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77
무릉도원 (3)
려군, 왜 옷을 홀딱 벗고 자고 있어요.
아무리 여름이라도 그렇지 그러다 감기 걸려요.
어라?
나도 알몸이네?
아하… 하….
좆 됐네, 진짜.
아무리 부정해도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되살아나는 기억과 함께 점차 선명해질 뿐.
뜨거운 입맞춤 사이로 부딪히던 숨결.
스치는 살결의 부드러움과 온기.
내 허리를 꽉 휘감던 늘씬한 두 다리와 귓가로 쏟아져 들어오던 달뜬 교성.
그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생생했다.
그 뿐인가?
물증마저 낭낭하다.
그녀의 알몸 곳곳에 남은 붉은 자국들은 키스마크가 아니면 무엇일까.
모기?
모기한테 이도 달렸나?
그녀의 가슴 한 켠에 남은 잇자국과 내 입 크기를 대조하며 좌절하던 그 때,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는 충격이 뒤통수를 강타했다.
‘피임…했던가?’
으아아아!
난 다시 머리칼을 쥐어뜯기 시작했다.
기억이 안 나서가 아니라 너무 선명해서.
이 미친놈아, 아무리 정신이 없어도 그렇지!
수차례 정사를 나누는 동안 단 한 번의 피임 시도조차 없었음을 떠올린 난 누운 채로 발을 동동 굴렀다.
혹시 몰라 집을 나설 때 챙겼던 초박형과 돌기형은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 유실된 지 오래.
설혹 가지고 있었다 한들 어제처럼 이성을 잃은 상황에서 제대로 사용했을지는 의문이지만….
“후….”
진정하자, 진정해.
이미 벌어진 일이야.
중요한 건 수습이니까.
일단 려군이 일어나면 정중히 사과부터 하자.
그리고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어쩌지, 씨발?
사고였어요, 려군. 미안해요?
이건 개 쓰레기지.
그보단 차라리 당당하게 우희랑 약빈이한테 무릎 꿇고 려군을 받아달라고 빌면… 그것도 쓰레기잖아!
뭘 선택해도 쓰레기 확정.
그래도 하나만 고르라면… 역시 후자겠지?
결과가 어찌 될 진 모르지만 시도는 해보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나니 한 가지 고민이 더 생긴다.
우희와 약빈이에게 어디까지 밝힐 것인가.
동굴에 갇힌 남녀가 죽을 고비를 넘기며 애정이 싹 틀 수는 있다고 쳐.
그럼 둘이 잔 건?
이걸 말해야 돼, 말아야 돼?
“…….”
난제다.
사고 친 걸 말 안 하자니 둘을 속이는 꼴이요, 그녀들을 볼 때마다 양심이 찔릴 게 분명하다.
벽려군에게도 거짓말을 시켜야 하고.
그럼 말 해?
이쪽도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긁어 부스럼이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참고로 괘씸죄라는 말도 있다.
자기 전도 아니고 자고 나서 허락을 받는다?
벽려군이 내 목숨을 살려줬으니까?
월급 주니까 때려도 된다는 말과 뭐가 다른가.
장담하는데 역효과가 날 게 뻔하다.
아, 그럼 어떡하냐고! 어떡하냐고!
미치겠네, 진짜!
팔찌는 왜 또 이 타이밍에 끊어져서 사람을 심란하게 하는 지.
오늘따라 허전한 손목을 멍하니 바라본다.
명교에 갇혀 있을 때도.
만장단애에서 추락했을 때도.
미로나 다름없는 동굴을 탈출했을 때도 내 곁을 지켜주었던 팔찌.
그 때마다 우희가 멀리서 보살펴준 것이 분명하다며 애틋한 감상에 젖었건만.
현재 팔찌는 올올이 풀어진 채 내 품 안에 고이 잠들어 있다.
나의 외도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미안해, 얘들아.’
죄책감과 함께 원망이 솟구친다.
그 복숭아.
겉도 속도 새빨갛던 그 복숭아만 아니었어도.
