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54
형 나 마음에 안 들지 (1)
우리 중에 황자가 있다라···.
좀처럼 끝날 줄 모르는 수뇌부 회의에 먼저 기숙사로 복귀한 나는, 잠자리에 드는 대신 카메라를 띄웠다.
황자의 정체를 미리 알아둬야 실수를 피할 수 있지 않겠는가.
문득 사생활 침해란 단어가 머리를 스쳤지만, 무시했다.
방을 뒤지는 것도 아니고 그냥 스치듯 날아가는 게 전부니까? 괜찮겠···지? 여자 방도 아니잖아.
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기에 카메라의 시야는 눈높이에서 45도 정도 위로 들어서 촬영했다.
설마 바지 벗고 물구나무 서 있는 녀석은 없겠지.
일단 바로 옆인 강은의 방부터.
남궁현 못지않은 미소년인 녀석의 얼굴에선 언제나 귀티가 흘렀으니까.
성도 황가의 성인 주(朱)씨고.
난 생각하다 말고 혼자 피식 웃었다.
주씨라고 해서 다 황족이면 약빈이부터 황녀게?
잠시 뒤, 벽을 뚫고 느릿하게 날아간 카메라에 강은의 방 천장이 잡혔다.
시야 하단에 얼굴이 살짝 걸린 녀석은, 이제 막 잘 생각이었는지 상의를 갈아입는 중이었다.
어차피 남자니까 상체 정도는 찍혀도 괜찮겠···.
“엇!”
밑을 향하던 카메라가 다시 황급히 천장을 바라봤다.
화면에 얼핏 비친 강은의 가슴 부근에 반쯤 풀어진 붕대가 둘둘 감겨 있었기 때문이다.
황자의 정체를 알아보려다가 이게 웬···?
설마 남장여자?
아니면 상처나 흉터?
[리듬이안 : ???] [지나갈낙타 : 깐휘 카메라 내려]시청자들 역시 나만큼이나 강은의 정체를 궁금해 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가 모른다 해도, 카메라로 그를 찍을 수는 없었다.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분명, 남자치고는 지나치게 매끈한 등이었다.
그러고 보니 존명공자 말마`따나 강은이 공동욕탕에 있는 걸 본 적이 없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그가 붕대로 가슴을 가린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는 없었다.
살짝만 옆으로 가보면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카메라를 돌릴까 말까 고민하던 그 순간,
“후···.”
어딘지 개운한 한숨과 함께 강은이 다시 옷을 걸쳤다.
그저 붕대를 풀기 위해 잠시 벗은 듯싶었다.
동시에 숨죽인 채 벽 너머를 관찰하던 내 입에서도 긴장 섞인 한숨이 터져 나왔다.
잠시 뒤, 강은이 불을 끄고 침상에 누웠다.
봉긋 솟은 이불이 규칙적으로 오르내리는 광경을 마지막으로 난 촬영을 마쳤다.
기분이 얼떨떨했다.
한편, 채팅창에는 강은의 정체를 추측하는 채팅들이 한가득이었다.
[개복치 : 남장여자 클리셰 ㄷㄷ] [양뽈락 : 이래야 정통무협이지 ㅋㅋ] [펭귄목살 : 정체를 숨긴 황녀가 확실함]그런 건가?
아니면 강은은 그저 남장여자에 불과하고 황자는 따로 존재하는 걸까?
깊어지는 의문을 뒤로 하고 침상에 몸을 눕혔다.
워낙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어 더는 탐색을 이어갈 기분이 아니었다.
난 그렇게 한참을 뒤척거리던 끝에 간신히 잠에 들 수 있었다.
다음날 오전,
“으응-. 가휘, 잘 잤어?”
“어, 너도?”
방 밖에서 기지개를 켜던 강은과 마주친 내 시선이 나도 모르게 밑을 향했다.
붕대는··· 다시 감았나보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 친하게 지내는 동기들이 하나둘 잠에서 깨어 내 방 앞으로 모여들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무뚝뚝한 표정을 짓고 있는 강무진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 강은과 함께 공통 욕탕을 방문한 적이 있다고 했지.
그럼 강은이 가슴에 붕대를 감은 것을 모를 리 없는데··· 황자와 함께 입학했다는 호위무사가 혹시?
난 외모도 성격도 정반대이지만 언제나 붙어 다니는 두 사람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두 사람 분명 듣는 수업도 거의 같았지.
남장한 황녀와 시크한 호위무사라니, 어쩐지 그림이 되는데···.
아니면 정반대로 무진이가 황자고 강은이 그림자 호위?
이쪽도 왠지 어울리고.
교관들과 같은 고수들이 황자라고 칭한 걸로 봐서는 후자로 마음이 기울었으나, 혹시 모르는 일이었다.
이렇게 감쪽같은 남장이라면 그들도 깜빡 속았을지도.
아닌 게 아니라, 강은의 얼굴이 곱긴 해도 여자보단 남자의 외모에 가까웠다.
목젖도 살짝 튀어나온 게 영락없는 사춘기 소년의 모습인데.
설마 그냥 여유증이었던 건···?
