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37
오랜 기다림
“람쥐, 손.”
“쯋.”
“빠-앙.”
“쮸우···.”
손가락 총에 당한 고든람쥐의 몸이 탁자 위로 풀썩 무너졌다. 그 외에도 녀석은 엄지 척, 물구나무 등 보통 짐승들은 엄두도 못 낼 고난도 동작들까지 척척 수행했다.
태어난 지 1년 만에 어른 주먹만 한 크기로 성장한 조그마한 다람쥐는, 비록 순수혈통 브로리만큼 날래진 않았지만 일반 다람쥐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지능과 스피드, 파워를 지니고 있었다.
녀석이 앞발에 움켜쥔 도토리를 악력만으로 파괴하는 영상은 한 때 엄청난 이슈가 되기도 했다.
한편, 내가 고든람쥐와 함께 펫방을 찍는 사이, 활짝 열린 처소의 문 밖으로는 풋풋한 두 소년소녀의 담화가 한창이었다.
“소희야, 이거 받아. 저번 북경행에서 사온 거야.”
“백옥으로 된 거위네요?”
“응. 내가 직접 고른 건데 마음에 들어?”
“응! 고마워요, 현 가가!”
오늘도 여동생의 환심을 사느라 여념이 없는 남궁현을 본 나는 흐뭇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16살이 되어서도 여전히 곱상한 외모를 잃지 않은 녀석은, 정작 사촌동생인 우희가 폐관수련에 들어간 이후에도 소희를 만나기 위해 몇 달에 한 번씩은 우리 장원을 방문하곤 했다.
누나만 넷이라더니, 피는 섞이지 않았다고는 하나, 처음으로 생긴 여동생의 존재가 어지간히 소중한 듯했다.
아마 네 살 무렵 처음 만난 우희를 끌어안으려고 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이었겠지.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아무튼 나로선 수련시간까지 아껴가며 동생을 챙겨주는 녀석이 고마우면 고마웠지, 결코 싫지 않았다.
친남매처럼 어울리는 둘을 보며 질투심을 느끼기엔, 전생을 포함해 내가 살아온 세월이 긴 탓도 있었다.
더구나 여긴 땅덩이 넓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중국!
비록 남궁세가가 위치한 안휘성과 이곳 호북성이 맞닿아 있다고는 하나, 그 사이의 거리는 물경 700km에 이르렀다.
차도 비행기도 없는 시대에 그 거리를 오가는 일이 쉬울 리 있겠는가.
그런 남궁현의 고생을 소희가 모를 리 없었다.
녀석은 남궁현이 방문할 것이란 소식만 전해지면, 이른 오전부터 출입문 앞을 어슬렁거리며 장원으로 향하는 마차가 없는지 살피곤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호감 있는 소년 앞에서 평소의 말괄량이 같은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수줍게 웃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감회가 새로웠다.
갓 태어난 소희의 손을 한 번 잡아보려고 손을 일고여덟 번씩 씻던 게 바로 엊그제 같은데, 그 조그마했던 아기가 벌써 이렇게 자라 10살이 되다니.
동시에 나는 5년 전에 이별한 우희의 성장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매일 보는 소희의 성장도 이리 눈부신데 오랜만에 만날 그녀는 대체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
헤어질 때만해도 종종 만날 수 있을 거란 기대와 달리, 난 그녀가 폐관수련에 들어간 이후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이 없었다.
이따금 그녀의 부친인 제갈기의 바둑 상대를 위해 세가를 방문할 때도 굳게 닫힌 수련장만이 나를 반길 뿐이었다.
시간이 아닌 경지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폐관수련의 특성 상, 얼마마다 휴식을 취하러 밖으로 나올지는 그녀 스스로도 모른다고.
“현아. 혹시 희야 소식 들은 거 없어?”
“저번에도 물어보더니.”
“너 마지막으로 온 게 벌써 넉 달 전이잖아.”
내 말에 남궁현이 옅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여기 올 때나 한 번씩 들르는 게 전부야. 가주님께선 뭐라고 말씀 없으셔?”
“건강하다고 하시지. 그래도 이제 슬슬 나와야 할 텐데.”
학관이 열리기까지 남은 일수를 계산한 난 우려의 말을 내뱉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덧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천무학관의 발족. 그러나 그것이 우희와의 재회까지 남은 시간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학관에 마련된 설비들이나 여타 기능들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처음 3개월간은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의 자제들만으로 시범운영을 하겠다는 맹의 결정이 있었으니.
“안 그래도 요즘 그거 때문에 시끌시끌하더라. 거대문파의 아이들끼리 먼저 친분을 다질 기회를 주는 게 아니냐고.”
“어차피 너희는 그거 아니어도 자주 만난다며.”
“그건 그렇지.”
“이제 너도 학관 들어가면 당분간은 못 보겠네?”
