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17)
암살검가 로이넨-117화(117/258)
제117화. 마법약제조학 수업 (2)
“이제 열두 명인가.”
가이젠 교수의 나직한 목소리가 교실 안에 울렸다.
적어도 초반까지는 가이젠의 예상대로 흘러가는 듯했다. 생도들이 수두룩하게 떨어져 나갔으니까.
하지만 후반부의 양상은 달랐다. 5단계에 열두 명이 남아 있을 줄이야. 역대 최고의 인재들이 모여 있다는 평가가 다시금 떠올랐다.
“이번에는 질식이다. 버티면 더 고통스러우니까 마법이 발현된 생도는 얼른 손을 들도록.”
질식? 남은 생도들의 얼굴에 또다시 긴장감이 배어났다. 반면, 먼저 끝난 생도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들었어? 질식이래! 이제는 쟤네가 불쌍해 보일 지경이네. 나만 그런 거 아니지?”
“마법약에 내성이 강한 건 부럽기는 한데… 질식은 좀.”
“누가 끝까지 있을까? 저 모래시계만 보면 ‘질식’ 말고도 두 개나 더 있다는 거잖아.”
“너네 바보냐? 무조건 클로이야, 클로이.”
“하! 이런 내기는 오스카가 판을 벌여야 하는데, 쟤는 왜 저기 안에 있는 거야? 알고 봤더니 엄청난 놈이었나?”
가이젠 교수는 눈살을 찌푸리며 회색 머리를 매만졌다. 시끄럽긴. 하여간 베니테즈 교수의 학급은 매년 이런 식이라니까.
가이젠은 눈을 돌려, 긴장한 눈으로 모래시계를 쳐다보는 열두 명의 생도들을 살폈다.
‘오스카 투니오라…….’
조금 전에 생도들이 거론한 이름이 귓가에 맴돌았다. 그러고 보니, 오스카 역시 베니테즈가 선점한 생도가 아니었나.
스스스스.
모래시계의 다섯 번째 모래층이 아래쪽으로 모두 떨어지고.
“크흐읍!”
갑자기 펄쩍펄쩍 뛰면서 손을 내젓는 학생들이 생겨났다. 그 숫자는 하나가 아니다.
무려 여덟 명이었다. 동시다발적으로 여덟 명의 생도가 자신의 목을 부여잡으면서 손을 휘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가이젠 교수는 침착했다.
하지만 퀴닝이 보기에 이는 위급 상황. 저 중 마법약에 깊이 취해 실제로 숨을 못 쉬는 생도가 있을 수도 있었다.
“죽지 않는다. 기다려라, 퀴닝 조교.”
“하지만……!”
퀴닝 조교는 헐레벌떡 뛰어가며 치유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개별적인 치유 마법에서 한 단계 나아갔다. 한 번에 여러 대상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 바로 범위 마법을 펼친 것이다.
휘이이이…….
퀴닝의 앞쪽 머리칼이 흩날렸다. 그와 동시에, 그녀를 중심으로 넓은 면적의 치유 범위가 설정됐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조그마한 빛이 아래쪽에서부터 위로 치솟았다.
“허억.”
“헉, 헉.”
곧바로 나타나는 치유 마법의 효과. 울먹이면서까지 목을 부여잡던 생도들이 일제히 잠잠해졌다.
“휴…….”
여덟 명의 생도 전부 무사한 걸 확인한 퀴닝은, 땀을 닦아냈다. 그런 그녀에게 공격적인 호명이 떨어졌다.
“퀴닝!”
“네, 교수님!”
“내가 자네한테 범위 마법을 허락했던가?”
“아뇨…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근데 왜 시키지도 않은 걸 하지?”
“혹시라도 정말로 질식한 생도가 있을까 봐…….”
“지금 생도들은 마법약 체험을 하고 있는 거다. 앞으로 만들게 되는 마법약이 무엇인지 체험하는 거라고! 오늘 수업이 얼마나 중요한 건지 모르는 건가? 멍청하긴!”
퀴닝 조교는 고개가 가슴팍에 닿을 정도로 몸을 움츠렸다. 연거푸 죄송하다는 대답만 반복하면서.
“나약하긴. 그러니 치유마법학 따위로 진로를 정한 거겠지.”
고개를 내저은 가이젠이 다시 생도들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교실 안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어붙어 있었다.
“방금 질식을 느꼈던 여덟 명. 자리로 돌아가라.”
