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94
수색 (2)
“안 계신다구요?”
“그렇네. 맹주께서는 며칠 전부터 출타 중이시니 돌아오시거든 그 때 연락 주겠네.”
“호의에 감사드려요.”
“뭐 이런 걸 갖고. 나 역시 지난 장보도 사태 때 정마협의 도움으로 목숨을 구한 이들 중 하나일세. 주 소저에게 이런 식으로나마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다행이지. 그보다 연락은 어디로 보내면 되겠나.”
“아화객잔으로 부탁드려요, 대협.”
잠시 뒤, 맹주전의 경비무사와 인사를 마친 약빈이가 밖으로 나왔다.
무림맹 밖에서 기다리던 나 역시 카메라를 거두고 슬그머니 그녀를 뒤따르기 시작했다.
“안 계신다고?”
“어. 다 들었어?”
“응.”
차라리 잘 된 일이다.
여태껏 들른 촌락들과 무림맹이 위치한 정주는 크기에서나 인구에서나 천지차이이니.
더구나 사부님께서 마지막으로 서신을 보내신 장소 역시 지리상으로는 하북으로 표기되지만 거리는 이곳에서 더 가깝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맹주님이 돌아오실 때까지 정주에서 머물며 사부님의 정보를 수소문하기로 했다.
“장원을 나서니 휘 랑의 명성이 실감이 가. 들었어? 조가장의 주약빈이라니까 일개 수련생한테 맹주님 소식까지 전해주겠다는 거.”
“맹주님을 뵙는 게 생각보다 수월하겠어. 그럼 우린 이제 그 아화객잔으로 가는 거야?”
“아니, 윤가장.”
“윤가장? 거기가 어딘데.”
“이제부터 갈 장소.”
입매를 비튼 그녀가 한 손으로 조막만한 얼굴을 훑은 순간.
앙큼한 고양이상의 미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웬 단아하고 청초한 양갓집 규수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신투 손녀 아니랄까봐.”
“오늘 밤엔 이 얼굴로?”
“손만 잡아도 부끄러워하던 순진한 주 소저는 어디로 간 거야.”
“네가 이렇게 만들었잖아.”
농담을 주고받으며 걸음을 옮기길 잠시, 거대한 대문이 우리 앞을 가로막았다.
“여기야?”
“윤가장엔 어쩐 일이오!”
대문 앞을 지키던 텁석부리 거한의 외침에 약빈이는 말없이 옥패 하나를 내밀었다.
그 순간, 부리부리한 눈으로 우릴 노려보던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초, 총관님! 잠시 나와 보십쇼! 아가씨께서 오셨습니다!”
아가씨?
내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장원 안쪽에서 한바탕 소란이 일었다.
잠시 뒤 대문을 삐걱 열며 등장한 것은 수염을 멋들어지게 기른 중년 사내와 그의 아내로 보이는 여인.
어찌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거친 숨을 헐떡이던 두 사람은, 이윽고 약빈이와 털보 사내의 손에 들린 패를 확인하고는 반색하며 허리를 굽실거렸다.
“어이구, 아가씨 오셨습니까.”
“삼 년 만에 뵈어요, 아가씨. 헌데 대인께선 이번에는 안 오신 건가요?”
“네. 이번에는 저와 이 사람 둘만 왔어요.”
약빈이의 소개에 둘은 황급히 내게도 고개를 숙였다.
-이분들은?
-하남 윤가장의 윤 대인은 할아버지의 위장 신분 중 하나야.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은 고아들을 돌볼 목적으로 할아버지께서 사십 년 전에 만들었다고 하셔. 여기서 난 윤 대인의 손녀인 윤이경으로 통하고. 저분들은 할아버지께서 처음에 거두신 분들로 현재 이곳의 관리를 맡은 상 총관 부부.
한 마디로 보육원이란 건데.
-사부님께서 재산 대부분은 처분했다고 하지 않으셨어?