“응.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
산뜻한 미소를 짓는 남궁현에게 소희가 볼멘소리를 했다.
“이제 못 와요, 가가?”
“또 와야지. 우리 소희 보러.”
둘의 애틋한 모습을 보자 몇 년 전 우희와 이별하던 순간이 떠올랐다.
잠시 쓴웃음을 머금고 있던 난 이내 고개를 돌려 제갈세가가 있는 방향을 바라봤다.
이번에 갔을 때 만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
“아쉽네요. 오늘은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음, 생각보다 늦어지는구나. 열흘만 일찍 오지 그랬느냐.”
“안 그래도 오다가 마주치는 분들마다 그 얘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도 건강해보였으니 걱정은 말거라.”
“감사합니다, 가주님. 아, 그리고 이거···.”
제갈세가주를 상대로 바둑을 두던 나는, 품에서 서책 한 권을 꺼내 앞으로 내밀었다.
그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수학 문제집!
하루에 두세 문제씩 O튜브를 뒤져서 찾아낸 문제들로 엮은 나 나름의 선물이었다.
솔직히 나 같으면 절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이지만, 놀랍게도 우희는 좋아했다.
“전해주마. 그리고 이건 네가 저번에 주고 간 것이다.”
“아, 감사합니다.”
마침 대국도 끝났겠다, 난 제갈기가 바둑판을 노려보며 패배의 원인을 분석하는 동안, 몇 달 전에 두고 간 문제집의 채점을 시작했다.
물론 몇 년이 지나도록 우희의 점수는 변함없는 만점이었다.
이젠 무슨 문제를 내야 될지도 모르겠네.
품에서 꺼낸 참 잘했어요 도장에 먹물을 묻히던 그 때, 바둑판에서 시선을 뗀 제갈기가 다시금 내게 무언가를 건넸다.
“이것도 받거라.”
“···이건?”
“우희가 이번에 나왔을 때 네게 주라고 맡겨놓은 물건이다.”
[신산심적권(神算心的拳)]“아하하.”
어딘지 익숙한 상황에 너털웃음을 터뜨린 난 곧 비급 내부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나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펼친 것과 달리, 비급을 훑는 내 눈엔 점점 진지한 기색이 어렸다.
놀랍게도 그 안에 우희와 함께 연습했던 격투기 동작들의 진기유도법이 상세히 적여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투에게선 미처 배우지 못한 그라운드 기술들까지!
‘아직 배운 무공이 적어서 그래. 몇 년 안에 꼭 만들 수 있으니까.’
적양권으로 변장한 신투가 처음 내게 가르침을 베푼 날, 그녀가 분한 얼굴로 외쳤던 말이다.
결국 성공했구나.
자기 거나 익힐 것이지, 왜 늦나 했더니 이거 만드느라 늦었던 거야?
감동에 젖은 난 서둘러 비급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이곳이 가주의 집무실임도 잊은 채.
다시 정신을 차린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나서였다.
“아! 죄송합니다.”
“···성취는 좀 있었느냐?”
“제가 희야만큼 뛰어나지 못해 한참은 더 걸릴 듯싶습니다.”
서책을 품에 갈무리한 나는, 어느덧 석양이 지기 시작한 창밖을 바라보며 급히 몸을 일으켰다.
“가려는 게냐?”
“네, 실례 많았습니다.”
“자고 가지 않고.”
“아직 수련을 다 끝내지 못해서요.”
마음 같아서는 우희의 폐관수련이 끝날 때까지 죽치고 앉아 얼굴이라도 한 번 보고 가고 싶었지만, 나 역시 수련이며 채널 관리로 하루하루가 바쁜 몸이었다.
하다못해 누군가 동영상 편집을 대신해준다면 여유가 좀 생기련만.
그러나 채팅창을 관리해주는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라면 몰라도, 무상으로 영상 편집과 관리를 맡아줄 매니저를 구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계좌에 돈이 쌓여가면 뭐하나, 쓸 방법이 없는데.
하다못해 수익금의 일부를 다른 계정으로 옮기거나 슈퍼챗으로라도 건넬 수 있다면 좋겠지만, 이는 O튜브에선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었다.
여태껏 무료봉사를 하겠다던 팬들이 없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길든 짧든 언젠가는 서운한 티를 내며 금전적인 보상을 요구했다. 단 한 명의 예외도 없이.
처음엔 호의로 시작한 일이지만, 자신이 작업한 영상에 불어나는 조회수를 보자 뒤늦게 욕심이 생긴 것이리라. 안 생기면 사람이 아니고.
그렇게 마지막 편집자를 잃은 것이 어언 2개월 전, 일부 시청자들의 제보에 따르면 그들 중 일부는 아직까지도 다른 커뮤니티에 내 험담을 늘어놓고 다닌다고.
