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07)
암살검가 로이넨-107화(107/258)
제107화. 방문 (1)
“루든, 왜 안 들어와?”
“…….”
루빈은 곧바로 랩소디관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누군가가 입구 앞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이네요”
차분하면서도 어쩐지 냉랭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
앞서 건물로 들어갔던 오스카가 되돌아와 루빈 옆에 섰다. 왠지 모르게 아슬아슬한 분위기. 오스카의 목소리가 저절로 낮아졌다.
“저 사람은 누구야? 어째 분위기가 솔라나 교수 저리 가라인데.”
“셀레스네야. 클로이 위더스푼의 시녀.”
시녀라고는 하지만 위더스푼의 위상이 그대로 배어났기에, 오스카는 자기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원래 위더스푼은 시녀도 저렇게… 무섭냐?”
“그냥 시녀가 아니야. 어지간한 교수들은 간단히 뛰어넘을 정도의 마법사거든.”
“하… 알겠어, 난 먼저 올라가 있을 테니까 방에서 보자. 와서 제대로 이야기 좀 해줘.”
오스카가 눈치껏 자리를 피했다. 하지만 오스카가 피해준다고 끝이 아니었다. 지나가는 생도들이 힐끔힐끔 루빈 쪽을 쳐다봤다. 루빈은 셀레스네에게 고갯짓하며 자리를 옮기자는 의도를 전했다.
갑자기 셀레스네가 왜 찾아온 거지? 당황스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스럽기도 했다. 마침 도움이 필요했는데, 셀레스네라면 제격이었다.
“오랜만이네, 셀레스네. 근데 너도 마탑 구역을 돌아다닐 수 있는 거야?”
학교 입장에서 셀레스네는 외부인이었다. ‘마법사’로 통칭하긴 해도, 휘식의 차이는 엄연한 법이다. 클로이야 교류학생이라 해도, 셀레스네에겐 그럴 명분도 없었다.
“그건 나중에 말씀드리죠.”
“나중에?”
“제가 여기에 온 건 아가씨 말씀을 전해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조만간 저녁 식사에 도련님을 초대하라고 하시더군요. 별로 내키지 않지만… 쿠제 님도 포함해서 말이죠.”
‘쿠제’라는 이름을 저렇게나 어색하게 말할 수도 있구나, 루빈은 내심 놀랐다.
“쿠제한테 말해 놓을게.”
“…현재 아가씨는 카포티니 외곽에 거주하고 계십니다. 카포티니 시장님이 별장으로 쓰던 건물이지요.”
하긴, 클로이가 기숙사에 있지는 않겠지. 루빈 역시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셀레스네가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틀림없이 클로이를 경호하는 인원도 따로 있을 것이다.
“이번 주말 저녁입니다. 가능하시겠죠?”
“응, 가능해.”
“이야기를 전해드렸으니,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셀레스네, 잠깐만.”
돌아서려는 셀레스네를 불러 세웠다.
“흠, 그건 뭐죠?”
루빈 손에는 주머니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안에 뭔가가 들어 있었지만, 셀레스네에게 그것까지 내보일 생각은 없었다.
“이걸 염동력으로 띄워볼 수 있어?”
“네?”
“지금 혼자서 마법 공부를 하고 있는데, 도저히 모르겠어서.”
단순 학구열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은 셀레스네의 표정에서, 경계심이 씻겨 나갔다.
“…욕심을 내시는 건 이해하지만, 염동 마법은 그리 간단한 게 아닙니다. 도련님으로선 한참 뒤에나 가능할 겁니다. 그것도 아주 미약한 수준으로요.”
냉담하게 말하면서도, 셀레스네는 루빈의 부탁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곧바로 루빈이 보는 앞에서 염동 마법을 펼쳤다. 친절하게 휘식을 외부로 드러내어 루빈이 알아볼 수 있도록 해주기까지 했다.
