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02)
암살검가 로이넨-102화(102/258)
제102화. 입학식 (3)
“마법이라는 특권은 마나라는 축복 속에 주어졌고… 삼각의 도형, 그 안에는 견고한 비율이 존재하며, 그에 마땅한 견고한 정신이 서려 있습니다…….”
입학식은 키건 교장의 개식사와 함께 시작됐다.
복잡하고 귀찮은 걸 싫어하는 교장답게, 이 개식사는 십수 년째 한 단어도 고치지 않고 입학식마다 재사용 중이다.
지루한 말들이 이어지는 동안.
루빈은 눈을 감았다. 옆에 있는 오스카는 정말로 졸고 있었지만, 루빈은 다른 의미의 폐안(蔽眼)이었다.
그 상태로, 암연을 넓게 펼쳤다. 홀 내부엔 인원이 꽤 많았지만, 모두들 정적을 유지하며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터라 관찰하는 건 쉬웠다.
제일 먼저 로젠탈러를 감지했다. 그는 거만한 자세로 앉아 단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윽고 뒤편에 서 있는 쿠제를 감지했고, 그와 좀 떨어진 곳에 있는 셀레스네도 찾아냈다.
지금, 쿠제는 셀레스네에게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중이었다. 다행히 그의 바람대로, 셀레스네는 아직 그를 발견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저 꼿꼿한 자세로, 주변의 쏟아지는 눈길들을 무시하고 있을 뿐.
‘제국귀족에 대한 관심이 엄청나긴 하군.’
도시의 입과 귀를 한꺼번에 사로잡은, 위더스푼가의 등장. 제국귀족을 둘러싼 정치는 일찌감치 시작된 셈이었다.
카포티니 인근 도시의 귀족들.
자제들을 카포티니에 입학시킨 삼휘 마법가문들.
그들로선 셀레스네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는 어떻게 말을 걸어야 하나 계산 중일 게 빤했다.
그래도 그건 클로이에 대한 관심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셀레스네는 주변의 귀빈들만 무시하면 됐지만, 클로이는 온 입학생도의 시선까지 그대로 받아내야 했으니.
“…그런 의미에서 카포티니 도시의 오랜 역사를 지탱하는 우리 마법학교는…….”
거구의 교장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이 학교의 정신과 삼휘 마법의 발전사 같은 걸 말하는 도중에도, 학생들은 힐끗힐끗 클로이를 쳐다봤다.
그런 호기심은 교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아서, 클로이는 몇몇 교수들의 노골적인 시선까지 견뎌내야 했다.
‘흐음?’
하지만 클로이는 입학식 내내 흔들리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쏟아지는 관심을 일상처럼 누려왔으니 이 정도론 어림도 없다는 건가.
“…이번 축사는 마법부 대관께서 보내준 것으로, 일정상 참석하지 못한 대관을 대신하여 제가 읽도록 하죠.”
마법부 대관의 축사를 읽어나가는 키건 교장.
바로 그때였다.
지금껏 단 한 번의 흔들림도 없던 클로이가, 순간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암연을 펼치고 있던 루빈만 느낀 것이었다.
“…2년 전의 마법사 사회를 놀라게 했던 필리몬드 사태, 즉 ‘표백의 아침’ 이후…….”
이 대목에서 미세한 동요를 일으킨 것이다. 암연이 아니었다면 느끼지 못할 만큼 미약한 떨림이었지만, 분명히 느껴졌다.
‘아무리 밝은 클로이라도 가볍게 넘길 만한 일은 아니었지.’
지난 2년 사이, 제국 안에는 위더스푼 가문이 ‘표백의 아침’ 사건과 관련이 있다는 음모론이 떠돌았다.
그 당시, 클로이와 셀레스네가 필리몬드에서 반나절을 보낸 건 엄연한 사실이었고, 그들이 다녀가고 그 몇 주 사이에 ‘표백의 아침’ 사건이 일어났으니 음모론에 힘이 실리는 것도 당연했다.
혹자는 반란을 꾀했던 염동괴제 뒤에 위더스푼 세력이 있다고 했고.
또 다른 이는 황제가 염동괴제를 끊어내기 전에 숙부의 진심을 확인하기 위해 클로이 위더스푼을 보낸 거라고 했다.
‘그래 봤자 위더스푼 가문은 조금도 타격이 없을 텐데.’
하지만 클로이 개인의 문제는 또 다른 영역이었다.
루빈은 블루캣호에서 며칠을 지켜본 클로이를 떠올렸다. 시녀를 골치 아프게 할 정도 천진하기만 했던 그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졌다.