람쥐가 따다 준 복숭아는 성경에 등장하는 선악과처럼 나와 려군을 변모시켰다.
이성으로 억누르고 있던 서로에 대한 감정을 주체할 수 없게 만들었다.
지난 밤 그녀에게 속삭인 사랑의 말들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그 순간만큼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 보였고, 안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다.
우희와 약빈이의 모습조차 떠올릴 수 없을 만큼.
그러나 이런 계기가 없었다면 평생 가슴 속에 묻어두었을 마음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드러내어 파국을 초래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는데.
“하….”
혹여 려군이 깰까 실낱같은 한숨을 쉬며 이 사태의 원흉인 람쥐를 찾는다.
머잖아 시원한 나무 그늘 밑에서 배를 바닥에 깐 채 세상모르고 잠든 녀석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자냐.
이 사달을 일으켜놓고 잠이 와?
아니지.
누굴 탓하겠는가.
람쥐가 내 입에 복숭아를 억지로 쑤셔 넣은 것도 아니고.
검증도 안 된 과일을 덜컥 려군과 나눠 먹은 내 잘못이지.
“하….”
이제 모르겠다, 나도.
체념 어린 한숨을 터뜨리던 내 눈에 문득 빠르게 올라가는 채팅창이 들어온다.
채팅창 너머로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복잡하기 그지없는 내 심정과 달리 맑고 화창한 하늘이.
그래도… 어떻게 카메라는 돌렸구나.
천만다행이지.
벽려군과 알몸으로 뒤엉킨 모습이 전 세계로 송출되는 참사만은 피했으니.
그러나 흘러가는 채팅들을 멍하니 바라보던 난, 이윽고 사태가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깨달았다.
[눕맨 : 깐휘 아직도 힘쓰니?] [스루가 : 이제 자는 듯] [awse12345 : 무슨 일 있어요?] [dltjdgur1 : 어제 레전드ㅋㅋ 려군 눈나 좋아죽더라 신음ㄷㄷ] [헨젤 : 가휘 님 좋았나요?] [리더유라 : 몇 시간을 하는 거야] [thot2020 : ASMR 오졌음] [집무광 : 운우지정 멈춰!]잠깐만…. 이게 무슨 소리야.
신음? ASMR?
아니, 답은 진즉 깨달았다.
그저 눈앞의 혹독한 현실을 외면하고 싶었을 뿐.
씨발… 여기 야외였지.
지난 밤 간과한 사실을 떠올리며 난 다시 머리를 짚었다.
***
[아시다시피 OTube 커뮤니티 가이드에 OTube에서 허용되는 콘텐츠와 허용되지 않는 콘텐츠가 설명되어 있습니다.동영상 (무릉도원의 마지막 밤)이(가) 검토를 위해 신고되었습니다. 검토 결과 동영상이 가이드를 위반하는 것으로 확인되어 OTube에서 삭제되었으며 계정에 커뮤니티 가이드 위반 경고 또는 일시적인 제한 조치가 주어졌습니다.]
“하….”
설상가상이라더니.
안 그래도 머리가 복잡한데 이건 또 무슨.
대체 이게 얼마 만에 보는 경고 메시지더라?
내게 깐휘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안겨준 노출 방송 이후 초유의 사태다.
길게 쓰인 주의문을 짧게 요약하자면 어제 문제가 된 영상은 삭제 처리되었으며,
90일 이내에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경우에는 1주일 간 동영상 업로드와 실시간 스트리밍 금지된다는 내용이었다.
일주일 스트리밍 정지.
남들이 보기엔 별 것 아닌 문제지만 내 경우는 다르다.
실시간 스트리밍 금지는 곧 내공의 동결을 의미하니.
바야흐로 석 달 간은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할 판국이다.
문제는 또 있었다.
인터넷에 공개된 자료는 대개 엎질러진 물과 마찬가지로 다신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설령 원본을 지우더라도 영원히 박제되어 인터넷 공간을 떠돌게 되는 것이다.
인터넷방송 역시 마찬가지.