-몇 곳은 이렇게 직접 운용하시는 곳도 있어. 그리고 여기가 내가 말한 안가 중 하나야.
-여기가?
놀라운 일이었다.
안가라고 하기에 어디 외딴 동굴이나 허름한 마을 외곽에 마련되어 있을 줄만 알았더니, 이렇게 번듯한 장원에 사용인마저 딸려 있다니.
사부님을 평범한 소매치기로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지만, 이런 사회복지시설마저 운용하고 계실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이래서 아까 약빈이가 무림맹의 연락을 받을 곳으로 객잔을 지정했구나.
하긴 누구나 다 알면 안가가 아니지.
-여태까지 나한테 한 마디도 안 하고.
-할아버지가 워낙 생색내는 걸 싫어하시잖아. 나도 학관에 입학한 뒤에야 알게 된 거야. 예전에 우희 따라잡겠다고 휴학하고 할아버지 따라다닐 때. 이분들 만나는 것도 이번이 두 번째고.
-안 삐졌으니까 그만해도 돼. 그나저나 윤 대인의 행방을 묻는 걸 보니까 사부님께서 여긴 안 들리신 것 같은데?
-글쎄? 무공을 모르는 양민들이 할아버지가 드나드는 걸 알아차릴 수 있겠어?
“저… 아가씨, 이번엔 얼마나 머무실 예정인지.”
때마침 들려온 상 총관의 말에 약빈이 평소엔 보기 힘든 그윽한 미소를 머금었다.
“내 정신 좀 봐. 오래 기다리셨죠? 보름 정도 머물 생각이에요.”
“저녁은 드셨습니까?”
“네. 밖에서요. 앞으로도 식사는 저희끼리 해결할 테니 따로 신경 쓰실 필요는 없답니다.”
“처소는 어떻게 준비를….”
“제 곁에 계신 분은 제 정인이시니 방은 하나면 충분할 것 같네요. 저번에 할아버님과 묵었던 그 방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대인의 처소는 항상 비워두고 있으니까요. 따라오시죠.”
-빈아, 연기 좀 한다?
-괜히 이런 설정으로 했나봐. 갑갑해.
상 총관의 안내에 따라 장원 내부로 걸음을 옮기자, 여기저기서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들이 바로 이곳 윤가장에서 돌보는 어린아이들인 듯 했다.
“이놈들, 밤인데 얼른 자야지!”
“와-!”
까르르 웃으며 흩어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본 상 총관이 쓴웃음을 머금었다.
“장난꾸러기들이 많습니다. 아, 이쪽입니다.”
총관의 안내를 받아 도착한 처소는 사람이 기거하는 흔적이 없음에도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했다.
사부님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어서 괜히 나까지 뿌듯했다.
이윽고 사람들이 물러가자 방문을 걸어 잠근 약빈이는, 처소 내부에 있는 어느 서랍장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게 기관장치야?”
“응. 열 개의 서랍을 정해진 순서에 따라 열면….”
“이쪽 바닥이 열리는 건가?”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매끄러운 소리를 내며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이 드러났다.
“어떻게 알았어?”
“나 정마협이야.”
오늘도 열일한 카메라로 생색 한 번 내준 뒤, 약빈이를 따라 비밀 통로로 들어선다.
통로 내부에 있는 레버를 당기자 입구는 다시 소음 하나 없이 자취를 감췄다.
잠시 뒤, 계단을 모두 내려오자 20평 남짓한 공간이 드러났다.
“반대편에도 통로가 있네?”
“다른 쪽으로 이어지는 탈출구야. 일단 누가 들어왔던 흔적은 없어.”
“뭔가 단서가 있으면 좋겠는데.”
금원보가 담긴 상자 몇 개, 하남 인근 유력자들의 비리가 담긴 문서, 아직 현금화하지 못한 장물들.
우리가 짧은 탐색 동안 발견한 것들이다.
“이건 뭐지?”
“왜, 뭐 찾았어?”
