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21
어리광쟁이(수정)
제갈기의 시험으로부터 사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난 가주실에 뻔질나게 불려 다니며 그의 바둑 상대를 해야만 했다.
비록 형국도 읽지 못하는 실력으로 몇 시간씩 바둑판 앞에 앉아 있는 일이 지겹기는 했으나, 친구 부모님과 친분을 쌓는 일이라 생각하면 못할 것도 없었다.
그것이 오대세가의 일원의 수장이라면 더욱!
그 외에도 조가장의 호위 일로 면식이 있는 세가의 무사들과 회포를 풀거나, 바둑 기재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들과 안면을 익히다보니 하루하루가 순식간에 지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제갈세가를 떠나는 날, 조가장을 향해 출발하는 마차 안에는 올 때와 달리 우희가 함께였다.
“그럼 저흰 이만 가보겠습니다, 가주님. 제갈부인.”
“나 갔다 올게~.”
“그래. 둘 다 몸조심하고. 희아는 조가장주 내외께 너무 폐 끼치지 말렴.”
“그래, 희아. 호위 없이 함부로 돌아다니지 말고, 서신 꼬박 보내고, 달에 두어 번은 꼭 얼굴 비추고. 그리고 너는···.”
남궁지약에 이어 여전히 미련이 남은 얼굴로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던 제갈기가 문득 나를 돌아보며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가끔 바둑 두러 오면··· 내쫓진 않으마.”
[컵라면? : 앜ㅋㅋ제갈츤ㅋㅋㅋ] [태호5009 : 우희 아빠 보다 보니까 귀여워요 ㅋㅋ] [주인공엄마 : 이제 바둑 몇 판 더 두면 제갈데레로 진화하는 거 금방임]······.
난 지난 며칠 새 제갈기에 대해 제법 우호적으로 변한 채팅창의 여론을 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
작별인사를 마친 뒤, 손을 꼭 맞잡은 나와 우희를 싣고, 마차는 가도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
“휘 가가, 이번에 엄마가 보내주신 장미금귤이야. 아-.”
“아, 내가 먹을 수 있는···. 응, 맛있다.”
“그치? 이제 나도 줘.”
“응, 여기.”
난 아기 새처럼 입을 벌린 채 기다리는 우희에게 새콤달달한 금귤정과 하나를 쏙 넣어주었다.
“흐흥-. 마시썽.”
왜 이렇게 귀엽냐, 진짜.
오물오물, 찹쌀떡처럼 말랑거리는 볼을 보고 있자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원래도 날 잘 따르던 우희의 태도는 납치사건과 부친과의 갈등을 겪으며 한층 더 살가워졌다.
‘휘 가가’라는 명칭이 바로 그 증거였다.
가가(哥哥)는 여인이 친오빠나 연상의 연인을 칭할 때 쓰는 호칭으로, 성이나 이름 자 어디에도 붙여 부르는 게 가능했다.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3개월 정도는 나이차도 아니라며 대뜸 ‘너’라고 불렀었는데···.
아마 제갈기에게 맞서는 내 모습이 친오빠처럼 든든했던 거겠지.
‘가가’, ‘가가’하면서 뒤를 졸졸 쫓아다니는 모습이 어찌나 귀여운지.
이러한 반응은 시청자들이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내 방송을 처음부터 시청했든 뒤늦게 합류했든, 우희의 영상을 본 이들은 그 깜찍한 매력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황녀s : 가휘님 우희 데리고 짜장 라면 먹방하면 조회수 폭발입니다] [둘둘킹콩 : ㄹㅇㅋㅋ]“오···!”
그야말로 금과옥조 같은 조언이 아닐 수 없었다.
거기에 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더했다.
“항아. 나랑 우희 옷소매에 여기 적힌 글자랑 똑같이 수 놓아줄 수 있어?”
“네, 도련님. 근데 이게 무슨 글자예요?”
“이게 뭐야, 휘 가가?”
항아에 이어 모르는 글자가 없는 우희마저 내가 내민 종이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난 둘을 향해 씩 웃어보였다.
“구독과 좋아요.”
그 날 이후 내 채널엔 ‘우희와의 먹방’, ‘우희와 액괴놀이’, ‘우희와 수학공부’, ‘우희와 레슬링’등의 우희와 함께하는 콘텐츠가 부쩍 늘기 시작했다.
*우희와 동파육 먹방
“희야, 맛있어?”
“응!”
“맛있을 땐 어떻게?”
“아! ”
“또?”
야무진 한국어 발음으로 포권을 해 보이는 우희의 옷소매 위, 금실로 수놓은 ‘구독과 좋아요’란 글자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미가L : 커여워!!!!] [경기도퓻 : ㄱㅇㅇㄱㅇㅇㄱㅇㅇ] [뽀꼬뽀꼬 : 우희야ㅠㅠㅠㅠㅠ]······.
효과는 대단했다!
