준 차이를 모두에게 알려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교주는 오만한 얼굴로 양팔을 벌렸다.
상대가 어떤 수를 써도 상관없다는 자신감에서 발로된 행동이었다.
허나 그의 미소는 오래가지 않았다.
다음 순간, 수백 장 밖에 선 부교주의 손짓 한 번에 자신의 몸이 절벽 쪽으로 끌려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헉…!”
“오늘 본 표정 중 가장 마음에 드는구려.”
“네놈이 어찌…!”
황급히 건곤대나이를 운용한 교주의 몸이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허나 가공할 위력을 지닌 두 힘이 충돌한 여파는 해소되지 않고 폭풍이 되어 분지 안쪽을 휩쓸었다.
콰과과과-.
“강유! 답하지 못하겠느냐! 어디서 건곤대나이를 얻었느냐!”
“날 쓰러뜨리면 알게 될 것이오.”
불과 반 시진 전 자신이 했던 대답이 그대로 돌아오자, 교주는 분노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강유!”
“이것으로 다시 원점이구려.”
“조금 전까지 밀리던 것을 그새 잊었느냐!”
곧 두 사람의 몸에서 일어난 기운이 천지사방을 휩쓸기 시작했다.
허나 교주는 전투가 재개되었음에도 좀처럼 집중할 수 없었다.
건곤대나이가 적힌 보자기는 분명 자신의 수중에 있거늘, 어떻게 상대도 건곤대나이를 익힐 수 있었단 말인가!
설마 이미 해석이 끝난 보자기를 넘겼단 말인가?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랬다면 굳이 보자기를 넘길 필요도 없이 생사결을 청했겠지.
그렇다면 설마 해석을 마친 뒤 군사가 배신을?
풀리지 않는 의문 속에 부교주를 상대하는 교주의 손은 점차 어지러워졌다.
그렇게 종전까지만 해도 그에게 유리하던 싸움은 어느새 비등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일이 이 지경이 되니, 아까까지만 해도 별 거 아닌 것으로 치부했던 전장의 상황마저 이제는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급히 고개를 돌려 남은 수하들을 찾았다.
다행히 전장에선 아직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그치질 않았으니.
불리한 전황 속에서도 여전히 종횡무진 전장을 활보하는 이들의 정체는 다름 아닌 좌우광명사자와 또 한 사람.
“천서원! 좌사를 도운 뒤 내게 합류하라!”
“존명!”
“어딜 보시는 게요!”
“크윽…!”
이야기하는 틈을 노려 밀려든 기운을 간신히 해소한 교주는 이를 갈며 부교주를 노려보았다.
“늑대인 줄 알았더니 간악한 여우가 따로 없구나. 건곤대나이를 익혔음에도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니. 감히 교주에게만 허락된 호교신공임을 허락도 없이 익혀?”
“교주. 열흘 전 제 앞에서 했던 말을 잊으셨소? 부정에 이끌려 건곤대나이를 포기한 나를 어리석다 비난하지 않았소.”
“닥쳐라!”
일갈한 교주는 다시 건곤대나이를 운용했으나, 이에 맞서는 부교주의 성취는 결코 그의 밑이 아니었다.
교주는 비로소 초조해졌다.
아직까진 여유가 있으나 이대로는 의미 없는 소모전만 이어질 뿐.
그리고 그 끝은 뻔했다.
건곤대나이는 수련 과정만큼이나 실제 운용에도 엄청난 양의 내공을 요하는 무공.
호적수와의 승부 끝에 지친 사자를 기다리는 것은 평소였다면 거들떠도 안 볼 승냥이 떼의 날카로운 이빨일지니.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잠시 잠잠하던 아랫도리마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자, 교주는 짜증을 참을 수 없었다.
‘강유 놈은 이 부작용을 어찌 해결했단 말인가!’
자기도 모르게 부교주의 하체를 한 차례 훑은 교주는 이를 악물며 가슴을 더듬었다.
보름 전 ‘회’를 통해 극비리에 건네받은 단환이 있는 곳이었다.
또한 그것은 그가 전대 교주를 끌어내리기 위해 사용했던 비장의 물건이기도 했다.
‘이걸 쓰는 수밖에 없는가!’
억만금을 주고도 구하기 힘든 영약들로 배합한 단환의 효과는 단 하나.
섭취한 순간 신체의 잠재력과 내력을 곱절로 이끌어내는 것.
허나 무인이라면 바라마지 않을 영단에도 심각한 부작용은 존재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시진이라는 시간제한과, 그 후에 찾아오는 내공의 영구적인 손실.
그것이 바로 그가 지난 8년간 눈엣가시 같던 부교주를 두고만 본 이유이며, 위기에 처한 지금도 섣불리 단환을 복용하지 못하는 까닭이었다.
