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Streamer RAW novel - Chapter 90
함정 (1)
“어디 다녀와?”
“엄마!”
갑자기 들려온 내 목소리에 기절초풍하며 뒤로 물러나던 심서우가 내 얼굴을 확인하곤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 뭐예요. 선배였어요?”
“잠깐 깼어. 근데 너 어디 다녀오냐고.”
“아하하··· 여자한테 무신경하게 그런 거 묻기 있깁니까? 꽃 따러 다녀왔습니다.”
민망한 듯 어깨로 내 팔꿈치를 툭툭 건드리는 그녀.
눈 하나 깜빡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는 모습에, 난 더 이상 추궁할 마음을 접고 함께 연기에 어울렸다.
“불침번이면서 소혜한테 말도 안 하고. 내일 둘 다 혼날 줄 알아.”
“아앙, 봐주십쇼. 선배.”
“안 돼.”
“힝-.”
“인수인계하고 들어가서 자.”
“네에-.”
시무룩한 얼굴로 답한 그녀가 다음 불침번을 깨우기 위해 떠나가자, 나 역시 간이막사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그러나 수면 중에도 제3의 눈은 그녀의 뒤를 쫓아 야영지 곳곳을 누볐다.
인수인계를 마친 심서우가 잠자리에 든 뒤 역시 마찬가지.
내가 날린 카메라는 숲 근처 상공을 배회하며, 그녀가 남긴 암문에 몰래 접근하는 이가 없는지 살폈다.
내 불침번 순서가 될 때까지.
“야, 화화. 일어···.”
“어, 깼어.”
“아이, 깜짝이야. 이 새끼는 잠도 없나.”
결국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존명이의 목소리에 눈을 뜬다.
양의심공을 운용한 덕에 단잠을 방해 받은 불쾌함 따위는 전혀 없다.
난 함께 불침번을 서게 된 신입생에게 간단한 주의사항을 전파한 뒤, 곧장 벽려군의 막사로 향했다.
“···조가휘 수련생?”
과연 검후.
다른 수련생들이 깨지 않도록 최대한 기척을 죽였음에도 내가 막사로 들어서자마자 퍼뜩 잠에서 깨는 그녀다.
헌데 다음 행동은 내 예측을 완전히 벗어났다.
“이게 무슨···. 이런 건···.”
무슨 상상을 했는지 모포를 끌어올리며 자신의 몸을 가리는 그녀.
더 이상 오해가 커지기 전에 얼른 변명에 나섰다.
“죄송합니다. 급히 드릴 말씀이 있어서 실례를.”
“뭐, 뭔가요.”
“심서우가 수상합니다.”
“···그게 무슨 말이죠?”
비로소 그녀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난 아까 전에 목도한 일들을 적당한 각색을 거쳐 전달했다.
“이게 바로 서우가 나무에 새겼던 문양이에요.”
“이건···.”
내가 내민 종이를 확인한 그녀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짚이는 게 있으신가요?”
“···확실하진 않지만, 과거 청해에서 만난 마교도가 이와 비슷한 암문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마교?”
생각지도 못했던 단어의 등장에 아연실색한 난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해석도 가능하실까요?”
“부끄럽지만 제 실력으론 불가능해요.”
“음···.”
난 심서우가 암문을 새기는 순간부터 떠올리고 있던 대책을 입에 담았다.
“여기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마을에서 8조가 임무를 수행 중이에요.”
“당 선배님이 이끄시는 조 말이군요.”
“네. 그리고 8조에는 우희가 있어요. 아마 그녀라면 이 암문을 해석할 수 있을 거예요.”
나흘 거리에 위치한 무림맹과 달리, 8조가 머무는 마을까지는 두세 시진이면 충분할 터.
“다녀와도 될까요?”
“먼저 심서우 수련생이 이 문양을 새겼다는 곳으로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물론이죠.”
막사를 나온 우리는 또 다른 불침번인 신입생에게 단단히 함구령을 내린 뒤, 심서우가 다녀온 숲으로 향했다.
얼마 뒤 내가 말한 흔적을 발견한 벽려군이 결국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수련생들에겐 적당히 둘러댈게요.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감사합니다.”
