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10)
암살검가 로이넨-110화(110/258)
제110화. 첫 수업 (2)
카포티니 마법학교 신입생도들의 첫 수업.
에겔러 교수의 ‘설계마법학 입문’.
저벅저벅.
에겔러 교수는 기품이 배어나는 걸음으로 교단으로 올라섰다. 그런 다음, 팔짱을 끼고 학생들의 면면을 훑어봤다.
“나는 에겔러 교수라고 한다.”
짤막한 소개말이 내리꽂혔다.
고작 한마디뿐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베니테즈 교수와 다른 사람인지 드러났다.
베니테즈 교수는 말투에서부터 생도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게 느껴진다면, 에겔러 교수는 엄격한 원칙주의자에 가까웠다.
“나는 규율과 위계를 중시한다. 그렇다고 솔라나 교수처럼 승리만을 쟁취하는 스타일은 아니야.”
생도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배어났다. 생도들 대부분 입학식에서 봤던 에겔러의 겉모습으로 부드러운 성격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실상은 각 잡힌 군인이라니.
‘한때 군인이었다고도 했지.’
루빈은 가만히 생각했다. 에겔러 교수는 키건과 같은 시기에 마법사여단에서 활동했다고 한다.
칙명부가 제공한 정보에는 없었으니, 대부분의 생도들 역시 그런 약력을 모를 터. 루빈 또한 입학식 이후 하네케와 이야기하면서 알게 된 것들이었다.
그때였다.
“누구 설계 마법을 정의할 수 있는 사람 있나?”
학생들을 쭉 훑어본 에겔러 교수가 질문을 던졌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명이 손을 들었다. 한 명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는 클로이, 그리고 다른 한 명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달리아였다.
“흠, 두 명인가. 그래, 파란 머리 생도.”
“설계마법학은…….”
“아냐, 내가 지목하면 이름부터 말하도록.”
“…달리아 델린입니다.”
“말해 봐, 달리아 델린 생도.”
“설계마법학은…….”
“대답은 일어나서 하도록.”
달리아가 드러나지 않게 인상을 구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식으로 올바른 발표 형식의 모델로 활용될 거였으면, 차라리 클로이한테 넘기는 건데.
“설계마법학은 가공된 마나석에 마법을 부여하여, 특정 조건에 맞춰 발현시키도록 입력하는 학문입니다.”
“사전을 그대로 읊는 것 같군…. 하지만 그게 내가 선호하는 대답 방식이지. 상점 5점.”
“감사합니다.”
그제야 달리아의 표정에 승리의 미소가 떠올랐다. 슬쩍 고개를 돌려 클로이를 쳐다봤지만, 아쉽게도 클로이는 그런 경쟁의식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방금 달리아 생도가 말한 대로다. 가공된 마나석에 마법을 부여하여, 마법사 없이도 자동 발현하게 하는 능력이 바로 설계마법학이다.”
수업이 시작되기 전 베니테즈 교수가 서로 친해지라며 나눠줬던 석판들도 설계 마법이 내장된 것이었다.
“조교.”
에겔러 교수가 조교를 향해 고개를 까딱였다. 그러자 조교가 교실을 돌아다니며 학생들 책상 위에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사각형 돌멩이를 내려놓았다.
“마적석(魔跡石).”
에겔러 교수는 곧바로 말을 이었다.
“이 조그마한 돌멩이를 마적석이라고 부른다. 이름 그대로 마법의 흔적이 서려 있는 돌멩이. 일반 마나석에 마법이 내장될 수 있도록 가공한 것이다.”
생도들은 마적석을 손으로 집어 살펴봤다. 마적석은 맑은 느낌의 연푸른색이었다.
“이거 꽤 무거운데?”
“이 조그만 게 1킬로그램은 되겠는데.”
“수업 때마다 마적석을 한 무더기로 들고 다녀야 하니까, 저 조교가 저렇게 우락부락한 건가? 루든, 저기 저 팔뚝 봐봐.”
오스카가 에겔러의 조교를 가리키며 키득거렸다. 하지만 그런 수군거림을 가만히 넘길 에겔러 교수가 아니었다.
“거기, 말 많은 생도?”
“네, 교수님… 오스카 투니오입니다.”
“지급된 마적석을 엄지로 꾹 눌러라.”
불길하게 느껴지는 지시였다. 오스카는 멋쩍게 웃으며 머뭇거렸지만, 그렇다고 교수의 지시를 거부할 수는 없었다.
결국 교수가 시키는 대로 엄지로 마적석을 눌러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압력 때문인지, 아니면 엄지에 감도는 온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마적석의 발동조건에 들어선 건 분명했다.
연푸른색의 마적석이 갑자기 붉은색으로 변했다.
“으악!”
오스카가 소리쳤다. 동시에 아이들 모두 웃음을 터뜨릴 만한 일이 벌어졌다.
푸쉬시싯!
마적석에서는 튀어나온 건 밀가루였다. 밀가루는 공중으로 솟구치더니 정확히 오스카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쓸데없는 잡담은 금물이다, 오스카 생도.”
“…알겠습니다.”
“자, 그럼 수업을 이어가도록 하지.”
