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26
기연이 내린…다? (3)
쉭-.
턱 끝을 노리고 뻗은 주먹을 우희가 부드러운 손짓으로 내리눌렀다.
가벼운 동작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힘은 묵직했다.
“음.”
그 힘에 팔이 크게 휘청이며 목표에서 빗나갔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고 허리를 숙여 반격에 대비했다.
아니나 다를까, 곧 거센 파공성과 함께 우희의 옷자락이 머리 위를 스쳤다.
난 모골이 송연함을 느끼며 재빨리 뒤쪽으로 스텝을 밟았다.
단 한번뿐인 공방이었지만, 다시 자세를 잡고 가드를 올릴 때까지, 팔에 남은 얼얼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기엔 제법 흉흉한 기세의 공방. 그러나 나와 우희의 대련이 처음부터 이리 살벌했던 것은 아니다.
몸이 어려졌다고 해서 어린 아이를 진심으로 때릴 수 있는 어른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것도 평소 앙숙처럼 지내는 사이도 아니고 친동생처럼 아끼는 아이를.
더구나 병장기가 아무렇지 않게 오가는 세계였다.
글러브나 다른 보호구조차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우희의 얼굴을 노리고 주먹을 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 탓에 우리의 훈련은 싸움이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웠다.
5년 전, 납치사건이 발생하기 전까지는.
그날 악의의 찬 어른들에게서 두려움과 무기력함을 사무치게 실감했던 우리는, 수련동안 다소 부상을 입는 한이 있더라도 서로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약속했다.
물론 생사대적을 대하듯 눈이나 명치와 같은 급소를 노리는 것은 삼갔고 사용하는 내공 또한 적당히 억제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리디 여린 어린 아이의 피부는 하루가 멀다 하고 피멍과 상처로 물들었다.
그러나 여긴 내공이 존재하는 세상.
내가 익힌 신산심적공은 피로와 내상을 다스리는 효과가 탁월했고, 우희가 기거하는 가옥에는 지난 납치사건 이후 제갈세가에서 파견 나온 실력 좋은 의원이 상시 대기 중이었다.
덕분에 우리는 서로를 상처 입히는 두려움에서 벗어나 대련에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핫!”
“흡-.”
이번에는 우희가 먼저 공세에 나섰다.
난 안면을 향해 짓쳐 드는 손바닥을 가드 중이던 왼팔로 걷어내는 한편, 훤히 드러난 그녀의 왼뺨을 향해 라이트훅을 날렸다.
그러나 우희는 제자리에서 한 바퀴 빙글 도는 것만으로 내 주먹질을 흘려보내며, 오히려 왼쪽 장심으로 내 어깨를 가볍게 밀어냈다.
“으음···.”
밀려드는 경력에 서너 발짝 뒷걸음질 친 나는 다시 이를 악물며 앞으로 돌진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몇 차례의 공방이 오갔다.
그러나 어린 아이들 답지 않은 현란한 싸움에도, 채팅창은 호평보다 혹평으로 가득했다.
[양뽈락 : 오늘도 시작됐다!] [칭쨔오 : 저 먼저 쉬러 갑니다] [샤인쿤 : 아 멀미나요 ㅋㅋㅋㅋ] [즐겜하셍맨 : 이 정도면 시청자 괴롭히는 거 즐기는 수준인데] [주인공엄마 : 우희 화이팅!] [Bzax : 깐휘님 머리 좀 고정하고 싸워주세요]내가 닭도 아닌데 그게 될 거 같···.
쉭-!
“윽···.”
잠시 거리가 벌어진 틈을 타 채팅창을 확인하던 나는, 화면 가득 다가오는 손바닥을 간신히 피해내며 다시 주먹을 뻗었다.
이후로도 대련은 내가 살짝 밀리는 형국으로 진행됐다.
5년 전 처음 대련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정신연령에서 오는 노련함과 현대격투기의 생소함을 바탕으로 우위를 점했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이었다.
물론 나 역시 수련을 게을리 한 것은 아니나 우리 둘은 결정적으로 ‘타고난 재능’이 달랐다.