“삼각형과 동그라미…. 비록 휘식의 모양은 달라도 구도는 똑같으니 참고하세요. 도형이 세 번 겹쳐져 있는 거 보이시죠?”
“응, 책에서 봤던 그대로네.”
하지만 루빈이 주목하는 건 염동 마법의 휘식 따위가 아니었다. 휘식을 쳐다보고 있었지만 실상 집중하고 있던 쪽은 바로 주머니.
둥둥둥.
염동 마법에 따라 주머니가 루빈 손을 떠나 허공으로 떠올랐다. 셀레스네는 주머니를 루빈 눈앞에서 멈추도록 했다.
“흠, 안에 뭔가가 들어 있군요. 구슬인 것 같은데?”
“수업 준비물이야.”
“그런가요. 이제 됐죠?”
셀레스네가 시연을 마쳤다. 주머니가 다시 루빈 손바닥에 내려왔다. 루빈은 그걸 가만히 내려다봤다.
“루든 도련님.”
“응?”
“제가 2년 전에 했던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 마법사가 될 생각은 하지 말라고 했던 말이요.”
겉보기엔 저래도 내심 신경 쓰고 있었나 보다. 루빈은 솔직한 속내를 보이기로 했다.
“신경 안 써. 뭐, 마법도 마법이지만 사실 난 아버지의 출판사업 때문에 온 거야. 카포티니 쪽으로 사업을 확장해 보려고.”
“변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련님이 마법사가 되리라 마음먹었다고 해서, 위더스푼 가문에서 개입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착각을 해도 단단히 한 모양인데.
루빈은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었다.
“정말이지?”
“당연하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제가 그때 그렇게 얘기했던 건, 도련님이 위더스푼 가문 이름을 이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
“네, 오늘로 확실해졌죠. 만약 위더스푼을 이용할 거였으면 입학식 전부터 시끄럽게 소문냈을 테니까요. 다만…….”
“다만?”
“아가씨가 걱정이군요. 제국귀족이 일으키는 파장에는 좀처럼 둔감한 분이시니까요. 오늘만 해도, 아가씨가 먼저 춤을 신청할 줄은…….”
그런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가 사교계에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클로이는 모르는 게 분명하다. 뭐, 그래도 아직 어린 영애니까.
인상을 살짝 찌푸렸던 셀레스네는 루빈을 향해 다시 예를 표했다. 그러곤 홱 돌아섰다.
멀어지는 셀레스네를 쳐다보던 루빈은, 다시 주머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바로 그 안에 든 푸른 구슬의 상태를 살폈다.
‘그리폰의 알.’
다행히 셀레스네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그녀에게 시범을 부탁했던 건 어떤 ‘확인’이 필요해서였다.
‘변화가 없어.’
염동 마법에 의해 공중에 떠올랐을 때나,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 푸른 구슬의 상태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내 생각이 틀린 건가?’
며칠 전의 기억을 떠올렸다. 암연으로 푸른 구슬을 에워싸자, 마치 소멸의 기운 속에 부패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가 오스카가 마나구로 투명천장을 두드렸을 때, 푸른 구슬은 소생의 기운 속에 다시 생기를 되찾았다.
‘그래서 그리폰을 깨우는 열쇠가 ‘마나’일 줄 알았는데.’
셀레스네의 마법에도 반응이 없다는 건 루빈의 가정이 틀렸다는 걸 의미했다. 어쩌면 마나의 경지에서 차이가 있었기 때문일까?
‘아니야, 마나라면 셀레스네가 월등해. 오스카가 아무리 천재적이라 해도, 지금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
루빈은 주머니를 무도회복 안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랩소디관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마나가 아니라면…….
비밀은 오스카에게 있다는 건가?
* * *
기숙사로 돌아온 뒤. 루빈은 클로이와 어떻게 얽혔는지 그 이야기를 오스카에게 들려주었다.
“하, 놀라운 스토리네. 좀만 비틀면 러브스토리로 팔아먹을 수도 있겠는데? 죽은 줄 알았던 옛 친구를 다시 만났다, 그리고 새롭게 피어난 그 감정…….”