“잠겨 있는 함이 하나 있는데.”
약빈이가 재질을 알 수 없는 검은 함 하나를 내밀었다.
크기는 대략 성인 남성의 팔뚝 정도일까,
자물쇠 부분에는 일반 열쇠구멍이 아닌 직경 2센티미터 가량의 동그란 홈이 파여 있다.
“열어볼까?”
“잠깐만. 안쪽에 뭐가 있는지 확인해볼게.”
연장을 꺼내 드는 약빈이를 만류하며 곧장 함 내부로 카메라를 날렸다.
가장 먼저 화면에 잡힌 것은 용도를 알 수 없는 둥근 고리.
“장신구…같은데? 반지라기엔 크고 팔찌라기엔 많이 작아.”
“또 다른 건 뭐 있어?”
“종이랑 둘둘 말린 족자, 비단…. 열어볼까?”
건곤대나이와 카메라의 합작이면 상자의 잠금장치를 내부에서 여는 정도는 일도 아니니.
“음….”
“어떡할래?”
재차 묻는 내게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위에 먼지가 제법 쌓인 걸 보면 이번 일이랑은 별로 관계가 없어 보여.”
“그래. 사부님이 잠가두신 걸 함부로 여는 것도 그러니까.”
우린 함을 다시 원래 자리에 되돌려놓았다.
이후로도 주위를 더 뒤져봤지만 딱히 눈에 띄는 물건은 찾을 수 없었다.
“사부님한테 추적술 배울 땐 좋았는데 막상 쫓는 입장이 되니까 막막하네.”
“흡성대법을 품에 지닌 채로 본래의 얼굴이나 이름을 쓰셨을 리는 없으니까.”
“나가자, 일단.”
별반 성과 없이 비밀통로 밖으로 나오니 처소 밖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밖에 누구시오.”
“침구류를 놓아 드리러 왔습니다. 대답이 없으셔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들어오세요.”
약빈의 대답에 시녀 하나가 방으로 들어와 침상을 정돈해주었다.
그러고 보니 어느덧 밤이 깊은 시각이다.
“오늘은 그만하고 잘까?”
“응.”
며칠 간 변변찮은 휴식도 없이 달려온 탓인지 몸도 마음도 지친 상황.
침상 정돈을 마친 시녀의 안내를 받아 목욕을 마친 우린, 다시 처소로 돌아와 나란히 침상에 누웠다.
“너무 걱정 마. 별일 없을 거야.”
“나도 내가 유난 떠는 거 알아. 예전에는 한 달 넘도록 연락 안 된 적도 있었는데.”
“아니야. 하필 황실에서 이런 일이 터질 줄 누가 알았겠어.”
팔베개 위의 반듯한 이마에 입을 맞추니, 그녀가 턱 끝을 치켜들며 입술을 졸라댔다.
방안의 공기가 뒤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격정적인 입맞춤을 나누며 서로의 옷을 벗기는 우리의 손놀림은 매우 자연스러웠다.
“으응-. 본의 아니게 휘 랑을 독점하게 생겼네? 희야, 요즘 쓸쓸해서 잠 못 자는 거 아니야?”
“나중에 가서 자랑하지 마. 나 또 감금당해.”
“어차피 저번에 제갈세가에서 양보한 걸로 나도 한 번 양보받기로 했어. 이번에 쓰지, 뭐.”
“주인 허락도 없이?”
그녀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지그시 물어뜯으며 속삭인 난,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않도록 기막을 두르며 그녀의 위로 무게를 실었다.
오늘도 카메라는 고요히 밤하늘만을 비출 뿐이었다.
***
무림맹 내에서도 심처에 위치한 맹주전.
평소라면 이미 불이 꺼졌을 늦은 시각임에도 대낮처럼 밝은 방안에는, 선풍도골 같은 풍모를 지닌 노인과 한 여인이 서로를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 날 보자고 했다고?”
“그간 격조하셨어요, 맹주님.”
