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90
재회 (2)
“오랜만이군, 부교주.”
“교주님!”
“그게 진짜 얼굴인가? 생각보다도 젊군. 이러면 사석에선 호형호제 하자고 제안한 내가 주책을 떤 셈이 되지 않는가.”
“그럴 리가요. 간만에 봬서 잠시 잊고 있었을 뿐입니다. 격조하셨습니까, 형님.”
“형님만 보이고 형수님은 안 보이느냐!”
빙긋 웃는 강유의 뒤로 등장한 것은 성녀 수진이와 지금은 강주아가 된 은주아.
둘 모두 정체를 숨기기 위해 간단한 위장을 하고 면사를 썼지만, 교주와 함께 다닐 사람들이 그들 말고 또 있겠는가.
“뭐야. 내가 어제 물어봤을 땐 도착 안 했다면서.”
“이 얼굴 보려고 그랬지. 놀랐어?”
“여전하다, 너도.”
수진이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떠난 내 시선이 그 뒤에 숨은 작은 소녀를 향했다.
“주아도 오랜만이야.”
“…….”
“주아? 쑥스러워서 그래?”
수진이의 독려에도 그녀는 쭈뼛거릴 뿐 좀처럼 앞으로 나서질 않았다.
오랜만의 재회에 수줍어서 그런가 생각했지만….
“정말 천 가가예요?”
“…가가?”
“그런 거 아니야, 진짜 아니야. 주아랑 내가 나이 차이가 얼만데.”
급속도로 싸늘해지는 우희의 목소리에 황급히 변명한 난, 어색한 웃음과 함께 역용을 풀었다.
“주아도 이 얼굴은 처음이지? 내가 깜빡했어.”
“아…!”
“나 맞아.”
“눈은요?”
“주아가 철두철미 하네요. 어디 가서 사기는 안 당하겠어요.”
우스갯소리와 함께 금안마저 발동하자 그제야 수진이 등에서 나온 그녀가 내게 폭 안겨들었다.
“천 가가!”
“희야, 정말 아니야.”
“그냥 농담이었어요.”
한 번 감금을 당한 전적이 있기 때문일까.
열 살 꼬마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도 왠지 부담스럽다.
얼마 뒤, 소식을 듣고 달려온 나머지 식구들마저 합류하자 집무실은 오랜만에 사람들로 북적였다.
“여기 서 있을 것이 아니라 다들 앉아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소. 이쪽이오.”
아버지의 제안에 따라 조가장의 대소사가 결정되는 거대한 회의실로 자리를 옮긴다.
이윽고 사람들이 회의실 중앙 원탁에 둘러앉자, 시녀들 중 유일하게 내 생존 소식을 아는 항아가 차를 내왔다.
“두 분 싸우셨다면서요. 잘 푸셨어요?”
“넌 어떻게 모르는 게 없어? 그보다 나 온 거 어디 가서 소문 안 냈지?”
“입이 근질근질해서 미치겠어요.”
“그거 얘기하면 나 죽는다는 생각으로 버텨.”
“으… 그냥 말씀이나 마시지, 저한테 왜 이런 시련을 내리셨어요.”
말은 잘해.
나 살아 돌아오기 전까지는 밥까지 굶어가며 매일 같이 울었다면서.
한편 나와 항아가 대화를 나누는 사이, 상석에서는 아버지와 교주 사이의 자리 양보가 한창이었다.
“그러지 마시고 상석에 앉으시지요, 교주.”
“장주께서 버젓이 계신데 어찌 그러겠소.”
“저 같은 일개 상인이 명교의 지존을 제치고 상석에 앉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습니까.”
“천하의 정마협을 배출한 조가장을 어느 누가 일개 상가로 보겠소. 더구나 여긴 신강이 아닌 중원이잖소. 아니면 장주께선 설마 명교도가 되시고 싶으신 것이오?”
“…교주께선 무공 뿐 아니라 입담도 천하제일이시구려. 이 조 모가 졌습니다.”
치열한 공방 끝에 상석을 차지한 것은 결국 아버지였다.
중원에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뿔 난 괴물처럼 묘사되던 마교주의 소탈한 모습에, 그를 처음 본 이들은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잠시 뒤, 소란스럽던 분위기가 어느 정도 가라앉자 강유가 나를 보며 말문을 열었다.
“큰일을 겪었다지.”
“죽다 살았네요.”
“모든 일이 마무리된 뒤에야 이리 어슬렁거리며 등장하여 면목이 없네. 호북 외곽에 주둔 중인 군사로부터 백나은이 벌인 짓을 모두 들었네. 교단을 나설 때 그녀를 데리고 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아뇨. 괜찮습니다. 백나은 같은 자가 있는가 하면, 사강처럼 절 위해 목숨을 바친 이도 있으니까요.”