빠르게 갱신되는 채팅창을 바라보는 내 얼굴엔 흐뭇한 미소가 한 가득이었다.
화면 너머에서 아빠 미소를 짓고 있을 시청자들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물론 개중에는 3분할 오토바이 댄스를 보여달라느니, 뽀뽀하는 모습을 보여달라는 등의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는 시청자도 있었지만, 무시하면 그만인 일.
아무리 내공이 고파도 그렇지, 채널 홍보 멘트를 시키는 것도 미안한 판국에 그런 비양심적인 일까지 벌일 수는 없지.
나는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발언을 하는 몇몇 시청자를 강퇴한 뒤, 우희와 마찬가지로 카메라를 향해 포권을 했다.
단, 우희와 달리 내 경우 글자가 새겨진 장소는 소매 안쪽이었다.
시키지 않은 말까지 잽싸게 따라하는 우희의 모습에, 내 입가에 다시 한 번 미소가 번졌다.
나중에 이런 딸 하나 낳으면 소원이 없겠네.
그러나 내가 그녀를 바라보는 시선과, 그녀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근본적으로 어긋나 있음을 깨닫기 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건 서역행에 나섰던 행상의 복귀로 조가장이 한창 떠들썩할 무렵, 어른들의 시선이 모두 외부로 향한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평소처럼 수학 과외를 마치고 그라운드 기술 연마를 위해 침대를 정돈하고 있던 어느 날,
난 갑자기 비단 끈으로 문고리를 묶기 시작한 우희를 보며 고개를 갸웃했다.
“문은 왜 잠가?”
“히힛.”
묻는 말에는 대답도 없이 배시시 웃으며 다가온 그녀가, 내 옷소매를 꾹 잡아당기며 속삭였다.
“휘 가가.”
“응?”
“이리 와.”
팔을 당기는 힘에 못 이긴 척 침상 위로 풀썩-.
뒤이어 엉금엉금 침상을 오른 그녀가 꼬물거리며 내 품안으로 파고 들었다.
갑자게 웬 응석일까?
“졸려? 오늘은 훈련 쉴까?”
“으응··· 모르겠어.”
데굴거리던 머리가 슬그머니 팔뚝 위로 올라왔다.
팔베개의 대가는 말랑거리는 귓볼이면 충분했다.
만지작, 만지작.
“가가는 내 귀가 좋아?”
“응, 좋아. 말랑말랑해. 근데 문은 왜 잠근 거야?”
“···가가는 그거 알았어?”
“뭘?”
“우리 엄마 아빠가 그러는데, 부부는 가끔 이렇게 문을 잠그고 노는 거래.”
응?
귀를 매만지던 손이 멈칫했다.
“이번에 세가에 갔을 때도 오랜만에 엄마, 아빠랑 같이 자려고 했는데 문을 잠그고 있어서 못 들어갔어.”
잠깐만, 이거 설마···.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몰라 노심초사하는 내게, 우희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덧붙였다.
“내가 다음날 여쭤보니까 부부의 놀이라고 알려주셨어. 휘 가가도 장주님과 부인께서 그러시는 걸 본 적 있어?”
“어? 아, 응. 나도 당연히 있지.”
거짓말은 아니다.
내 방을 얻기 전까지, 혈기왕성한 부모님을 둔 탓에 매일 밤이 얼마나 괴로웠던가.
아··· 갑자기 PTSD 오려고 하네.
이제는 추억이 되어버린 유년기의 기억을 더듬고 있자니, 우희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물어왔다.
“근데 엄마, 아빠가 안에서 뭘 하시는지는 영 모르겠어. 물어봐도 안 알려주시구. 혹시 가가는 알아?”
“음··· 그냥 이렇게 팔베개하고 주무시는 거 아닐까?”
“아닌데···. 안에서 막 엄마 웃음소리 들렸는데.”
“너도 지금 웃고 있잖아.”
“힛, 그런가?”
어휴, 무공도 익히신 분들이 조심 좀 하시지.
난 한 아이의 동심과 그 부모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다행히 우희는 더 이상 깊게 파고들지 않았다.
그나저나 우희도 애는 애구나. 이런 것까지는 모르는 걸 보니.
마냥 천재라고만 생각했던 그녀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에 빙긋 웃음이 새어나왔다.
하지만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는 건 별개의 문제였다.
여긴 현대가 아닌 명나라.
남녀칠세부동석이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인들의 사고가 일반 백성보다 개방적이라고는 하나, 이렇게 문까지 잠그고 있다 보면 어떤 오해가 생길지 모르는 일이다.
순수함과 호기심으로 무장한 아이들은 때때로 상상도 못한 사고를 치곤 하니까.
“그러지 말고 우리 문 열고 놀자, 희야. 어른들이 걱정하셔.”
“우린 장래에 부부가 될 사이인데도?”
“아하하.”
“왜 웃어? 가가는 나랑 혼인하기 싫어?”
커서 아빠와 결혼하겠다는 딸을 보는 심정이 이러할까?
