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9
제갈세가로 (2)
“그럼 약속은 지키시리라 믿고.”
내기 내용을 전달한 나는, 굳은 표정의 시녀를 방안에 남겨두고 본채를 나섰다.
수 시간 전, 그녀의 뒤를 쫓아 가로지른 너른 마당이 보였다.
바닥에 깔린 수천 개의 돌 중 출구로 향하는 루트는 단 하나, 보통사람이라면 겨우 한 번 본 것만으로 외울 수 있을 리 만무하지만 내겐 스트리밍이라는 치트키가 있었다.
“공자, 잠시만···!”
난 허둥지둥 뒤를 쫓는 시녀를 무시하고 한쪽 눈을 감았다.
스트리밍 중인 영상을 저장하기 위해선 한 번 촬영을 종료해야만 했다.
별도의 캡쳐 프로그램을 사용 중이라면 불필요한 과정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내가 쓸 수 있는 프로그램은 오직 O튜브 클라이언트 하나뿐이니 불편해도 참는 수밖에.
그나마 스트리밍 사이에 딜레이가 없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방송을 재시작할 때마다 내공과의 연결이 끊기고 무방비 상태가 되는 것은 사양이니까.
홈화면의 ‘스트리밍 시작’버튼을 누르고 제목을 입력하자, 이전 영상이 자동 종료되며 새로운 화면이 켜졌다.
*실시간채팅
[no.girl : ㅇㅎ] [코끼리코더 : 컨셉 유지를 위해 시청자들을 고생시키는 방송이 있다?] [치즈김밥 : 켜놓고 잠수 타던 분들 다 갈려나감ㅋㅋㅋㅋ]······.
시청자들이 내 뒤를 쫓아 하나, 둘 새로운 채팅창에 접속하는 사이, 나는 별도의 창을 열어 동영상 목록에 저장된 이전 스트리밍을 찾아 재생시켰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공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더.
-지금부터는 제가 밟는 곳을 정확히 따라오셔야 합니다.
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가주님께 데려다 주시는 게 아니었나요?
찾았다.
시녀와 장자원에 도착한 장면에서 영상을 멈춘 나는, 화면을 거꾸로 돌리며 왔던 길을 되돌아나가기 시작했다.
가상과 현실, 서로 다른 두 개의 시야가 양쪽 눈을 어지럽혔지만, 이미 6년간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풍경이었기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타박, 타박, 타박-.
그렇게 바닥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몇 걸음이나 걸었을까, 제대로 가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고개를 든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보무도 당당히 출발한 것이 무색하게도 내 몸이 어느덧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기 때문이다.
“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제대로 밟았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그러고 보니 시선은 항상 정면을 향하라는 말도 했었지?
설마 뒷걸음질로 나가야 했던 걸까?
그나저나 이러면 나가린데···.
녹화 영상만 믿고 큰소리를 떵떵 쳤던 나는 뒤늦게 시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되돌아온 나를 보는 그녀의 입가엔 보일 듯 말 듯한 얄미운 미소가 걸려 있었다.
“날이 춥습니다, 공자. 그만 고집부리고 이만 들어가시지요.”
아잇, 짜증나.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쪽 눈을 감았다.
나와 같은 시야를 공유하는 시청자들이라면 분명 이 억울함을 알아줄 것이라 생각하며.
하지만 보던 화면을 내리고 확인한 채팅창의 분위기는 내 예상과 사뭇 달랐다.
[디비7 : ??? 깐휘님 지금 어디로 감?] [핫치킨 : 뭐한 건가요?] [어흥이 : 진법에 걸린 느낌을 실감나게 연기한 듯] [OHU4 : cg라도 쓰라고요ㅋㅋㅋㅋ] [풍뢰기사 : 주작 방송의 한계]······.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마치 나와는 전혀 다른 풍경을 본 듯한 반응들이 아닌가.
···설마?
잠시 채팅창을 올려보던 나는 문득 드는 생각에 황급히 두 눈을 감고 관문이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어?”
없다.
분명 조금 전까지만 해도 눈앞에 생생하던 대문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있었다.
그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전혀 다른 방향에 위치한 대문이 보였다.
몇 번이나 눈을 깜빡이며 확인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 방송화면과 실제 시야는 완전히 달랐다.
난 그제야 눈앞의 풍경이 모두 허상임을, 그러나 카메라만큼은 진법의 영향에서 자유롭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난 우희에게 지나가듯 들었던 진법의 원리를 떠올렸다.
