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6
그 중국이 아니야? (2)
“장주님, 제갈세가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제갈세가에서?”
예정에 없던 제갈세가 인물의 방문 소식에 아빠의 얼굴은 일순 흙빛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내 신색을 회복한 아빠는 부드러운 미소로 나와 엄마부터 안심시켰다.
“그들이 백주대낮에 상가에서 해악을 벌일 리 없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다. 하 총관님, 손님들을 안으로 모시세요. 접객당은 보는 눈이 많으니 이리로.”
“알겠습니다. 장주님.”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인 총관 아저씨가 방을 떠나자, 우리 세 식구 역시 손님맞이 준비를 서둘렀다.
그로부터 얼마 뒤, 밖으로 나갔던 총관의 뒤를 따라 제갈세가에서 왔다는 두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 사람은 2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훤칠한 미남이었고, 다른 하나는 내 또래로 보이는 조그마한 여자아이였다.
“제갈세가 외당주, 제갈신입니다.”
“조자헌이오. 양소신협의 명성은 누누이 들었소.”
“기별도 없이 찾아와 송구합니다, 장주.”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린 채 포권을 하는 남자의 첫 인상은 얼핏 냉소적으로 보였지만,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들은 정중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전날 제갈세가의 답신을 받은 아빠가 했을 염려를 짐작한다는 듯,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가주께서 장주의 입장을 미처 고려하지 못하셨다며 뒤늦게 저를 보내셨습니다.”
“아닙니다. 어제 귀가의 서신을 확인한 뒤 얼마나 마음이 든든했는지 모릅니다.
“흣, 그러십니까?”
“아, 이쪽은 제 내자와 아들입니다.”
속을 꿰뚫어보는 듯한 제갈신의 눈빛에 아빠가 당황한 듯 말을 돌리자, 그는 은은한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다.
“자제분께서 장주 내외를 닮아 인물이 아주 빼어납니다. 올해로 나이가···?”
“기축년 을해월 생입니다. 휘아, 인사 올리지 않고 무엇 하느냐.”
“조가휘가 인사드립니다, 대협.”
“눈빛이 아이 같지 않은 아이가 여기 또 있구나.”
말 한 마디로 날 흠칫하게 만든 그는, 이어서 자신이 데려온 여자 아이의 머리를 툭툭 두드리며 히죽 웃었다.
“제 질녀입니다.”
“그렇다면 가주의 따님이시라는···?”
아빠가 놀라서 고개를 돌리자, 시선을 받은 소녀가 활짝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경인년 무인월에 태어난 제갈우희가 장주님 일가를 뵈어요.”
제갈우희의 깜찍한 인사에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훈훈해졌다.
인형같이 생긴 아이가 말까지 또박또박 잘 하는 모습이 여간 신기한 게 아니었다.
나야 환생해서 그렇다 쳐도 쟤는 어떻게 저렇게 말을 잘하지?
꼬마 아가씨의 귀여움에 흠뻑 빠진 것은 나뿐만이 아닌지, 엄마와 아빠 역시 흐뭇한 미소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가가, 딸도 좋았겠어요.”
“휘아보다 한 살 어린 아가씨가 보통 영특한 것이 아니오.”
그러나 칭찬일색인 우리 가족과 달리 조카를 바라보는 제갈신의 표정은 그리 탐탁지 않았다.
“영특한 게 아니라 영악한 것이지요. 자신의 생일이 소공자와 석 달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 아랫사람으로 여기지 말라 에둘러 말하는 것입니다.”
설마?
난 반신반의하며 제갈우희를 바라봤다.
하지만 제갈신의 날 선 말과 달리, 나와 눈이 마주치자 몸을 살짝 꼬며 삼촌의 다리 뒤로 숨는 그녀의 모습은, 영락없이 또래를 만나 수줍어하는 어린 소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안녕~, 하고 자기도 모르게 양 손을 흔들어 보이자, 그녀 역시 호기심 가득한 눈빛을 내게 되돌려주었다.
깜빡깜빡.
겁나 귀엽구만, 뭐가 영악하다는 거야?
“소공자, 속지 마시오.”
제갈신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무시했다.
이 순간 나는 6살 조가휘가 아닌 27살 먹은 딸 바보 아빠였다.
그렇게 어린 아이 둘이 시선을 교환하고 있으려니, 아빠가 너털웃음과 함께 우리에게 그만 나가보라 손짓했다.
“우린 어른들끼리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너희 둘은 나가 보거라. 제갈대협, 그래도 되겠소?”
“물론입니다.”
