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1)
암살검가 로이넨-11화(11/258)
제11화. 첫 번째 시험 (5)
호숫가의 별채에 모인 암살검가 가주들과 칙명부 수장 룰포.
루빈이 공연장으로 갔다는 사실에 룰포는 술병을 기울였다. 콸콸 쏟아지는 웃음소리를 내면서.
“어허, 세이렌의 생각처럼 루빈이 공연장으로 갔네? 똑똑한 아이를 두었군.”
룰포의 반응은 온전한 감탄이라고 볼 수 없었다. 쿤처럼 과격하면서 확실한 방식에 비해 루빈의 행보는 그저 잔꾀에 불과해 보일 것이다.
지도 가판대로 가서 축제용 지도를 얻고, 공연장으로 향하는 루빈의 행보에 세이렌 역시 그렇게만 생각할 뻔했다.
그런데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루빈 참가자는 공연장에 도착하기 전, 하밀 참가자의 기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이후 추격전이 벌이던 두 사람은 잠시 관찰자들의 시야에서 벗어났습니다.”
가신들이 뒤늦게 루빈과 하밀의 위치를 파악했을 땐 이미 그 자리에 루빈은 없었다. 보고 내용에는, 엉덩이를 털며 일어나는 하밀만 있었다는 것이다.
“시험장에 은신한 가신들의 배치를 확인해야겠다. 지도를 가져와.”
세이렌이 직속 가신에게 명했다.
“세이렌, 어찌 그러시오? 이 즐거운 날에 휘하 암살자들을 죄다 뒤엎으려고 그러나?”
“확인할 게 있을 뿐입니다.”
“관찰자들이 잠깐 놓쳤을 뿐인데 과민하긴. 어차피 쫓던 놈보다 루빈이 재빨랐던 거 아니겠소? 쫓던 아이는 넘어져서 놓쳤던 거고.”
룰포는 들고 있는 포크를 세이렌 쪽으로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쿤이라는 녀석도 재밌고, 루빈도 머리를 쓸 줄 알고. 황제께 들고 갈 소식이 푸짐해서 난 흡족하군. 나야 쿤과 루빈 중에서는 패기 넘치는 크로키슨 쪽이 더 낫긴 하지만… 루빈도 황제께 충분히 말씀드릴 만하니, 걱정하지 마시오.”
걱정? 세이렌은 마음속으로 비웃음을 참았다.
황제에게 제 아들의 성적이 어떻게 보고되는지는 아무 관심이 없었다.
단지 궁금했을 뿐이다.
어떤 방법으로 빠져나갔을지.
그 과정에서 어떤 싸움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건, 전부 의도된 것이었는지.
“가주님, 가져왔습니다.”
로이넨가의 가신이 다가와 말했다. 암살검가 가신들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 정리된 지도였다.
세이렌은 루빈과 하밀이 부딪쳤다는 그 부근을 살펴보았다.
딱 한 곳이 눈에 확 띄었다.
뒤늦게 하밀 혼자만 발견되었다는 그곳.
가신들의 경지를 가늠해 봤을 때, 암연을 통한 관찰에 빈틈이 있을 만한 장소는, 그 부근에서는 그곳뿐이었다.
‘루빈이 이걸 알고 있었다는 말인가?’
우연이라기엔 너무나 절묘했다. 마치 일부러 사각지대를 노린 것 같았으니.
그러나 세이렌은 확신할 수 없었다.
잔꾀에 밝다는 것. 그 나이대를 훨씬 상회할 정도로 지능적으로 뛰어난 건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은신한 가신들과 그 빈틈을 파악하는 능력은 전혀 다른 영역. 그러려면, 루빈은 은신한 가신들의 위치와 그들의 경지까지 파악할 수 있어야 했다.
또한.
‘최소한 암연의 개화가 있어야 하고, 환 또한 견고해야 한다.’
루빈의 나이대에서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윽고 결론을 내린 세이렌은 애써 고개를 저었다.
‘기대감 때문에 망상까지 할 필요는 없지.’
* * *
“벌써 세 시간이나 지났잖아. 이제 좀 지루해지려고 하는데. 우리의 꼬맹이들은 아직도 진척이 없나?”
잔뜩 불콰해진 얼굴로 룰포가 소리쳤다. 지난 한 시간 동안 전해진 시험장 소식은 이동과 탐색뿐이었다.
