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65
흡성대법
“노사. 지금이라도 돌아가야 합니다.”
“안 된다니까.”
“함정임을 알면서도 말입니까?”
“그게 그렇게 쉽지가 않아.”
공동 한 구석에서 열린 무림맹 수뇌부 회의.
검성의 전인이라는 신분으로 회의에 참석한 나와, 현재 무림맹 진영을 이끄는 당가기 사이에선 잠시 설전이 오갔다.
그러나 설득은 쉽지 않았다.
“우리가 비동에 들어오게 된 과정을 생각해 보아라. 지금 나가도 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흡성대법을 발견하든가, 흡성대법이 없다는 증거를 발견하든가. 둘 중 하나가 아니고서야 군웅들은 물러나지 않을 게야.”
“하지만 이미 피해가 적지 않습니다.”
“네 말이 맞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이제 와서 비급의 실체도 확인하지 않고 탈출한다면 아무도 납득하지 않을 게야. 게다가 너도 보지 않았느냐.”
“…공동에 적혀있던 글귀 말씀이시죠.”
다음 관문이 마지막이라고 적혀 있던 낡은 비석.
그것을 본 순간 사람들의 얼굴에 피어났던 노골적인 욕망을 떠올린 난 짙은 한숨을 내쉬었다.
게다가 그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이대로 탈출해도 비동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상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난 암중세력이 준비한 함정이 겨우 이게 전부가 아닐 것이란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까지 겪은 함정도 충분히 위력적이었지만, 그보다 더욱 큰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러나 예감만으로 사람들을 설득할 수는 없는 법.
상황이 이렇게 되니, 명교에만 탈출을 강요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무림맹과 명교의 일시적인 협력체계가 구축됐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어떤 돌발상황에도 대비할 수 있도록 경계를 단단히 한 채 사람들의 뒤를 따르는 것 뿐.
“휘 랑, 그나저나 주 소협은 어디로 간 걸까?”
“다른 수련생들이 수군거리는 걸 들었다. 어쩌면 주 소협이 싸우는 틈을 타서 혼자 보물을 독차지하려는 걸지도 모른다고.”
“그건 아닐 거예요, 설 소저.”
나도 비슷한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었으나, 이전 녹화 영상들을 확인한 결과 무림맹과 명교 사이에 전투가 벌어진 동안 공동을 몰래 지나간 사람은 전무했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회의 도중에 잠깐 생각해봤는데, 다들 혹시 장 대협이 했던 말 기억해?”
“장 대협이요?”
“아, 소혜는 모르겠구나. 이번에 강은의 보호자로 함께 오셨던 무사님이야.”
“기억나요. 상황이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주 소협을 제압해서라도 데려가겠다고 하셨죠.”
말을 받은 것은 우희였다.
“응. 강은 성격에 우리에게 말도 없이 혼자 탈출하지는 않았을 것 같아. 아마 무림맹과 명교의 충돌 현장을 본 장 대협께서 손을 쓴 게 아닐까?”
“…가능성은 충분해요. 아무리 계승권이 낮아도 황자는 황자이니.”
강은이 사라진 뒤, 그가 실은 황실의 일원임을 전해들은 나머지 일행은 모두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
앞서가는 무리를 바라보는 홍사강의 눈빛이 깊어졌다.
그녀의 시선 끝에 위치한 것은 수려한 외모를 지닌 한 청년.
익숙한 뒷모습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았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그러나 기대와 달리 그는 자신이 아는 사내가 아니었다.
목소리도, 생김새도, 나이도. 모든 것이 달랐다.
하지만 그녀가 지닌 여인의 직감은 청년이 천서원과 어떤 식으로든 연관이 있을 것이라 속삭였다.
근거는 충분했다.
어린 나이에 수많은 선배 고수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 정도의 엄청난 내력.
팽소혜라는 꼬마 계집의 말이 진실이라면 그 역시 천서원과 같은 검술을 익혔을 터.
