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3
쉽다고 했잖아요. (1)
역시 외국어 습득의 지름길은 현지인과의 대화였다.
갓난아기로 환생한지 6개월이 지날 무렵, 난 주변 사람들이 나누는 대화의 대부분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아기에게 건네는 말 중에 어려운 단어가 얼마나 있겠냐만, 전생의 기나긴 교육과정에도 지지부진했던 영어 실력을 생각하면 기적이나 다름없는 속도였다.
물론 내 주위의 그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는 못하지만 말이다.
태어난 지 반년 만에 유창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아기라니, 건국신화에나 나올 법한 이야기였다.
물론 잠시간은 신동이 탄생했다며 부모님도 들뜰지 모르지만, 그 순간뿐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평범함이 드러날 텐데, 괜히 지금부터 부모님의 기대를 받아봤자 부담스럽기밖에 더 하겠는가.
일시적인 비범함을 감추기로 마음먹은 나는, O튜브에 올라온 개월별 아기 행동 발달표의 내용을 그대로 흉내 내기 시작했다.
아기 행동 발달표에는 대다수의 아이들이 취하는 보편적인 행동을 비롯해, 소수의 아기들만이 할 수 있는 고급 기술들까지 보기 좋게 망라되어 있었다.
그래도 너무 평범한 건 좀 아쉬우니까.
천재까지는 아니어도 부모님께 약간이나마 자랑거리인 자식이 되고 싶었던 나는, ‘발달이 빠른 소수의 아이’를 흉내 내기로 했다.
그리고 생후 6개월 된 아기의 고급 스킬은 ‘앞으로 기어가기’와 ‘음절을 결합한 고급 옹알이’이었다.
“앙아! 앙-아!”
“네, 도련님. 저예요오~.”
내가 생각해도 깜찍한 목소리에 방을 청소 중이던 까무잡잡한 여자 아이가 반색하며 침대로 다가왔다.
아기 흉내를 내느라 ‘앙아’로 발음한 그녀의 진짜 이름은 항아, 아직 이름자를 본 적이 없어 성은 알지 못했다.
반면, 이제 내 이름은 확실히 알았다.
그동안 내 이름인 줄 철썩 같이 믿어왔던 ‘휘아‘는 그저 내 애칭에 불과했다.
내 진짜 이름은 조가휘(趙佳輝)였다.
그나마 이것도 부모님께서 가족 이름을 종이에 써주신 것을 스트리밍으로 녹화한 뒤, 누군가 O튜브에 올려놓은 간체자 한자표를 샅샅이 뒤져 겨우 알게 된 사실이었다.
참고로 아빠의 이름은 조자헌, 엄마의 이름은 벽교은이었다.
세 식구 모두 전(前)한국인인 내가 보기에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사실 이름 말고도 궁금한 것은 잔뜩 있었다.
내가 환생한 이곳이 정확히 어디이며 부모님은 무슨 일은 하시는지 등등.
하지만 그런 것들을 갓난아기 앞에 와서 미주알고주알 떠들고 갈 정도로 한가한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그나마 ‘중국의 의상 역사’를 검색해 본 덕에 주변인들의 복식이 명나라 때의 복식임을 알게 된 게 가장 큰 수확이었다.
그 외의 정보들은 항아가 수다스럽게 조잘거리는 말들을 열심히 주워듣는 게 최선이었다.
“도련님. 여기 보세요, 여기. 까꿍!”
“앙아!”
“흐흣, 총명도 하셔라. 으유- 귀여워.”
네가 더 귀여워.
이제 겨우 12, 13살이나 되었을까?
아직 양 뺨에 젖살이 통통한 항아는 내가 번뇌의 모유수유에 슬슬 무덤덤해질 무렵부터 엄마와 번갈아가며 나를 돌보기 시작한 시녀였다.
시녀라니.
거기다 가끔 부모님 품에 안겨 나들이를 할 때마다 보았던 대학 운동장만한 너른 마당에서 짐을 나르는 일꾼들과 마차를 보아하니, 나는 제법 부유한 상인가문에서 환생한 것 같았다.
