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73
액괴다루
문파가 탄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개인의 수양, 이해관계의 일치, 입신양명, 보국충정 등.
그러나 하오문의 탄생 배경에는 보다 단순하면서도 절박한 이유가 존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생존’.
뒷세계 주민들의 삶은 애달프다.
겉모습은 누구보다 화려하지만 거지들에게조차 더럽다고 멸시당하는 것이 기녀요, 만두 하나 훔쳤다고 반 시진 넘도록 매타작을 당하는 고아들의 모습은 뒷골목에선 흔한 일상이다.
심지어 같은 세계에 몸담은 파락호나 흑도, 사파의 무리까지도 그들을 구제가 아닌 착취의 대상으로 여긴다.
하오문은 그런 힘없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탄생했다.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 광동성의 한 기루에서 기녀의 아들로 태어난 옥소공 허유성이 바로 하오문의 개파조사다.
오랜 세월 설움에 시달려온 많은 이들이 그의 사상에 동조했다.
그렇게 조그만 기루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는 순식간에 들불이 되어 전 중원으로 퍼져나갔다.
허유성이 만든 조직은 그 흔한 보호비조차 받지 않았다.
그가 요구한 것은 오직 정보.
취객이 떠드는 헛소리, 여인의 환심을 사려는 남정네들의 허세 등.
그녀들에겐 일상인 일들이 하오문에선 곧 돈이고 힘이었다.
그리고 정보를 다루는 조직은 자파의 보안에 대해서도 철저한 법.
때문에 그들의 심처를 파고드는 일은 멀고도 험한 일이 될 예정이었으나···.
내겐 시청자들로부터 맵핵이라 비난 받는 치트키, ‘카메라’가 존재했다.
얼기설기 얽힌 미로 같은 골목길이나 도중에 마주치게 될 대여섯 개의 암구호들에 대해선 이미 숙지를 마쳤다.
그러나 이미 종착지가 어디인 줄 아는 마당에 괜한 시간을 낭비할 필요는 없겠지.
난 단번에 중간 지점들을 건너뛰고, 조금 전까지 미행 중이던 사내가 빠져나온 판잣집 앞으로 가볍게 내려앉았다.
탕탕-.
문을 두드리자 안쪽에서 굵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시오.”
“광동에서 온 나그네가 길을 묻고자 하오.”
카메라를 통해 알아낸 암구호를 주고받자, 잠시 후 삐걱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문 안쪽에는 무사 하나와 시녀 하나가 나란히 서 있었다.
“누구의 소개로 오셨소?”
아까는 없던 질문이다.
하긴 매일 보는 조직원과 오늘 처음 보는 방문객의 응대가 같을 수는 없겠지.
“양재의 소개로 왔소.”
이틀 간 미행했던 소매치기들 중 하나의 이름을 대자 시녀가 나를 판잣집 내부로 안내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술술 풀리는 줄 알았는데,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양양 지부장 앞에 도착한 뒤였다.
“정체를 밝히시오.”
“언제부터 하오문에서 의뢰인의 정체를 궁금해 했소?”
불안한 마음을 숨기고 짐짓 태연한 척 묻자, 헛웃음과 함께 낮은 목소리가 되돌아왔다.
“무언가를 오해하는 것 같군. 그대는 지금 의뢰인이 아닌 침입자의 신분으로 이곳에 있소. 당장 이 장소를 어찌 알아냈는지, 양재와는 어떤 관계인지 실토하지 않으면 험한 꼴을 당하게 될 것이오.”
들켰구나.
더 이상의 변명은 필요 없겠지.
나는 허탈한 웃음을 흘리며 중얼거렸다.
“···암구호는 틀리지 않았을 텐데.”
“이전 관문들로부터 아무 소식이 없었는데 방문자가 있다고 하니 의아해 하던 참이지.”
이런, 서두른 게 독이 됐나.
설마 골목길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절차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흘긋, 의자에 앉은 지부장의 등 뒤로 나무 문이 보인다.
초라한 문이지만 그 뒤에 얼마나 많은 고수들이 잠복해 있는지는 미리 카메라로 살펴본 덕에 잘 안다.