그뿐인가.
청년의 곁을 맴도는 검후의 존재.
그리고 자신과 마찬가지로 그가 있는 방향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천화대주, 심서우.
수상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좀처럼 확신할 수 없었다.
정파의 유망한 후기지수가 어느 날 난데없이 명교의 부교주 자리에 오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일까?
게다가 외형과 목소리는 그렇다 쳐도, 천서원을 상징하는 가공할 마기며 눈부신 금안의 부재는 어떻게 설명할 텐가.
그러나 그녀는 더 이상 생각을 깊게 이어나갈 수 없었다.
“찾았다!”
선두에서 들려온 외침에 그녀는 잡념을 버리고 검병을 움켜쥐었다.
흡성대법이나 보물 따위는 관심 밖이나, 그의 정체를 확인하는 것도 생존한 뒤에야 가능한 일이니.
“조가휘.”
어렵게 알아낸 청년의 이름을 읊조리는 여인의 두 눈에 결연한 의지가 깃들었다.
***
마지막 관문은 거대한 ‘벽’이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일부를 그대로 도려내어 만든 듯한 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절벽이라 불러도 될 정도로 거대했다.
고개를 꺾어도 끝이 보이지 않는 압도적인 절벽의 위용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곳이 동굴 안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소.”
“마치 산 속의 산이로다!”
“이게 도대체 몇 장이지?”
“지금까지는 암중세력이 이곳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수십 년 공사로도 불가능한 일이오. 과거에 만들어진 장소를 발굴하고 개량했다고 생각하는 편이 이치에 맞을 것 같소만.”
사람들은 저마다 벽에 손을 맞대고 공력을 운기하거나 장법을 내질렀으나 당연하게도 문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이쪽에 뭔가 있어요!”
누군가의 외침에 사람들의 시선이 한쪽으로 쏠렸다.
그곳엔 각기 손바닥 자국이 찍힌 비석 100여 개가 일정 거리를 두고 원을 그리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광장처럼.
그리고 그 중심에는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는 문구가 떡하니 새겨져 있었으니.
[혈마, 이곳에 잠들다.]“노골적이네.”
“묘한 장치네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 걸까요.”
우리 일행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성질 급한 누군가가 벌써 기관을 건드려본 듯 큰 소리로 외쳤다.
“일 갑자 이상의 힘을 담아 장인을 누르니 반응이 있다!”
“무슨 함정이 있을 줄 알고 경거망동 하느냐!”
“지금까지는 함정이 없었나? 다들 가만히 있지 말고 이리 와서 한 번 살펴보시오!”
“음… 혹시 비석들을 전부 동시에 눌러야하는 것은….”
“귀교엔 일 갑자 이상의 내력을 지닌 이가 몇이나 되오?”
난 갑론을박을 벌이는 사람들을 내버려 둔 채 다시 벽으로 향했다.
저들과 달리 내겐 벽 안쪽을 투시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자연히 나를 따르는 여인들의 발걸음 또한 벽 쪽을 향했다.
-휘 랑. 벽을 전체적으로 살펴봤는데 별다른 장치는 없는 것 같아.
-암중세력의 저력이 상상이상이에요. 여기 있는 사람들이 모두 힘을 모아도 문을 열지는 못할 텐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벽 너머에 흡성대법을 숨겨뒀을까요? 혹시 흡성대법의 존재자체가 거짓인 건….
-있어.
우희의 동공이 확대됐다.
-정말요?
-응. 분명히 있어. 진품인지는 모르겠지만.
난 카메라에 찍힌 풍경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거암절벽 너머, 거대한 반구형 공간의 중심.
고풍스러운 석조 제단 위에는 ‘흡성대법’이라고 적힌 비급이 버젓이 놓여 있었다.
뿐만 아니라 방송으로 쌓은 수십 갑자의 내공과 건곤대나이 신공의 신묘함이라면 나 혼자서도 이 절벽을 여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이토록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든 것을 드러낼 마음은 없다.
