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00)
암살검가 로이넨-100화(100/258)
제100화. 입학식 (1)
입학식을 사흘 앞둔 저녁.
루빈은 창가에 서서 공원 위에서 터지는 폭죽을 확인했다.
펑! 펑!
연이어 터지는 불꽃 색깔의 순서가 접선 시간과 장소를 알리고 있었다.
‘준비되었나 본데.’
이튿날 이른 아침, 쿠제의 서점엔 로제탈러가 이미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개점 시간이 아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은 불 꺼진 서점 안에서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다.
“로젠탈러, 내가 준비해 달라고 했던 거, 가져온 거지?”
그 말에 로젠탈러가 옆에 놓여 있던 옷을 건넸다. 무도회복이었다. 입학식은 마법사 로브를 걸친 채로 진행되지만, 이어지는 무도회에서는 각자 준비한 의상으로 갈아입어야 했다.
루빈은 무도회복을 쓱 내려다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적당하군.”
“좀 더 화려한 게 낫지 않겠나?”
루빈이 요구한 무도회복은 수수한 편이어서 눈에 잘 띄지 않았다. 바로 이 이유로, 대다수 평민 생도들 옷차림 속에 능히 섞일 터였다.
“파트너는 점찍어뒀고?”
“아니. 춤출 생각은 없어.”
“이런, 아쉬운데. 이참에 암살검가 도련님의 춤 실력을 구경하나 했거든.”
“너도 연회에 참석하게 됐다는 뜻인가?”
원래대로라면, 마법과 관련이 없는 로젠탈러는 마법학교의 연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입학식과 연회에 한해서만. 하지만 어디까지나 위장 신분이고 외부인일 뿐이니까, 별다른 일은 못 해. 보아하니 네 춤 구경도 물 건너간 거 같고.”
“어떻게 출입할 수 있게 됐는지 알겠군. 위더스푼 가문 때문이지?”
로젠탈러가 고개를 끄덕였다.
위더스푼가의 등장으로 상황이 바뀌었다. 행사 규모가 커지고 귀빈들의 면면이 한층 높아진 덕분에, 로젠탈러로서도 틈입할 구멍이 생겨난 것이다.
“칙명부에서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나?”
“뭘?”
“위더스푼 가문의 막내딸이 여기에 온다는 거. 교류학생으로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루빈에게선 격앙된 태도가 엿보였다. 알고 있었다면 왜 알려주지 않았냐고 따져 묻는 그 모습에, 로젠탈러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루빈의 연기를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뜻이었다.
“네가 나한테 말했잖아. 이번 입학생들의 재능이 엄청나다고. 그중에 클로이가 포함되어 있었던 거지?”
“오해했군. 칙명부도 몰랐던 사실이야. 뭐, 마법부에선 미리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
“하여간 교활하기는 마법사만 한 작자들도 없어. 안 그래? 카포티니의 교장도 그렇고, 위더스푼 가주도 그렇고. 도대체 뭔 속셈들인 건지.”
루빈은 슬슬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
“…나는 내가 마법학교로 투입된 이유에 위더스푼 가문도 포함되어 있는 줄 알았는데.”
“아냐, 그건 한참 잘못 짚은 거야.”
그렇게 대답하는 로젠탈러였지만, 사실은 본인 역시 어느 쪽으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중이었다.
‘루빈을 마법학교에 넣으라는 건 칙명부 수장 룰포의 뜻이지만, 위더스푼 가문은 칙명부 영향권을 벗어난 세력이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로젠탈러는 답답했다. 룰포의 지시에 따라 카포티니에 투입된 지 2년이 흘렀음에도, 아직도 ‘카포티니 작전’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랐으니까.
카포티니 작전.
룰포는 로젠탈러를 보내며, ‘5년 안에 마법사 사회가 크게 요동칠 일이 벌어질 거고, 그게 카포티니에서 일어날 거다’라고만 했다.