때마침 트룸벨의 상황을 전파하기 위해 병사들이 들어왔다.
“오, 얼른 말해라, 얼른.”
현재까지 생존한 참가자는 모두 셋.
쿤 크로키슨은 지도보관실에서 본도그와 스토네 가문의 참가자를 부상입혀 탈락시켰다. 그 자리에 매복해 있다가 뒤이어 도착한 갤리오트릭 가문의 참가자 또한.
칼크리드, 레인크로키, 크리거 가문은 유령쥐에게 표식이 뜯겨 탈락했다.
쿤 크로키슨.
하밀 쿠니틀리.
루빈 로이넨.
결국 이 셋만 남았다.
“시험장의 상황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쿤 참가자가 표적의 정체를 알아낸 것 같습니다.”
잠자코 있던 크로키슨 가주의 표정에 미소가 감돌았다.
“어떻게 알아냈다는 거지?”
“선점했던 1급 지도를 이용했습니다. 쿤 참가자는 지도에 나와 있는 트룸벨 시장의 집무실로 침투했습니다. 그곳에서 트룸벨 시장이 나타날 때까지 대기했습니다.”
쿤이 선택한 방법은 ‘협박’이었다.
시험장에서 발생할 갖가지 사고를 대비하여 트룸벨의 귀족들은 인근 도시로 피해 있었지만, 시장만은 그럴 수 없었다.
현재 트룸벨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시장조차도 접근 불가능한 정보. 그래서 시장은 자신의 도시에서 도대체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당연히 칙명부나 암살검가가 어떤 집단인지도 몰랐다. 황제의 명에 따라 그저 축제 기간 동안 도시를 시험장으로 내주었을 뿐.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되는 건지.”
이런 혼잣말을 하며 시장이 집무실에 들어왔을 때. 눈앞에 어느 소년이 나타났다.
“웬 놈이냐! 여긴 어떻게 들어왔지?”
소년은 단숨에 뛰어올라 시장의 책상으로 올라갔다. 눈높이를 맞추며 다가오는 꼬마애. 시장으로서는 어쩐지 꺼림칙한 눈빛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허리춤으로 갔던 소년의 손엔 도자기 파편이 들려 있었다.
“허허, 이놈아, 그걸로 나를 위협이라도 하겠다는 거냐?”
불안을 숨기고 애써 여유롭게 행동하려는 시장의 생각은 그걸로 마지막이었다.
시장이 마주친 소년의 눈에선 아무런 감정도 엿보이지 않았다. 야수의 눈처럼 차갑기만 할 뿐.
소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도자기 파편으로 시장의 허벅지를 찍었다.
한 방, 두 방, 세 방.
피가 솟구쳤지만 시장은 소리칠 수 없었다. 어느 틈에 소년이 헝겊으로 입을 틀어막았기 때문이다.
“시장을 위협할 생각을 하다니, 역시 재목이야 재목!”
룰포는 자리에서 일어나 크로키슨 가주가 앉은 자리로 다가갔다. 칙명부 수장이 다가오자 크로키슨이 자리에 일어나며 살짝 고개를 숙인다.
붉은 포도주만큼이나 시뻘게진 얼굴. 룰포는 찰랑거리는 포도주를 들고 크로키슨 가주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어찌 귀공은 아들을 그리도 잘 키우셨소?”
기분 좋은 룰포는 클클, 하는 웃음소리를 냈다.
“폐하의 검을 제련하는 시험에서, 이딴 변방 도시의 시장이 무슨 문제가 되겠나. 쿤은 아주 탁월한 선택을 했소. 패기가 있군. 폐하의 훌륭한 검으로 쓰일 게 분명해.”
시장은 도시를 시험장으로 내주었을 뿐이니, 누가 표적인지 당연히 몰랐다.
쿤 역시 그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하지만 쿤은 시장의 허벅지를 피로 물들이면서 유용한 정보를 알아냈다.
병사들의 분포.
시장은 칙명부가 지시하는 대로 자신의 병사들을 배치했다.
언뜻 병사들의 배치는 일반적이고 또 균형적인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그럴 만하지 않은 곳에 촘촘하게 병사들이 배치된 곳이 있었다.