그 뿐인가.
지금 대화가 이루어지는 이 공간에도 나와 지부장, 시녀 외에 두 사람이 더 은신하고 있다.
“대답할 마음이 없나보군.”
침묵이 이어지자 지부장의 손이 책상 밑으로 향했다.
비상사태를 대비한 알림 장치가 설치된 책상이다.
장치와 연결된 줄을 당기면 문 뒤의 고수들 뿐 아니라, 근처에 있는 하오문도들은 전부 다 이곳으로 몰려오리라.
그가 줄을 감싸 쥐며 마지막으로 경고했다.
“진정 관을 봐야 눈물을 흘릴 작자로군.”
일촉즉발의 순간, 내가 내린 선택은···.
“역시 하오문, 명불허전이오.”
역용을 풀고 정체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실례했습니다. 나 또한 조심스럽게 일을 진행하는 만큼, 귀하와 하오문을 시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흑안룡 조가휘?”
억!
정체를 들켰을 때도 멀쩡했던 평정심이 별호 한 번에 깨질 뻔했다.
내가 진짜 저 별호 만든 놈 가만 안 둔다!
간신히 미소를 유지하는 내게 그가 물었다.
“조가장의 소장주가 역용에 능한 줄은 몰랐군. 그나저나 시험이라? 근래 조가장의 위세가 무섭다고는 하나, 지금의 무례에 대해선 제대로 해명해야 할 것이오.”
그가 이글거리는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자, 그럼 뭐라고 변명해볼까?
씨익 웃은 나는 포권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가문의 위세를 빌어 자리를 모면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역용을 풀고 정체를 밝힌 것은 그저, 앞으로 한 식구가 될지도 모르는 분께 성의를 보이기 위함입니다.”
“한 식구?”
“지부장님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아마 마음에 드실 겁니다.”
“자신만만하구려. 부디 그 태도만큼이나 말하려는 내용도 가치 있기를 바라오.”
으름장을 놓는 그의 모습에 난 자신만만하게 웃어보였다.
“지부장께선 혹시 액괴방이라고 아십니까?”
***
중원에서 가장 큰 정보 조직인 개방과 하오문.
이 두 단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답은 바로 압도적인 조직원의 숫자다.
거지와 암흑가는 중원 뿐 아니라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니.
그렇다면 역으로 생각해서 잠재 조직원의 숫자가 높으며 인재풀이 겹치지 않는 시장을 선점하면, 개방과 하오문에 버금가는 정보단체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액괴방은 거기서부터 비롯된 아이디어다.
중원 각지에서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의 숫자가 거지와 기녀들보다 적을 리는 결코 없으니.
우희와 항아의 제안으로 중원에 액체괴물을 퍼뜨린 지 어느덧 10여 년.
그러나 놀 것이 없는 시대적 특성 상 액체괴물의 인기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뿐인가. O튜브에는 액체괴물 외에도 아이들이 환장할 만한 천연 완구 제조법들이 가득했다.
그걸 하나씩 풀기만 해도 꿀잼 냄새를 맡은 아이들이 벌떼처럼 몰려들 건 당연한 이치!
물론 액괴방에 오는 코흘리개 아이들이 떠드는 정보가 신빙성이 높을 것이란 기대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 진정한 목적은 그게 아니지.
“때문에 액괴방과 다루를 함께 운영해야 하는 것이지요.”
“다루?”
지금까지처럼 허름한 뒷골목에서 주먹구구식으로 운영하는 액괴방으로는 안 된다.
번듯한 건물에 아이들을 현혹할 다양한 신상 완구들!
거기에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편히 앉아서 지켜볼 수 있는 다루까지!
내가 구상한 새로운 액괴방은 바로 중원판 키즈카페였다.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중원에는 기혼여성, 특히 육아중인 여성을 위한 쉼터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형편이 넉넉한 집은 시녀를 두기에 집안일이나 육아에서 자유롭지만, 서민들은 친구들과 차 한잔 마시기도 어려운 현실.