무엇보다도 감사한 것은, 나만 보면 얼굴에서 미소가 떠날 줄 모르는 애정 넘치는 부모님의 존재였다.
지금보다 생활수준과 인권이 발달한 현대에서조차 종종 학대를 당하거나 굶어 죽는 아기의 사연이 뉴스 화면을 장식하는 마당이었다.
만약 그런 가정에서 환생했다면 나 역시 별다른 저항도 못 해보고 또 한 번의 죽음을 맞이했을지 몰랐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의 유복한 환경이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이번 생의 행운을 다시 한 번 곱씹던 그 때,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던 항아가 갑자기 이상행동을 시작했다.
잠시 바깥 동향을 살피던 그녀가 느닷없이 저고리 고름을 풀어 가슴을 드러낸 것이다.
“도련니임-.”
“으아?”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다시 침대로 다가온 그녀가 나를 살포시 안아들자, 난 민망함에 황급히 고개를 반대로 돌려 가슴을 외면했다.
그러나 그녀는 좀처럼 포기하지 않았다.
“배 안 고프세요?”
“으으-.”
평소 우리 엄마의 모유수유를 보며 호기심을 키워온 것일까, 그녀는 소꿉장난에 빠진 여자아이처럼 내게 젖을 물리려 했다.
하지만 아무리 순수한 의도라 하더라도, 현대인의 의식을 가진 나에게 이 상황은 너무나도 큰 시련이었다.
“으응!”
“어? 왜 안 드시지? 이렇게 하는 게 아닌가?”
“으으. 으우-.”
“아! 도련님, 착하다. 안 할게요. 뚝.”
참다못한 내가 우는 척을 하자, 그녀는 그제야 화들짝 놀라며 옷을 여몄다.
나 역시 식은땀을 흘리며 놀란 속을 달랬다.
“조 부인께 이르시면 안 돼요?”
배시시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던 항아는, 이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방 청소를 시작했다.
이처럼 가끔 엉뚱한 짓을 벌이기는 해도 기본적으로는 착하고 성실한 그녀였다.
단 한가지 치명적인 단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냄새였다.
***
그녀의 품에 늘 안길 때면, 엄마에게선 맡아본 적 없는 콤콤한 냄새가 났다.
사실 비단 그녀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녀 정도면 체취가 옅은 편이었으니까.
가끔 엄마 품에 안겨 집안 산책을 할 때마다 맡게 되는 고용인들의 체취는 상상 그 이상으로 고약하기 그지없었다.
그에 반해 엄마와 아빠의 몸에서는 은은한 약재 냄새만이 감돌뿐이었다.
두 분만 특별히 냄새가 안 나는 체질일 리는 없으니 아마 목욕에서 비롯된 차이인 게 분명했다.
난 엄마가 나를 씻겨줄 때 사용하던, 호두만한 크기의 바닐라 아이스크림색을 띤 무언가를 떠올렸다.
현대의 비누보다 미끄덩대는 감촉에 거품도 일지 않았지만, 그녀가 눈곱만큼만 떼어 쓰던 것으로 보아 상당히 고가의 물건임이 분명했다.
나는 문득 비누를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 여친이 보던 웹툰에서 얼핏 본 기억이 있었다.
분명 나처럼 다른 세상에서 환생한 여고생이 비누로 시작해 현대 지식을 바탕으로 만들어낸 각종 발명품을 이용하여 돈을 쓸어 모은다는 내용이었다.
마침 상인가문에서 환생했겠다, 평범한 여고생이 뚝딱 만들 정도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웹툰 주인공과 달리 나는 비누 제조법 따위는 조금도 모르지만 문제될 건 없었다.
내게는 O튜브가 있으니까!
생각을 마친 나는 곧장 눈을 감고 검색창에 ‘천연 비누 만들기’를 입력했다.
그러나 희희낙락하며 검색 결과를 살피던 나는 이내 인상을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비누 만들기 재료]1. 비누 베이스를 준비합니다.
“······?”
비누를 만드는 데 비누 베이스가 필요해?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을 녹여 초콜릿을 만들어주던 여친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잠깐의 그리운 회상을 마친 나는 곧장 다음 영상을 클릭했다.
다행히 다음 영상의 도입부는 제법 믿음직스러웠다.
