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06)
암살검가 로이넨-106화(106/258)
제106화. 반 배정 (2)
“페르 로렌치니… 그 마법건축가의 아들 말이지?”
“네, 교장님. 반 배정 전에 그 아이의 새로운 이름을 알려드리려고요. 지금으로선 저만 그 애의 얼굴과 이름을 알고 있으니까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네?”
베니테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페르 로렌치니가 누구인가. 키건이 손수 베니테즈를 여행까지 보내면서 직접 데려오라 했던 아이 아닌가.
“페르, 그 아이의 아버지는 한때 학교 시설 공사에 참여한 건축가였지. 재능 있는 자였어. 마법 실력도 출중했고.”
“알고 있습니다.”
“근데 그자가 왜 갑자기 도망자 신세가 됐는지는 나도 몰라. 알고 싶지도 않고.”
“…….”
“이유야 어쨌든, 중요한 건 그의 아들이 삼휘의 마나를 지녔다는 거야. 그것만으로도 우리 학교에 입학할 이유는 충분해. 도망자의 자식이라 할지라도.”
“그럼 교장님은, 졸업할 때까지 어떤 아이가 페르 로렌치니인지 몰라도 괜찮으신 겁니까?”
페르를 데려오라고 시킨 건 교장이지만, 정작 어떤 학생이 페르인지는 모른다. 페르를 데려오고, 아이에게 가명을 만들어주고, 관련 기록을 정리해 준 건 베니테즈였다.
“그게 가장 좋은 방법일 거야, 베니테즈.”
그 순간, 베니테즈는 평소 키건이 드러냈던 그의 신념을 떠올렸다. 교육의 기회란, 으슥하고 서늘한 지대에까지 스며들어야 한다고 했었지.
“그리고 이제까지 페르와 같은 사례가 없었을 거 같나?”
“이 아이 이전에도 신분을 위장하고 들어온 생도가 있었단 말씀이신가요?”
“드물긴 해도 없진 않았지. 물론 평민 생도들한테만 해당됐던 일이었지만.”
이 학교에 있은 지 십수 년 만에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가까이에서 교장을 지켜봐 왔기에 더욱 놀라웠다. 그렇다면 이전까지는 교장님이 직접 움직였다는 건가?
“알겠습니다, 교장님. 그러면 이대로 비밀을 유지하도록 하겠습니다.”
애초 베니테즈가 예상했던 반응은 이런 게 아니었다. 오늘 아침 교장을 보고 울르딘 곰을 떠올렸던 그 쾌활한 마법생도가, 바로 페르 로렌치니라고 말하려 했는데.
“그리고 명심할 점 또 하나.”
“네?”
“연민하지 말 것.”
군인다운 한마디가 이어졌다. 한때 제국의 마법사여단에서 지휘관으로 미래가 창창했었다는 교장의 과거가, 문득 떠올랐다.
“아이의 신변에 위협이 생기면 그때 보호하면 돼. 그러니 아이를 가르치면서 사사로운 감정에 의존하지 말라고.”
베니테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직접 페르를 데려왔다고 해서 특별 취급을 해줄 생각은 없었다.
‘다만 그 재능이 탐이 날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는 찰나, 키건 교장이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결계를 해제했다. 이제는 밑으로 내려가 반 배정을 해야 할 때였다.
“그나저나 자신은 있는 거야?”
복도를 걸으며, 키건 교장이 대뜸 물었다.
“학기 말이 되었을 때, 자네가 맡은 C반 수준이 다른 학급들보다 높을 것 같냐고.”
“흠… 자신 있습니다.”
“호오, 그래? 역시 클로이 위더스푼 때문인가?”
“아뇨, 클로이 때문만은 아닙니다.”
“뭔가 있구나? 아… 아까 선점한 루든과 오스카, 그 둘 때문인가. 그 정도의 재능인 거야? 아니면, 둘 중 하나가 ‘페르’인가?”
“페르에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말씀드린 적 없는 걸로 기억합니다.”
“하하, 딱딱하기는. 연민 때문에 그런 선택을 했을지도 몰라서 하는 말이야. 아무튼, 네가 찾은 그 학생들, 부디 원석이길 바라지.”
원석이라. 베니테즈는 슬며시 미소 지었다. 유망주로 가득한 올해만 보자면, 둘 말고도 차고 넘치는 게 원석이라 할 만했다.
하지만 루든과 오스카는 원석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공된 보석에 가까웠다. 클로이에 비교해도 손색없을 정도로.
‘신나게 이야기하다가 오스카의 비밀까지 털어놓으면 안 되지.’
그쯤에서 두 생도에 관해 더 설명하고픈 마음을 눌러야 했다.
흐뭇한 마음으로 걸음을 옮기며, 베니테즈는 두 달 전의 저녁 일을 떠올렸다. 숨은 상인 역할을 했던 그날 저녁.