콘텐츠 생산능력은 전무하나, 타인의 자료를 퍼 나르는 일에는 남다른 재주를 지닌 이들을 우린 이렇게 부른다.
사이버 렉카라고.
[조가휘 무릉도원 영상 원본 얼마나 야한 지 직접 들어봤습니다.] [버츄얼 세계의 자유는 어디까지 허용되는가] [무림티비 구독자들이 난리난 이유]제목도 제목이지만 썸네일은 더 가관이다.
[삐- 삐-계곡에 울려 퍼지는 여자의 XX소리
이걸 다 들려준다고?]
“자극적인 거 봐라.”
려군과 내 모습을 조악하게 합성해놓은 이미지를 보자 골이 다 아파왔다.
그러나 난 내상을 입을 것을 뻔히 알면서도, 조회수 높은 렉카 영상 하나를 클릭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 어디 구경이나 한 번 하자.
얼마나 대형 사고를 쳤는지.
머잖아 화면에서는 사람의 목소리인지 기계음인지 알 수 없는 내레이션과 함께 지난 밤 내 채널에서 벌어진 일들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무협 방송이라는 독특한 콘텐츠로 오랜 인기를 끌고 있는 O튜버 조가휘가 지난 밤 논란에 휩싸였습니다.조가휘는 과거에도 기존의 환생 컨셉을 버튜버 컨셉으로 변경하는 등 몇 차례 논란을 겪은 바 있는데요.
해당 영상에서는 성관계를 연상시키는 신음소리가 적나라하게 녹음되어 현재 원본은 삭제된 상황입니다.
직접 들어보시죠.]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배경으로 벌레 지저귀는 소리, 냇가의 물 흐르는 소리가 아름답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사이로 이따금 들려오는 삐- 소리.
내레이션에 따르면 나와 려군의 치태를 그대로 들려줄 수 없어 덧씌운 기계음이라고.
핵심 내용이 쏙 빠진 게 과연 전형적인 렉카 영상답다.
그러나 마냥 무시할 수 없는 것은 거기 달린 댓글들 때문이었다.
[빅그림 : 어제 본방 ㄹㅇ 전설이었는데] [yhs21cm : 검후 눈나 목소리 커엽] [크래카라] 1시간 전(수정됨)원본 기준 타임라인입니다.
00:27 키스 시작. 화면전환
38:52 찰싹
53:15 사랑해요, 가휘
1:00:38 오빠(한국어)
좋아요 1.1천 싫어요 –
*답글 숨기기
ㄴ 미푸새 : 원본 좀….
ㄴ 디프리스 : 려군 눈나 나 죽어
ㄴ 홍룽룽 : 강호의 아랫도리는 지켜졌다
ㄴ June : 깐휘 쉑 취향ㅋㅋ 10살 연상 누나한테 오빠라고 부르라고 시킨 거 뭐냐
ㄴ 시류딱 : 나중에 다 뜨겠지?
ㄴ 펭귄목살 : 둘이 키스하자마자 녹화 떴는데 진짜 별 거 없음
ㄴ 굼굼 : 음량 최대로 높여야 간신히 들리고 더 키우면 뭉개짐
돌겠네.
난 렉카 영상에 달린 댓글들을 보며 머리를 쥐어뜯었다.
오늘만 벌써 몇 번째 자학인지, 이러다 대머리가 될 판이다.
아니야.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소리는 못 지켰지만 화면이라도 지킨 게 어디야.
소리도 음량 최대로 높여야 들릴랑 말랑 하다잖…아.
[조가휘 : 여러분 전 어떡해야 하나요]나도 모르게 시청자들에게 푸념을 늘어놓아 보지만, 기다렸다는 듯 돌아온 것은 평소보다 한층 업그레이드 된 비아냥거림 뿐.