기껏 모은 내공이 아깝기도 하고.
게다가 비급은 하나고, 그것을 바라는 사람은 수십 명이다.
지금 이 문을 여는 건 헬게이트를 여는 것과 다름없다.
문제는 또 있다.
-가가, 암중세력이 흡성대법만 달랑 놔두지는 않았을 거예요.
-응. 그래서 나도 비급 주변을 살펴보는 중….
비급이 놓인 제단 밑을 카메라로 살피던 내가 눈을 부릅떴다.
보면서도 믿기 힘든 광경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다.
“저건… 설마.”
순간, 전율이 일었다.
이제야 알 것 같다.
절벽 앞에 마련된 장치의 의미를.
그리고 그것을 설치한 암중세력의 의도 역시.
“왜 그래요, 가가?”
“처음이 아니었어.”
“네?”
“난 과거에 이미 암중세력과 만난 적이 있었어.”
난 두 눈이 휘둥그레진 우희를 향해 초조함을 담아 속삭였다.
“최대한 빨리 여길 빠져나가야 해.”
***
밤이 되었다.
아니, 지금이 밤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그저 체감 상 피로를 통해 휴식을 취할 때가 되었음을 짐작할 뿐.
절벽에 도착한지 세 시진이 넘게 지났지만 결국 문은 열리지 않았다.
온갖 수를 다 시도해보던 사람들도 지금은 지쳤는지 다 나가떨어진 상황.
“꼼짝도 않는구려.”
“처음 말했던 대로 비석을 작동시킬 고수가 모이길 기다리는 수밖에.”
-부교주께선 혹시 묘수가 없으신지.
-글쎄요.
곽정유의 전음에도 난 그저 어깨만 으쓱할 뿐이었다.
저 너머에 무엇이 도사리는 줄 빤히 아는 마당에 미쳤다고 문을 열어주겠는가.
사도련주가 이 자리에 없길 천만다행이다.
그가 전력에 더해졌다면 자칫 일이 복잡해질 뻔했다.
“오늘은 이만 휴식을 취하고 내일 마저 시도해봅시다.”
“…허튼 짓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요. 아직 그대들에 대한 의심이 풀린 것은 아니니.”
“홍 대주는 우리 쪽에서 철저히 관리하지. 허나 전투 명령을 내린 것은 그대들이 먼저임을 잊지 마시오.”
그렇게 날 선 대화를 끝으로 무림맹과 명교 사람들은 각기 벽 앞에 무리를 지어 휴식에 들어갔다.
이제 움직일 시간이다.
-금방 다녀올게.
-정말 혼자서 괜찮겠어?
-같이 가면 괜히 의심만 살 거야. 그리 오래 안 걸릴 테니까 너무 걱정 마.
우희, 약빈이와 전음을 마친 난 이제 막 잠에서 깬 것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내 딴에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행동한 것임에도, 공동 곳곳에서 시선들이 꽂혀들었다.
보물을 코앞에 두고 다들 경계심이 높아진 것이리라.
허나 이내 내 걸음이 절벽과는 정반대인 비동의 출구방향으로 향하자 사람들의 관심은 금세 옅어졌다.
그곳은 양측 사람들이 요의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드나드는 장소였으니.
그럼에도 굳이 벽려군이 보초를 서는 순간을 노려 행동을 개시한 것은 만전을 기하기 위함이었다.
-다녀오겠습니다.
-부디 조심하세요.
벽려군과 잠시 눈빛을 교환한 나는 사각지대에 접어들자마자 신속히 신법을 전개했다.
함정은 오는 길에 모두 해제한 덕에 내 앞길을 가로막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로부터 반 각이 흘러 도착한 곳은 모두가 잠든 공동에서 제법 떨어진 외딴 통로.
그리고 이곳이야말로 흡성대법과 이어지는 또 하나의 비밀 문이 있는 장소였다.