클로이의 가공할 염동력, 그리고 루든의 놀라운 운신 마법과 얼음 마법. 이것만으로도 그날의 충격은 충분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약속대로 루든에게 특별품목을 지급하고 이대로 끝인가 싶었을 때, 또 다른 학생이 베니테즈를 찾아냈다.
오스카 투니오.
또는 페르 로렌치니.
푸른색 머리칼에 푸른 눈동자의 마법생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쾌활하기 그지없었다.
“역시 교수님이 숨은 상인이셨네요! 저를 구해주신 것도 모자라 특별품목까지 주시다니.”
“귀족 구역으로 서슴없이 넘어온 것만으로도 만족스럽지만, 그냥 줄 수는 없어요.”
“적당한 거래를 해야 한다고 했었죠.”
“페르… 아니, 오스카 학생. 내가 결계를 걸 테니, 해제해 보겠어요?”
“얼마든지요.”
“그럼 시작하지요…….”
회상에 잠겼던 베니테즈의 얼굴에 또다시 자연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클로이, 루든, 오스카.
그날 마주했던 세 명의 마법생도 중 누가 최고의 재능이냐 묻는다면, 베니테즈는 어느 쪽도 선택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클로이는 완성된 마법사 그 자체였지만, 위더스푼 가문이라는 특별한 환경을 배제할 수 없었다.
반면 루든 포이넨은 마법의 방식이 뭔가 이상하긴 해도, 그가 보여준 운신 마법과 얼음 마법은 베니테즈를 충격에 빠트릴 정도였다.
그리고 오스카.
오스카는 결계를 아주 간단히 풀어낼 뿐만 아니라, 처음 본 휘식을 새롭게 비틀어 또 다른 결계 마법으로 응용하기까지 했다.
그 정도는 천재성으로 치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오스카, 아니 페르의 아버지가 유능한 마법건축가라 했는데… 그 영향인 건가?’
오스카에게는 천재성 너머 무언가가 있었다. 정말로 베니테즈를 놀라게 했던 건 바로 그 점이었다.
베니테즈는 오스카에게서 느껴졌던 독특한 마나의 결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건 여러 마법사를 마주해 본 그로서도 처음 느껴본 결이었기에.
‘어쨌든 중요한 건 세 학생 모두 내 반이 되었다는 사실이지.’
올해가 어떻게 펼쳐질지, 짜릿할 지경이었다.
그때였다.
“교장님! 베니테즈 교수!”
무도회장으로 막 내려온 두 사람을 향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씩씩대며 걸어오는 사람은 솔라나 교수였다. 자초지종을 모르는데도 왠지 모르게 뜨끔할 만큼, 그녀는 화가 나 있었다.
“왜 그래요, 솔라나 교수?”
“저, 저, 저… 능구렁이! 여우! 고블린 같으니라고!”
솔라나 교수는 목소리가 저절로 커지는 걸 억눌러 가며 말했다. 그 날카로운 눈길은 베니테즈에게로 향하고 있었다.
“왜 그러십니까, 솔라나 교수님.”
“정말 몰라서 물어요?”
“모르겠습니다만…….”
“뭔가가 있을 거라 짐작했지만, 정말 이 정도로 교활할 줄은!”
“허허, 진정하세요. 솔라나 선배.”
키건이 솔라나를 선배라 칭하는 건 그녀의 화를 가라앉힐 때뿐이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솔라나가 굉장히 화가 났다는 뜻이기도 했다.
“교장님, 클로이 학생이 누구랑 춤을 췄는지 알아요? 바로 루든 포이넨이라는 학생입니다. 누군지 기억하시죠? 루든이요, 방금 교장실에서 베니테즈 교수가 선점했던!”
“허허, 그랬단 말입니까?”
“그뿐만 아니라, 위더스푼의 공녀가 먼저 춤을 청했다 하더군요! 분명 베니테즈 교수는 뭔가를 알고 있었던 거라고요.”
키건 입장에서도 이건 좀 놀라웠다. 그래서 베니테즈 교수를 쳐다봤는데, 의외인 건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억울함과 당혹감이 가득한 얼굴로 베니테즈 교수는 난처하게 웃을 뿐이었다.
* * *
귀빈들이 모두 돌아가고, 다시 마법생도들만 남았다. 생도들은 입학식이 치러졌던 2층 홀에 다시 모였다.
입학식과 동일한 지정 좌석에 앉았고, 아래쪽 단상에는 교장 키건이 서 있었다.
“입학식과 무도회까지 마쳤으니 이제 너희는 예비생도가 아니다. 저 카포틴 호수와 호흡을 함께하는 카포티니 마법생도다.”
교장의 한마디 한마디가 홀 내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이 순간부터 귀족 생도와 평민 생도의 구분도 사라질 거다. 너희는 동일한 마나의 축복을 받은 마법사로서, 신분의 간극이 완전히 부러진 셈이다.”
