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80
생환 (3)
지금쯤이면 집에 서신이 도착했으려나?
난 보름 만에 연락이 닿은 수진이와의 채팅창을 향해 다시금 감사 인사를 전했다.
[조가휘 : 고마워 수진아] [박수진 : 둘이 잔 건 얘기 안 했어] [조가휘 : 어, 그래 ; 진짜 고맙다….] [박수진 : ㅋㅋㅋㅋ 근데 진짜 어떡할 거야? 우희 충격 받아서 쓰러지는 거 아니야?] [조가휘 : 하…]현실에서도 채팅을 닮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조가휘 : 모르겠다 진짜… 일단 무릎부터 꿇어야지] [박수진 : 잔 건? 얘기 안 해?] [조가휘 : 같은 여자 입장에서 볼 때 어느 게 나아? 남친이 딴 여자랑 잔 거 솔직히 말하고 용서 구하는 거랑 그냥 숨기는 거랑] [박수진 : 뭘 어느 게 나아 둘다 좆같지ㅋㅋㅋㅋ 쓰레기야] [조가휘 : ㅆㅂ]묵직한 팩트폭격에 가슴이 쓰리다.
그러나 수진이의 독설은 이제 시작이었다.
[박수진 : 오빠는 그냥 좆 잘못 놀려서 좆된 거야] [조가휘 : 이새끼 말 심하게 하네…] [박수진 : 솔직히 오빠가 많이 잘생긴 건 인정하는데 이럴 때보면 내가 얼빠가 아니라 다행이지? 오빠 같은 바람둥이 좋아하면 여자 인생 꼬이는 건 순식간이지] [조가휘 : 양심 어디 갔냐 교주님도 엄청 잘생겼는데 그리고 그건 정말 복숭아 때문에 일어난 사고야] [박수진 : 뉘예뉘예]꿀밤 마렵네, 진짜.
할 말을 찾지 못해 부들거리는 내게 그녀가 제시한 해법은 매우 간단했다.
[박수진 : 연인끼리 화해할 때 제일 좋은 게 ㅍㅍㅅㅅ잖아 코끼리 방중술로 어떻게 해봐] [조가휘 : 좀 진지하게 답해봐] [박수진 : 농담 아닌데? 결혼 센빠이의 경험담을 믿거라ㅋㅋㅋ 봐라 나중에 내 말대로 된다]이 이상 그녀와 대화를 나눠봤자 뾰족한 해결책은 떠오르지 않을 게 분명했다.
약만 오르지.
[조가휘 : 너랑 교주님은 이제 어떡할 거야?] [박수진 : 모처럼 여기까지 왔는데 한 번 만나야지. 아마 오빠 도착할 쯤이면 우리도 호북성 근처일 거 같은데? 연락하고 한 번 만나. 나 오빠 가족 보고 싶어] [조가휘 : 오랜만에 주아도 볼 수 있겠네?] [박수진 : 우리 주아는 절대 못준다 이 난봉꾼아] [조가휘 : 야이씨]정신없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제법 시간이 지나 있다.
난 교주에게 전하는 감사 인사를 마지막으로 대화의 끝을 고했다.
[조가휘 : 나 이제 간다. 교주님께도 감사 인사 전해드리고] [박수진 : 엉] [조가휘 : 나도 교에 무슨 일 생기만 만사 제치고 도울 테니까 힘든 일 있으면 꼭 말하고, 지섭 씨도 양쪽 채팅 옮기느라 고생했어요] [박수진 : 예, 형님]이번 일로 교주에게 상당한 은혜를 입었다.
무림맹주가 날 자신의 전인으로 공표했을 때 호응하고 나선 것이 그니까.
그는 대중들 앞에서 건곤대나이를 사용한 날 지키기 위해 꽤나 무리수를 뒀다.
암중세력의 일원인 전대교주를 몰아내는 과정에서 무림맹주의 전인인 내게 도움을 받았음을 시인한 것이다.
비록 암중세력이 수많은 무인들을 생매장시키려던 사악한 집단임이 만천하에 드러났지만, 교권찬탈에 타인의 개입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자칫 교권이 흔들릴 수 있는 중대한 흠결.
그것을 나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이리 선뜻 공표하다니, 그의 사람 됨됨이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정마 두 지존의 공증 하에 내 명성은 한 달 반만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불과 약관의 나이에 무림맹주의 비전을 이은 전인이자, 명교의 부교주이며, 혈마의 비동에서 수많은 무인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한 시대의 영웅.