난 낮 동안 카메라로 절벽 너머를 관찰하는 과정에서 이곳을 발견해냈다.
그리고 이곳을 여는 열쇠 또한 내 품 안에 있었으니.
“안 가져왔으면 큰일 날 뻔 했네.”
잘그락, 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낸 것은 같은 문양이 새겨진 두 개의 패.
각기 명교의 반란과 개방도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얻은 암중세력의 물건이다.
잠시 주위를 둘러보던 나는 이윽고 동굴 천장에서 패와 딱 맞는 크기의 구멍을 찾을 수 있었다.
내공으로 강화된 시력이 아니었다면 죽었다 깨어나도 발견하지 못했을 틈새는, 지금 눈앞에 보이는 암청색 동굴 벽 건너편에 위치한 구멍과 똑 닮아 있었다.
“맞겠지? 맞아라….”
보다 고급스러운 재질인 마교주의 패 하나만 손에 남긴다.
확신은 없었다.
그저 짐작일 뿐.
아마 이게 안 통하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러나 손가락으로 튕긴 패가 천장의 구멍에 달칵 소리를 내며 꽂혀 들어간 순간, 난 확신했다.
내 짐작이 정답이었음을.
드르륵-.
벽으로밖에 보이지 않던 암반이 부드럽게 옆으로 밀러나며 어둠에 잠긴 계단이 드러났다.
더 이상 어떤 망설임이 필요할까.
곧장 어둠 속으로 몸을 날린 나는, 머잖아 낮에 확인했던 제단을 실제로 마주할 수 있었다.
[흡성대법]“이게….”
하늘이 정해준 천명마저 거스를 수 있다는 희대의 마공이자, 이 모든 사달의 원흉.
하지만 앞으로 뻗은 내 손은 비급에 닿기 직전 우뚝 멈춰섰다.
건드릴 리 없잖은가.
이 책을 집는 순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눈에 훤한데.
“…설마 그자들이 암중세력이었다니.”
혼잣말과 함께 날아간 카메라를 동굴벽이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그리고 그 내부에는 나도 익히 아는 물건이 깊숙이 매설되어 있었다.
“벽력탄.”
무공이 절정에 이른 무인들조차 두려워하는 마물.
심지어 한두 개도 아니다.
내가 카메라를 날리는 곳곳마다 적게는 서너 개에서 많게는 십여 개의 벽력탄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번 관문이 돌파되지 않길 원하던 이유이자, 기억 저편에 묻어둔 과거의 어떤 순간을 떠올리게 만든 원인.
그렇다.
난 이와 비슷한 광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정확히는 이처럼 많은 벽력탄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 광경을.
마교 성염대의 습격을 허용한 천무학관이 장기 휴학에 들어간 사이, 약빈이와 부부로 위장하여 중원을 여행하는 과정에서.
설마 그 때 표행 중에 발견했던 벽력탄 더미의 배후가 암중세력과 맞닿아 있었다니.
세상에 벽력탄을 그리 긁어모은 집단이 더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면, 내 추측이 맞을 것이다.
“세상 참 좁아.”
당시 그들의 음모를 저지할 수 있었더라면 더 할 나위 없었겠지만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차라리 다행이다.
그 시절의 내 실력으로 이런 규모의 비동을 몰래 만들 수 있는 자들을 상대하는 건 역부족이었을 테니.
회상에 잠겼던 것도 잠시, 난 다시 신중한 눈으로 벽 너머를 살피기 시작했다.
벽력탄이 매설된 장소들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으니,
그것은 각 장소에 설치된 도화선이 전부 한 곳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끝에는 다름 아닌 비급이 놓인 제단이 있었다.
아마 비급을 함부로 집거나 펼치는 순간, 내부의 기폭장치가 작동하여 이곳을 거대한 무덤으로 만들 것이다.
욕심에 못 이겨 비동에 들어선 무림인들은 혈마의 영면을 위한 또 다른 제물이 되리라.