오스카가 눈을 반짝였다. 투명천장 너머로까지 전해지는 눈빛에선 순수한 창작열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았다. 필리몬드로 향하는 배에서 우연히 클로이를 만났고, 잠수가 가능한 독특한 배여서 여러 가지 신기한 경험들을 공유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 최초로 마나를 발현하게 됐는데, 그때 도와준 사람이 바로 클로이였다는 것까지.
“아, 이제야 이해가 되네. 저번에 바다 위에서 마나가 발현됐다고 했었지.”
거짓말이 없을 뿐, 그렇다고 모든 걸 털어놓은 것도 아니었다. 들려준 이야기대로라면 그저 출판업자 3등귀족의 자제가 운 좋게 제국귀족을 맞닥뜨린 것뿐이었다.
“진짜 좀만 살을 붙여서 러브스토리로 팔아볼까? 루든, 허락해 주는 거지?”
“그러다 위더스푼 가문에 납치당할지도 몰라. 쥐도 새도 모르게. 그럼 난 새 룸메이트를 사귀게 되겠지.”
루빈이 시큰둥하게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아주 가능성 없는 이야기도 아니었기에, 오스카는 온몸을 소스라치게 떨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이 이야기는 그냥 나 혼자만 간직해야지.”
“잘 생각했어.”
루빈은 투명천장 너머의 오스카를 쳐다봤다. 그리고 이어질 말을 기다려 보았다.
루빈이 먼저 비밀을 털어놓았으니, 오스카 쪽에서도 비밀이 건너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 마나구를 주고받는 것처럼.
“…….”
하지만 오스카는 자신이 왜 머리와 눈동자를 염색하고, 그것도 단순히 염료가 아닌 마법까지 동원해야 하는지를 밝히지 않았다.
취침 시간이 되어 잠이 들 때까지도.
‘그 정도의 비밀이라는 건가.’
루빈은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채로 기다렸다. 새벽이 깊어지고, 시계가 3시를 가리킬 때까지.
그러다가 시간에 맞춰 눈을 떴다. 투명천장 너머 곤히 잠들어 있는 오스카가 보였다.
몸을 일으키자마자 투명천장의 베일을 내렸다. 촤라라락, 소리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오스카는 평소에도 잠이 깊은 편이었다. 이 정도로는 깨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러나 만약을 대비해 얼굴을 가려야 했다.
“…….”
지난 두 달간 스레힘 사감이 밤에 짐승들을 어떻게 운용하는지 파악해 둔 루빈이었다.
사감으로선 괴팍하기 그지없지만, 한편으로 그는 어쩔 수 없는 수혈인이었다. 엄중한 상황이 아니라면, 친구와도 같은 짐승들을 엄격하게 다루지 않았다.
‘짐승들의 경비가 헐거워지는 시간이 지금이지.’
루빈은 방문을 열고 복도로 나갔다. 복도엔 얇게 비치는 등잔불만 일렁이고 있다. 그 등잔불에 루빈의 그림자가 비치는 건 잠시뿐이었다.
이윽고 복도에서 루빈의 모습이 사라졌다.
암연을 넓게 펼친 채로, ‘그림자 허밍’을 시작했다. 소음을 남기지 않는 암살검가의 암술. 빠르게 움직일수록 시야가 휙휙 흘러갔다.
그렇게 몇 층을 더 올라와 멈춘 곳.
오스카의 방이었다. 루빈은 소리를 죽이며 문을 열었다.
‘오스카의 방에 오는 건 처음이네.’
생각해 보니 그랬다. 놀러 오는 건 언제나 오스카였으니.
안에 들어와 살폈지만 눈에 걸리는 건 없었다. 방은 투명천장 너머로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탁.