그리고 그때가 오면, 상황을 주도해야 하는 세력이 바로 우리 칙명부가 되야 한다고. 그게 달성되어야만 로젠탈러의 입지도 회복되어 칙명부 중심으로 복귀할 수 있을 거라고 말이다.
로젠탈러는 담배를 꺼내 뻐끔뻐끔 피워댔다. 매캐한 연기가 두 사람을 뒤덮었다. 루빈은 표정을 살짝 구겼다.
“자, 이거.”
루빈은 책상 위로 둘둘 만 종이를 건넸다.
“랩소디관의 배치도군. 흠, 생도들의 방끼리 공간접속이 이뤄져 있다는 말이지.”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은 사감실뿐이야. 그 외엔 별거 없던데.”
자연스러운 거짓말.
지금 기숙사 안에서 루빈이 파악하지 못한 장소는 꽤 많았다. ‘접근금지’가 표시된 복도도 아직 남겨둔 상태다. 가보지 못한 유일한 곳이라는 사감실은 첫날에 다녀오기도 했고.
로젠탈러는 의심하지 않았다. 어차피 기숙사에 대한 정보는 앞으로 이어질 지령들에 비하면 사소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루빈은 지체하지 않았다. 용건을 마쳤으므로 여기에 남아 있을 필요가 없었다.
“루빈, 벌써 가는 거야? 다음엔 연회에서 보겠군.”
로젠탈러의 말에 대꾸하지 않은 채, 루빈은 무도회복을 챙겨 곧바로 기숙사로 돌아왔다.
“…….”
기숙사 방 안. 투명천장 너머로 이불을 둘둘 만 채 잠에 빠져 있는 오스카가 보였다. 전날 저녁까지 스레힘의 동물들을 파트너 삼아 춤 연습에 매진한 탓이었다.
스르륵.
루빈은 천장의 베일을 내렸다. 오스카 모르게, 찬찬히 살펴볼 것이 있었으니.
우선 무도회복부터 입었다. 나중에 오스카가 물어보면, 갈아입느라 베일을 내려두었다고 둘러댈 작정이었다.
“흐음.”
책상 위에 놓인 푸른 구슬. ‘그리폰의 심장’이었다. 루빈은 안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베니테즈 교수에게서 얻어낸 이후로 두 달이 지났지만, 그리폰의 심장은 처음 그대로였다. 마법사 교수가 그냥 기념품이라 착각했던 게 당연할 정도로 특별함이란 엿보이지 않았다.
‘계속 가지고 다녀봐도 아무 반응이 없군.’
천 년 전 멸종한 이후, 그리폰은 전설의 영물이 되어 동화의 소재로나 쓰였다.
동화 속에서의 그리폰은 원래 동면에 빠져 있었다. 그러다 동화의 주인공이 들어가서는 안 되는 곳에 들어갔을 때, 그게 열쇠가 되어 그리폰이라는 괴물이 깨어난다는 내용이 주류였다.
그때, 문득 루빈의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
‘혹시 이것도 열쇠려나?’
골렘의 핵처럼 말이다. 동면에 빠진 본체는 따로 있는데, 이 구슬을 그 본체 안에 꽂으면 움직이게 되는 방식일지도.
-티나, 잠깐 이리 와볼래?
루빈은 티나를 호출했다. 암살자와 암연으로 연결된 로이네크로우는 제 동료의 호출을 곧바로 느끼게 되어 있었다.
이윽고 창밖 저 멀리서 날아오는 까마귀가 보였다. 다만 지금은 로이네크로우의 형태가 아닌 일반적인 까마귀였다.
까악.
까마귀는 루빈의 창밖 근처에서 활공을 이어나가다, 살포시 창틀에 내려앉았다.
티나가 이토록 조심스러운 건, 모두 스레힘 때문이었다. 아무리 그녀가 환혈족이라 해도, 자칫 사감이나 그의 동물들을 마주치면 일이 복잡해질 수 있었으니.
-왜 불렀어?