“그리고 심서우 수련생은··· 일단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지켜보도록 하죠.”
***
8조가 머무는 마을까지는 연영신법을 극성으로 전개해 꼬박 두 시진이 걸렸다.
묘시가 끝날(7시) 무렵 마을에 들어선 나는 수소문 끝에 천무학관생이 묶는 객잔을 찾을 수 있었다.
그 뒤는 간단했다.
미리 카메라를 날려 확인한 우희의 방으로 고든람쥐를 올려 보내면 끝.
머잖아 활짝 열린 창밖으로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이 쏙 튀어나왔다.
“휘 가···.”
-희야, 급히 할 말이 있어. 다른 사람에겐 알리지 말고 문 좀 열어 놓을래?
-알았어요.
내 어조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그녀는 사정도 묻지 않고 얼른 방문을 열었다.
곧 그녀의 방에 도착한 나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하고, 녹화해둔 문양을 종이에 그려 보여주었다.
“···이걸 정말 서우가 남겼다구요?”
“응.”
“확실히 세가와 학관 수업에서 배운 마교의 암문과 유사해요.”
“해석할 수 있겠어?”
“반 시진, 아니 이 각만 시간을 줄래요?”
우희가 입술을 매만지며 답한 순간,
똑똑-.
갑작스런 노크 소리에 우린 동시에 어깨를 움찔 떨었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혹시 내가 미행을 달고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먼저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카메라를 날려 문밖을 확인한 내 입에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후··· 빈아인 거 같아.”
“어떻게··· 아, 고든람쥐가 냄새에 반응했나요?”
우희가 알아서 착각해준 덕에 변명을 마련할 수고가 줄었다.
즉시 방문을 열자 약빈이의 뾰로통한 얼굴이 보인다.
“나 몰래 둘이···.”
“빈아, 빨리 안으로.”
“어? 어?”
영문도 모른 채 내 손에 끌려 들어온 그녀의 얼굴도 곧 심각한 기색으로 물들었다.
그로부터 정확히 이 각이 흐른 뒤, 암문을 해석하던 우희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왔다.
“이건···.”
“뭔가 알겠어?”
“읽어줄게요. 명일 밤, 천무학관 출발 구(九) 인 예정대로 무와산 도착 예정···.”
수련생 및 인솔 교관에 변화 없음.
검후, 조가휘, 사화, 팽가 및 무당의 후기지수 포함.
내용은 별 거 없지만 어쩐지 뒤숭숭한 기분이다.
마치 살생명부에 이름을 올린 듯한 꺼림칙함.
우희의 의견 또한 비슷했다.
“현장 실습 중인 수련생들을 노리는 거 같아요.”
“정말 마교일까?”
“지금으로선 그 가능성이 제일 높아요. 사파에서 마교를 흉내 내어 꾸민 일로 보기엔 그들이 볼 이득이 전혀 없어요. 천무학관의 명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사화를 희생하는 건 본말 전도니까.”
“···후퇴하는 게 맞겠지?”
벽려군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마교의 암살대를 상대로 햇병아리 여덟을 지켜내는 건 무리다.
인질이 되어 발목이나 잡지 않으면 다행이지.
그러나 우희의 의견은 나와 달랐다.
“이미 목적지가 알려졌으니 적들은 하루거리인 무와산에 매복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이제 와서 도주한다고 하더라도 맹에 도달하기 전에 따라잡히겠죠.”
“잠깐, 그럼 이번 의뢰를 맡기신 혁은삼옹 선배들께선···.”
“인질이 되셨거나 최악의 경우···.”
말끝을 흐린 그녀가 다부진 목소리로 다시 작전을 설명했다.
“위험해도 우리가 먼저 선수를 쳐야 해요. 다행히 그들은 우리 8조의 존재를 모르니까. 다만 이대로 무와산으로 진격하는 건 위험해요. 우리는 그 앞의 제서평에서 싸워야 해요.”
우희의 말에 약빈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평야면 방어하기 나쁘지 않아?”
“응. 그런데 우리에게 유리한 지형이면 상대도 의심할 거야. 게다가 갑자기 방향을 트는 것도 경계심을 부추길 테고. 우선 맹에 이 사실부터 알려야 해요. 제가 당가기 노사를 모셔올게요.”