어쩌면 필리몬드 사태로 인해 충격을 받았을 수도 있다. 루빈이 알기론 염동괴제를 대면하기도 했으니.
충격이라.
루빈은 그 가능성을 다시 한번 잘 새겨두었다.
이왕 클로이와 같은 학교에 다니게 된 이상, 그녀를 이용하기 위해선 많이 알아둘수록 좋을 테니까.
‘어쩌면 클로이를 통해 도움받을 수도 있고.’
제국 최고의 권력가인 위더스푼의 도움이라.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자, 이제 올해 신입생들의 담임을 맡을 교수들을 호명하도록 하죠.”
키건 교장의 목소리가 다시금 참석자들의 정신을 휘어잡았다. 루빈도 감았던 눈을 떴고, 졸고 있던 오스카도 고개를 흔들며 눈을 부릅떴다.
“신입생들의 반 배정은 추후에 진행될 예정입니다. 네 개 반은 A, B, C, D로 명명될 것이며, 지금 소개하는 네 명의 마법사가 각 반의 담임교수를 맡을 것입니다.”
키건 교장은 담임교수들을 호명하여 단상 위에 서게 했지만, 이름 말고는 별다른 약력조차 소개하지 않았다.
루빈에겐 상관없었다. 이미 로젠탈러를 통해 마법학교 교수들에 대한 대략적인 정보를 전달받은 뒤였다.
루빈은 담임교수가 단상으로 나올 때마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떠올렸다.
“A반 담임을 맡을 에겔러 교수입니다.”
첫 번째로 호명된 건 키건 교장만큼 나이 든 노교수였다. 중후한 멋이 느껴지는 노교수가 콧등 위로 살짝 내려온 안경을 고쳐 쓰며 단상 가운데에 섰다.
‘에겔러 교수. 설계마법학 전공에 A반의 담임. 키건 교장과는 오랜 친우 사이고, 카포티니에서 나고 자란 마법사.’
이어 두 번째로 호명된 건 B반 담임 솔라나 교수였다. 그녀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울리며 도도하게 걸어 나왔다.
‘솔라나 교수. 공격마법 전공. 나이는 에겔러나 키건보다 연상이지만, 가까운 조상 중에 엘프가 있어 겉보기에는 삼십 대로 느껴지는 마법사.’
냉담한 미소와 함께 솔라나 교수가 입학생들과 귀빈들을 쓱 둘러보더니, 짧게 고개를 숙였다. 머리칼이 내려오면서 남들보다 위로 솟은 그녀의 귀가 살짝 드러났다.
“다음은… C반 담임을 맡을 베니테즈 교수입니다.”
베니테즈의 등장은 앞선 두 교수와는 다른 반응을 이끌었다. 마법사 사회에 이름이 꽤 알려진 교수답게, 학생들과 귀빈들 사이로 말들이 활발히 오갔다.
‘호명 순서는 근속연수인가 보군.’
가장 마지막으로 호명된 마법사는 가이젠 교수였다. 장발의 회색 머리칼을 뒤로 묶은 가이젠 교수가 덤덤하게 걸어 나왔다. 그다지 좋은 인상은 아니다.
‘가이젠이라…….’
D반 담임을 맡을 가이젠은 루빈이 칙명부한테 전달받은 정보엔 수록되어 있지 않았다.
“그리고 연회로 넘어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소개할 사람은…….”
담임교수들을 인사시키는 순서까지 마치고, 모두가 기다렸던 마지막 순서가 이어졌다.
키건 교장과 눈빛을 교환한 클로이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선 것도 그때였다.
“올해 우리 학교는 아메릭마나 마법학교와의 결연을 한 단계 더 공고히 하는 차원에서, 교류학생을 받기로 했습니다. 두 학교의 유구한 역사 통틀어 첫 사례지요. 그럼, 마법사 사회의 화합의 결실로 우리 학교를 찾아준 클로이 위더스푼 학생을 소개하겠습니다.”
입학식 중에서 가장 조용해지는 순간이었다.
으레 이럴 땐 손뼉부터 치겠지만, 제국귀족의 위엄은 그런 당연한 예의조차 잊게 만들었다.
클로이는 단상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저 몸만 뒤로 돌려 참석자들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예법에 맞게 상체를 한 차례 숙였다.
제국귀족의 권한에 따라, 왕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을 하대할 수 있었지만 평민과 귀족의 구분 없는 카포티니 마법학교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순간.
