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14)
암살검가 로이넨-114화(114/258)
제114화. 칙명부의 끄나풀 (3)
이른 아침부터 집을 나선 가이젠 교수는 곧장 학교로 출근했다. D반의 조회를 마치고, 첫 수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교수 휴게실로 향했다.
“좋은 아침이오, 가이젠 교수.”
“아, 에겔러 교수님. 날씨가 화창하군요.”
카논관 고층부에 위치한 교수 휴게실에는 이미 담배를 피워 물고 있는 에겔러가 있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없이 창밖에 펼쳐진 카포틴 호수를 바라보며 담배만 피웠다. 그러다 에겔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늘 오전에 수업이 있는가 보군.”
“네, C반 수업이 있습니다.”
“C반이라… 어제 나도 수업이 있었지.”
“또 생도들이 밀가루를 뒤집어썼겠군요.”
난해한 문제를 내고, 그 벌칙으로 모든 생도들한테 밀가루를 뒤집어씌우는 것. 에겔러의 첫 수업 방식은 교수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다.
다른 교수들 입장에서도 나름 이점이 있기도 했다. 에겔러가 생도들을 긴장시키는 데 일가견이 있었던 덕분에, 다른 교수들도 군기가 바짝 든 생도들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러지 못했소.”
에겔러 교수가 아쉬운 표정과 함께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지 못했다는 말씀은……?”
“생도 하나가 정답을 맞혔거든.”
“아… 실패하실 때도 있으시군요.”
하긴 이번 신입생도들 중에는 기대주가 많았으니 호락호락하지만은 않겠지.
가이젠 교수는 C반의 생도들 중 누가 정답을 맞혔을지 가늠해 봤다. 그러자 곧바로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었다.
어제 학생명단에서 제외시켰던, 절대 페르 로렌치니일 수 없는 학생들. 클로이 위더스푼이나 달리아 델린.
그리고…….
“루든 포이넨 생도와 오스카 투니오 생도는 어땠습니까?”
“나도 마침 그 이름을 말하려 했소.”
“이 둘은 베니테즈 교수가 선점한 학생들인데, 그들 중에 정답자가 있었던 건가요?”
에겔러 교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중후한 노교수는 살짝 내려온 금테 안경을 올려 썼다. 그런 다음, 줄 달린 회중시계를 딸깍 열어 시각을 확인했다.
“루든 포이넨이 정답을 맞혔소. 오스카 투니오는… 상당히 산만하고 소란스러운 놈이었고.”
“역시, 베니테즈 교수가 아무나 선점한 건 아닌가 보군요.”
“그런 셈이긴 한데.”
에겔러 교수가 잠시 뜸을 들였다. 그 순간, 노교수의 머릿속에는 어제 첫 수업에서 보았던 루든 포이넨의 면모가 다시금 그려졌다.
루든 생도가 정답을 도출했던 방식은 마법사의 방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인의 관찰력과 직관에 가까웠다.
“마법학 교수로 수십 년 있었지만, 좀 독특한 생도로 보이더군.”
“그리 말씀하시니 점점 궁금해지는군요.”
“모르지, 어제 하루만 반짝였던 걸지도. 그런 생도들이야 늘 있는 거 아니겠소? 뭔가 대단한 줄 알았더니, 그저 평범한 재능들.”
그때였다.
똑, 똑, 똑.
누군가 휴게실 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렸다. 교수 휴게실은 교수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노크를 한다는 건 교수가 아니라는 것, 생도거나 조교라는 뜻이었다.
“저… 치유마법학 조교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퀴닝? 들어오게.”
에겔러의 허락에 따라 휴게실 문이 살짝 열리며 긴장한 얼굴이 드러났다.
커다란 안경을 쓴 여자 조교였다. 얼굴은 작고 안경은 커서, 안경이 얼굴의 절반 가까이 덮고 있었다.
머리 뒤쪽으로 갈색 머리칼을 동그랗게 모은 뒤 풀어지지 않도록 수술용 메스를 푹 찔러놓은 머리 스타일. 그 모습은 퀴닝 조교의 상징과도 같았다.
“퀴닝. 방학은 잘 보냈나?”
“앗, 안녕하십니까, 에겔러 교수님!”
“카논관에서 새 학기 인사를 나누게 될 줄은 몰랐는데? 자네 교수가 무슨 심부름이라도 보냈나?”
치유마법학은 2학년 교육과정에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1학년 전용 마탑에서 퀴닝 조교를 만나는 건 아주 드문 일이었다.
퀴닝 조교의 난감한 눈빛이 가이젠 교수 쪽으로 향했다.
“가이젠 교수님께서 오늘 수업에 참석해야 한다고 하셔서…….”
“그래? 사실인가, 가이젠 교수?”
“맞습니다. 제가 퀴닝 조교의 참석을 요청했습니다.”
“오늘이 첫 수업이라 하지 않았나?”
가이젠은 윤기 나는 회색빛 머리를 다듬으며 미소를 지었다.