“휘아, 어린 소저께 장원을 소개시켜 주겠니?”
“네, 어머니.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마침 오늘 오전 부모님께 잿물 비누의 정확한 레시피를 전한 참이었다. 내가 굳이 이 자리에 남아 제갈신의 눈에 띌 필요는 없었다.
어른 셋을 향해 고개를 꾸벅 숙인 나는, 이어서 멀뚱멀뚱 서 있는 제갈우희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하며 방을 나섰다.
그로부터 대략 30분 뒤, 제갈우희에게 장원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준 뒤 마지막 남은 뒤뜰로 향하고 있으려니, 멀리서 이를 발견한 항아가 호기심 가득한 시선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도련니임-. 옆에 아가씨는 누구셔요?”
“제갈세가에서 온 손님이셔. 가주님의 금지옥엽이래.”
“아···. 제갈···세가요?”
평소 왈가닥인 항아도 제갈세가주의 딸이란 이름 앞에선 주눅이 드는 모양이었다.
잠시 제자리에 서서 우리의 눈치를 살피던 그녀는, 이내 빠른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럼 필요한 일 있으면 부르세요?”
그나마 깡 좋기로 소문난 항아마저 멀리 달아나자 더 이상 우리에게 접근하는 시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 탓에 나는 5살 소녀가 무얼 좋아하는지 확인할 기회를 완전히 잃고 말았다.
어우, 이제 다 보여줬는데 뭐하고 놀아줘야 되냐. 검색해볼까?
제갈우희 몰래 한 쪽 눈을 감은 나는 O튜브를 열어 검색창에 찾고 싶은 단어를 따올렸다.
다섯 살··· 어우. 5살까지만 쳤는데 ‘5살 아이와 놀아주기’ 있어.
아이와 TV 없이 노는 법, 놀이치료사가 알려주는 6가지 놀이······.
그렇게 검색 결과를 차례대로 살펴보고 있던 그 때, 무언가가 내 옆구리를 콕 찔렀다.
“얘.”
“어? 나?”
“응, 너.”
생일이 두 달 차이라 오빠 대접 받기 어려울 거라던 제갈신의 말이 사실이었나?
장원을 둘러보는 내내 말이 없던 아이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나를 ‘너’로 칭하며,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가리켰다.
“저거 뭐야?”
“응? 엇!”
제갈우희의 손을 따라 고개를 돌리던 나는 뒤뜰에 덩그러니 놓인 비누 작업대를 발견하곤 동작을 멈췄다.
설마 제갈세가에서 깜짝 방문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지난 번 부모님 앞에서의 시연 이후 그대로 방치해 둔 물건이었다.
난 뒤늦게 제갈세가와의 협상이 아직 진행 중임을 떠올리고는 바짝 긴장했지만, 설마 잿물과 기름이 든 통만으로 무언가를 유추할 수는 없으리란 생각에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더구나 상대는 이제 막 5살 먹은 꼬마 아이에 불과했다.
“저건 우리 아버지가 쓰시는 거야. 만지면 혼나.”
“왜 긴장했어?”
“뭐?”
“너 손에 땀 나.”
“어?”
내가 흠칫 놀란 틈을 타 손을 빼낸 제갈우희가 까르르 웃으며 작업대 쪽으로 달려갔다.
“야, 야야, 그거 만지면 안 돼.”
“숙부님이 오신 게 이거 때문이구나? 다른 데는 별 거 없었는데.”
그 말에 난 그녀가 장원을 안내 받는 내내 딴 생각을 품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그녀가 제갈신으로부터 아직 아무 것도 듣지 못했다는 것과, 이번 일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섬뜩한 눈빛으로 작업대 위를 빠르게 훑은 그녀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다가왔다.
“휘아, 이거 어디에 쓰는 거야?”
“뭐?”
“나는 이런 거 잘 모르는데. 나한테 알려줄 수 있어?”
도무지 어린 아이라고는 믿기 힘든 태세전환에, 난 그제야 제갈신이 했던 ‘영악하니 속지 말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금 전엔 놀라서 실수했을 뿐, 속은 어른인 내가 그런 빤히 보이는 술수에 두 번이나 넘어갈 리 없었다.
“나도 어디에 쓰는지 잘 몰라. 아버지가 안 보여주셨어.”
“다 아는데 이럴 거야?”
“흣.”
내가 기가차서 웃자 제갈우희가 눈을 곱게 흘기며 말을 이었다.
“그럼 내기해서 이기면 말해줄래?”
“나 진짜 몰라.”
“그럼 아무거나 소원 들어주기로 해. 네가 이기면 나도 소원 들어줄게.”