객잔이든 다루든 사람이 모이는 곳에선 어디서나 내 얘기가 흘러나왔다.
그렇다. 난 현재 강호에서 가장 핫한 셀럽이다.
사망처리 됐지만.
그러나 유명세를 즐기기엔 상황이 좋지 않았다.
아직 강호에 암중세력이 멀쩡히 살아 숨쉬는 판국에, 내 생존소식이 알려지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야 뻔했으니.
서신으로 가족들에게 함구를 당부하고 조용히 복귀하는 이유다.
“선장. 여기서 호북까지는 얼마나 걸리오?”
“그쪽도 조가장에 가는 길이요?”
“그쪽도? 천하의 정마협을 배출한 가문이니 협사를 자칭하는 입장에서 안 가볼 수 없지.”
“그나저나 안타까운 일이오. 그런 영웅이 이리 일찍 생을 마감하다니.”
“그러게나 말이야. 미인박명이란 말이 있지만 천하에 이름을 떨친 영웅들이야 말로 박명이 아닌가!”
마침 근처에서 들려온 이야기에 상념에서 깨어난 내게, 곁에 앉은 벽려군이 뿌듯한 미소를 건네왔다.
“들었나요, 가휘? 정마협이래요. 모두들 휘를 영웅이라고 칭송하고 있어요.”
“어째 려군이 더 기뻐하는 것 같네요.”
“그냥… 가휘가 좋아서 그런가봐요.”
“가끔 그렇게 훅 들어오더라.”
현재 나와 려군이 있는 장소는 사천과 호북의 경계를 따라 흐르는 강줄기의 어느 선상(船上).
벌써 며칠 째 쉬지 않고 경공을 펼쳤으니, 오늘 하루 정도는 배에 몸을 실은 채 느긋하게 보낼 생각이었다.
주위에 기막을 두른 덕에 우리의 대화는 남들 귀에는 들리지 않았고,
얼굴도 각기 갓과 면사를 구해 가린 덕에 서로의 외모 때문에 시선을 끄는 일도 없었다.
그렇게 도란도란 주변의 방해 없이 이야기 꽃을 피우던 그 때, 뱃머리 부근에서 소란이 일었다.
첨벙! 첨벙! 촤아악-!
강물을 가르며 솟구친 웬 그림자로부터 사나운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리는 장강수로채에서도 구어억?”
뽀글뽀글.
“뭐, 뭐였지?”
“글…쎄?”
사람들은 등장보다도 빠르게 사라진 습격자의 잔상을 멍하니 쫓았다.
재빨리 검을 들고 일어났던 몇몇 무인들도 머쓱하니 제자리로 돌아가는 가운데, 오직 벽려군만이 그것이 내 소행임을 깨닫고 툭툭 어깨를 부딪혀 왔다.
“가휘예요?”
“여행은 조용한 게 좋으니까요. 아니면 강호에 진정한 검후의 출두를 알리는 제물로 삼는 게 좋았을까요?”
“저를 피에 굶주린 살인마로 보는 건 아니죠?”
“…….”
“가-휘?”
우리가 꽁냥거리는 동안 배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평화로이 강물을 가로질렀다.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만 할 뿐 여전히 알지 못했다.
지금 물속에 이십 명에 달하는 수공의 고수들이 건곤대나이의 기운에 묶여 옴짝달싹 못하고 있음을.
그것을 펼친 이가 자신들이 조금 전까지 입방아를 떨던 소문의 당사자라는 사실도.
“죽일 건가요?”
“거지와 도적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들 하죠. 누군가 그 자리를 채울 뿐이라고. 적당히 혼내줬으니 배가 지나가면 풀어줄 생각이에요.”
주위에 동료들도 잔뜩 있는 것 같으니 죽는 이는 없겠지.
“제가 나설 틈이 없네요.”
빙그레 웃은 려군이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나 역시 그녀에게 머리를 기댄 채 흘러가는 경치들을 말없이 감상했다.
무릉도원을 떠난 뒤로 우린 의식적으로 잠자리를 갖지 않았다.
비록 한 때 복숭아 기운에 취해 사고를 쳤으나, 우희와 약빈이에게 허락을 받기 전까지 떳떳하지 못한 행위는 삼가자며 상의를 마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서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친 우리 사이는 날이 지날수록 더욱 애틋하고 돈독해지고 있었다.