그러나 난 흐뭇함을 숨긴 채 설득을 이어갔다.
“그러니까 지금 말고 나중에 더 크면. 알았지?”
“맨날 크면이래···.”
입술을 삐죽 내밀던 그녀는 이내 슬쩍 내 눈치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되물었다.
“정말이지?”
“응.”
“···알았어. 대신 내가 오늘 한 말은 조 부인께는 절대 비밀이야. 되바라진 아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니까.”
납치 사건으로 말미암아 어른들 몰래 하는 행동의 위험성을 깨달은 그녀에게서, 더 이상 예전과 같은 고집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난 혹여나 꾸중을 들을까 염려하는 그녀의 모습이 사랑스러워 그만 꼭 끌어안고 말았다.
***
다행히 그 날 이후, 우희가 같은 일로 나를 조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나 한동안 가라앉았던 그녀의 응석이 다시금 심화되는 사건이 있었으니,
“우-! 아-!”
“응, 소희야, 오빠야. 배고팠어어-?”
“우···.”
난 품안에서 꼬물거리는 조그만 생명체를 사랑을 담아 보듬었다.
역시 유전자는 배신하지 않아.
선남선녀 밑에서 태어난 아이는 이따금 자식자랑을 목적으로 O튜브에 올라오는 영상의 아기들처럼 눈이 왕방울만 했다.
“도련님, 아가씨가 그렇게 좋으세요?”
“그럼. 얼마나 귀여운데. 그치?”
“보기 좋으셔요. 시녀들 사이에도 소문이 자자해요.”
항아의 말마따나 장원 내에 나의 지극한 여동생 사랑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6살 아니, 전생까지 합치면 30살 가까이 차이 나는 동생이 어찌 귀엽지 않겠는가.
심지어 소희가 태어난 날에는 깨끗한 손으로 아이를 만지기 위해 하루에 손을 여덟 번이나 씻었을 정도였다.
하물며 질투는 가당치도 않았다.
난 매일처럼 아기 옆에 머물며, 지금이 아니고선 남길 수 없는 추억이 담긴 영상들을 잔뜩 촬영했다.
채널 내에 ‘모찌 소희’ 카테고리가 따로 추가되었음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러나 질투는 엄한 곳에서 돌아왔다.
“휘 가가. 나 언제까지 기다려야 돼?”
“어? 희야, 들어와서 좀 앉아.”
“으응-.”
우희의 짜증 담긴 콧소리에 난 쓴웃음을 지으며 문 밖을 바라봤다.
“넌 아기가 안 귀여워?”
“아기를 너무 오냐오냐 하면 버릇이 나빠지는 법이랬어.”
“흣. 그건 좀 더 큰 다음 아니야?”
“얼르은-.”
심지어 그녀는 내게 ‘희야’는 자기로 족하다며, 내가 친동생을 애칭으로 부르는 것마저 질투했다.
덕분에 집안 식구들 모두, 그래봤자 부모님이 전부지만, 소희를 ‘희아’라고 부를 때 나만 ‘아희’라고 순서를 달리 부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다.
“휘 가가-.”
“도련님, 아가씨 저한테 주시고 얼른 나가보세요.”
우희의 투정을 보다 못한 항아가 옆에서 손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이 품안의 소희를 넘기던 그 때, 문득 나의 갓난아기 시절 기억이 떠올랐다.
“항아.”
“네, 도련님?”
“아희한테도 나한테 했던 것처럼 배고프냐면서 그런 짓 하면 안 된다?”
“네? 아··· 네!?”
한 발짝 늦게 괴성을 터뜨리는 그녀를 뒤로 하고 방을 나서자, 우희가 새침한 얼굴로 내게 매달려왔다.
“방금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런 짓?”
“별 거 아니야.”
“휘 가가는 나한테만 심술궂어.”
“무슨 소리야! 내가 너만큼 신경 쓰는 사람이 어디 있다고.”
기가 막혀서 버럭 소리치자 그녀가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흐흣. 근데 가가, 나 다리 아파. 업어줘.”
“내공은 어디에 쓰고 다리가 아파.”
“가가 기다리느라 지쳤어.”
“왜 처음 봤을 때보다 점점 아기가 되지?”
아이를 오냐오냐 키우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할 때는 언제고, 정작 내게 가장 응석을 부리는 건 다름 아닌 그녀였다.
그리고 난 그런 그녀의 응석에 누구보다도 약한 사람이고.
“지금 업어줘?”
“으응, 밖에선 사람들이 흉보니까 가가 방에서.”
“이제 와서 그 정도로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거 같은데.”
“소희처럼 안아주는 것도 해줘.”
“허. 알았다아-.”
그 정도는 충분히 해줄 수 있지.
난 우희의 코끝에 장난스럽게 손가락을 튕기며 걸음을 옮겼다.
설마 4년 뒤, 그녀가 10살이 될 때까지도 이런 어리광이 이어질 줄은 꿈에도 모른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