제갈세가 내에서도 제일기재로 평가 받는 그녀는 무공에 대한 이해력뿐만 아니라 내공을 쌓는 속도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그야말로 일신우일신이란 말은 그녀를 위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반면 나는 스트리밍을 통해 내공을 각성한지 몇 년 째 하꼬 취급을 못 벗어나고 있었으니, 그녀를 상대로 이만큼 버티는 것도 용하다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 우희 개인에 대한 경탄일 뿐, 현대 무술이 중국 무술보다 더 실전적이라는 생각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다만 이 세계에선 화려함 속에 감춰진 동선과 힘의 낭비를 내공으로 대신하는 게 가능할 뿐.
때문에 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적인 현대 무술과 막대한 내공이 결합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아직까진 희망사항에 불과하지만.
“헉, 헉···.”
“갈게, 가가.”
“응.”
땀방울을 흩날리며 우희와 치고받기를 반복하던 어느 순간, 펀치를 날리는 척 페인트를 사용한 나는 이어서 그녀의 다리 안쪽을 향해 강력한 로우킥을 날렸다.
오늘 대련에서 처음 등장한 발차기였다.
퍽-!
“읏?”
지금!
난 우희의 몸이 크게 휘청거린 틈을 노려 잽싸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허공을 휘젓던 그녀의 손이 먹이를 노리는 매처럼 내 목덜미를 향해 날아들었지만, 그럴수록 난 기세를 높여 그녀의 하반신으로 돌진했다.
“으흑!”
당황한 눈빛이 생생한 그녀를 끌어안고 바닥을 뒹굴었다.
우희는 넘어지는 와중에도 유리한 포지션을 잡기 위해 내게 다리를 감았지만,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였다.
왼발을 좀 더 멀찍이 딛는 것으로 그녀의 시도를 간단히 무위로 돌린 나는, 이어서 뒤엉킨 몸을 풀어내며 암바를 걸었다.
아니, 걸려 했다. 뒤에서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만 아니었다면.
“지금 뭘···. 잠깐, 그대로 계속하는 건가?”
“아!”
적양권의 당황한 음성에 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곳 중원에서는 공격을 피해 바닥을 뒹굴거나 넘어진 채로 드잡이를 하는 것을 나려타곤, 즉 당나귀가 바닥을 구르는 것에 비유하며 대단한 불명예로 여긴다는 사실이 뒤늦게 떠올랐기 때문이다.
마음씨 착한 우희는 이런 사실을 진즉부터 알았음에도, 내가 민망해 할 것을 우려해 여태껏 모른 체 해온 듯했다.
무협에 빠삭한 시청자들이 정보를 주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모르고 있었으리라.
물론 강호인들의 이런 사상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을 드러내어 괜한 분란을 초래할 이유는 없었다.
“호승심에 못난 꼴을 보였네요, 대협.”
난 몸을 세워 적양권에게 포권하는 한편,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는 우희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괜찮아?”
“응, 휘 가가.”
“미안, 둘만 있을 때로 착각했어.”
“으응, 괜찮아. 나 옷 털어줘.”
“이리 와봐.”
우희의 어깨며 등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던 나는, 그녀가 묘한 미소를 띤 채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음을 깨달았다.
뒤늦게 그녀를 따라 고개를 돌리던 나는, 우리를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약빈을 발견하곤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쟤는 또 왜 저래, 나려타곤을 본 게 그렇게 불쾌한 일인가?
잠시 뒤, 따끔거리는 시선을 무시한 채 복장 정리를 마치자, 적양권이 헛기침을 하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솜씨였다.”
“과찬이십니다, 대협.”
“자네들만 괜찮다면 강호의 선배로서 한 가지 조언을 하고 싶은데.”
“경청하겠습니다.”
나는 순간 나려타곤에 대한 질책이 돌아오는 줄 알고 바짝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이어진 그의 말은 무공에 대한 진심어린 조언이었다.
“우선 제갈소저는···.”
“제갈우희예요. 부디 편하게 대해주세요, 대협.”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협.”
“···그러마. 제갈세가의 무공은 과연 명불허전이었다. 그러나 더욱 놀라운 것은 너의 개인적인 성취가 아닌가 싶다. 내공이며 초식 모두 흠잡을 데가 없다.”
“과찬이세요.”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실전경험이 얼마 없는 탓에 임기응변이 부족하구나. 조금 전 소공자가 달려들었을 때 설취일양이나 편우출정의 묘를 살렸다면 능히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아···!”
우희는 짚이는 게 있는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런 그녀를 대견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적양권이 이내 내게 시선을 돌렸다.