붕대는 그저 콤플렉스를 숨기기 위한 수단이었다면?
순간 그런 생각마저 들었지만, 난 강은의 남장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었다.
당장 우리 사부님만 해도 꼬부랑 노인에서 간지 중년으로 탈바꿈하는 놀라운 능력을 지니고 있지 않은가!
강은이 고절한 역용술을 익혔다면 목젖 정도를 위장하는 것은 일도 아닐 테지.
오만 생각이 휘몰아치는 동안,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갸웃한 강은이 물음을 던졌다.
“가휘? 오늘따라 시선이 따가운데, 혹시 내 얼굴에 뭐가 묻었어?”
“아니야, 아무것도.”
그래. 여유증이면 어떻고 남장이면 어때.
설령 그녀가 여인이라 한들, 수뇌부도 모르는 사실을 들춰내서 좋을 것은 없었다.
어쨌든 강은과 무진의 관계가 수상하다는 것만 염두에 두면 되겠지.
바로 그 때, 가만히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던 존명이 불쑥 한 마디를 내뱉었다.
“화화 너 설마, 학관 소저들만으로 모자라 남자까지 건들려는 것은?”
“뭐?”
“정신 차려. 이 녀석이 아무리 곱게 생겼어도 남자라고.”
“이 새낀 입만 열면 헛소리야.”
“아니면 그건가? 남자의 자존심? 진정한 대물을 가려보자는? 이봐, 무진이. 전에 강은의 물건도 제법 실하다고 했지?”
“그만해라.”
강무진이 정색하자 존명이 슬며시 입을 다물었다.
잠깐만, 혹시 저 품위 없는 모습이 전부 위장에 불과하고 사실 존명이가 황자인 건··· 말이 안 되겠지.
그건 명나라 백성들에게 너무 가혹한 일이니까.
녀석과 함께 다니는 넷 중에 호위처럼 곁을 맴도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해결되지 않은 미혹을 품은 채 또 하루가 시작됐다.
***
“화화공자!”
“아, 설 소저. 잘 잤어요? 하 소저도.”
“음. 백봉, 그대도 좋은 아침이다.”
“좋은 아침이에요, 소궁주.”
우희와 권법 강의를 들으러가다 설이나를 마주쳤다.
문득, 어젯저녁 앞섶을 펄럭이며 스스로의 체취를 확인하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업로드 영상에서 편집을 하긴 했지만, 생방송으로 그 모습을 지켜본 시청자 역시 적진 않았다.
[맥콜맛민트 : 겨냄 중독성은 어쩔 수 없지ㅋㅋㅋ] [미카엘 : 가휘님 식당에서 쌀밥 챙겨 나왔나요?]······.
난 시청자 채팅과 함께 어제 본 광경을 머릿속에서 지우며 웃어보였다.
“설 소저도 수업 들으러 가시나요?”
“그렇다. 헌데 그대 곁에는 언제나 여인이 함께구나.”
“아···하하. 남자애들이랑도 자주 있는데 왜 그렇게 보였을까요?”
난 민망한 웃음과 함께 화제를 전환하기 위해 입술을 달싹여 전음을 보냈다.
-집에서 서신이 도착했어요. 아마 한 달 안에 전에 말씀드린 시제품을 받아볼 수 있을 거예요.
-···고맙구나. 혹여 백봉이나 주 소저에게 이 일을 말하진 않았겠지?
-물론이죠, 소저.
아무렴 그 정도로 배려심이 없진 않지.
내 망설임 없는 대답에 그녀가 안심한 듯 웃었다.
“그럼 수업이 급하니 아쉽지만 이만 가보겠다. 영영, 가자.”
“네, 아가씨.”
두 사람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잠자코 있던 우희가 내게 머리를 기대며 물었다.
“제취제 얘기?”
“어?”
얘가 그걸 어떻게?
그녀가 내 마음이라도 읽은 듯 대꾸했다.
“조가장에 머무는 세가 분들께 소식 들었어요. 장주님과 조 부인께서 보내신 서신에도 적혀 있었고.”
“너 우리 부모님이랑 연락해?”
“가끔 안부 인사드려야죠.”
이어서 그녀는 눈을 곱게 흘기며,
“친절한 건 좋은데, 나 보는 앞에서 막 다른 여자랑 전음하네?”
“이런 건 다른 사람이 알면 실례잖아.”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이자 그제야 우희가 배시시 햇살 같은 미소를 머금으며 표정을 풀었다.
“가가 요즘 적극적이네요?”
“싫어?”
“좋아. 너무 좋은데- 나한테만 그러는 건지, 아니면··· 다른 애한테도 그러는 건지?”
“다른 애?”
“누군지 알 텐데-?”
“아하하···.”
나를 밤하늘 같은 눈동자로 빤히 바라보던 그녀가, 이내 옆구리를 쿡 찌르며 속삭였다.
“나한테 제일 잘하고 있어?”
식은땀 한 줄기가 등을 타고 흘러내렸다.
***
고요함으로 움직이는 것을 제압하고
부드러움으로 굳셈을 이기며
짧은 것으로 긴 것을 상대한다.