에겔러 교수는 수업을 재개했다.
“지금 생도들한테 나눠준 건 고작 밀가루를 뿌리는 것에 불과하지만, 사실 이 마적석에는 고차원의 공격마법도, 결계 마법도 내장할 수 있다. 또, 통신석의 원리도 이 안에 있다. 사실상 대륙의 중요 시설 중에 마적석 기반의 설계 마법이 없는 곳은 없어. 우스갯소리로, 제국 본토에는 사람 머리카락보다 설계 마법이 많다고 할 정도니까.”
그러면서 에겔러 교수는 대륙의 유명 건축물 중 설계 마법이 많이 내장되어 있는 대표적인 건물들을 나열했다.
‘빛과 반역의 탑’이 그랬고, 필리몬드의 제국법원과 백색탑이 그랬다.
“빛과 반역의 탑 같은 곳에 내장되어 있는 마적석은 지금 생도들 눈앞에 있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거다. 지금 여기에 있는 건 교육용으로 개량한 4급에 불과하고, 대륙 곳곳에 보급된 것들은 3급 마적석이지. 하지만 ‘빛과 반역의 탑’엔 대부분 2급 마적석이 내장되어 있다.”
3급 마적석까지는 탐지용 마도구만 있으면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2급 마적석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국 본토와 각 왕국 중요 시설에 내장되어 있는 2급 마적석에는 그만큼 고차원의 마법이 내장되어 있으며, 쉽게 찾아낼 수도 없었다.
“2급 마적석 기반에 설계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 경비 시설을 뚫고 가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에겔러는 거기에서 잠시 말을 멈췄다.
“세상엔 이따금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들이 벌어진다. 엄청난 오러를 지닌 무인들이나 대마법사에 준하는 자들. 그들은 2급 마적석의 설계 마법도 파훼하는 자들이다.”
“질문 있습니다!”
“말하기 전에 손부터 들도록. 물어봐라, 오스카 생도.”
“그럼 저희는 설계마법학을 통해 2급 마적석을 해체하는 방법까지 배우는 겁니까, 교수님?”
“만드는 것보다 없애는 게 더 힘든 분야가 바로 설계마법학이다. ‘설계마법학 심화’에 이르면 2급 마적석을 제작하는 법을 배우지만, 해체하는 법까지는 배울 수 없다. 아니, 내가 안다고 해도 가르치지 않을 거다. 왜인지 궁금한가?”
오스카는 대답 대신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에겔러 교수는 표정을 팍 구겼다.
“…여긴 반란자를 양성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지. 내 경력에 반란자의 스승이라는 얼룩이 새겨지는 것도 싫고.”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였다. 2급 마적석에 새겨진 설계 마법을 해체한다는 건 제국에게 도전하겠다는 의미였다.
그때, 오스카의 손이 불쑥 올라왔다.
“질문 있습니다! 그럼 1급 마적석은 어떤 겁니까?”
“너무 앞서가는군, 오스카 생도.”
에겔러의 불쾌한 기색을 읽지 못한 오스카는 뻔뻔히 질문을 이어갔다.
“소문에 의하면, 우리 학교에 1급 마적석이 내장된 곳이 숨겨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해당 소문을 알고 있는 듯한 몇몇 학생들이, 동조하는 눈빛으로 에겔러를 쳐다보았다.
에겔러는 그런 유치한 괴담 따위가 자신의 수업시간에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심한 모욕을 느낀 것 같았다.
“오스카.”
“예, 교수님!”
“마적석 누르도록.”
“…예, 교수님.”
푸시시싯.
다시 한번 밀가루가 터졌고, 교실은 웃음바다가 되었다.
“너희들이 알아야 할 건 3급 마적석까지다. 만약 학교에서 1급 마적석이 숨겨진 장소를 찾아낸 생도가 있다면, 내 친히 상점 50점을 내려주지.”
명백한 반어법이었지만, 어쩌면 오스카는 진심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또다시 쓸데없는 질문을 하면, 그땐 벌점 50점을 부여하겠다. 알겠나, 오스카 생도?”
“…예, 교수님.”
이후에도 에겔러 교수의 수업은 계속 이어졌다. 대부분 마적석에 대한 사실들을 개괄하여 설명하는 식이었다.
현재 대륙에서 1급 마적석은 제도(帝都) 필리아르크의 황궁에만 들어가 있다는 것. 그곳의 설계 마법엔 황족의 피만 감지하는 고차원의 마법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
마적석은 제국이 공인한 왕국과 특정 상인들만 취급할 수 있고, 제작자도 따로 정해두었다는 사실 등등.
그사이 에겔러 교수는 여러 번 질문을 던졌고, 정답을 맞힌 사람은 상점을 받았다.
상점에 연연하지 않는 루빈은 정답 경쟁에 나서지 않았지만, 클로이는 달랐다. 벌써 상점을 10점이나 얻었다.
“이제 슬슬 수업을 마칠 때가 됐군.”
어느덧 시간이 그렇게 됐다.
에겔러 교수는 밑으로 내려온 안경을 다시 고쳐 썼다.
