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59
특별과외
“오늘 해석해볼 비급은 80여 년 전 감숙 부근해서 활동하던 마두, 혈검귀의 잔혈마검이다. 이 무공의 특징으로 말하자면···.”
‘비급의 해석’ 수업을 진행하던 교관, 손학정의 시선이 조심스레 손을 든 청년에게 향했다.
“뭐지? 질문 있나?”
“점창의 청송자입니다. 마공은 들인 노력에 비해 성취가 빨라 유혹이 대단하다고 들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마공은 보는 이를 심마에 빠지게 만든다고 말입니다. 저희 수련생이 교재로 사용해도 괜찮을지요.”
“좋은 질문이다.”
손학정의 입 꼬리가 올라갔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일단 마공의 정의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흔히 우리가 마공이라 부르는 것들은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마교도가 익힌 무공.”
“······.”
“둘째, 수련 과정 또는 발현된 무공이 지나치게 기괴하거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가령 마교의 부골귀조 같은 경우엔 망자의 시신에 손을 박아 넣고 연성하는 사악한 무공이지.”
웅성거리기 시작한 수련생들을 보며 그가 세 번째 손가락을 펼쳤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무공 자체에는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사용하는 고수의 심성이 악랄하여 마공으로 취급된 경우다. 자네가 말한 것처럼 수행하는 이를 유혹하거나 심마에 빠지게 만드는 무공은 두 번째 경우라고 할 수 있지. 반면 이제부터 너희가 살펴볼 잔혈마검은 세 번째 경우에 속한다. 이해가 되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그럼 마교도가 익힌 무공이라고 해서 반드시 사악한 건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다른 수련생의 질문에 그가 한결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음··· 무림명숙들 간에도 의견이 분분한 부분이기에 말하기가 조심스러우나, 내 생각은 그렇다.”
“연유를 여쭤도 되겠습니까?”
“우리가 보기에 마교의 수법들이 괴상망측한 것은 사실이나, 사람이든 무공이든 환경에 따라 변화하는 법. 산악지대에 터를 잡은 문파라면 산이나 절벽을 오르내리기에 적합한 운신법이 발달하며, 강이나 바닷가에 자리잡은 문파는 자맥질과 호흡법이 발달하기 마련이지. 가령 해남파의 장로들은 물속에서 반 시진 이상 숨을 멈추는 것이 가능하다.”
사람이 1시간 넘게 잠수가 가능하다니!
손학정의 설명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다.
“마교 또한 마찬가지이다. 스스로를 명교라 칭하는 그들의 기원은 천 년도 더 전의 파시아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더구나 현재 마교의 세력권인 신강은 산세가 험하고 식량자원이 부족하기로 유명하지. 뿌리와 환경이 전혀 다르니 무공 또한 궤를 달리할 수밖에.”
“아-.”
“마공을 익혔기에 마교인 것이 아니라 중원무림의 적이기에 마교인 것이다. 물론, 이는 내 개인적인 견해에 불과하니 참고만 하도록.”
이야기를 들은 수련생들의 반응은 극명하게 갈렸다.
교관의 허심탄회한 설명에 흥미로운 표정을 짓는 소수와, 불편한 진실을 마주한 듯 얼굴을 찌푸린 대다수.
나는 전자였다.
그러니까 중원무림과 마교는 여야 같은 관계란 거지?
“쓸데없이 말이 길어졌군. 다시 본제로 돌아와서 잔혈마검의 비급을 살펴보도록 하지. 다들 비급 첫 장을 펼치도록.”
“네-.”
그로부터 다시 일 각 가량이 흘러,
“자, 각자가 해석한 첫 단락의 내용을 정답과 비교해보도록 하자. 점창의 청송자라고 했던가?”
“그렇습니다, 교관님.”
“자네 생각은 어떻지? 붉은 피를 먹고 자란 금빛 물결이란 부분 말이야.”
“붉은 피에서 ‘붉은’은 태양혈을 금빛 ‘물결’은 수분혈을 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음··· 나쁘진 않지만 여기선 혈검귀의 태생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아까도 말했듯이 그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때문에 붉은 피를 먹고 자란 금빛 물결은 논에 가득한 벼를 뜻하며 이는 곧···.”
오늘도 시작됐다.
원작자도 못 맞춘다는 언어영역, 화자의 의도 파악 문제.
검술 비급을 해석하는데 농부는 무엇이고, 논과 벼는 또 웬말인가.