교장이 손을 크게 휘젓자, 학생들이 차고 있던 목걸이의 줄이 투드득 뜯어지면서 공중으로 떠올랐다. 펜던트의 색깔을 통해 귀족과 평민을 구분해 주었던 그 목걸이였다.
허공에 둥둥 떠 있는 수백 개의 목걸이.
피이이잉.
이윽고 이를 중심으로, 반투명의 구체가 생겨났다. 구체의 일렁임 속에 목걸이 무더기는 서서히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와아.”
“이게 그 유명한……!”
학생들의 탄성이 이어졌다. 아무 예고도 없이, 열쇠벌레들이 일제히 공중으로 떠오른 것이다.
피핑. 피피핑.
한쪽에선 솔라나 교수가, 반대편에선 에겔러 교수가, 또 다른 쪽에선 베니테즈와 가이젠 교수가 각자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루빈은 팔찌 덕분에 교수들의 휘식을 보고 있었지만, 그게 어떤 마법인지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이제부터 반 배정을 진행할 거다.”
반 배정? 사전에 고지되지 않은 절차였기에 학생들이 술렁거렸다.
정보에 밝은 귀족 출신 생도들은 원래 반 배정은 입학식에 하지 않는 거라며 수군거렸다.
피시시식.
그 순간, 반투명의 구체에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났다. 목걸이가 녹으면서 만들어진 쇳물로 구체가 물들었다.
파앙!
갑자기 파열음이 울려 퍼졌고, 학생들 대부분이 움찔거렸다.
구체가 깨진 것이다. 깨지면서 생겨난 파편들이 공중에 떠다니고 있었다.
‘날아든다.’
루빈의 예감처럼 파편들이 일제히 흩어졌다.
목표는 각 열쇠벌레들. 파팟, 소리와 함께 열쇠벌레에 박히는가 싶더니, 파편은 그대로 열쇠벌레 내부에 스며들었다.
이후, 열쇠벌레들은 원래의 주인들 쪽으로 다시 날아들었다.
또각또각.
어안이 벙벙한 학생들 앞으로 나선 건 솔라나였다. 마법을 끝낸 그녀는 단상 가운데로 걸어 나와 학생들을 쭉 둘러봤다. 그녀 특유의 냉담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떤 반으로 배정됐을지 궁금하겠지. 하지만 그건 우리 교수들도 알려줄 수 없어. 왜냐면, 우리도 모르거든.”
학생들은 고개를 돌려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저게 무슨 소리지?
“월요일이 되고, 첫 수업시간에 앞서 열쇠벌레들이 너희를 안내할 거다. 그때 교실에서 만나는 생도가 너희들의 친구가 되고, 그날 마주한 교수가 너희들의 담임이 되는 거지. 누가, 나의 B반이 될지 궁금하군.”
그걸로 끝이었다. 솔라나는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면서 단상을 걸어 내려갔다.
오늘의 일정이 모두 끝났다는 걸 알아차린 생도들이 하나둘씩 좌석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기숙사로 돌아갈 시간이다.
조용하던 오스카가 루빈에게 물었다.
“루든, 넌 누가 담임교수였으면 좋겠어?”
“나는 베니테즈 교수면 괜찮겠는데.”
“오호, 나랑 통했네? 솔라나 교수한테는 뼈도 못 추릴 거 같고, 에겔러 교수는 좀 고루한 타입인 거 같고… 어쨌든 룸메이트끼리 같은 반이면 얼마나 좋겠냐.”
두 사람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자, 유명인사.”
오스카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루빈은 무도회 이후 정말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다들 널 힐끔힐끔 쳐다보기 바쁘네.”
“그러게.”
“나한테는 말해주기로 한 거다? 클로이랑 어떤 사이인지.”
“내가 말해주기로 했었나?”
그러자 오스카는 루빈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속삭였다. 익살스러운 눈짓과 함께.
“당연하지! 나한테만 말해주면, 내가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애들한테 하나씩 팔 거니까.”
“고민해 볼게. 일단 기숙사로 가자. 옷이 불편해.”
기숙사로 향하면서, 루빈은 몇 가지 의심스러운 정황들을 하나씩 정리했다. 가장 의심되는 건 역시나 오스카의 정체였다.
‘페르 로렌치니.’
오스카가 자신이 찾고 있던 그 표적일지도 모른다는 의심. 오스카와 나란히 걷는 와중에도 루빈은 그 가능성을 계속 저울질했다.
‘푸른색 머리. 천재적인 마법 재능… 아무리 봐도 페르의 특징인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오스카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지는 않았다. 이게 암살자들의 교육과정에 연기(演技) 수업이 있는 이유인 것이다.
게다가 표적과 친밀해지는 것만큼 암살의 난이도를 간단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으니까.
기숙사 랩소디관이 가까워지자, 오스카가 앞으로 뛰어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빈은 가만히 생각했다.
‘쿠제한테 조사를 시켜놓긴 했지만, 내 나름대로도 확인해 봐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