더구나 이것을 얻기 위해 지불한 것들을 생각하면.
허나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만 했다.
“…또다시 피 같은 공력을.”
아무리 내공이 아까워도 목숨과 바꿀 정도는 아니었으니.
결심과 동시에 풀쩍 뒤로 물러난 그의 품에서 마침내 푸른색 단환이 빠져나왔다.
일전 천서원이 자신에게 묘사했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단환이 모습을 드러내자, 부교주의 얼굴에 경계가 서렸다.
“…그것이 무엇이오?”
“네놈이 8년 동안 그토록 찾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궁금증은 풀렸겠지? 내가 주는 저승길 선물이다.”
말을 마친 교주의 입속으로 단환이 모습을 감췄다.
곧 단전에서 불길처럼 솟구치는 어마어마한 기운을 감지한 그는, 조금 전까지의 망설임과 짜증도 잊고 광소를 터뜨렸다.
“으하하하하!”
8년전 교위를 찬탈하던 그 순간 잠시 발을 들였던 지고의 경지가 다시금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하늘의 신장이라도 된 듯한 고양감 속에, 그는 여태껏 내력의 안배를 이유로 펼치지 못한 건곤대나이를 마음껏 펼치기 시작했다.
“노옴!!”
구구구궁-
그의 손짓 한 번에 찢어발겨진 대기가 천둥소리 같은 비명을 토해냈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엇비슷하던 싸움은 또 한 번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크윽… 교주, 방금 복용한 것이 대체 무엇이오.”
“이제 죽을 놈이 그걸 알아서 무엇할까?”
콰과광-!
“으음….”
이번에야말로 승기를 잡으려는 듯 거침없이 건곤대나이를 펼치는 교주와 달리, 부교주의 이마엔 어느새 식은땀이 흥건했다.
깨달음보다는 내력을 중시하는 건곤대나이와 단번에 내력을 상승시켜주는 단환이 최고의 상승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커헉-!”
“이제 그만 끝내자, 강유.”
건곤대나이의 압력을 이기지 못한 부교주의 몸이 점차 대지로 무너져 내렸다.
이윽고 무릎을 꿇고 쓰러진 부교주 앞에서 그는 최후의 일격을 준비했다.
마음 같아선 자신을 애 먹인 것으로도 모자라 기어코 비장의 수단까지 사용하게 만든 부교주를 오래도록 괴롭히며 고통 끝에 죽이고 싶었지만, 그것은 안 될 말이었다.
단환의 효과가 이어지는 동안 사용한 내공의 양이 많을수록, 뒤에 찾아올 손실 또한 막대하니.
검을 치켜드는 그를 향해 부교주가 패배자의 뻔한 한 마디를 날렸다.
“명색이 본교의 지존이라는 자가 그깟 신외지물에 의지하다니.”
“어차피 역사는 승자만 기억하지. 당금 본교의 어린 아이들 중에 은진천의 이름을 기억하는 아이가 몇이나 될 것 같으냐? 곧 네놈의 이름 또한 그렇게 사그라질 것이다.”
작별 인사를 건넨 그의 검 끝에 미증유의 거력이 몰려들기 시작한 그 때, 때마침 전장을 가로지른 천서원이 그와 합류했다.
“교주! 괜찮으십니까!”
“마침 잘 왔다. 지금 막 반도 놈의 목을 치려던 참이니.”
오랜 호적수의 처형을 눈앞에 두고 그는 짙은 희열에 잠겼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검이 부교주의 목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스걱-.
“끄흑-.”
단말마와 함께 붉은 피가 허공을 수놓았다.
허나 그것은 그토록 원하던 부교주의 피가 아니었다.
금양은 자신의 옆구리를 뚫고 나온 손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나마 본능이 울린 경종에 몸을 비틀었기에 망정이지, 영락없이 심장을 내어줄 뻔한 일격이었다.
“커헉-!”
다시금 울컥 피를 토하는 교주의 눈에, 금빛 눈동자를 빙글거리는 청년의 모습이 들어왔다.
“천서원… 네놈이 어째서…!”
비틀거리며 뒤를 돌아본 그의 시선에, 저 멀리 피 웅덩이에 쓰러진 광명좌사의 모습이 뒤늦게 비쳤다.
그제야 상황 파악이 된 그가 눈을 부릅떴지만, 그를 충격에 빠트린 것은 그의 배신이 아니었다.
기습을 통해 흘러들어온 기운이 너무나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애초에 평범한 무공이 건곤대나이로 보호받는 자신의 호신강기를 뚫을 수 있을 리 없었으니.
“네놈…! 건곤대나이를 익혔구나!”
비틀거리며 거리를 벌리는 그를 향해, 청년의 입 꼬리가 산뜻한 미소를 그렸다.
“야, 네 무공 쩔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