“수업을 마치기 전, 마지막 질문 하나를 내겠다. 대답이 가능한 시간은 5초뿐이다.”
그때, 루빈은 조교가 실실 웃는 걸 봤다. 이제 곧 재밌는 광경이 펼쳐지리라는 걸 알고 있는 모습이었다.
“여기 왼쪽 줄 앞자리에 앉은 학생부터 대답하면 된다. 만약 첫 번째 학생이 대답하지 못하면, 다음 차례로 넘어간다. 그렇게 여기 있는 생도들 중 아무도 대답하지 못한다면, 생도들한테 지급한 4급 마적석에서 예정된 마법이 발동할 거다.”
어떤 마법이 내장되어 있는지는 이미 밝혀졌다. 밀가루를 뒤집어쓴 오스카가 본보기였던 거다.
당연하게도 술렁거리는 생도들.
문제의 내용이 뭔지는 몰라도, 어쩐지 이건 정답을 기대하는 문제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게 바로 학기 초에만 볼 수 있는 구경거리지!’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오려는 표정을 다스리는 조교. 엄격한 에겔러 교수를 따라다니며 갖은 심부름에 시달리는 그였지만, 오늘처럼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도 있었다.
몇 년째 ‘설계마법학 입문’의 첫 수업은 똑같은 광경으로 끝이 났다. 바로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밀가루였다.
왜냐.
이제껏 이 문제의 답을 맞힌 학생은 없었으니까.
‘물론 똑똑하고 재능있는 학생들이야 있지. 하지만 에겔러 교수님은 그런 학생들쯤은 미리 빼놓을 정도로 교묘하신 분이거든.’
원래는 생도들에게도 믿을 구석은 있었다. 자기가 정답을 맞히지 못해도 다른 똑똑한 생도가 맞힐 수도 있다는 생각.
예를 들면 위더스푼가의 막내딸이라거나, 델린 가문의 달리아라거나.
“참고로, 이미 내 질문에 정답을 말했던 생도들에겐 대답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학생들의 희망이 꺾이는 순간이다. 그때, 달리아가 손을 들어 보였다.
“달리아 델린, 질문 있습니다. 그럼 저는 밀가루를 피할 수 있는 건가요?”
“아니다.”
단호한 한마디. 빠져나갈 구멍은 없다. 원래 첫 수업에는 밀가루를 맞는 수밖에 없다.
조교는 수업이 끝나고 밀가루가 풀풀 날리는 교실과 잔뜩 인상을 찌푸린 생도들을 상상하며 다시 씨익 웃었다.
“그리고 이미 밀가루를 뒤집어쓴 오스카 투니오에게도 대답 기회가 없다.”
“저는 한 번 더 뒤집어써도 괜찮은데… 참 아쉽네.”
“아니, 아쉬워할 필요 없다. 아무도 정답을 말하지 못하면 그 마적석이 또 발동할 거니까.”
“하… 두 번이나요?”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에 오스카가 머리를 쥐어뜯을 듯 움켜쥐었다.
그때, 에겔러 교수는 조교를 바라보며 다시 고갯짓을 했다. 그러자 조교가 학생들 사이를 또 지나다니며 크게 소리쳤다.
“지금부터 방음막이 가동될 겁니다. 오직 교수님의 말만 들을 수 있죠. 다른 학생이 어떤 대답을 하는지는 못 들을 겁니다. 알아서 잘 대답을 궁리해 보세요.”
조교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오기 무섭게, 교실 안에 뭔가가 쿵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위이이잉.
미세한 진동이 동굴 같은 교실 안에 울렸다.
“질문을 내겠다.”
에겔러 교수는 왼쪽 줄 맨 앞자리의 생도를 바라봤다.
“수업이 시작된 뒤로 줄곧 가동되고 있는 설계 마법이 하나 있었는데… 다들 그걸 알아차렸나? 알고 있다면 한 명씩 대답해 보도록.”
설계 마법이 있었다고? 생도들이 놀라는 눈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옆 사람한테 말을 걸었지만 방음막 때문에 소용없었다.
피이이이잉.
입을 열 때마다 그런 소리가 울릴 뿐.
“…틀렸다. 다음.”
어느새 첫 번째 생도의 순서가 지나갔다. 생도의 대답은 들리지 않고, 오직 교수의 목소리만 모든 생도들에게 전달됐다.
“틀렸다.”
“틀렸다.”
“틀렸다.”
“달리아 델린, 너한테 대답 기회는 없다. 통과. 다음.”
“클로이 위더스푼이군. 통과. …다음.”
“틀렸다.”
정답을 맞힐 것 같은 생도에겐 기회가 주어지지 않고, 틀렸다는 대답만 계속 이어지자 분위기는 빠르게 절망적으로 변해갔다.
이윽고 교수의 눈길이 루빈한테서 멈췄다.
‘루든 포이넨. 베니테즈 교수가 선점한 학생이군.’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걸 말해봐라, 루든 생도.”
루빈의 두 입술이 벌어졌다. 다른 생도들은 루빈의 대답을 듣지 못했고, 오직 에겔러 교수의 귓가에만 그 목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잠시 후.
교수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