이런 상황에서 잠시 육아 걱정은 내려놓고 차도 마시고 수다도 떨 수 있는 ‘액괴다루’의 등장은, 중원맘들을 위한 핫플이 되어줄 게 분명하다.
“자리만 깔아주면 할 말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육아의 고충, 남편 험담에 자식자랑, 온갖 소문들까지. 그렇게 얻은 정보들이 술과 허세에 찌든 기루 손님들의 주정보다 과연 못하겠습니까?”
“그건··· 일리가 있소. 헌데 아이들이 함께 놀아 달라 보채지 않겠소?”
어느덧 내 사업안에 홀린 듯 푹 빠진 지부장이 물어왔다.
물론 현대의 키즈카페를 벤치마킹한 내게 망설임은 없었다.
“같이 놀 친구들이 있으면 부모는 뒷전이 되는 법이지요. 눈에 닿는 곳에만 있으면 관리는 액괴방 점소이만으로 충분할 겁니다.”
“액괴방 점소이라!”
그가 감탄한 듯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이 계획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존재했으니.
아이디어만 좋으면 뭘 하겠는가, 사업을 위해 구축된 인프라가 하나도 없는 것을.
돈도 돈이지만 문제는 인력이다.
가문의 힘을 모두 동원해도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할 입 무거운 직원들을 구하려면 내 나이 마흔이 되어도 부족할 것이다.
그렇기에 이미 전 중원에 완성된 인프라를 보유한 하오문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개방에 같은 제의를 하지 않은 이유는 간단하다.
구걸로 먹고 사는 이들이 언제 장사를 해봤겠는가.
그리고 어떤 부모가 지저분한 개방도들에게 아이를 맡기고 편히 쉴 수 있겠는가.
우리 아이 병에 걸리진 않을까 근심이나 안 쌓이면 다행이지.
“이상이 제가 하오문과 전략적 협력 관계를 맺으려는 이유입니다. 하오문 입장에서도 나쁜 이야기는 아닐 텐데요.”
“공자가 얻는 것은 무엇이오?”
“액괴다루 운영과 정보 판매에서 발생하는 수입의 일부, 액괴다루에 공급되는 완구류와 식재료의 우선 공급권, 하오문 간부 수준의 정보열람권한. 이렇게 세 가지입니다.”
“흠···.”
내 이야기를 모두 들은 지부장이 문득 서늘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솔직히 인정하지. 굉장히 흥미로운 제안이오. 헌데 내가 이야기만 듣고 입을 싹 닫을 걱정은 안 하시오? 설마 조가장의 위세가 하오문과 비견될 정도라고 생각하시오?”
“그럴 리가요.”
“그럼 대체 어디서 나오는 배짱이오?”
그의 말대로다.
난 상대의 세력권 안에서 배짱을 부리고 있다.
그것도 아주 똥배짱을 부릴 생각이다.
“설마 이 정도 발상이 제가 가진 능력의 전부라고 생각하시나요? 제겐 그 이상의 가치가 있습니다.”
“자화자찬이 심하구려.”
“과연 그럴까요? 정보를 업으로 삼는 분들이니 아실 텐데요. 저, 이래봬도 제갈세가의 사위로 내정된 사람입니다?”
실은 혼담의 혼 자도 오간 적이 없지만, 이런 건 원래 뻔뻔할 수록 잘 먹히는 법이다. 나는 내친 김에 우희까지 들먹였다.
“지부장께선 희야··· 그러니까 천하의 기재로 명성이 자자한 백봉 제갈우희 소저가 절 마음에 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얼구-.”
내 물음에 일말의 망설임도 움직이는 지부장의 입술 모양에 난 황급히 검지를 들어 입을 막았다.
“설마 얼굴이라 답하시진 않겠지요. 정보로 개방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는 하오문의 지부장께서 그런 세간의 풍문을 읊진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이 정도도 모른다면 나와 협력할 자격이 없지.
도리어 그런 오만함이 담긴 시선으로 바라보자, 그가 변명하듯 입을 열었다.