“에겔러 교수님을 본받으려는 거지요. 신입생도들에게 마법약이란 무엇인지 체험해 보게 하려 합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래 봤자 경미한 부상일 뿐입니다.”
“뭐, 그거야 그렇겠지.”
“퀴닝 조교? 준비됐나?”
“네! 가, 가실까요?”
가이젠 교수는 에겔러를 향해 고개를 까딱이며 인사했고, 퀴닝 조교도 서둘러 허리를 굽히며 예를 표했다.
그렇게 두 사람이 휴게실을 나서려고 하는데.
“이거, 가이젠 교수가 신호탄을 쏜 셈이오. 알지?”
가이젠과 퀴닝이 돌아서니, 에겔러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부터 퀴닝 조교가 바빠지겠군. 가이젠 교수가 이렇게 적극적이라면, 나도 신입생도들 수업에 욕심 좀 내볼까 하는데.”
“하, 하, 하…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요.”
퀴닝 조교는 어색하게 웃을 뿐이다. 에겔러 교수가 수업의 강도를 높인다면, 퀴닝으로선 배석해야 하는 수업이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사실, 위험하기로는 설계마법학이나 마법약제조학이나 크게 차이나지 않았다.
아니, 애초부터 마법학 자체가 위험을 동반한 분야일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퀴닝이 전공으로 있는 치유마법학조차도 휘식을 잘못 구현하면 여느 폭발 마법 못지않게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가이젠과 에겔러만으로 끝나지 않을 게 빤했다. 에겔러 말처럼 이건 신호탄이 쏘아진 것과 같았다.
특히 공격마법학의 솔라나 교수라면, 그 누구보다 이 소식을 반기겠지.
“이봐, 괜찮나?”
“아, 네넷!”
가이젠 교수의 한마디에, 아득해지려는 정신을 다잡은 퀴닝 조교. 그녀는 흐르는 땀을 닦았다.
“이제 곧 수업 시작이니까, 서둘러.”
* * *
“왜 가이젠 교수는 조교가 두 명씩이나 있는 거지?”
수업 시간에 맞춰 등장한 가이젠을 보고, 오스카가 조그맣게 말했다.
다른 생도들 역시 똑같은 궁금증을 품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마법학 수업에는 한 명의 조교가 교수를 돕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비마법학 수업에는 조교가 배석되지 않았다.
“어깨 위에 안 보여? 저 붉은색 견장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날카로운 한마디가 오스카를 향해 날아들었다. 뒤쪽이었다.
누가 자신을 쏘아붙이나 싶어서 고개를 돌렸던 오스카는, 냉랭한 표정의 달리아를 발견하고는 침을 꿀꺽 삼켰다.
“모르겠는데.”
달리아의 말대로, 두 조교 중 여자의 어깨엔 견장 하나가 채워져 있었다.
붉은색 바탕 위에 연푸른색으로 십자(十字)가 그려진 견장.
달리아는 그럴 줄 알았다는 의미로 피식 웃었다.
“그래, 당연히 몰랐겠지. 저건 치유 마법사라는 뜻이야.”
“아니, 수업을 하는데 왜 치유 마법사를 데려온 거지?”
“치유 마법이 필요하니까 데려왔겠지.”
“그러니까 내 말은, ‘마법약제조의 첫걸음’에서?”
“…….”
달리아는 오스카를 째려볼 뿐, 더 쏘아붙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다. 사실 이 수업에 치유 마법사가 있는 건 그녀조차 의외였으니까.
‘대체 무슨 수작인 거지?’
루빈은 가이젠을 노려보았다. 칙명부의 끄나풀. 남들이 보기에 그 눈길은 여느 호기심 많은 생도의 눈빛과 다르지 않았지만, 사실 그 안에는 적개심과 경계심이 서려 있었다.
가이젠.
저 남자 뒤에는 칙명부가 있다.
지금으로선 가이젠 본인조차 명령을 하달하는 조직이 칙명부라는 걸 모르는 것 같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걸림돌이 된다면 치워 버려야 할 대상이라는 것. 루빈한테 중요한 사실은 그것뿐이었다.
‘한동안 페르 로렌치니의 정체를 알아내려 하겠지. 교수라는 지위와 수업들을 이용할 거야.’
일단은 지켜봐야 했다. 지금 가이젠은 페르가 누구인지 모른다. 페르에 대한 정보에 앞선 쪽은 루빈이었다.
‘가이젠 교수를 이용해야겠어.’
한편, 수업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오고 나서도 인사조차 하지 않는 가이젠 교수. 그는 수업을 개시하지도 않은 채로, 10분이 넘어가도록 좌석 배치도와 생도들의 얼굴을 하나씩 대조하고 있었다.
그사이, 가이젠을 보조하는 톰슨 조교만 바쁘게 움직였다. 각종 수업 재료를 교실로 옮기며 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마법약을 만드는 각종 재료들이었다. 오우거의 털, 카포닐리아의 꽃대, 마나석 알갱이들 등등. 비커에 담긴 각종 물약들도 있었다.