인사를 마쳤음에도 여인의 입술은 쉬지 않고 달싹였다.
타인 몰래 의사를 전달하는 전음입밀의 수법.
한편, 그녀의 이야기를 듣는 노인의 눈에는 점차 놀람의 빛이 깃들었다.
“이 아이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으니 다들 물러나도록.”
“…….”
“자네들은 걱정이 너무 많아. 명령일세. 향후 한 시진 동안은 누구도 이곳에 접근시키지 말도록.”
“존명.”
어디선가 들려온 나직한 목소리와 함께 방안을 밝히던 등불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이제 됐나.”
“감사합니다.”
약빈이의 대답을 가로채며 등장하는 나를 발견한 검성 여능천의 주름진 얼굴에 미소가 피어났다.
“진정 살아 있었군.”
“조가장의 가휘가 사부님을 뵙습니다.”
“응?”
눈을 동그랗게 뜬 그가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는 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으허헛! 그래. 죽은 뒤에 받은 제자가 살아 돌아왔구나. 조금 전까진 대체 어디에 있었나.”
“옆방에 쥐새끼처럼 웅크리고 있었습니다.”
“눈으로 보고 있음에도 믿기질 않는 성취로다! 정마협이라는 별호가 결코 아깝질 않아.”
“과찬이십니다. 혹여 만남을 허락해주시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럴 리가 있나! 그 어린 나이에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영웅을!”
날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대견함이 가득했다.
평생 협로를 걸어오신 살아 있는 전설에게 그런 평가를 받으니 어쩐지 낯 뜨거운 기분이다.
“사흘 전에도 왔었다지? 그 때는 내가 출타 중이어서 만나지 못했네.”
“가셨던 일은 잘되셨습니까.”
“글쎄…. 이 나이가 되면 뭘 하든 확신이 안 서는 법이지. 그보다 난 죽은 줄만 알았던 자네가 어떤 모험을 겪었는지가 더 궁금한데.”
난 신비인의 습격을 받아 절벽 밑으로 추락한 이후에 벌어진 일들을 간략히 설명했다.
“음… 내력을 잃은 상태로 그런 역경을 견뎌내다니 하늘의 보살핌이네. 가면을 쓴 신비인에 대해선 현재 수색 중이야. 헌데 사도련주와 합을 맞춰 신비인을 상대했다는 그 중년의 고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는가?”
“네, 은인에 대해서는 저희도 잘….”
우린 미리 논의한 대로 사부님의 정체에 대해선 함구했다.
이 일에 신투가 개입했음이 드러나면, 흡성대법을 지니지 않았다는 신비인의 주장에 힘이 실릴지도 모르니.
“아쉬운 일이야. 사도련주와 합격술을 펼칠 정도의 대단한 고수가 우리 무림맹에 가담해준다면 참 든든했을 텐데.”
“이쪽엔 맹주님이 계시잖아요.”
“예끼! 한창 때인 사도련주와 날 비교하면 쓰나. 이제 죽을 날만 기다리는 늙은이일 뿐이네.”
씁쓸한 표정도 잠시, 곧 그의 얼굴엔 환한 미소가 걸렸다.
“어쨌거나 자네가 살아 돌아와서 천만다행이야. 앞으로도 강호의 평화를 위해 힘써주게.”
“그렇잖아도 오늘은 그 이야기를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난 본론을 꺼내기에 앞서 그에게 포권부터 올렸다.
“먼저 감사 인사을 올립니다. 맹주께서 절 전인으로 공표해주신 덕에 저와 제 가문이 마교의 첩자라는 오명을 얻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한 일이 뭐가 있겠나. 젊은이가 한 일에 숟가락만 얹은 것이 부끄러울 따름이네. 나보다는 강유, 그 친구가 아주 인물이지.”
“명교주 말씀이신가요?”
