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195
누구냐, 넌 (1)
“자네 수련생들을 가르쳐 볼 생각은 없나?”
“제가 교관을요?”
맹주의 제안은 뜻밖이었다.
비록 방송을 통해 쌓은 천문학적인 내공과 그것을 아낌없이 펼칠 수 있는 건곤대나이를 바탕으로 현재의 경지에 이르긴 했으나, 그 과정에서 어떤 지고한 깨달음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런 내게 수련생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고민이 많아 보이는구나.”
“잘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기연이 겹쳐 분에 넘치는 무공을 얻었지만 깨달음은 그에 미치지 못하니까요.”
“젊은 나이에 드높은 경지에 도달했으니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게야. 허나 내가 보증하지. 자네는 강해. 마교와 혈마의 비동에서 겪은 경험들만 전달할 수 있어도 수련생들에겐 큰 도움이 될 걸세. 자네 자신에게도 말이야.”
빙긋 웃은 그가 신선 같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덧붙였다.
“교관동에 처소를 마련해주겠네.”
“혹시 빈아도….”
“푼수. 사람들이 흉봐.”
약빈이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할아버지를 수색하려면 여기보단 출입이 편한 윤가장이 나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더구나 교관동에 외간 여인이 드나들면 날 추천한 맹주님의 평판에도 악영향이 갈 테니.
그렇다고 부부로 위장을 하자니 약빈이의 역용술을 드러내는 게 마음에 걸리고.
“반드시 교관동에 거주해야 하는 건가요?”
“그럴 필요는 없네. 편할 때 마음대로 머물게.”
속닥거리는 나와 약빈이를 바라보던 맹주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걸렸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로다. 나중에 좋은 소식이 있으면 이 늙은이도 초대해주겠지?”
“당연하신 말씀을.”
그렇게 거취와 관련된 논의가 일단락되었다.
이어서 난 황실의 정세에 대해 넌지시 이야기를 꺼냈으나, 아쉽지만 맹주도 이번 사태에 대해 많은 것을 알진 못했다.
“수련생 동기가 황제가 되었으니 많이 놀랐겠군. 그 때문에 맹과 학관 분위기도 어수선하네.”
“혹여 강은이 학관에 입학한 이유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으신지.”
“그저 황위 계승권에서 먼 황족을 무림맹에 심어 강호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의도인줄 알았네만….”
생각에 잠겼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제 와선 그조차 명확치 않구만.”
“…그렇군요. 오늘 이야기 즐거웠습니다. 여러모로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가려는가.”
“네. 밤도 늦었으니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가보겠습니다, 맹주님.”
“잠깐.”
포권을 올리며 물러나는 우리를 맹주가 급히 불러세웠다.
“하실 말씀이라도.”
“명색이 검성의 전인이 현천장만 알아서야 쓰나. 내일부터 유시 무렵(17~19시)에 요 뒤, 죽림에 있는 모옥으로 오게. 검을 알려줄 테니.”
“아….”
“이 패를 받게. 호위들이 길을 터줄 걸세.”
날아온 패를 받아든 난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연달아 은혜를 입을 수는.”
“은혜라니. 어쩌면 고금제일인이 될 청년의 스승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길 절호의 기회인데. 아니면, 이 노인의 검술 따위는 필요가 없는 겐가.”
“그럴 리가요.”
무(武)에 대한 깨달음이 지닌 내공에 미치지 못함을 한탄한 것이 바로 직전인데 그런 분수 넘은 생각을 하겠는가.
난 더 이상 사양 않고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맹주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나도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니네.”
“네?”
“매일 전수가 끝나면 안마나 좀 해주게. 그렇잖아도 적적한 노인 말상대도 좀 해주면서.”
“앗….”
그러고 보니 나 맹주님 안마셔틀이었지?
그래봤자 검성의 진전을 잇는 대가라기엔 티끌과 다름없지만.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평안한 밤 되십시오.”
우린 재차 감사 인사를 올린 뒤 집무실을 나섰다.
잠시 뒤, 맹주전을 빠져나오자 약빈이가 상기된 얼굴로 축하 인사를 건넸다.
“이제 더 세지겠다?”
“네가 더 좋아하네?”
“남편 능력 좋아진다는데 어느 여자가 싫어해.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넌 안 기뻐?”
그녀의 물음에 난 어깨를 으쓱했다.
“그냥. 그를 믿어도 될까 싶어서.”
“희야도 말했잖아. 맹주님이 암중세력이었으면 혈겁을 일으키기 위해 그런 복잡한 수단을 쓸 필요도 없었다고. 마교와의 전면전을 주장했으면 훨씬 많은 사상자가 나왔을 거라고 말야.”