그렇게 어수선한 분위기만 계속 이어지는가 싶던 그때.
“교수님! 질문 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가 교실을 가로질렀다.
“…….”
가이젠은 고개를 들어 목소리의 주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표정이 구겨져 있었다. 잠자코 기다리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책망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교수의 표정이 빠르게 부드러워졌다.
“말해보도록…. 클로이 생도.”
“감사합니다. 왜 오늘 수업에 치유 마법사가 배석한 건지 알고 싶습니다.”
가이젠 교수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다만 루빈 말고는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다.
“그래, 제대로 알아보았다. 저기 서 있는 사람은 치유마법학 전공 조교다.”
가이젠은 퀴닝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대신 소개해 주자면, 이름은 퀴닝. 앞으로 생도들은 퀴닝 조교라 부르면 된다.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여러분의 선배기도 하지.”
“안녕하세요, 퀴닝 조교님! 저는 클로이 위더스푼이라고 합니다.”
쾌활하게 인사를 해오는 저 생도가 도시를 떠들썩하게 했던 제국귀족의 영애라고?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은 퀴닝 조교가 우물쭈물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때, 가이젠 교수의 대답이 이어졌다.
“오늘 퀴닝 조교를 배석한 이유는, 오늘 수업에 있을 체험 때문이다.”
‘체험’이라는 말은 생도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대체 어떤 체험이기에 치유 마법까지 필요한 건지!
“앞으로 1년 동안 생도들 손끝에서는 다양한 마법약이 만들어질 것이다. 다만 그 마법약이 얼마나 대단하고 또 위험한지를 깨달아야만 하지.”
가이젠은 교단에서 내려왔다. 윤기 나는 머리를 버릇처럼 쓰윽 만지며, 생도들을 쭉 훑어봤다.
“하지만 치유마법학 교수님이 아닌 조교를 배석한 걸 보면 알겠지만, 부상을 입더라도 아주 경미할 테니까 겁먹을 필요는 없다. 흐음, 말이 나온 김에 이제 슬슬 수업을 시작해 보도록 하지.”
저벅저벅.
“…….”
“아홉 명.”
짤막한 한마디가 교실 안에 울렸다. 생도들은 곧 이어질 말을 기다렸고, 이윽고 교실 뒤편의 널찍한 공간을 가리키는 가이젠이었다.
“일단 아홉 명씩 조를 만들도록. 조가 만들어지면, 각 조별로 뒤쪽에 모여 있으면 된다.”
드르륵. 드르륵.
교수의 단호한 지시가 떨어지자, 생도들이 하나둘씩 의자를 밀어내며 일어섰다. 각자 조원이 되고 싶은 친구들을 찾아 나서려는 것이다.
“아, 그러기에 앞서.”
영입전이 벌어지면서 막 시끄러워지려던 찰나, 가이젠이 소란을 잠시 억눌렀다.
“내 수업을 도와줄 C반의 보조학생을 뽑으려고 하는데. 어떤 생도가 지원해 보겠나?”
생도들은 잠시 서로의 눈치를 살필 뿐, 곧바로 지원하는 사람은 없었다.
보조학생의 장점은 해당 교수를 자주 만날 수 있고, 해당 학문을 남들보다 더 깊게 파고들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단점 또한 명백하다.
어떤 수업의 보조학생을 하느냐에 따라, 괜히 시간만 허비하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심지어 마법약제조학은 다른 수업에 비해 비인기 과목이기도 했으니까.
“없는 건가?”
가이젠은 눈살을 찌푸렸다. 예상했던 바였다.
“그럼, 내가 지목하는 수도 있는데, 그래야 하나?”
사실은 이제껏 그래 왔다. 보조학생으로 선택된 학생은 벌칙을 받는 것처럼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기도 했다. 이번에도 당연히 그러려니 했다.
“제가 하겠습니다.”
생도들의 눈길이 한쪽으로 향했다. 가이젠 교수도 그쪽을 바라봤다.
낯선 학생은 아니었다. 아니, 얼굴을 마주하기는 처음이긴 했지만 그 이름만은 여러 차례 전해 들었던 생도.
가이젠의 머릿속으로 에겔러 교수의 긍정적인 단평이 떠올랐다.
‘독특한 생도’. 그렇게 말했지. 의뭉스럽기 짝이 없던데. 사실 ‘마법약제조학’에 욕심이 있었던 건가?
“야, 루든. 너 진심이냐? 너 잘못하면 괜히…….”
루빈은 룸메이트의 걱정 어린 말을 잘라내고, 가이젠 교수와 눈을 마주쳤다.
“잘 부탁드립니다, 가이젠 교수님.”
“보조학생이 되면 내 연구실도 들락날락해야 하고, 꽤 귀찮아질 거다. 마음 단단히 먹은 건가?”
“네, 제가 원하던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