반면 나를 제외한 나머지 수련생들은 눈을 반짝이며 교관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
역시 난 비급 해석이랑은 안 맞아.
괜히 수강했나?
이 시간만 되면 밀려드는 후회를 애써 억누르며, 꾸역꾸역 수업내용을 머릿속에 욱여넣어 본다.
언제까지고 우희에게 의존할 수만도 없는 일이니까.
그나마 녹화가 가능해서 다행이다.
일단 암기하다보면 언젠가는 실력이 늘겠지.
***
“거봐. 나한테 배울걸 그랬지?”
“응.”
수업이 끝난 뒤, 여느 때처럼 방으로 찾아온 우희의 핀잔에 난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암문 수업은 들을만 해?”
“적당히? 그러니까 다음 학기에는 계속 같이 있어요, 우리.”
“어, 그래···.”
우희가 오른쪽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속삭이자, 난 왼편에 앉은 약빈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슬며시 고개를 돌리자 질투로 이글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아마 오늘 밤 몰래 찾아와 내게 요구할 애정행각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 것이리라.
한편으로 난 얼마 전 우희가 건넨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 제일 잘하고 있어?’
약빈이 버릇처럼 말하는 ‘걔한테 하는 만큼만 해줘.’라는 요구를 마치 눈앞에서 본 듯한 언동에 얼마나 놀랐던가.
하지만 조금 더 대화를 나눠본 결과, 그녀의 날카로운 한 마디는 그저 우연에 불과했다.
‘요즘 빈아를 너무 자주 바라보는 거 아니에요? 나 질투나려고 해.’
약빈의 연기는 완벽했다. 그저 내 대응이 어색했을 뿐.
우희도 그것을 눈치 채고 슬쩍 떠본 것에 불과했다.
지은 죄가 있던 나는 지레 놀라서 말까지 더듬은 거고.
그렇게 떳떳치 못한 상황임에도 그녀들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은, 다름 아닌 ‘과외수업’때문이었다.
시작은 언제나 비급의 해석을 도와주는 우희에게 뭔가 보답할 만한 게 없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요즘도 가끔씩 어려운 수학 문제를 던져주곤 하지만, 이젠 도움이 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 실력 차가 나니까.
그렇다면 뭘 가르치느냐.
그 답은 다름 아닌 ‘한글’이었다.
과학도 생각해보긴 했지만, 우희에게 과학 지식을 설명하기 위해선 일단 서술에 쓰인 언어를 한자로 변경할 필요가 있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우희가 한글을 배우는 게 여러모로 빠르지 않겠는가.
더구나 시청자들에게 확인한 결과, 시기상으로 지금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지 30년이 채 안 된 시기.
조선과 멀리 떨어진 중원에서 한글은 그 자체로 최고의 암문이나 다름없었다.
그것도 우리들만 아는.
물론 누군가 훈민정음을 알고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내가 익힌 현대의 한글과는 차이가 클 터.
정 불안하면 해외여행 리뷰체를 사용하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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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세종대왕님이 오셔도 못 알아보지.
“가가는 정말 대단해요. ‘구독과 좋아요’와 같은 문자 체계죠?”
“어, 맞아.”
“이런 문자들은 또 어디서 익혔어요?”
“아하···하. 구독신공의 공능인가봐. 그냥 저절로 떠올랐어.”
죄송합니다, 세종대왕님!
한편, 우희가 내게 개인교습을 받는데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약빈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렇게 난 두 여인에게 한글 과외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시청자들은 날선 비판을 하기도 했다.
[별빛길 : 짱깨한테 한글을 안겨주면 어떡함] [원퉁사 : 검후눈나 피독주 언제 보러가!!] [멍보단냐옹 : 깐휘 마인드 짱깨 다 됐네]난 황급히 변명했다.
[펭귄목살 : 평행세계의 한국인이 불쌍해요] [양뽈락 : 환생 설정 믿는 사람들 은근히 많네. 머리가 꽃밭인가] [눈나킥 : 안 믿을 이유가 없는데··· 그거 아니면 설명이 안 됨]그렇게 간만에 불붙은 방송의 진실성 여부.
이번엔 웬일인지 매니저인 뽀미 님마저 토론에 참여했다.