티나의 전음이 이어졌다.
-오, 저게 뭐야? 오오, 영롱한 푸른빛 좀 봐! 아… 저번에 그 교수한테서 받은 상품이구나?
-이건 마법 재료로 쓸 거라 안 돼.
-야, 내가 언제 갖고 싶다고 했냐?
뭐가 그리 억울한지 깍깍대는 티나. 그리폰의 심장이라 말해봤자 골치만 아파질 테니 루빈은 대충 둘러댔다. 그러곤 그녀를 부른 목적을 꺼냈다.
-환혈족에 대해 다시 알고 싶어서.
-환혈족? 일단 말해봐. 근데 이건 진짜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알려주면 저 구슬, 나 주는 거야?
-…….
-아, 농담이라고, 농담! 표정 왜 그래? 어휴. 하여간 진지하긴!
아무리 봐도 농담 같진 않았기에, 루빈은 경계를 풀지 않은 채 이어 말했다.
-네가 저번에 한 말 있잖아. 환혈족은 현존하는 생명체로만 변할 수 있다고.
저번이라기에는 꽤 시간이 지난 일이었다. 티나와 함께 길리필드 수목원에 갔던 것도 어느덧 4년 전이었으니.
-맞아. 생명체여야 해. 골렘 같은 건 안 되고.
-현존하는 생명체면 다 된다는 뜻이야?
-왜? 걸리는 거라도 있어?
-걸린다기보다는, 한계가 어디까진가 궁금해서.
그러자 티나는 까만 날개를 푸드덕대며 우쭐거렸다.
-이 세상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생명체라면 뭐든 변신할 수 있어. 개체가 단 하나여도 말이야. 단!
-단?
-내가 실제로 본 적이 있어야 하지.
루빈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이건 미처 떠올리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티나가 살아 있는 그리폰을 본 적 있을 리가 없잖아.’
그럼 변신 또한 불가능할 터. 이 세상 어딘가에 그리폰이 존재한다 해도, 티나가 직접 본 적이 있어야만 변신할 수 있을 터.
-용건 끝났지? 그럼 난 간다!
까아악.
이윽고 티나는 하늘로 날아올라 기숙사로부터 멀어졌다. 점점 작아지는 티나를 보며, 루빈은 그리폰의 심장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이렇게라도 해봐야겠어.’
푸른 구슬 위에 손을 드리웠다.
그리폰의 심장에 관한 비밀을 풀어줄 수 있는 인물은 페르뿐이지만, 지금은 그가 학교에 있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시도해 볼 수 있는 거라면 다 해보는 수밖에.
지이잉.
루빈은 손끝으로 암연을 방출했다.
쿠제가 창안한 ‘그림자 역장’이었다. 그리폰의 심장 주변으로 무중력의 장을 만들고, 그 반응을 지켜볼 작정이었다.
‘어라?’
기대하지 않고 있던 루빈의 눈에 이채가 서렸다. 진공 상태가 되면서 책상 위로 살짝 떠오른 푸른 구슬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크드드득! 크드드드득!
짐승이 이를 가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루빈은 침을 삼켰다.
‘마치 절규하는 것 같은데.’
예상과 달리, 거칠고 불안한 기운이었다.
그 순간, 푸른 구슬의 표면으로 잿빛이 들러붙기 시작했다. 빠르게 부패하는 느낌이랄까? 그리폰의 심장이 불안정하게 멎어가는 것만 같았다.
결국 서둘러 그림자 역장을 멈추는 수밖에 없었다.
탕.
푸른 구슬이 다시 책상 위로 내려왔다. 감쌌던 암연이 사라지면서 푸른 구슬은 비로소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난 듯한 인상이었다.
목이 졸렸다가 풀려난 사람처럼, 느릿하게 본래의 색깔로 돌아오는 중이다.
‘뭐지? 암연에 저항하는 느낌이었어.’