“공자의 무공은··· 무어라 말하기 어렵군. 단순하지만 군더더기 없는 동작들은 일견 낭인들이 사용하는 실전적인 초식을 닮았으나, 그들에겐 없는 체계가 엿보였다. 혹여 군부의 무공이라도 익힌 것이더냐?”
“아··· 그게···.”
“대답하기 곤란하다면 굳이 밝힐 필요 없다. 자신의 밑천을 전부 드러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도 없으니. 다만···.”
잠시 말끝을 흐린 그가 이내 한결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네 무공에는 깊이가 부족하다.”
“깊이요?”
“그렇다. 초식 자체는 강맹하고 날카로우나 팔에 담긴 기운이 상시 일정한 것으로 보아, 초식의 형만 익혔을 뿐 그에 맞는 진기유도법을 배우지 못한 게 분명하다. 원래부터 초식만 존재하는 무공이거나 모종의 이유로 진의가 소실된 경우지. 또한 투로가 일정치 못한 것은 자세를 지도해줄 스승이나 동문의 부재를 뜻함이니, 혹여 비급만 보고 익힌 무공은 아니더냐?”
“아, 네···. 맞아요.”
오오, 이게 바로 고수의 눈썰미?
놀랍게도 그는 단 한 차례의 관전만으로 내 무공의 연원을 거의 정확히 파악해냈다.
역시 전문가의 조언 없이 동영상만 보고 익히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는 걸까?
씁쓸한 미소를 머금는 찰나, 그의 말이 이어졌다.
“괜찮다면 조금 전의 초식을 다시 한 번 보여줄 수 있겠는가?”
“아무 동작이나요?”
“가장 간단한 것이 좋겠다.”
“그럼···.”
앞으로 나선 나는 적양권 앞에서 잽에서 스트레이트로 이어지는 가장 기본적인 원투 콤보를 펼쳐보였다.
쉭, 쉭-.
“음···.”
잠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겨 있던 적양권이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혈도는 어느 정도나 익혔느냐.”
“대부분은 외우고 있습니다.”
“좋구나. 그럼 조금 전의 동작을 그대로 반복하되 나를 따라 진기를 유도해보거라. 우선 왼팔이다.”
양팔을 들어 올린 적양권이 조금 전 내가 했던 동작들을 천천히 흉내내보였다.
“팔 전체를 감싼 기운은 아까 네가 사용했던 내공의 절반이면 족하다. 나머지 절반은 왼쪽 팔꿈치, 곡지 부근에 집중시키거라.”
“했습니다, 대협.”
“왼팔을 뻗는 순간 곡지에 모았던 기운을 간사와 내관으로, 마지막에는 대능으로 이동시킨다. 동시에 우측 사만과 대거, 양능천에 정확히 같은 양의 힘을 실어 허리를 비튼다. 알겠느냐?”
“곡지에서 대능으로, 허리에도 같은 만큼···.”
적양권의 말을 곱씹으며 가볍게 레프트 잽을 날린 순간,
쐐액-!
허공이 갈라졌다.
“어···?”
“그것이 초식과 기운이 조화를 이루었을 때의 위력이다.”
전력으로 스트레이트를 날렸을 때보다도 강력한 일격에, 주먹을 지른 나뿐만 아니라 곁에서 지켜보던 우희까지 두 눈이 휘둥그레져서 적양권을 바라보았다.
“대협, 이건 혹시 대협께서 익히신···.”
“제갈세가의 아이답게 영민하구나. 내 입으로 밑천을 드러내지 말라 했거늘, 가르침에 몰두해 내가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군.”
“아! 아닙니다, 대협의 가르침에 감사드려요. 휘 가가, 가가도 빨리.”
“아, 감사합니다. 대협.”
우희의 호들갑에 나 또한 얼떨결에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흐뭇하게 웃던 적양권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내게 몇 가지 가르침을 더 주었다.
비록 조금 전과 같이 초식에 맞는 진기유도법을 알려준 것은 아니었으나,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던가, 그는 현대 격투기를 처음 접하는 것일 텐데도 내 자세만 보고도 어느 부분이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귀신 같이 찾아냈다.
“겨드랑이를 더 붙이거라.”
“네.”
쐑-!
“다리는 이 정도 너비로 벌리는 게 좋겠다.”
“네!”
쐐액-!
조언이 이어질수록 눈에 띄게 달라지는 초식의 위력에, 주먹을 뻗는 내 얼굴은 어느덧 짜릿한 쾌감에 상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