확실히 마교의 개입이 예상되는 이상, 우리끼리 해결하기엔 사안이 지나치게 중대했다.
다만 문제는···.
“당 노사는 믿을 수 있을까?”
“이미 배신자가 나온 이상 확실한 건 없어요. 다만 심서우가 포함된 5조보다는 안전하겠죠.”
“응···.”
“검후 선배까지는 믿을 수 있어요. 평생을 척마멸사에 바쳐온 분이니까.”
하긴 벽려군을 못 믿으면 누굴 믿을까.
사마외도로부터 살인청부까지 당하는 그녀를.
그 순간, 내 머릿속에 잊고 있던 물건 하나가 떠올랐다.
“희야, 이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건··· 헉! 뭘 들고 다니는 거예요!”
내가 꺼낸 물건의 정체를 확인한 우희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것도 신투께서 주신 물건인가요?”
“음··· 네가 갖고 있던 걸로 해줄 수 있을까?”
“또 비밀?”
잠시 눈을 우희가 이내 한숨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그럼 이건 우리 세가에서 보유하고 있던 걸로 할게요.”
“고마워.”
“그나저나 이걸로 당가기 노사께 보고해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요.”
***
“존명 선배, 휘 선배 못 보셨습니까?”
“어? 못봤는데?”
“소혜 선배, 소혜 선배. 휘 선배 못 보셨습니까?”
“응? 못 봤어요. 무슨 일 있어요?”
“으응, 아무 것도 아닙니다.”
심서우는 불길함을 느꼈다.
아침에 눈을 뜨니 야영지 어디에도 조가휘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문득 간밤에 그와 마주쳤던 일이 떠올랐다.
‘설마 뭔가를 눈치 챈 건?’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숲을 바라봤다.
지난 밤 표식이 새겨진 어떤 나무가 있는 방향을.
다음으로 확인한 것은 전서구의 유무다.
다행히 맹을 떠날 때 챙겨온 전서구는 새장 안에 그대로 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심서우는 한 가지 확인 절차를 더 거쳤다.
“교관니임-.”
“응? 무슨 일인가요, 심서우 수련생?”
평소와 다름없는 벽려군의 부드러운 미소는 그녀에게 심신의 안정을 되찾아주었다.
“혹시 휘 선배 못 보셨나요? 할 말이 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안 보여서요.”
“조가휘 수련생이라면 몇 가지 물품이 떨어져서 제가 따로 임무를 줬어요. 어쩌면 하루 이틀 걸릴지도 몰라요.”
“아,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아뇨, 아무것도 아니에요. 가보겠습니다아-.”
심서우는 고개를 꾸벅 숙이며 물러났다.
계획이 어긋나는 것이 꺼림칙했으나, 한편으론 잘 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만난 지 두 달밖에 안 된 사이지만, 조가휘와 쌓은 친분이 적지 않았고, 단예지를 제외하면 이들 중 가장 호감 가는 이였으니까.
어쩌면 그라도 횡액을 피할 수 있어 다행일지도.
동시에 그녀는 죄책감에 시달렸다.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이들 대부분이, 자신의 배신으로 인해 죽거나 다칠 것이다.
자신을 동생처럼 아껴주는 사화도, 며칠 간 동고동락하며 동기처럼 친해진 팽소혜도.
설령 조가휘 한 사람이 생환한다 하여 그 업보가 사라질 리 없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끝끝내 입 밖으로 내뱉지 못한 사죄의 말을 속으로 삭이며, 그녀는 야영지를 정리했다.
허나 그녀는 위선인 줄 알면서도 조가휘의 귀환이 늦어지기를 빌고 또 빌었다.
부디 그가 내일까지 돌아오지 않기를.
그러나 바람과 달리 그는 늦은 오후 일행과 다시 합류했다.
“선···배.”
“왜 그래? 어디 안 좋아?”
“아닙니다. 임무 받으신 거 아니었어요?”
“간단한 거라 금방 끝났어.”
“아···.”
도망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도로 삼켰다.
가족들의 목숨을 걸고 도박을 할 수는 없으니.
그녀는 따끔거리는 죄책감을 미소 속에 감췄다.