마법생도들 모두 대륙에서 가장 유명한 마법사 가문의 막내딸을 제대로 보기 위해 머리를 꼿꼿하게 세웠다.
“루든, 너 뭐 하냐? 응?”
오스카는 이 일생일대의 기회를 잡기 위해 무진 애를 쓰고 있었다.
자신이 보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미소를 띠고, 눈빛에는 최대한 초롱초롱한 느낌이 배어나게끔 애쓰면서.
삼휘의 마법가문으로 유명한 이엘로스 가문이든 델린 가문이든, 남학생이든 여학생이든, 귀족 출신이든 평민 출신이든 상관없이, 모두가 클로이에게 집중하는 이 순간.
“야, 루든! 뭐 하냐고! 지금 클로이가 보고 있다고!”
딱 한 명의 생도만 몸을 잔뜩 수그리고 있었다. 바로 루빈이었다.
“아, 신발에 뭐가 묻은 것 같아서.”
덕분에 클로이는 자신을 바라보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루빈을 발견하지 못했다.
* * *
“너무 긴장하진 마.”
루빈이 오스카에게 조언했다. 그가 보기에 오스카는 더 긴장할 수 없을 정도로 긴장한 상태.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상태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중이었다.
“내가 긴장한 것처럼 보여?”
“응. 완전.”
“어젯밤에 스레힘 사감님이 내게 친히 조언해 주셨지. 힘 빼기의 기술로 접근하라고. 자연스럽게… 자연스럽게…….”
두 사람은 모두 무도회복으로 갈아입은 뒤였다.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루빈은 지나치게 수수해서 눈에 띄지 않았고, 오스카는 지나치게 화려해서 모든 이목을 집중시킬지언정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오스카, 나는 따로 돌아다닐게.”
“왜? 혼자보다는 둘이 다니는 게 성공 확률 더 높은 거 몰라?”
“둘은커녕 열 명이 와도 안 될 것 같은데.”
“뭐라고! 그 말, 무슨 뜻이야!”
“농담.”
오스카 옆에 있다간 무도회장에 들어가자마자 클로이 눈에 띌 게 분명했다. 루빈은 멋쩍은 미소로 무마했다.
이윽고, 무도회장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준비가 끝난 학생들이 하나씩 무도회장으로 나가 서로 눈치를 보며 주변을 배회하기 시작했다.
무덤덤한 루빈과 긴장한 오스카는 가장 마지막까지 휴게실을 벗어나지 않았다.
“루든, 내 1차 목표는 델린가의 달리아야. 누군지 알겠어? 저어기, 파란 머리 공녀.”
“델린가의 달리아라면…….”
“그래, 모두가 에릭 이엘로스의 춤 파트너로 예상했던 인물이지. 하지만 클로이 위더스푼의 등장으로 에릭의 관심은 클로이로 급선회! 그러니 나한테도 기회가 생긴 거라고.”
“글쎄. 그건 달리아 얘기도 들어봐야겠는걸.”
하지만 이미 잔뜩 흥분한 오스카의 귀엔 아무 말도 들어오지 않았다.
“오스카. 그냥 그러지 말고, 차라리 네 마법 능력을 어필해 보는 건 어때? 그게 더 매력적일 것 같은데.”
“달리아도 파란색 드레스를 입었군. 내 머리색에 맞춰서.”
“네 머리색, 원래 초록색이야.”
“아, 그렇지.”
정신을 못 차리는 오스카였다. 그는 힘차게 고개를 흔들며 자기암시를 걸기 시작했다.
“힘 빼기의 기술… 이제부터 내가 말을 거는 상대는 전부 룰루다. 그저 울르딘 곰 룰루일 뿐이다… 룰루야, 내가 간다…….”
경직된 표정과 끊이지 않는 중얼거림 속에 오스카마저 홀 중앙으로 나갔다.
“…….”
루빈은 좀 더 뜸을 들였다. 우선 클로이를 조심해야 했다. 모든 관심을 빨아들이는 클로이와는 수업 중에 마주치는 게 가장 자연스러웠다.
한편으로, 루빈에게는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쿠제를 만나야 해.’
무도회 때문에 돌아다니기 힘든 루빈을 대신하여 쿠제가 해줘야 할 일이 있었다.
루빈은 주변을 살피며 휴게실을 나섰다. 그리고 무도회장 위층, 귀빈들이 자리한 곳을 살폈다.
쿠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쟤는 또 뭐야?’
루빈을 향해 아주 저돌적으로 다가오는 누군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