갑작스레 자신이 언급될 줄 몰랐던 사강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난 그녀에게 눈인사를 건넨 뒤 다시 교주를 바라봤다.
“이렇게 찾아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그렇게 안부 인사를 시작으로 이내 본격적인 회의가 시작됐다.
암중세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인을 비롯해 향후 계획에 대한 논의가 원탁 위를 오갔다.
흡성대법의 소재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아예 촬영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내 방송 애청자인 성녀 앞에서 거짓말은 무의미했으니.
“과연 신투의 명성은 헛되지 않았군. 그 상황에서 비급을 빼돌리다니 말일세.”
“비급의 내용이 궁금하진 않으세요?”
“성녀로부터 이미 흡성대법의 정체에 대해 들었네. 더구나 호교무공인 건곤대나이의 성취조차 자네에게 미치지 못하거늘, 어찌 다른 무공을 탐내겠는가. 그보다 자네의 스승과 사도련주가 손을 잡았음에도 잡지 못한 그 신비인의 정체가 궁금하군.”
“당시 제가 내공을 잃은 바람에 상대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손 놓고 당하기 싫다면 우리도 세력을 만들어야 하겠구나.”
아버지의 말씀에 나 역시 맞장구를 쳤다.
“그나마 비동에서의 일로 피아구분이 어느 정도 명확해져서 다행이에요. 일단 사도련주는 암중세력일 리 없어요. 자신의 딸과 측근들을 생매장 할 생각이 아니었다면 거기까지 들어왔을 리 없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암중세력의 음모를 자력으로 분쇄한 북해빙궁도 믿을 수 있고요.”
“무림맹주는 어떻지?”
“맹주께서 암중세력과 손을 잡았을 가능성은… 솔직히 희박하다고 봐야죠. 그 분께서 암중세력의 일원이라면 이런 식의 번거로운 계획 자체가 필요 없었을 테니까요.”
우희 또한 내 생각에 동의를 표했다.
“제 생각도 그렇지만… 확인할 필요는 있어요. 일단 맹주를 한 번 뵙고 판단하는 것은 어떨까요? 가가께선 마침 맹주께 감사 인사를 드릴 일이 있지 않나요?”
“아, 맞아.”
모든 힘을 개방한 뒤 행방불명된 나를, 자신의 전인이라며 비호해 준 것이 맹주님이시다.
그의 도움이 없었다면 정마협이라는 별호도, 내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물결도 없었으리라.
그리고 그 이상의 은혜를 베푼 은인이 지금 내 눈앞에 있다.
“교주. 제가 감사 인사가 늦었네요. 검성의 전인에게 부교주 직위를 하사한 사실을 밝히시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어차피 자네의 도움이 없었다면 나는 이미 세상에 없을 걸세. 주아도 끔찍한 일을 겪었겠지.”
“이번 일로 곤란을 겪게 되시거든 언제든 불러주세요. 힘을 보태겠습니다.”
“비동에서 자네 덕에 목숨을 부지한 교도들이 한둘이 아닐세. 본단으로 돌아가면 그들이 내 발언에 힘을 실어 줄 테니, 너무 걱정 마시게.”
말을 맺은 그가 문득 옆을 바라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주아가 지루한가 보군. 그래, 어려운 이야기는 이쯤에서 마치세.”
“그럴까요? 그래서 신혼여행은 즐거우셨나요?”
“자네야 말로 대단한 일을 겪었다고 들었는데.”
강유가 너털웃음을 터뜨리자 우희와 약빈이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한편, 그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수진이의 표정은 몹시 행복해 보였다.
“수진아. 애들 민망하겠어.”
“아니, 신기하잖아. 맨날 화면에서 보던 사람들을. 지금 연예인 만난 기분인데? 아, 맞다. 내가 여러분 주려고 선물 가져왔거든요.”
“선물이요?”
“네. 근데 양이 좀 많아서…. 처소에 있으니까 나중에 시녀들을 통해서 보낼게요.”
이미 한 차례 현대문물의 맛을 본 조가장 식구들의 얼굴에 순식간에 화색이 돌았다.
허나 그들 모두의 기대를 합쳐도 나만큼은 아니었다.
난 이 날이 오기만을 학수고대하며 메모해둔 ‘받고 싶은 선물 리스트’를 개봉했다.
“아, 수진아, 수진아. 나 부탁할 거 있어.”
“응? 뭐?”
“우리 발전기랑 냉장고 좀 놔주면 안 돼? 빔 프로젝트 같은 거랑.”
“만난 김에 뽕을 뽑으시겠다?”
“가가, 발전기가 뭐예요?”
“아, 그게….”
그렇게 나와 수진이의 대화를 시작으로 회의실에는 곧 자유로운 대화의 장이 펼쳐졌다.