“내일이면 드디어 호북이네요.”
“네. 드디어.”
“…두 사람에게 할 말, 정했나요?”
“아직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잘 될 거예요.”
그녀가 내 손 등을 쓰다듬었다.
나 역시 그녀의 손을 꼭 잡은 채 우린 오래도록 체온을 나누었다.
***
호북성 양양, 곡성현.
수십 년째 이곳 시장에서 당과 장사를 하는 허씨는 오늘도 암운이 감도는 조가장 방면을 바라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무슨 일이라도?”
“어이구, 어서 오십쇼.”
몸에 밴 접객 인사와 함께 고개를 돌린 그의 눈에, 갓과 면사로 얼굴을 가린 두 남녀의 모습이 보였다.
“타지에서 오셨수?”
“네, 호북은 간만이네요.”
“저기 거대한 장원 보이시오? 저기가 바로 정마협을 배출한 조가장이오. 참 서글서글하고 착한 분이었는데 어쩌다… 에잉.”
“잘 아시나봐요?”
“알다마다! 어릴 적에는 시녀 손을 꼭 붙들고 와서 당과를 사가곤 했지.”
대답을 들은 여인이 면사 너머로 맑은 웃음을 터뜨렸다.
“조가장 소공자가 당과를 좋아했나 봐요.”
“아니? 시녀가 좋아했지. 맨날 작은 공자를 꼬드겨서 당과를 사가더니, 몇 년이 지나니까 이번에는 어린 아가씨가 공자 옆을 졸졸 따라 다니더라고. 참 어려서부터 인물이 좋았지. 여자 여럿 울릴 얼굴이었어.”
“…그렇다네요.”
면사 여인의 말에 갓을 쓴 사내가 어깨를 으쓱하며 철전 몇 개를 내밀었다.
“당과 몇 개 주세요.”
“당과 좋아하시우?”
“아는 사람이 좋아해서요.”
허씨는 어쩐지 눈앞의 사내가 익숙한 기분이 들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당과를 건넸다.
하루에 장사를 하며 지나치는 사람만 해도 수백은 가뿐히 넘으니 필시 누군가와 헷갈린 것이겠지.
“또 오시오!”
“네, 많이 파세요.”
“많이 파세요.”
꼭 붙어 인파 사이로 사라지는 남녀를 보며 허씨는 부러움을 담아 읊조렸다.
“좋을 때다, 좋을 때야.”
그 한 마디를 끝으로 점포 주위는 다시 행인들의 시끌벅적한 목소리들로 가득 찼다.
“좋을 때라네요?”
“하하…. 그나저나 다들 제대로 해주고 있나 보네요.”
무릉도원을 떠나 호북성에 오기까지 벌써 가족들과 수차례 서신을 주고 받았음에도, 시중에는 여전히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가족 모두 암중 세력을 속이려는 내 계획대로 움직여주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나저나 다들 그동안 얼마나 마음고생이 심했을까.
당장이라도 저 멀리 보이는 대문을 박차고 들어가 재회의 기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건만….
장원의 입구 수 리 전부터 길게 늘어선 조문객들의 행렬을 보며 난 한숨을 터뜨렸다.
“저 많은 눈을 피해 몰래 들어가는 건 무리겠죠.”
“조가장에선 현재 어떤 내방객도 받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누구 하나가 시작하면 따라 하는 게 사람 심리니까요. 그보다 이쪽이에요.”
난 려군을 이끌고 장원의 담벼락을 빙둘러 최대한 인파가 적은 곳을 찾았다.
장원 내부에는 우희가 외부 침입에 대비해 펼쳐둔 진법이 존재하지만, 이미 모든 파훼법을 숙지하고 있는 내 앞에선 무용지물이나 마찬가지.
그게 아니어도 카메라만 있으면 강제로 뚫고 들어가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고.
“이쪽으로 가죠. 사람도 없고. 제가 밟는 곳을 정확히 따라와요.”
타닷-!
내가 먼저 담벼락을 넘자 벽려군도 하늘을 훨훨 날아 내 곁에 내려섰다.
“담 넘는 게 익숙하네요?”
“제가 누구 제자인지 잊었나요?”
“누구긴, 우리 할아버지 제자지.”
등 뒤에서 들려온 싸늘한 음성.
그러나 이미 상대의 존재를 알고 있던 나와 려군의 얼굴에는 진한 미소가 피어났다.
“빈아.”