“소원?”
그 말에 난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제갈세가의 금지옥엽이라고는 하나, 5살 여자 아이와의 약속에 별다른 효력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마저 거부했다가는 아이가 생떼를 부릴지도 몰랐다. 난 귀찮은 일을 피한다는 생각으로 어쩔 수 없이 내기를 받아들였다.
설마 5살 애한테 지겠냐는 자신감이 바탕에 깔려 있음은 두 말할 나위 없었다.
하지만 내기에 자신이 있던 것은 피차 마찬가지였던지, 제갈우희는 내게 내기 종목을 정할 권리를 양보하는 여유까지 보였다.
“진짜 내가 정해?”
“응.”
“숫자놀이 삼십일 해.”
“숫자놀이?”
나는 대학생들의 술자리에 자주 등장하는 게임을 내기 종목으로 지정했다.
한 번에 최대 3개까지의 숫자를 부를 수 있으며 먼저 31을 부른 사람이 지는 이 게임에는, 1:1승부일 경우에 한해 필승법이 존재했다.
그리고 난 이 게임을 전생의 여친과의 소원 들어주기 내기에서 아주 요긴하게 써먹은 바 있었다.
똘똘한 제갈우희에게 룰을 숙지시키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너부터 할래?”
“아니.”
“그럼 일, 이.”
“···삼, 사, 오?”
“육.”
······.
“이십팔, 이십구, 삼십.”
“삼십···일.”
내가 먼저 스타트를 끊은 순간부터 승패는 정해져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를 알 리 없는 제갈우희는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를 외치며 점점 깊은 나락으로 빠져들···지는 않았다.
“이번엔 나 먼저 할래.”
겨우 3판 만에 게임에 변화가 생겼다. 선공을 요청한 제갈우희가 재빠르게 1, 2을 외친 것이다.
설마설마하며 게임을 이어가던 나는 그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14를 외친 순간 패배를 인정했다.
“내가 졌어.”
“숫자 바꿔서 다시 할래?”
“아니.”
어차피 더 이상의 게임은 무의미했다.
단순히 ‘한 판 더’가 아니라 숫자를 바꿔보자는 제안을 한 것으로 보아, 그녀는 완벽한 승리의 공식을 터득한 게 분명했다.
승리수와 통제수, 이 게임의 핵심 포인트인 두 가지를 말이다.
먼저 승리수.
마지막 수를 말하면 패배한다는 말은 곧, 바로 직전의 수를 말하면 승리한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끝자리가 31인 기본 룰을 예로 들자면 이 경우 승리수는 30이었다.
다음은 통제수.
통제수는 플레이어가 부를 수 있는 최소값과 최대값의 합으로, 숫자를 1~3개까지 부를 수 있는 기본 룰에서 통제수는 4였다.
예를 들어 상대가 1개를 부르면 나는 3개, 2개를 부르면 2개, 3개를 부르면 1개, 이런 식으로 숫자가 무조건 4개씩 증가하도록 통제하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마지막 과정은 승리수를 통제수로 나누는 일이었다.
자신의 차례에 승리수인 30을 부르기 위해선 그 이전 턴에는 26을, 또 그 이전 턴에는 22를 불러야했다. 이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2가 가장 마지막에 남는다.
즉, 30을 4로 나눈 나머지인 2를 먼저 외치는 플레이어가 게임에서 승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 전법은 끝자리 수와 최대 숫자를 바꾼 게임에서도 똑같이 성립했다.
고등학생 때 이 필승법을 떠올리고 혼자 얼마나 뿌듯해 했었는지, O튜브와 인터넷에 퍼질 대로 퍼진 정보인줄은 꿈에도 모르고 말이다.
하지만 오늘, 겨우 게임 시작 5분 만에 모든 원리를 깨우친 천재 소녀는, 한참 자랑하고 싶을 어린 나이임에도 시원스레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
“아, 졌다-.”
난 지고도 배시시 웃는 그녀가 대견하여 마주 웃어 보였다. 그 눈동자가 승부욕에 활활 불타는 줄도 모르고.
“이제 내 차례지?”
“응? 뭐가?”
“다음 종목. 조금 전엔 네가 정했잖아.”
“네가 나보고 고르···.”
“다음은.”
아무리 똑똑해도 아이는 아이였다.
그녀는 숫자놀이에서 진 것이 적잖이 분했는지, 내게 말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다짜고짜 다음 대결 종목을 제시했다. 그리고 다음 종목은 다름 아닌,
“눈 감고 술래잡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