루빈은 호주머니에서 푸른 구슬을 꺼낸 뒤, 그걸 침대 옆 선반에 놓았다. 달빛을 막아서는 루빈 때문에 얼굴 위로 그림자가 드리워졌는데도, 오스카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마나가 아니라 ‘오스카’가 열쇠인 거라면, 푸른 구슬이 반응할 거야. 그럼 이 아이가 페르일 확률도 더 높아지는 거겠지.’
루빈은 팔짱을 끼고, 푸른 구슬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 지켜봤다.
‘…이 상태로는 반응하지 않는다는 건가?’
손을 뻗어 곧바로 ‘그림자 역장’을 펼쳤다.
무중력의 공간 속으로 살짝 떠오르는 푸른 구슬. 그러면서 이전에 나타났던 것과 똑같은 현상이 일어났다.
푸른색에 검은색이 뒤섞이더니, 한순간에 부패의 기운이 감돌았다.
‘자, 이제는?’
루빈은 손을 빼냈다. 이제부턴 푸른 구슬이 오스카 곁에서 어떻게 변하는지 지켜보면 된다.
“…….”
지금 복도엔 스레힘의 경비원인 수사자 한 마리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사자의 두툼한 발소리가 터벅터벅 울린다.
바로 그때.
‘역시…….’
푸른 구슬에 기다리던 변화가 생겼다. 방금까지만 해도 그 생명이 곧 스러질 것 같던 푸른 구슬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되살아나고 있었다. 죽음이 물러가면서 다시 푸른색을 회복하고 있었다.
루빈이 암연을 거두었기 때문에?
아니었다.
잠든 오스카의 숨결에 따라 반응하는 것이다. 오스카의 호흡이 있을 때마다 어두운 방 안으로 드러나는 푸른 물줄기. 마치 마나선처럼, 빛을 깜빡이며 오스카와 푸른 구슬 사이를 잇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루빈은 눈을 가만히 감았다.
-루빈.
내면세계에서 루빈과 시선을 공유하고 있던 하네케였다.
-자네가 제대로 짚은 것 같군. 이제 어찌할 생각이지? 쿠제의 조사 결과를 기다릴 텐가?
‘쿠제는 투니오 가문이든 오스카든 별다른 정보를 가져오지 못할 거예요.’
다시 눈을 뜬 루빈은 오스카를 내려다봤다.
‘오스카가 나한테 말했던 것들이 모두 거짓이라면 말이죠. 그 아이가 살았다던 마을이 없거나, 마을이 있어도 오스카라는 이름이 없겠죠.’
-그걸 확인하려고 조사를 보낸 거였군.
루빈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아이가 페르 로렌치니입니다. 확실해요.’
-그럼 죽일 텐가? 여기서?
‘…….’
루빈의 손이 오스카 쪽으로 향했다. 분명한 정황, 다가올 미래…. 이자가 페르가 확실하다면, 여기서 죽이는 것이 맞다.
하지만.
‘당장 죽이지는 않을 겁니다.’
-…….
‘지금 죽인다면 학교가 시끄러워질 거예요. 이미 전 관심을 받고 있는 상태이기도 하고요.’
루빈은 푸른 구슬을 호주머니에 넣은 뒤, 몸을 돌렸다. 그대로 소리 없는 발걸음으로 복도로 나섰다.
‘그림자 허밍’을 펼치며 빠르게 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는, 복면을 벗고 투명천장을 가린 베일을 다시 걷어냈다.
루빈의 눈앞으로 잠든 오스카가 다시 나타났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천재적 자질을 지닌 룸메이트였지만, 지금 이 순간부터는 조만간 목숨을 거둬야 하는 표적에 불과했다.
‘의심받지 않을 만한 사고사를 만들어야겠네요. 마법 수업이 다양하니, 그중에 적당한 게 있을 겁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페르를 찾았으니까.
이제부터 중요한 건 따로 있었다. 루빈이 전생에서부터 줄곧 품었던 의문점을 푸는 것이다.
‘왜 페르는 암살검가를 그토록 증오하게 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