참았던 반가움을 드러내며 돌아본 그곳엔 잔뜩 불거진 눈으로 울음을 참는 한 여인이 있었으니,
“다녀왔어.”
“왜 이제 와.”
내 한 마디에 그녀의 눈에 고여있던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내렸다.
***
“흐엉, 허엉….”
“어머니 그만 우세요. 저 건강해요.”
눈물 바다가 된 가주실에선 벌써 몇 번 째인지 모를 상봉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머잖아 다시 한 차례 문이 벌컥 열리며 가족들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가족 이상으로 날 기다렸을 여인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가가…!”
끊어질 듯한 비명 속에는 지금까지 그녀가 겪었을 애환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윽고 그녀가 날 향해 비틀비틀 걸어오기 시작했다.
“가가…. 휘 가가….”
미아가 된 아이가 부모를 찾듯 처연하게 흐느끼는 우희의 모습에 모두들 숙연한 얼굴로 길을 터주었다.
심지어 날 붙들고 오열하시던 어머니마저도.
“희아, 이리 오너라. 아들… 희아가 겉으로는 의연해 보였어도 얼마나 네 걱정을 많이 했는지 모르지?”
“…왜 모르겠어요.”
남겨진 이들이 얼마나 지옥 같은 하루를 보내는지는 이미 겪어봤다.
얼마나 마음 고생이 심했으면.
몰라보게 핼쑥해진 우희의 얼굴에 눈물이 핑 돈 나 역시 주춤주춤 그녀를 향해 다가갔다.
“희야. 이제 왔어.”
“가가….”
나를 와락 끌어안은 그녀가 이내 하염없이 내 빰을 더듬기 시작했다.
자신이 보는 광경이 환상이 아님을 확신하려는 듯.
“왜 이렇게 살이 빠졌어.”
“아니에요. 가가야말로….”
그 순간이었다.
화사한 봄꽃처럼 피어나던 그녀의 얼굴이 흠칫 굳은 것은.
그녀의 떨리는 시선 끝은 내 손목을 향해 있었다.
“가가… 팔찌는…?”
“아, 이거.”
주섬주섬.
품안에서 올올이 풀린 팔찌를 꺼낸 난 그녀에게 손을 내밀며 머쓱하게 웃었다.
“너무 고생을 시켰나봐. 끊어져 버렸어.”
“…….”
“절벽에서 떨어졌을 때도, 한 치 앞도 안 보이던 동혈을 헤맬 때도 이게 날 지켜준 거 같아. 고마워, 희야.”
내 말에도 그녀의 굳은 표정은 풀릴 기색이 없었다.
“어떻게….”
“희야?”
그녀의 상태가 어딘지 이상하다.
재회의 기쁨으로 상기되었던 얼굴은 어느새 창백히 질려 있었고, 가녀린 어깨는 오한이라도 든 듯 오들오들 떨렸다.
단순히 정인에게 준 팔찌가 끊어져서, 라기엔 지나친 반응.
“희야,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잠시만요, 잠시만….”
“희야!”
그녀가 다시 왔던 길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가주실에 모여 있던 모두가 어안이 벙벙하여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가운데, 불과 1분이 지나기도 전에 다시 돌아온 그녀의 손에는 멀쩡한 모습의 예비 팔찌가 들려 있었다.
“잠깐만요… 잠깐….”
“왜 그래, 희야. 진정해.”
“잠깐이면 되니까….”
떨리는 손길이 내 손목을 더듬으며 팔찌를 채워간다. 그러나,
스르륵-.
어찌 된 일일까.
묶이기 전까지 멀쩡하던 팔찌는 어째선지 내 손목에 채워지기 무섭게 올올히 풀려 바닥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여전히 내 손에 들린 망가진 팔찌와 놀랍도록 똑같은 모습으로.
“욱….”
우희가 입을 틀어막는다.
표정은 흡사 귀신이라도 본 듯 창백하다.
무언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감지한 장내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정도의 정적에 휩싸였다.
그 때였다.
“우욱-.”
또 다른 헛구역질 소리가 가주실에 울려 퍼졌다.
우희에게 쏠려있던 시선들이 흩어진 것은 한순간.
그렇게 의도치 않게 모든 시선의 중심에 선 여인, 려군은 당황한 얼굴로.
“죄송합니다. 갑자기 기분이… 욱-.”
헛구역질을 반복했다.
나와 려군을 번갈아보는 우희의 눈에 시린 한기가 깃드는 장면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