[tjsdn6134 : 카메라 돌릴 땐 언제고 자기 필요할 때만 시청자 찾네] [원퉁사 : 깼으면 말을 해 깐휘야 어제 좋았어?] [Nishikien : 운우지정 어서 오고] [비굴링 : 1인칭이었을 때가 좋았다] [취킨김밥 : 뭘 어떻게 해ㅋㅋㅋ 나이스보트지] [kss5263 : 지금까지 무림티비를 시청해주셔서 감사합니다] [Ordimary : 형 드디어 조/가/휘 되는 거야?] [Gustab : 마 려군 눈나가 오빠라고 불러주니까 좋드나]내가 미쳤지.
누구한테 위로를 받겠다고.
“하….”
한숨을 쉬며 몸을 돌리던 내 몸이 딱딱하게 얼어붙었다.
“…잘 잤어요?”
“…네.”
“어제 일 기억나요?”
어느새 잠에서 깨어 날 바라보던 벽려군의 눈이 초점을 잃고 허공을 헤맸다.
그런데 하필 그 자리에 내 분신이 있다.
아침이라 그런지 유독 강하게 자기주장을 펼치며.
“아…!”
얼굴을 확 붉힌 그녀가 황급히 몸을 돌렸다.
나 역시 민망함에 얼른 그녀를 등지고 돌아누웠다.
그러나 우리는 알 수 있었다.
서로의 의식이 오직 등 뒤의 상대를 향해 있음을.
“어제의 일은….”
침묵 끝에 힘겹게 말문을 연 그녀에게 난 일단 사과부터 박았다.
“어제 저녁에 먹은 복숭아가 원인이었어요. 미안해요, 려군.”
“…역시 그랬군요. 이상을 느꼈을 땐 저도 스스로를 제어할 수 없었어요.”
“제 잘못이에요. 제대로 검증도 안 된 과실을.”
“아니에요. 고장난명이라잖아요. 나도… 가휘를 거부하지 못했는걸요.”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 끝에 이번에도 먼저 입을 연 것은 그녀였다.
“가휘, 나 때문에 너무 염려하지 마요. 사고였잖아요. 이번 일은 비밀로 해요.”
“네?”
“가휘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어제의 일은 그냥 나 혼자 좋은 추억으로 간직할게요.”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부끄러웠다.
우희와 약빈이에게 변명할 말을 생각하느라 정신이 없던 나와 달리, 그녀는 이 순간에도 날 먼저 위로했다.
내가 먼저 했어야 할 말인데.
“그러지 마요, 려군. 다 내 잘못이에요. 려군이 잠들어 있는 동안 생각해봤어요. 려군만 괜찮다면 제가 애들한테….”
“아뇨, 조가장에 우환을 만들고 싶지 않아요.”
“려군, 잠시만.”
“저 씻고 올게요… 아?”
잽싸게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녀가 갑자기 흠칫하여 다리를 오므렸다.
이윽고 가랑이를 손으로 틀어막은 채 냇가로 엉거주춤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새하얗게 흔들리는 엉덩이를 본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툭 끊어졌다.
“또…?”
난 이를 악물고 저항했지만 삽시간에 뇌리로 뻗어나가는 욕망을 잠재우기엔 역부족이었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그녀를 뒤에서 끌어안고 있었다.
“려군.”
“아! 어째서…?”
“미안해요. 나 또….”
“아… 으응-.”
그녀의 어깨를 간신히 덮고 있던 장포가 바닥으로 흘러내리며 서로의 알몸이 거세게 부대꼈다.
당황하여 얼어붙어 있던 그녀의 눈에도 머잖아 정염의 불길이 피어났다.
곧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입을 맞추며 허겁지겁 서로를 탐하기 시작했다.
“쯋?”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던 람쥐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주고, 계곡에는 어제에 이어 다시금 열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지난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거대한 열풍이.
“가휘, 조금만 진정… 아…!”
그녀와 함께 한 추억들이 보다 강렬한 색으로 덧씌워졌다.
함께 미역을 감던 개울, 둘이 함께 꾸민 아기자기한 집, 과일을 나눠 먹던 시원한 나무 그늘 모두가 우리의 침실이 되었다.
우리가 계곡을 나선 것은 그로부터 3일이 더 지나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