“정파인에게 도움을 받은 사실이 알려지면 교권에 좋을 것이 하나도 없을 텐데 자네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지 않았나. 그것이 대협이 아니면 누가 대협이겠는가. 나도 이번 일로 느낀 것이 많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대 세력의 수장이던 이를 이토록 치켜세울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넓은 그릇을 확인한 기분이다.
“제겐 맹주님이 더 대단해 보이십니다.”
“허헛, 공치사는 그만하면 됐고 본론으로 들어가 보세. 오늘 나를 찾은 이유가 암중세력 때문인가?”
“그렇습니다. 그들의 마수는 이번 장보도 사태 뿐 아니라 저 먼 마교와 북해까지 뻗쳐 있을 정도로 거대합니다. 우리 또한 힘을 합쳐야 합니다.”
내 말에 그가 신중한 얼굴로 동의를 표했다.
“동감이야. 맹에서도 그와 관련하여 수차례 논의가 있었네. 하지만 문제는 그 방법일세. 정사마를 규합하는 일은 나로선 불가능한 일이야.”
“맹주님이 아니시라면 누가….”
“누구긴 자네지.”
“저요?”
“암!”
확신에 차서 고개를 끄덕이는 얼굴엔 앓던 이가 빠진 것마냥 시원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마교와의 전쟁을 막은 것도, 혈마의 비동에서 생매장 될 뻔 했던 수많은 목숨을 구한 것도 모두 자네가 아닌가! 내가 나서봐야 노물이 위기를 이용해 권력을 탐하려 한다는 소리밖에 더 듣겠나. 하지만 자네는 달라.”
“…사실 전 이번 일을 은밀하게 진행하고 싶었습니다. 가문이 해를 입을 것도 염려되구요.”
“이해하네. 자네의 가문은 내가 무사들을 동원해 조용히 돕도록 하지. 굳이 자네의 생환을 밝히지 않아도 정마협의 생가가 위협 받는다고 하면 자원할 이들이 넘칠 것이야. 게다가 적들 역시 전 중원의 이목이 조가장에 집중된 상황에서 함부로 경거망동하진 못할 걸세.”
“하지만….”
-난 괜찮으니 받아들여.
-빈아.
난 전음이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을 찾아야지.
-강호인들을 규합하는 일도 그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야. 어차피 당분간은 윤가장에 머물 생각이었잖아. 할아버지는 내가 찾아볼 테니까 휘 랑은 이쪽 일에 집중해.
굳건한 눈빛을 본 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네. 일단 아군이 확실한 이들부터 포섭하게. 직접 비동에 진입했던 이들이라면 믿을만하겠지. 사도련주도 그렇고.”
“그렇잖아도 이번 일이 끝나면 사천 쪽에도 들를 생각이었습니다.”
“뭣 하러 그러나. 단예지 그 아이가 학관에 있는데.”
“사화가 지금 학관에 있다구요?”
이렇게 어수선한 시기에 사예무곡도 아니고 천무학관에?
“그 아이 뿐만이 아니야. 팽가의 여식을 비롯해 자네의 죽음에 분노하는 수련생들이 한둘이 아닐세. 그 아이들 중 상당수는 비동에서 자네에게 목숨을 구원 받은 이들이지.”
“아….”
“복수와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하여 ‘불망회’라 하던가. 확실히 젊은 혈기가 좋긴 좋아.”
껄껄 웃는 그와 반대로 나와 약빈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집에 돌아온 뒤 주지육림에 파묻혀 있던 지난날들이 문득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크흠….”
“일단 그 아이들부터 만나 속내를 떠보게. 명교의 집법당주로 활약했던 자네가 설마 수련생들에게 정체를 들키진 않겠지.”
“그쪽으로는 저도 나름 자신이 있습니다.”
“믿음직스럽구나. 수련생들을 자유롭게 만나려면 그에 걸맞은 신분이 필요할 테지.”
“신분이요?”
“죽은 자가 맹을 활보할 수는 없잖은가. 그래서 말인데 자네….”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한층 짙어졌다.
“수련생들을 가르쳐 볼 생각은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