***
회의는 끝났지만 가휘의 여인들에겐 또 다른 과제가 남아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 잡담을 나누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갈우희는, 슬그머니 벽려군과 홍사강을 자신의 처소로 호출했다.
-두 분께 드릴 말씀이 있어요. 저랑 빈아는 먼저 처소로 돌아갈 테니 이야기마저 나누고 오세요.
나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던 걸까?
두 사람은 군말 없이 그녀의 제의에 따랐다.
허나 얼마 뒤 처소로 찾아온 벽려군의 공손한 한 마디는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었다.
“부르셨어요, 언니.”
“푸읍-!”
입안에 든 찻물을 뿜어낸 약빈이 황당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야, 너 저런 거 시켰어?”
“안 시켰어.”
“근데 왜 저래?”
“…사실 시켰어. 그렇게 보지 마. 그냥 홧김에 한 말인데 아직까지 기억할 줄 몰랐어.”
떨떠름하게 대꾸한 그녀의 시선이 려군을 향했다.
“…아까 어른들과 가가 다 계신 곳에서 그러셨으면 저랑 기 싸움하는 줄 알았을 거예요.”
“미안해요.”
“그냥 원래대로 하세요. 그 땐 너무 화나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인 거니까.”
“그럴게요.”
그녀의 말에 벽려군 곁에 있던 홍사강이 덩달아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도 연하인 두 사람을 언니라고 불러야 하는지 고민하고 있던 게 분명했다.
어쩜 저렇게들 순진한지.
그러나 동시에 그녀들은 가휘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도 했다.
“제가 인사가 늦었어요. 가가의 목숨을 구해주신 것에 감사드려요.”
정중한 포권으로 말문을 연 그녀는 두 사람을 자리로 안내하며 말을 이어갔다.
“교관님, 진맥은 받아보셨나요?”
“네? 진맥이요?”
“회임이 맞던가요?”
“아, 네….”
“축하해요.”
벽려군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동시에 제갈우희의 입가에는 씁쓸한 미소가 맴돌았다.
“그렇게 의외였나 보네.”
“그렇지는….”
“솔직히 말해서 아직도 화나요. 슬프고.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다 털어버리기로 했어요. 잘 지내봐요, 우리.”
손등을 다정히 감싸는 손길에 벽려군의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그렁그렁 눈물이 차오른 것은 제갈우희 역시 마찬가지였다.
“못되게 굴어서 미안했어요.”
“아니에요. 저야말로 세 사람 사이를…. 미안해요….”
“근데 신기하다. 교관님이랑 이런 사이가 될 줄 생각도 못했는데.”
가라앉은 분위기를 띄우려는 듯 약빈이 밝은 목소리로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 홍 소저. 내공 얼마나 돼요? 일 갑자는 넘죠?”
“…네. 그런데요?”
다음 질문은 제갈우희가 대신했다.
“아직 순백지신인가요?”
“네?”
“남자를 모르는 몸인지 물었어요.”
“그…건 어째서….”
“옥유경 전수를 위해서예요. 저와 빈아가 익힌 옥유경은 순백지신이 아니면 익힐 수 없으니. 그래서 가가와의 동침을 미루고 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됐네요.”
그녀의 말에 지은 죄가 있는 려군이 쩔쩔매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농담도 못하겠네요. 처음 둘의 생존 소식을 들었을 때 어느 정도는 각오했어요. 워낙 서로에게 마음이 있던 두 사람이 생사의 경계까지 넘었으니,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다구요.”
어깨를 으쓱한 그녀는 이어서 다시 사강을 바라봤다.
“수련을 시작하면 곧장 밝혀질 일이니 솔직히 말해줘요. 가가에겐 이야기하지 않을게요.”
“…그런 경험은 아직 없어요.”
“명교의 여인들은 문란한 줄만 알았는데…. 아, 중원의 인식이 그렇다는 거예요.”
“야, 양심이 있으면 우린 그런 말하면 안 되지.”
“조용히 해.”
“너 어제 아침에 질질 짜면서 나한테 고맙다고 했던 거 벌써 잊었어?”
티격태격하는 그녀와 약빈을 향해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졌다.
그것이 옥유경에 대한 궁금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은 그녀는, 남자를 사로잡는 비법이 담긴 신비한 비급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집중을 잃지 않은 홍사강과 달리, 벽려군은 어딘지 초조한 모습을 보였으니.
그 이유를 같은 여인인 제갈우희가 모를 리 없었다.
“벽 선배도 너무 실망할 것 없어요. 두 사람이 먹은 무산영도 역시 부부 사이에선 옥유경 못지않은 보물이니.”
“무산영도…? 그 복숭아 말인가요?”
“네. 남녀가 나누어 먹으면 몸과 마음의 궁합이 최고조에 이르러 백년해로 한다고 알려진 영과죠.”