[뽀미 : 근데 저기 이세계인 건 맞음ㅇㅇ] [지나갈낙타 : 뽀하] [뽀미 : ㅇㅎㅇㅎ] [yhs21cmkr : 떡밥 맨날 밴먹이더니 갑자기 뭐임ㅋㅋ] [뽀미 : 우희가 해석해준 무공 따라해 봤는데 잘 나감ㅅㄱ]뭐지? 농담 같은 건가?
채팅창의 반응 역시 비슷했다.
채팅창의 떠들썩한 분위기와 달리, 바짝 붙어 앉아 과외 중인 우리 셋 사이엔 핑크빛 기류만이 조용히 맴돌고 있었다.
“가가, 이거 봐라?”
“응?”
고개를 돌리자 하얀 종이 위로 또박또박 새겨진 붓글씨가 보였다.
‘사랑해, 휘 가가.’
“아···.”
내가 이걸 한글로 보게 되는 날이 오다니.
배운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부터 간단한 문장을 구사하기 시작한 우희와,
슥-. 슥-.
오늘 배운 단어들을 이를 악물고 복습하는 약빈이.
그렇게 배움에 대한 열기로 방 안의 분위기가 점차 고조되던 그 때,
똑똑-.
“화화, 안에 있지?”
“어-!”
“잠시 들어간··· 아이, 문은 왜 또 잠갔어. 잠깐 문 좀 열어보게.”
“잠깐만 기다려어-! 얘들아, 잠깐만?”
익숙한 목소리에 방문을 열자, 존명공자 양철진의 상기된 얼굴이 눈에 띄었다.
“지금 막 일층에 월례비무의 상대가 공···지···?”
방안의 풍경을 확인한 녀석이 말을 하다 말고 내 멱살을 잡았다.
“너 이 자식!”
“아이씨.”
“평일 대낮부터 소저들과 한 방에서···!”
“그냥 공부하던 거야.”
“우쭐대지 마라. 나도 이번 휴일에 금라희 교관님과 밖에서 식사하기로 했으니까.”
“어, 축하하니까 이것 좀 놓지?”
한참 실랑이를 벌이는데 녀석의 등 뒤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벌써 소식 들었어?”
“아, 현아.”
“하여튼 존명이 놈이 이런 건 빨라. 그런데 왜 안 들어가고 문 앞에서··· 음,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났네. 이따가 보지.”
우희를 발견한 남궁현이 자연스레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그제야 난 존명이의 팔을 뿌리치며 흐트러진 옷을 정리했다.
“그래서 월례비무가 뭐 어쨌다고?”
“아, 일층에 나흘 뒤에 있을 월례비무의 상대가 공지됐어.”
“누군지도 알아온 거야?”
녀석이 멀뚱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이제 가야지.”
“알았어. 좀 있다 갈 테니까 먼저 가.”
“나쁜 자식. 대낮부터 하나도 아니고 두 명의 소저와 문까지 걸어 잠그고···.”
“아씨, 가라고. 좀.”
사력을 다해 버티는 녀석을 가까스로 문 밖으로 밀어낸 나는, 촌극 구경에 여념이 없는 두 사람에게 머쓱한 얼굴로 웃어 보였다.
“나 혼자 다녀올까?”
기숙사 일층에 붙은 벽보 앞은 이미 수련생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 가휘!”
쉬익-!
등짝으로 떨어져 내리는 손바닥을 간신히 피해낸 나는, 열여덟 나이에 벌써 수염이 가득한 황보결의 얼굴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손부터 올라가는 버릇 좀 고쳐.”
“음, 그게 잘 안 된단 말이지! 그런데 백봉과 주 소저는 왜 같이 안 왔나! 방에 함께 있다더니?”
“···존명 그 새끼.”
입 싼 자식.
기껏 두 사람을 방에 남기고 왔더니만 벌써 소문을 냈을 줄이야.
한숨을 내쉰 나는 제자리에서 두 눈을 감았다.
편리한 방법을 놔두고 땀내 나는 녀석들과 자리싸움을 벌일 이유는 없으니까.
곧 벽보를 향해 날아간 카메라에 몇몇 익숙한 이름들이 비쳤다.
남궁현 대 황보결.
강무진 대 존명이.
주약빈 대 당초홍.
제갈우희 대 언지광?
“···지광이 좆됐네.”
이제는 안쓰럽기까지 한 녀석의 명복을 빌며 나머지 친구들의 이름도 확인해보려던 순간, 때마침 내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어딘지 눈에 익은 대전 상대의 이름 역시.
“하북팽가, 팽소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