축제의 중요 행사가 벌어지는 장소가 아닌, 어느 평범한 골목이었다.
꽃가게가 두세 곳 있는 게 전부인 이 골목에 유난히 병사들이 두껍게 배치된 건, 분명 특이했다.
쿤은 시장을 협박해 그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암살검가 가신들이나 칙명부 병사들은 관찰자에 불과하지. 표적한테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그들에겐 나설 권한이 없으니까. 다만 시장의 병사들은 다르다.’
시험이 끝나기도 전에 거리의 불한당이나 취객들에게 표적이 피해라도 입으면 안 되니까. 혹시라도 거리의 마차가 표적을 덮치면 안 되니까.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시장의 병사들은 정확한 내막도 모른 채 그 부근을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크로키슨 가주는 드디어 승기를 잡은 아들이 만족스러웠다. 미소를 감출 필요도 없었다.
세이렌과 크로키슨 가주가 눈을 마주쳤다. 본가의 가주도 고개를 끄덕여 보이면서 쿤의 행동이 효과적이라는 걸 인정했다.
의기양양해진 크로키슨은 병사에게 물었다.
“다른 참가자들의 상황은 어떻게 되었나?”
“루빈과 하밀 참가자도 표적이 있는 골목과 인접한 거리에 있습니다. 하밀 참가자는 포획한 유령쥐를 나침반 삼아 다른 두 참가자 쪽으로 접근 중이며, 루빈 참가자는 빠르게 탐문하며 위치를 옮기는 중입니다.”
어느덧 ‘1차 선택’도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가장 확실한 정보를 알고 있는 참가자는 쿤. 그러나 다른 두 명이 인접해 있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루빈도 그 근처에 있는 건 의외군. 아직도 공연장에 있을 줄 알았는데. 운이라고 봐야 하나?”
룰포가 씩 웃었다.
“뭐, 운이라고 해서 잘못됐다는 뜻은 아니오.”
조롱하는 느낌이 묻어나는 말투였다.
실제로 공연장에서 표적을 발견하지 못한 루빈은, 도시 안을 이리저리 배회하는 것처럼 보였다. 접근 방식은 좋았지만 결과가 좋지 않았으니, 룰포의 비웃음을 살 만했다.
현재 루빈이 표적에 인접해 있는 것은 그저 운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루빈의 의도라는 건, 아무도 알지 못했다.
칙명부나 가주들에게, 특히 그의 어머니 세이렌에게 어떤 인상을 남길지는 이미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음을 말이다.
영리한 아이.
루빈은 쿤처럼 잔혹하면서도 패기 있는 아이가 아닌, 영리한 아이였다.
어떻게든 시험에서 승리하는 것이 참가자의 목적이었지만, 이 시험이 수백 년 동안이나 이어지는 이유는 그것 하나뿐이 아니었다.
바로 황제의 잠재적 적이 될 만한 ‘후환’을 찾아내는 것.
송곳은 어떻게든 호주머니를 뚫고 나가는 법이니, 그런 송곳을 미리 찾아내어 사전에 싹을 잘라 버리려는 게 황제의 뜻이었다.
살아남기 위해서, 그리고 복수하기 위해선 드러내기보단 감춰야 한다는 것을 루빈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때, 홀 안으로 황급히 칙명부 병사 하나가 들어왔다. 문을 열며 거친 숨을 몰아쉬는 병사에게 모두가 집중했다.
“뭐냐?”
앳된 병사는 몸을 들썩이며 투구를 고쳐 썼다.
“드디어 시험이 끝났습니다!”
그 말에 가주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벌써 표적을 찾았단 말인가.
가주들 중 유일하게 의자에 앉아 있던 세이렌은 누구보다 먼저 시험의 결과를 들었다. 병사와 동시에 들어선 로이넨가의 가신이 그녀 쪽으로 다가가 시험 결과를 속삭인 것이다.
그녀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시험이 끝났다고? 1등은 누군가? 아, 아니지…. 일단 그랑버드를 띄우라 해라. 트룸벨 상공에서 직접 축하해 주겠다.”
그랑버드를 대령시키기 위해 다른 병사가 나갔을 때, 룰포가 다시 채근했다.
“자, 그래. 말해봐라. 어떤 꼬맹이가 1등을 했더냐? 아니지, 그보단 어떻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