‘지형지물 또는 인물의 배치, 기의 흐름 따위를 조절하여 시전자에게 이로운 효과를 얻거나 상대방의 오감을 속이는 것.’
그러나 ‘시청자’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일부 시청각 정보만이 전부였다.
온도나 냄새조차 전달할 수 없는 방송화면에, 하물며 ‘기’와 밀접히 연관된 진법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가벼운 착시현상 정도면 몰라도.
그렇다면 조금 전 녹화된 영상을 보고 돌을 밟았음에도 길을 잃은 까닭은 무엇일까?
해답은 간단했다.
차라리 영상에만 의지해 걸음을 옮겼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을, 비교를 위해 한쪽 시야를 남겨둔 탓에 진법에 걸려들고 만 것이리라.
그러나 이제 해법을 알았으니 이야기는 간단했다.
타박, 타박-.
“공자? 또 해보시렵니까?”
나는 시녀의 비웃음을 뒤로하고 다시 출발선 앞에 섰다.
다만 아까와 다른 점은 두 눈을 모두 감았다는 것.
이어서 나는 다시보기 위해 잠시 내려둔 길찾기 영상마저 완전히 닫았다.
그렇게 한 발짝.
타박-.
다시 한 발짝.
타박-.
“엇···?”
총 세 발짝을 내딛기도 전에 뒤에서 당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기서 뒤를 돌아보는 건 촌스러운 일이겠지.
난 다만 옅은 미소를 머금은 채 겨우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속삭였다.
“약속 안 잊으셨죠?”
“잠깐, 공자···!”
난 그녀의 뒷말을 기다리지 않고 바닥을 내달렸다.
탓탓탓탓-.
바닥이 빠른 속도로 뒤로 밀려나며 출구가 눈앞으로 다가왔다.
이윽고 첫 번째 관문이 뒤로 스쳐가고, 곧이어 다음, 또 다음 관문이 뒤를 이었다.
그렇게 불과 20초.
6살에 불과한 내가 모든 관문을 주파하기까지 걸린 시간이었다.
“학, 학, 학···.”
나무 기둥에 손을 얹은 채 가쁜 숨을 내쉬던 나는, 망연한 얼굴로 뒤를 쫓아온 시녀에게 포권을 하며 웃어보였다.
“소저, 그럼 약속대로 절 가주님께 안내해주시겠어요?”
“읏.”
“설마 대(大)제갈세가에서 저 같은 어린 아이를 상대로 거짓말을 하진 않으셨으리라 믿어요.”
시녀의 얼굴이 곤혹으로 물들었다.
***
비슷한 시각, 제갈세가주의 집무실.
“조가장의 공자가 호접환시진(蝴蝶還是陳)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어린놈이 성질 한 번 급하구나. 하루를 못 기다리고 뛰쳐나와? 이놈, 어디 고생 좀 해보거라.”
수하의 보고를 받는 제갈기의 얼굴에 사악한 미소가 어렸다.
괘씸한 놈.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내 딸을 만나러 와?
작년까지만 해도 커서 아빠와 결혼하겠다던 딸이 다른 남자를 입에 담기 시작한 것은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제 삼촌과 조가장에 다녀온 이후였다.
어찌나 휘아, 휘아를 입에 달고 사는지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였다.
자신 또한 호위들을 따라 조가장으로 가겠다며 떼를 썼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가!
결국 언제나와 마찬가지로 투정에 못 이겨 허락하긴 했으나, 타지에서 생활하는 딸을 떠올리면 항상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찝찝했다.
그러던 찰나 딸의 부상 소식이 들려왔다.
많이 다치진 않았을까, 도대체 호위들은 뭘 하고 있었던 건가.
공무가 바쁜 탓에 직접 만나러 가보지도 못하고 손톱만 잘근거리며 딸의 무사귀환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제갈기는, 그로부터 열흘이 지나서야 돌아온 딸과 나눈 첫 대화를 아직도 잊을 수 없었다.
‘우리 딸, 어디 아픈 데 없어?’
‘나보다 휘아가 많이 다쳤어. 보름 안에 다시 갈 거야.’
‘뭣? 안 된다! 절대!’
‘약속했단 말이야! 휘아가 나랑 안 놀아주면 전부 아빠 책임이야!’
조가휘, 이노옴!
순진했던 아이를 꼬드겨서 이 꼴로 만든 게 네놈이렷다!
서운함은 분노가 되어 얼굴도 본 적 없는 애꿎은 소년을 덮쳤다.
비록 딸이 먼저 호감을 표했고 납치 현장에서 도움도 받았다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지!