절벽 앞에 설치된 기관장치 역시 최대한 많은 고수를 저승길로 인도하려는 의도로 만들어진 것이 분명했다.
1갑자 이상의 내공을 지닌 고수들이 100여명 가까이 모여야 작동하는 장치라니, 그 악랄함에 치가 떨릴 정도다.
물론 그건 내가 없었을 때의 이야기다.
몰랐다면 모르되 적들의 의도를 안 이상 순순히 당해줄 생각은 없다.
“시작해볼까?”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난 즉시 건곤대나이를 운용하기 시작했다.
힘의 작용과 방향을 다루는 무공인 건곤대나이가 경지에 이르면 염동력이나 다름없는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거기에 시야 확보에 탁월한 카메라의 힘이 더해지니,
난 그저 가만히 앉아 바닥으로 진기를 흘려 넣는 것만으로도, 일체의 자극 없이 오로지 벽력탄과 연결된 기폭 장치들만을 정확히 망가뜨리는 것이 가능했다.
“후….”
작업을 마칠 때까지는 불과 5분이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도 혹시 못보고 지나친 함정이 있을까봐 두 번, 세 번 확인하느라 늦어져서 그렇지 실제 걸린 시간은 더 짧았다.
그렇게 함정해제까지 마친 뒤, 난 마침내 위험이 사라진 비급 앞에 다시 섰다.
이걸 어떡하는 게 좋을까.
가지고 나가봤자 분란만 일으킬 게 분명한데, 그냥 확 삼매진화로 태워버려?
“여러분 어떡할까요? 펼치는 순간 마공에 잠식당하면 어쩌죠?”
[크래카라 : 시청자들한테 묻는 것 자체가 욕심난다는 증거] [비굴링 : 마기가 이미 천마 수준인데 왜 정파인 척 함] [독서의가치 : 결국 볼 거면서 뜸들이지 마] [헨젤 : 나쁜 놈 되기 싫어서 시청자들 핑계대려고 선택 떠넘기는 인성 ㅋㅋ] [카시 : 벽려군은 웃을 수 있을까]“예, 봅니다. 봐요.”
잠시 고민하던 난 결국 비급으로 손을 뻗었다.
여태까지의 고생이 아까워서라도 한 번 살펴보기나 할 요량이었다.
“안에 ‘속았지?’ 같은 거 적혀있으면 개빡치는데, 진짜.”
다행히 함정은 작동하지 않았다.
그러나 비급 첫 장을 펼친 난 다른 의미에서 움찔 놀라고 말았다.
비급이 군데군데 찢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특정 단어에서만.
[마침내 ■■■를 운용할 수 있는 이론을 완성했다. 하지만 정작 조건을 만족시키는 실험체는 찾을 수 없었다.]“뭐야, 이거.”
마치 화풀이를 한 듯한 흔적들에 난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어느새 내 손가락은 다음 장을 펼치고 있었다.
[어쩌면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태어나는 선천진기라면 ■■■를 대신할 수 있지 않을까?] [■■■의 운용법에 선천진기를 흡수하는 구결을 덧붙여 흡성대법이라 명명했다. 구결은 다음과 같다.]……
……
……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실패했다. 타인의 선천진기를 흡수한 실험체들은 수명이 대폭 늘어나는 현상을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인간의 형상을 잃어갔다. 그나마 싹수가 보이던 혈마라는 놈이 제법 버티기는 했지만 결국 놈도 마지막에는 괴물 같은 형상이 되어 폐기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였다면 열 갑자의 수명도 꿈은 아닐 텐데] [몸이 늙어간다. 아직 세상은 신비로 가득한데 내겐 더 이상 연구를 계속할 힘이 없다. 원통하다.]팔락, 팔락-.
난 숨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비급을 탐독했다.
내용의 기괴함도 기괴함이지만, 어딘지 묘하게 익숙한 문체가 책장을 넘기는 내 손가락에 속도를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긴 순간,
손에서 비급이 흘러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