“…하지만 확인은 필요하겠지. 잠깐만.”
“휘 랑?”
덩달아 걸음을 멈춘 그녀를 보며 난 나직이 속삭였다.
“천천히 가자. 기척을 죽일 필요까진 없어. 괜히 의심 살 필요는 없으니까.”
“응.”
그녀의 대답이 들려오기도 전에 내 카메라는 이미 우리가 왔던 길을 거슬러 올라 맹주실에 다다라 있었다.
우리가 떠난 방에 홀로 남은 백발의 노인을 나는 차분히 관찰했다.
그러나 우려와 달리 그가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거나,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일은 없었다.
그저 품에서 꺼낸 낡은 비급 하나를 읽기 시작했을 뿐.
[무상검]혹시 저게 내가 내일부터 배우게 될 검법?
무공 전수에 앞서 예습이라도 하시는 걸까?
그제야 난 안심하고 카메라 거둘 수 있었다.
“된 거야?”
“응, 일단은.”
어쩌다 이렇게 사람을 못 믿게 되었을까.
하지만 이쪽도 목숨이 달려있는 일이다. 그것도 나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모든 이의 목숨이.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도 결코 과하지 않다.
난 어둠에 잠긴 무림맹을 좀 더 관찰한 뒤에야 윤가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
맹주의 입김은 과연 대단했다.
학기가 이미 시작되었음에도 내 수속 절차는 눈 깜짝할 새 진행되었고, 이튿날 오후에는 동료 교관들을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이 자가…?”
“오전에 얘기한 친구일세. 다들 인사들 나누시게.”
“주원이라 합니다. 강호경험이 일천하여 별호는 따로 없습니다.”
근래 시청중인 웹 드라마 주인공의 이름을 입에 담는 내게 온갖 호기심 어린 시선들이 쏟아졌다.
“사천당가의 당가기일세. 반갑네.”
“송요동이라 하오.”
“금라희예요.”
“환대에 감사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난 일일이 포권을 하는 한편, 카메라로 장내의 분위기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눈썰미가 워낙 좋은 양반들이어야 말이지.
다행히 역용으로도 모자라 갓을 쓰고 축골공으로 골격까지 살짝 바꾼 보람이 없진 않은지, 기존 교관들 중 날 알아보는 이는 전무했다.
그러던 어느 순간, 내 눈빛이 크게 흔들렸다.
“반가우이. 팽원소라고 하네.”
맑은 미소로 내게 인사를 건넨 노인의 정체는 과거 팽가에 방문했을 때 인연을 맺은 소혜의 조부로, 내게 사모검을 전수하신 장본인이기도 했다.
오랜 주화입마에서 벗어난 뒤 원로원에서 편안한 여생을 보내고 계실 줄 알았는데, 설마 이곳에서 교관으로 재직 중이실 줄이야.
“이 늙은이의 얼굴에 뭐라도 묻었나?”
“아, 아닙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노사.”
한편, 모든 교관들이 날 반기는 것은 아니었다.
개중에는 낙하산이나 다름없는 날 아니꼽게 바라보는 이들도 존재했으니.
“이런 시기에 얼굴도 제대로 밝히지 않는 자와 어찌 함께 일을 하겠소.”
“그렇습니다, 맹주. 하물며 이름도 들어본 적 없는 자에게 수련생들의 지도를 맡긴다면 각 문파에서 가만히 있겠소?”
“그 일이라면 염려할 필요 없네. 녀석은 내 제자니까.”
깜짝 발언에 놀란 이들의 시선이 동시에 맹주를 향했다.
나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맹주님?
“내 첫째 제자네. 먼저 간 가휘 그놈의 사형 말이야.”
그의 눈에 담긴 짓궂은 장난기를 발견한 난 뒤늦게 실소를 머금지 않을 수 없었다.
귀띔이라도 주시지, 이런 식의 애드립은 곤란한데요.
“맹주께 제자가 또 있었단 말이오?”
“내 나이가 몇인데 제자가 가휘 그놈 하나뿐이었나. 이 녀석은 원체 욕심이 없어 그간 심산유곡에 틀어박혀 있었네만, 아끼던 사제가 변을 당했다는 소식에 은거를 깨고 이렇게 세상으로 나온 것이네.”
“맹주께서 참으로 음흉하시오. 이러다 나중엔 셋째, 넷째 제자도 튀어나오는 것이 아니오?”
“허헛. 장담은 못 하겠네, 그려.”
“…가휘 그 아이의 사형이라고? 녀석이 그리 갈 줄은 몰랐는데.”
문득 당가기가 내뱉은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낮게 가라앉았다.