이러한 이유로 난 여전히 편집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꾸벅 허리를 숙이며 집무실에서 물러나던 나는, 문득 용건이 하나 남았음을 떠올리곤 걸음을 멈췄다.
“아, 가주님.”
“음? 더 할 말이 남았느냐?”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어깨라도 한 번 주물러드려도 될까요?”
내 말에 제갈기가 미심쩍은 얼굴로 되물었다.
“네가?”
“네.”
“나한테?”
“하핫, 네.”
“흠··· 어디 해보거라.”
얼마나 뜻밖이었으면, 난 몇 번이나 되묻는 제갈기에게 웃으며 접근했다.
처음 안마에 손을 댄 것은 스승인 신투로부터 추궁과혈을 받기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현대의 마사지 기술에 추궁과혈의 효과가 더해지면 얼마나 시원할까’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일에서, 난 뜻밖의 재능을 발견할 수 있었다.
구독신공의 선기가 마사지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상이상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시원해도 너무 시원한 나머지 마사지를 받는 이들이 하나같이 야릇한 신음소리를 낸다는 점이었지만, 어차피 방송에는 음소거 기능이 있으니 별 문제는 없었다.
[양뽈락 : 제갈기 말고 지약 눈나한테 해주세요]난 어느 시청자의 요청을 무시한 채 천천히 두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으음···.”
가휘가 떠난 자리를 바라보던 제갈기는 이내 기지개를 켜며 몸을 일으켰다.
추궁과혈을 누구한테 배웠는지는 몰라도 아주 제대로였다.
더구나 손끝에서 흘러들어오는 정순한 기운이란!
비록 영약처럼 즉각적인 효과는 없어도, 꾸준히 안마를 받는다면 건강과 무공에 큰 보탬이 될 것이 분명했다.
볼수록 탐이 난단 말이야. 헌데···.
“정말 안 만나 봐도 되겠느냐?”
제갈기의 음성에 집무실과 연결된 비밀공간의 문이 열리며 늘씬한 체구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구미호가 인간의 모습으로 현현하기라도 한듯, 그윽하면서도 서글서글한 눈매가 인상적인 미인이었다.
“무슨 신음 소리를 그렇게 내세요? 딸 민망하게.”
“크흠, 시원한 걸 어쩌느냐! 그보다, 간신히 서로의 시간이 겹쳤는데 귀식진까지 펼치고 숨어 있던 까닭이 무엇이냐, 희아.”
질문을 들은 제갈우희는 대꾸는커녕 그에게 반문했다.
“아버지께서 보시기엔 어떻던가요?”
“무엇이 말이냐?”
“휘 가가께서 절 기다리는 것이 그저 동생을 그리워하는 마음인지, 아니면 여인을 그리워하는 마음인지 말이에요.”
“그것이 아비한테 물을 말이냐?”
기가 차서 헛웃음을 터뜨린 제갈기가 다시 딸에게 물었다.
“그래서, 그리움이 더해지길 기다리기라도 한단 말이냐?”
“맞아요. 절 바라는 가가의 마음이 더 익으면 좋겠어요. 분명 놀라겠죠? 이렇게 매혹적으로 자랐으니.”
“허이구, 머리야.”
딸의 발칙한 언동에 제갈기는 골이 다 아파왔다.
“그리 말하는 것을 보니 넌 아직 버틸 만한가 보구나.”
“사실 지금 당장 달려가서 붙잡고 싶은데··· 참을 거예요. 5년이 아까우니까. 좀 더 극적인 순간에··· 흐흣.”
“그 아이의 손목에 매인 것도 네 작품이더냐?”
그 말에 시종일관 여유롭던 우희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그러나 그녀는 곧 배시시, 애교스러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아버지께서 알아보실 줄은 몰랐어요.”
“쯧쯧.”
“화를 안 내실 줄은 더 몰랐구요.”
“얼렁뚱땅 넘길 생각 말거라. 하··· 5년을 보고도 못 알아본 내 눈이 옹이구멍이지.”
딸의 손목에도 색만 다를 뿐 같은 팔찌가 채워져 있는 것을 본 제갈신은 심란한 마음에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런 건 또 어디서 찾아서···.”
“서고 임술번 서가 6행 24열에 꽂힌 서책에 관련 이론이 적혀 있던 걸요? 완성시킨 건 저지만.”
“허··· 부디 세가 어른들께서 그동안 몰라보셨길 바라야지. 알면 남세스러워서 고개나 들고 다닐까. 어차피 곧 학관으로 떠나겠지만, 그 동안만이라도 함부로 손목을 드러내지 말고 다니거라.”
“네, 아버지.”
부친의 꾸중에도 아랑곳 않고 우희는 손목에 매인 붉은 실 팔찌만을 애틋하게 어루만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