그때였다. 루빈의 귓가에 쿵, 쿵, 쿵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의 진원지를 알아차린 루빈이 천장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검은 베일이 드리워진 투명천장 너머에서 울리고 있었다.
오스카가 던진 마나구 소리였다.
한쪽 방에서 베일을 드리우면, 마나구는 천장을 통과하지 못하고 벽에 부딪힌 것처럼 튕겨 나온다. 지금처럼 말이다.
“루든! 뭐 해? 자냐!”
루빈은 무도회복 주머니에 푸른 구슬을 집어넣었다. 재빨리 옷매무새를 다듬고 오스카를 마주할 준비를 했다.
베일 너머, 오스카가 던지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마나구는 천장에 맞고 돌아올 때마다 오스카의 마나를 점점 더 끌어올리는 중이었다.
촤라락.
루빈이 가렸던 베일을 펼치자, 거의 동시에 오스카의 마나구가 투명천장을 통과하여 루빈 머리 위로 떨어졌다.
파앙!
반사적으로 받아냈지만, 마나의 농도가 얼마나 짙은지 손이 다 얼얼했다. 몸속 마나의 환까지 진동시킬 정도의 위력.
“……!”
갑작스러운 힘의 파동에 깜짝 놀란 루빈은, 오스카가 자신의 표정을 보지 못하도록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피이이잉. 피이이잉.
‘뭐지?’
이상한 일이었다. 암연 앞에선 죽음을 앞둔 처절한 비명이라도 내는 것 같던 그리폰의 심장이다.
그런데 지금은 정반대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죽음의 정반대. 즉, 생명의 기운이었다.
‘혹시… 마나가 열쇠인가?’
암연에는 저항을 느끼지만, 마나에는 조응한다.
그럴싸한 원리였다. 이 말이 맞는다면, 아마 클로이나 셀레스네 정도, 혹은 카포티니의 교수들과 비슷한 경지의 마나가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다시 말하면…….’
오스카의 마나구를 받아내는 순간 푸른 구슬이 반응을 보였으니, 오스카도 최소한 그 수준에 들어간다는 뜻이겠지.
“어라? 저것 봐라? 루든! 너 언제 무도회복 준비한 거야? 나한테도 숨기고? 딱 기다려! 지금 바로 갈 테니까.”
오스카가 헝클어진 머리 그대로 방문을 열고 나가는 게 보였다.
루빈은 그리폰의 심장이 다시금 무정물로 돌아가는 걸 느꼈다. 어느새 생명의 기운도, 죽음의 기운도 사라졌다.
거의 그와 동시에 오스카가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
“야, 이거 좀… 너무 수수한 거 아냐?”
루빈의 무도회복을 이리저리 뜯어본 오스카의 솔직한 감상이었다.
“너, 이러면 귀족 영애한테 춤 신청해 봐야 소용없을 텐데.”
“너무 수수한가? 어쩔 수 없지. 그러는 넌 무도회복 구했어?”
“나? 하, 들고 올걸. 어제 시장 구석구석 다 뒤져서 공수했거든. 기다려 봐.”
오스카는 다시 후다닥 뛰어나가 자기 방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느라 한참 만에 나타난 오스카는 거칠게 숨을 내쉬며 황급히 무도회복으로 갈아입었다.
“어때?”
오스카의 표정은 득의만만함 그 자체. 하지만 모든 면에서 과한 무도회복이었다. 너무 화려한 장식, 너무 많은 문양.
게다가 오스카 좋아하는 색이라는 건 알겠다만 파란색이 유독 많아, 배색도 엉망이었다.
“…괜찮네.”
“역시 그렇지? 너, 뭘 좀 아는구나? 스레힘 사감은 이 파란색 보고 말라비틀어진 가지 같다고 하더라니까.”
“음.”
”에휴. 내가 그런 눈썰미 없는 사람한테 귀족 춤을 배웠다니!”
쫑알거리는 오스카를 두고, 루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의한다는 의미로 그저 고개만 끄덕일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