그 말에 비로소 벽려군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뭇 강호 여인들의 동경을 한 몸에 받던 매서운 여검수는 어디로 가고 영락없이 사랑에 빠진 소녀의 모습에, 제갈우희는 문득 짓궂은 마음이 들었다.
“책에서 읽은 바로는 영도로 이어진 남녀는 서로의 은밀한 곳에서 달콤한 복숭아 향기를 뿜는다고 하던데 그것이 사실인가요?”
노골적인 질문에 벽려군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게….”
“진짜? 교관님, 진짜예요?”
약빈마저 가세하여 질문 공세를 퍼붓자, 결국 버티다 못한 벽려군이 고개를 푹 숙이며 모든 것을 시인했다.
“…네.”
“자세히 좀 얘기해 봐요.”
“맛도 그렇던가요?”
“네… 그래서 전 원래 그렇게 달콤한 줄로만….”
“웬일이야.”
그렇게 가휘와 잠자리를 함께 한 여인들 사이에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가운데.
여기, 대화에 끼지 못한 단 한 사람.
여태껏 남자와의 접촉이라고 해봐야 가휘와 입맞춤 몇 번 나눈 것이 전부인 사강은, 세 사람의 음담패설을 쫓아가지 못해 얼굴이 터질 지경이었다.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리는 동공 역시 현재 그녀의 심정을 대변했다.
“저 언니 얼굴 빨개진 것 봐. 아,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올해 몇 살이라고 했죠?”
“스물넷….”
조금 전까지 벽려군을 향하던 질문의 화살이 목표를 바꿔 쇄도하기 시작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오늘은 홍 소저가 가가의 잠자리에 들어볼래요?”
“아, 하지만 난 옥유경을….”
“순결을 지키면서도 사랑을 나누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근데 난 다시 그걸로 참으라면 못 참을 것 같아. 려군 언니는요?”
“네? 저요?”
쉴 새 없이 속닥거리던 그녀들은 이내 순수하기 짝이 없는 연상의 여인에게 잠자리 선배로서의 조언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휘 랑이 좋아하는 말 알려주는 건 어때?”
“그럴까? 따라해 봐요. 사랑해.”
“사랑해?”
“여보야.”
“여…보야. 사랑해, 여보야.”
홍사강은 얼떨떨해 하면서도 가휘가 좋아할 것이란 말에, 그녀들을 따라 생소한 단어를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두 여인의 마수는 잠자코 있던 벽려군에게까지 미쳤다.
“잘하네. 싹수가 있네. 려군 언니는 뭐 아는 거 없어?”
“저요? 저도 하나 정도는….”
“오, 뭔데요?”
“오빠요.”
그 순간 방안에 침묵이 찾아왔다.
“네?”
“오빠요. 가휘가 오빠란 말 좋아하거든요.”
“아, 그 새끼….”
갑작스런 욕설에 눈을 깜빡이는 벽려군을 향해 약빈의 추궁이 이어졌다.
“언니, 오빠 뜻 알아요?”
“가가와 비슷하지만 나이 상관없이 쓸 수 있는 애칭이라고….”
“조가휘 미쳤네.”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요?”
그제야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은 벽려군은 불길한 얼굴로 물었고.
잠시 뒤, 모든 설명을 들은 그녀가 양손에 얼굴을 파묻는 것과 동시에 방안은 까르륵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
무슨 이야기들을 저리 즐겁게 하지?
꽉 닫힌 방문 너머에선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쉴 새 없이 흘러나왔다.
이제 막 도착해서 별다른 대화는 듣지 못했지만 나도 눈치라는 게 있다.
아무리 봐도 내 험담을 하고 있던 것 같단 말이지….
눈을 가늘게 뜨고 문을 주시하던 그 때,
벌컥-.
“이제 나와?”
“그새를 못 기다리고 오셨어?”
“궁금하잖아. 무슨 얘기들 했어?”
“재미있는 얘기요.”
약빈이와 우희를 필두로 네 여인이 나를 한 번씩 흘기며 스쳐 지나갔다.
소꿉친구 둘이야 워낙 새침한 구석이 있으니 그렇다 쳐도, 믿고 있던 려군은 어째서?
사강 얼굴은 왜 저리 빨갛고.
“가가.”
“응?”
“밤에 홍 소저가 할 말이 있다고 하니 어디 가지 말고 얌전히 처소에 있어요.”
“아, 응….”
-홍 소저한테도 오빠라고 부르라고 해라, 또.
“억!”
우희와 약빈이는 알까?
지금 자신들이 짓고 있는 표정을 현대에선 극혐이라 부른다는 사실을.
그런데 그게 왠지 싫지 않… 아니, 이게 아니라.
난 변명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사라진 그녀들의 뒷모습을 멍하니 쫓았다.
그리고 그 날 밤 약속대로 홍사강이 내 처소를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