마치 망령이 된 듯한 기분에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난, 다시 한 번 그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했다.
“스승님의 명성에 누가 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얼굴은 어릴 때 심한 화상을 입어 드러내지 않는 것이니 부디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커흠, 그럼 진즉 그렇다고 얘기를 할 것이지.”
맹주가 대놓고 옹호하는 나를 더 이상 수상하게 여기는 이는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게 천무학관 교관으로서의 생활이 막을 올렸다.
***
뒤늦게 교관이 된 내가 맡게 된 일은 실전 대련 수업의 보조 강사 역할이었다.
“그렇잖아도 이번 학기 들어 수련생들 열의가 대단한 탓에 혼자 지도하기 힘에 부치던 차였소. 앞으로 잘 부탁하오.”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리 수업은 열흘에 총 여섯 번, 두 시진씩 진행되고….”
과거 수련생일 때 거닐던 교정을 교관이 되어 걷고 있으려니 어쩐지 감회가 새로웠다.
수업에 늦을세라 부랴부랴 경공을 펼치는 수련생들 하며, 이따금 들려오는 과제에 대한 불평이나 몇 달 후 개최될 무림대회에 대한 대화까지.
나도 몇 년 전만 해도 저들 중 하나였는데.
그런 그리움은 수업 장소에서 기다리던 동기들과 재회한 순간 곱절이 됐다.
“오셨습니까, 교관님.”
“늦어서 미안하네. 바로 시작하지.”
내 죽음을 잊지 않겠다하여 불망회라는 조직까지 만들었다고 했던가.
혈마의 비동에서 죽음의 위기를 넘은 졸업반 수련생들의 눈빛은, 지난 임무에서 배제되었던 후배들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특히 나와 제법 친분이 있던 팽소혜나, 내가 절벽에서 떨어지는 장면을 지척에서 목도했던 단예지의 눈빛은 완전히 다른 사람 이나 마찬가지였다.
“옆에 계신 분은 누구신가요?”
“오늘부터 대련 수업의 보조를 맡게 된 주원 교관일세. 비록 속세에 초탈하여 지닌 무명은 없으나, 맹주님의 첫째 제자이자 정마협의 사형되는 분이니 무례를 저지르는 일이 없도록.”
그 말에 수련생들의 눈빛이 돌변했다.
“그 말씀이 사실인가요?”
“오라버니의….”
“교관님께서도 화화만큼이나 강하신가요?”
쏟아지는 질문공세에 난 웃으며 포권했다.
“사제에 비해 내 자질은 범부나 다름없소. 허나 사형된 도리로서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제의 넋을 기리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나서지 않을 수 없었소. 모두들 잘 부탁드리오.”
소개를 마쳤음에도 소란은 한동안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정신없이 밀려드는 인파 속에서도 내 시선은 오직 한 사람만을 향해 있었으니.
“억, 밀지 마! 어이쿠.”
오랜만이다, 친구야.
다른 수련생들 틈에서 짐짓 호들갑을 떠는 청년을 응시하는 내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
정주시 외곽의 어느 객잔.
뜨거웠던 정사의 열기도 식어 나른함만이 감도는 객실에 알몸의 남녀 한 쌍이 누워 있다.
“…맹주께 다른 제자가 있었다니 금시초문이네요. 당신은 알고 있었나요?”
“나도… 오늘 아침에야 들었어.”
짧은 대화를 끝으로 둘 사이엔 불편한 침묵이 흘렀다.
그렇게 일 각, 이 각.
다시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철진.”
“네?”
“…언제 말해줄 거야?”
금라희의 물음에 곁에 누운 양철진의 몸이 움찔 굳었다.
“무슨 말이에요.”
“네가 그 날 비동에서 보였던 행동, 마치 붕괴가 일어날 것을 예상이나 했던 것처럼.”
“우연이라고 했잖아요.”
“막다른 길에서 통로를 찾아낸 것도?”
“절 못 믿는 거예요?”
“…못 믿는 건 너잖아.”
나직이 읊조린 금라희가 침상 위에 널브러진 옷가지들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사이 철진은 침묵을 지켰다.
옷을 모두 갖춰 입은 그녀가 방을 나설 때까지도.
끼익, 쿵.
“…….”
연인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철진 또한 복장을 갖추고 객잔을 나섰다.
그러나 어둠 속에 녹아든 그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학관과는 정반대 방향이었다.
그로부터 다시 이 각이 흘러 그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어느 허름한 민가의 주방.
인기척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을씨년스러운 장소에서 가재도구들을 뒤적거리는 그의 눈빛에는 초조함이 가득했다.
하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관찰 중인 수만 쌍의 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