[일단 설탕을 작은 숟가락으로 한 스푼 넣어주시고요. 다음으로 코코넛 오일도 한 스푼. 코코넛 오일이 없다면 다른 식물성 오일을 사용하셔도 좋아요.]설탕이랑 오일. 이제야 뭐가 좀 제대로 되는 기분이다.
[네. 다 넣으셨으면 여기에 비누 베이스를 살짝만.]“컥!”
“아구, 왜 그래. 침 넘어갔어요?”
방 안의 서책들을 정리하던 항아가 내 기침 소리에 화들짝 놀라 침대로 달려왔다.
그러나 그녀가 나를 어르고 달래느라 야단법석을 떠는 동안에도, 내 두 눈은 영상 속 다섯 글자에 못 박힌 채 떨어질 줄 몰랐다.
비누베이스 이놈!
***
비누 만들기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화면 상단에 표시되는 인기 동영상 중 대다수는 ‘비누 베이스’를 이용한 레시피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비누 베이스란 첨가물을 섞어서 굳히기만 하면 비누가 되는, 굳이 비유하자면 카레가루 같은 물건이었다.
물론 이 시대에 그런 편리한 물건이 존재할 리 없었다.
난 ‘카레가루로 카레 만드는 방법’이 아닌 ‘향신료를 섞어 카레를 만드는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렇게 12개의 인기 영상 중 11가지가 순식간에 제외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는······.
[밍키의 액체 괴물 만들기]밍키TV · 조회수 491만 · 2년 전
-오늘은 물풀과 소다를 넣지 않고 천연성분으로 액체 괴물을 만들었어요.
아니, 도대체 액괴가 뭔데 매번 검색 결과에 뜨지?
난 전생부터 이어진 의문을 뒤로 하며 인기 영상에서 제외된 나머지 영상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천연 비누에는 MP비누와 CP비누가 있으며, 후자가 내가 찾는 천연 비누에 가깝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나는 곧장’CP비누 만들기’로 검색어를 수정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CP비누 베이스’를 넣어 비누를 만드는 방법이 나를 반겼다.
“끼약! 베이스!”
마침 항아도 일을 마치고 돌아간 터라 마음껏 비명을 터뜨린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새로운 검색어를 입력했다.
이건 어떠냐!
‘비누 베이스 없이 비누 만들기’, ‘비누 베이스 만들기’ 등의 검색어를 차례로 입력하던 나는 마침내 원하던 결과물을 찾을 수 있었다.
[폐식용유로 천연 CP비누 만들기]비누 베이스를 사용하지 않고 가성소다와 폐식용유를 이용해 비누를 만듭니다.
초보자도 쉽게 따라할 수 있어요.
“오!”
근데 가성소다가 뭐지?
마침내 해냈다는 생각도 잠시, 고개를 갸웃하며 검색창에 ‘가성소다’를 입력한 나는 그 정체가 다름 아닌 수산화나트륨(NaOH)임을 알 수 있었다.
지방에 NaOH나 KOH 같은 강염기를 섞어 굳히는 것이 수제 비누를 만드는 기본 원리라는 것이다.
그리고 비누 업계에서는 이 두 물질을 각각 가성소다, 가성가리로 부른다는데······ 근데 비누는 못 만들고 자꾸 미묘한 지식만 늘고 있어?
난 재생 중인 영상을 뒤로 하고 가성소다 만드는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소금물을 전기분해하여 수산화나트륨을 얻는 과정]전···기분해?
비누를 만들려면 전기분해까지 할 줄 알아야 되는 거야?
시대를 몇 단계는 뛰어넘은 듯한 단어의 등장에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던 나는, 아직 한 가닥 희망이 남아 있음을 떠올리곤 마음을 다잡았다.
가성가리. 아직 가성가리가 남아 있···.
[염화 칼륨을 전기분해하여 수산화칼륨을 얻는 과정]“같은 놈이 올려써! 같은 놈이!”
두 손을 뺨에 올린 채 절규를 쏟아내던 나는, 비누 만들기를 식은 죽 먹기로 묘사한 어느 웹툰 작가를 원망하다 지쳐서 잠에 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