“선배, 저녁은 뭡니까?”
“내가 너희 집 숙수냐? ···뭐 먹고 싶은데.”
투덜거리면서도 상냥하게 묻는 그의 뒷모습을 아무도 모르게, 울먹이는 얼굴로 뒤쫓는다.
무와산으로 가는 다리가 끊겨 있는 것을 발견한 건 해가 질 무렵이었다.
경공으로 넘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는 낭떠러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벽려군은, 어쩔 수 없이 우회를 결정했다.
“돌아가야겠어요. 조가휘 수련생, 무와산에 미리 전서구를 보내주세요.”
“내용은 어떻게 할까요?”
“우리도 학관 일정이 있으니 노 선배들께서도 양해해주실 거예요. 의뢰받은 물건은 제서평에서 양도하는 걸로 하죠.”
“네, 교관님.”
제서평.
심서우는 그 이름을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 날 밤 새로운 야영지에서 멀찍이 떨어진 어느 나무껍질에는, 전날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새로운 문양이 새겨졌다.
***
“뭐라고 적혀 있어?”
“최종 목적지 부분이 제서평으로 바뀌었어요. 이제 준비만 하면 되겠네요.”
“고생해줘. 빈아도 다리 끊느라 고생 많았다고 전해주고.”
“응. 내일 봐요.”
복귀 시점부터 백우선의 은신진을 이용해 내 곁에 숨어 있던 우희가 한 발 먼저 제서평을 향해 떠나갔다.
그리고 다음날, 내가 속한 5조 역시 예정대로 제서평에 진입했다.
그렇게 걷던 와중, 벽려군이 우뚝 발걸음을 멈춰 세우고 학관생들에게 말했다.
“이쯤에서 잠시 쉬도록 하죠.”
그렇게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정파의 애송이들이 맞는가?
족히 백여 장은 떨어진 장소에서 울려 퍼진 심후한 음성과 함께, 검은 피풍의를 뒤집어쓴 삼사십 명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나 그 누구도 당황하는 이는 없었다.
그저 약속이라도 한 듯 저마다 무기를 꺼내들 뿐이었다.
스릉-!
역시, 우희의 예측은 정확해.
자신이 암살을 꾀한다면 이 장소에서 암습을 했을 거라는 그녀의 예측대로, 휴식을 위해 멈춘 지금 이곳에서 암습이 시작됐으니까!
그 순간, 당황한 심서우의 얼굴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겼다.
세작이라는 이유로 오늘의 작전에 대해 언질을 받지 못한 탓이지만, 이 순간 그녀에게 관심을 갖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벽려군.
상대 못지않은 내공을 담아 읊조린 벽려군이 수련생들의 선두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염라께서 누가 보냈냐 묻거든 제 이름을 말하세요.
-과연 소문대로 검후의 기개가 남다르구나. 명교 성염대 사십 인. 교의 비원을 위해 오늘 너희들의 목을 받아가겠다!
쐐애애액-!
그 흔한 문답조차 없이 질풍처럼 우리 앞에 쇄도한 이들이 흉흉한 기세를 담아 병장기를 휘둘렀다.
수련생들은 황급히 검을 들어 올렸으나, 이미 완성된 고수인 마교의 정예들 앞에선 허수아비나 다름없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
미처 방비하기도 전에 상대가 휘두른 검이 내 몸을 가로로 두 동강내며 지나갔다.
그러나 원래대로라면 진즉 내장을 쏟아내며 고꾸라졌어야 했을 신형은, 아지랑이처럼 살포시 흔들린 게 전부였다.
마치 환상인 것처럼.
“진법!”
난 경악한 적들의 코앞에서, 실제로는 그들과 수백 미터 떨어진 별개의 장소에서 히죽 웃어보였다.
“여러분, 사물이 보이는 것보다···.”
“모두 조심, 함정···!”
“멀리 있습니다.”
번쩍!
땅거죽이 뒤집히며 새하얀 빛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다음 순간,
콰아앙–!!!
한 발 늦게 울려 퍼진 경천동지할 폭발음과 넘실거리는 불꽃 속으로, 사십 인의 마교 성염대와 수련생들의 환영은 먼지처럼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