느림으로 빠름을 물리치며
뜻으로 기를, 기로 신체를 움직인다.
“이것이 무당의 무학이다. 비록 무당의 무공이 공격적이진 않으나, 누구도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이유지. 정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유와 강, 둘 중 어느 것이 강할까?”
“부드러움인가요?”
“어째서지? 내가 무당의 도사라서?”
“······.”
침묵하는 청년에게, 권법 강의를 맡은 무당의 정흠 진인이 강퍅한 인상과 달리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다.
“너희에게까지 무당의 무리(武理)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것은 그저 여러 갈래 길 중 하나일 뿐.”
“···무공의 특성보다 시전자의 경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옳다. 자신이 선택한 길을 얼마나 나아갔는지가 승패를 결정한다. 우리 무당에서도 흔히 유능제강을 강조하지만, 거목이 미풍에 쓰러지는 법이 있더냐. 서로의 기량 차이가 확연할 때는 이화접목, 차력미기, 사량발천근과 같은 기예들이 오히려 독이 되는 법이지.”
수련생들의 이해를 도우려는 듯 허공을 휘젓는 손길에서 막대한 진동이 퍼져나갔다.
북숭소림 남존무당이라, 과연 소림과 쌍벽을 이루는 문파의 도사다운 고절한 공력이었다.
한편, 모두가 정흠 진인에게 시선을 빼앗긴 사이, 내 곁에선 우희의 손 역시 빠르게 허공을 짚고 있었다.
머잖아 그녀의 손에서도 옅은 바람이 일었다.
-방금 교관님께서 보여주신 움직임에 팔괘의 묘리를 섞어보고 있었어요.
눈이 마주친 그녀가 생긋 웃으며 설명했다.
나 또한 그녀를 향해 활짝 웃어보였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너희들이 사문에서 어떤 가르침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으나, 모두 어린 나이에 학관에 입학한 기재들이니만큼 무공 자체의 우열을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허나 자신이 어떤 길을 가는지 알고 걷는 자와, 맹목적으로 눈앞의 길만 따라가는 자 사이엔 분명한 차이가 있다.”
한 차례 수련생들을 둘러본 정흠 진인이 심유한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
“오늘부터는 내가 가장 잘 아는 방식으로 너희를 가르칠 생각이다. 너희는 유를 상대하는 것으로 몸에 유를 깨우칠 것이다. 자파의 무공이 유에 가깝다면 날 기준으로 좌측에, 강에 가깝다면 우측에 선다.”
“네!”
곧 연무장에는 힘찬 기합성과 파공성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
“오늘의 배움이 진정한 성취로 이어질 수 있도록 부단히 노력하거라.”
“감사합니다!”
“음, 그럼 다음에···.”
정흠 진인이 떠난 뒤, 연무장에 주저앉은 수련생들은 저마다 가쁜 숨을 쏟아내기 바빴다.
“하악, 학-.”
“오늘 수업들 왜 이렇게 힘드냐?”
“그러니까.”
앓는 소리를 내는 아이들을 보자 지난 밤 수뇌부회의에서 몰래 엿들은 대화가 떠올랐다.
성녀의 탄생과 정마 간 분쟁의 심화.
오늘따라 교관들의 가르침에 기합이 바짝 들어간 것은 그 때문이리라.
“가가, 씻고 식사하러 가요.”
“응.”
고된 훈련 뒤에도 여전히 보송보송한 우희의 손을 잡고 연무장을 뒤로 하던 그 때,
“앗.”
불쑥 걸려온 발을 피하느라 잠시 휘청거리자, 등 뒤에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저런, 눈을 똑바로 뜨고 다녀야지, 화화공자. 이리 시야가 좁아서야.”
“언지광···.”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청년과 일단의 무리.
날 바라보는 녀석의 두 눈은 노골적인 질투의 빛으로 번들거리고 있었다.
월례 비무까지 얌전히 있나 싶었더니, 결국 그새를 못 참고 시비를 거는구나.
그래도 내가 어른이니까 한 번만 참는다.
“충고 고맙소, 언 공자. 희야, 가자.”
“···언제나 여자 뒤에 숨어 다니는 놈답게 배알도 없구나. 그래, 비천한 상인의 자식이면 그렇게 참을 줄도 알아야지.”
저 놈이 패드립까지 가네?
이 정도면 명분은 충분하겠지?
한 치도 예상을 벗어나지 않는 녀석의 언동에 품 안의 수투를 꺼내려던 그 때,
“흣-.”
섬뜩한 비웃음 소리에 놀라 옆을 돌아보자, 벌써부터 손에 기운을 집중시키는 우희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수업 중에 보여준 것과는 차원이 다른 바람이 그녀의 손아귀에 모여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바라는 전개가 아니었다.
“괜찮아, 희야.”
“가가···.”
“내가 할게.”
난 우희를 만류하며 앞으로 나섰다.
내가 방금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것도 모르는 한심한 녀석을 향해.
“언 형.”
“언···형?”
건들거리는 말투에 녀석이 미간을 좁혔다.
“나 마음에 안 들지?”
“···뭐?”
“비무대로 따라와.”
녀석의 얼굴이 흉신악살처럼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