언제 한 번 따끔하게 경고를 해주리라 생각하던 차에, 때마침 조가장행에 나섰던 제갈신이 웬 소년과 함께 정문을 넘었다는 보고가 들어온 것이다.
그 소년의 정체가 자신의 생사대적이나 다름없는 조가휘임을 짐작하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제갈기는 그 길로 몰래 수하를 보내 소년을 호접환시진이 설치된 장자원으로 안내했다.
본래는 세가가 멸문지화의 위기에 빠졌을 때 아이들을 숨기기 위한 공간인 만큼 비록 살상력은 없었지만, 내부로 침입한 자를 가둬두기에도 안성맞춤인 곳이었으니.
본채에 이르기 위해 순서대로 밟아야 하는 돌들은 그저 눈속임에 불과했다.
이따금 암기력이 뛰어난 자들이 밟는 돌의 순서를 하나, 하나 전부 외우기도 하지만 그래봤자 무용지물.
호접환시진의 진정한 무서움은 사물 하나의 위치만 바꿔도 생문이 불규칙하게 뒤바뀌는 유연함에 있었다.
반 시진마다 무작위로 뒤바뀌는 진법 안에서 길을 찾을 수 있는 것은, 직접 진을 관리하는 장자원주를 제외하면 세가 내에서도 단 몇 사람 뿐.
심지어 가주인 제갈기조차 통과하려면 적어도 반 시진이 필요한 절진을 이제 6살 먹은 꼬마가 통과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것이 신비조라는 희대의 물품을 발명한 아이더라도 결코!
그래. 어림도 없지.
아마 2각이 채 지나기도 전에 울며불며 구조를 요청할 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보면 딸의 눈에 씌워진 콩깍지도 조금은 벗겨질 테지.
물론 아우인 제갈신의 생각은 달랐다.
“형님. 세가의 손님께 할 짓이 못됩니다.”
“시끄럽다. 그러게 누가 저 놈을 세가로 들이라더냐.”
“나중에 희아가 알면 미움 받으실 겁니다.”
“희아가 나를 왜 미워해! 오히려 나중엔 고마워 할 게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일에 가주령을···.”
“불만 있으면 네가 가주 하든가.”
제갈기는 아우의 힐난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미소가 사라지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벌컥-.
“가주님, 지금 조가장의 소공자가···!”
“마침 잘 왔다, 그래. 그놈은 아직도 헤매고 있다더냐?”
“그게···.”
“설마 벌써 포기한 게야? 쯧쯧, 근성 없는 녀석. 이럴 줄 알았지. 역시 내 딸과 친구가 되기엔 역부족이군.”
“그것이···.”
저 놈이 오늘따라 왜 이리 말을 더듬지?
제갈기는 왠지 모를 불길함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순간, 보고를 올리던 수하가 두 눈을 질끈 감으며 외쳤다.
“두 눈을 감고 있답니다!”
“···뭘, 두 눈을 뭐?”
“호접환시진을 두 눈을 감은 채 돌파하고 있다고···!”
“뭣이!”
그건 나도 못하는 건데?
“어, 어느 정도의 속도라더냐.”
“거의 달리다시피 빠져나오고 있다고 합니다.”
“컥.”
제갈기가 뒷목을 잡았다.
반면 함께 보고를 듣던 제갈신의 얼굴엔 짙은 호기심이 피어났다.
“허-. 알면 알수록 놀라운 아이가 아닌가. 형님, 지금이라도 두 아이를 만나게 해주심이···.”
“시끄럽다!”
버럭 소리친 제갈기는 어깨를 부들거렸다.
“어린 녀석이 자만이 극에 달했구나. 아무리 실력에 자신이 있다지만 일부러 눈을 감고 진을 파훼하다니, 우릴 비웃는 게 아니고 무엇이더냐!”
“우리가 아니고 형님 혼자···.”
“시끄럽다!”
제갈기가 이를 부득부득 갈던 그 때,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다시 한 차례 벌컥 열리며 한 쌍의 남녀가 안으로 들어왔다.
시녀복장을 한 여성과 가까스로 그녀의 허리를 넘기는 조그만 키의 소년이었다.
“휘아!”
“대협.”
제갈신과 눈짓으로 인사를 나눈 아이가 뒤이어 제갈기에게도 꾸벅 고개를 숙여보였다.
“조가장의 가휘가 대제갈세가의 가주이시자, 천향공으로 이름 높으신 제갈기 대협을 뵙습니다.”
“으음···.”
친구를 만나러 온 소년과 딸을 가진 아빠의 눈빛이 허공에서 맞부딪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