“조가장과 제갈세가 사이가 돈독해진 건 지금으로부터 11년 전 시장에 신비조가 등장하면서부터. 모두들 제갈세가가 신비조를 개발한 줄 알고 있으나, 우리 하오문은 정반대라고 생각하고 있소.”
“제갈세가주님의 금지옥엽이 5년이나 조가장에 머물 이유로는 근거가 부족하네요.”
“···설마?”
내 대답에 뒤늦게 진실에 도달한 그의 두 눈이 크게 확대됐다.
“공자가 신비조를···? 하지만 당시 조 공자의 나이는 여섯 살에 불과했을 텐데?”
“과연 제 머리에서 나온 게 신비조 뿐일까요?”
“설마 파리경(유리거울)까지?”
내가 한 건 O튜브에서 본 거울제작의 단초를 제공한 게 전부지만, 알아서 오해해준다는데 말릴 생각은 없다.
그리고 이걸로 피날레!
“이래도 제 능력이 부족해보이십니까, 소저?”
나는 지금껏 이야기를 나눈 지부장이 아닌, 날 이곳까지 안내한 시녀를 향해 포권을 하며 물었다.
그녀야말로 이곳 하오문 양양지부의 진정한 지부장이자, 대역의 뒤에 숨어 지금까지의 대화를 지시한 장본인이었으니까.
예상치 못한 기습에 당황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떻게 알았죠?”
카메라라고 해봤자 알아듣기나 하겠어?
난 은근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비밀입니다.”
“진실을 말할 때까지 그대를 돌려보내지 않을 수도 있어요.”
연달은 보안 실패로 자존심이 상한 그녀의 협박에도 난 빙글거리는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
“문 너머에 있는 여덟의 고수를 믿으시나요? 아니면 천장과 저 족자 뒤에 은신하고 계신 두 분?”
“어떻게···!”
그녀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듯 새하얗게 질렸다.
난 한 술 더 떠 미리 준비 중이던 여러 개의 스페어 단전에 담긴 내공을 일시에 해방했다.
휘오오-.
미증유의 거력이 휘몰아치며 방안에 놓인 물건들이 들썩들썩 흔들린 순간,
“그만! 되었어요!”
비명과 같은 외침에 난 기운을 거두고 뒤로 물어났다.
동시에 놀라서 은신을 풀고 튀어나오던 고수들도 머쓱한 얼굴로 제자리로 되돌아갔다.
그녀가 질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무서운 분이군요.”
“과찬이십니다.”
“조금 전까진 그대를 시험하려 했는데, 이제는 그대를 믿어도 좋을지 모르겠어요.”
“전 그저 향후 하오문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을 뿐입니다. 또한 액괴다루 사업이 성공한다면 하오문 내에서 지부장님의 입지 또한 굳건해지지 않겠습니까.”
나머지 뒷말은 전음으로 계속했다.
-지부장의 위치로 만족하실 건가요? 절 발판 삼아 차기 문주 자리도 노려보셔야죠.
“흣.”
웃을 타이밍이 아닌데 왜 웃지?
문주가 되는 걸 상상만 해도 좋은가?
그녀가 웃은 이유는 뒤늦게 밝혀졌다.
“그대도 사람인 걸 알았더니 마음이 놓이네요. 좋아요. 계약하죠.”
“그게 무슨···?”
“이토록 대단하신 조가휘 공자께서도 이건 몰랐나보네요. 현 하오문주 홍세걸이 제 아버지세요.”
이런, 마지막에 와서 실수라니.
하지만 그 실수 덕에 상대의 경계심이 풀렸으니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해야 할까?
헛웃음을 터뜨리는 내게 그녀가 씩씩하게 손을 내밀었다.
“자세한 계약내용은 이제부터 천천히 이야기 해보기로 하고, 일단 우리 악수부터 할까요?”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소개가 늦었네요. 홍서현이에요.”
“조가휘입니다.”
서로의 손이 굳게 맞물렸다.
그렇게 훗날 하오문을 개방 위에 우뚝 서게 만들 강호의 새로운 바람, 액괴다루의 첫걸음은 어느 판잣집에서 조용히 시작됐다···고 말할 날이 올까? 꼭 오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