여덟 생도가 일어났다. 달리아 조에서는 세 명이 나왔고, 그 외에는 다섯 명이 나왔다.
‘달리아 조만 네 명 남은 건가. 클로이, 달리아, 루든. 그리고 오스카…….’
가이젠의 머릿속으로 오스카 투니오라는 이름이 막 각인되려고 하는데.
“……?”
갑자기 오스카가 팔을 번쩍 들어 보였다.
“크흡! 크흐읍!”
“오스카, 너 괜찮아?”
옆에 앉은 클로이가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클로이는 본능적으로 손을 펼치고, 치유 마법을 준비했다.
“가, 갑자기 수, 숨이 막혀…. 왜 뒤늦게 나, 나타나고 지랄…….”
“클로이 생도, 가만히 있도록. 이 수업에서 치유 마법 시전이 허락된 건 퀴닝 조교뿐이니.”
“…알겠습니다, 교수님.”
“퀴닝 조교!”
“네!”
퀴닝 조교가 서둘러 다가왔다.
“오스카 생도를 치유해 줘. 네가 범위 마법을 쓰는 바람에 마법약 효과가 지연된 거 아냐!”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오스카와 마주하는 퀴닝 조교. 그녀는 침을 꿀꺽 삼키고, 마법약을 해소하는 치유 마법을 펼쳤다. 이번에는 범위 마법이 아닌 개별 마법이었다.
“잠깐만 기다려요, 오스카 생도.”
“크흡, 넵, 조교님. 저는 괘, 괜찮아요…. 가이젠 교수님은 아, 아주 신사 중에 신사군요.”
목을 부여잡으면서도, 오스카는 이렇게 속삭였다. 주눅이 들었던 퀴닝 조교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피이잉.
퀴닝의 치유 마법이 펼쳐지고, 오스카의 벌게졌던 얼굴색도 원래대로 돌아왔다.
“푸하! 살았다. 와, 진짜 죽는 줄 알았어요. 감사합니다, 조교님.”
“괜찮아요?”
“네, 괜찮은데요? 무슨 문제라도?”
“…아, 아니에요. 오스카 생도. 원래 자리로 가서 앉으면 될 거 같아요.”
퀴닝 조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오스카를 치유하면서 이상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지금 가이젠 교수에게 말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한마디 말이라도 붙였다가는 열 마디 욕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뭐지? 마법약이 발현되지 않은 것 같았는데?’
마법약 해소에 맞춰져 있었던 그녀의 치유 마법. 정상적이라면, 오스카의 몸속에서 중화되는 느낌이 들어야 했다.
‘혹시… 오스카 생도가 연기를 한 걸까?’
그러나 곧바로 고개를 내저었다. 연기라기에는 정말로 숨이 틀어 막힌 사람 같았다. 그 정도의 연기가 가능하다면, 여기가 아닌 예술학교가 더 적합하겠지.
“오스카 생도, 얼쩡대지 말고 얼른 자리로 돌아가라.”
“…네, 교수님.”
오스카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서둘러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는 의자에 앉자마자 으스대는 걸 잊지 않았다.
“친구들, 봤지? 가장 마지막에 발현된 거 봤지? 그러니까 내가 4등인 거야. 4등.”
‘멍청한 놈.’
가이젠은 모멸 가득한 눈길을 오스카로부터 거뒀다. 머릿속에서 오스카가 요주의 인물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말끔히 지워졌다.
베니테즈가 무슨 이유로 달리아가 아닌 오스카를 선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저 수다스럽고 뺀질대는 마법생도일 뿐이다.
‘그보다… 쟤는 뭐지?’
흥미로운 대상은 따로 있었다. 루든 포이넨. 클로이와 달리아 외에도 아직 자리를 지키는 마법생도.
‘다음 단계는 선천적 마나가 굳건할수록 더 치명적이지. 이것마저 버텨낸다면…….’
가이젠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미 그는 6단계에서 클로이와 달리아의 탈락을 예측하고 있었다. 6단계는 두 사람의 선천적인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됐다.
‘만약 그렇다면, 생도의 수준이 아니라는 거지. 위더스푼의 딸조차 그 정도는 아닐 테니까.’
* * *
“오스카 생도, 얼쩡대지 말고 얼른 자리로 돌아가라.”
“…네, 교수님.”
루빈은 걸어 나가는 오스카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하마터면 곤란해질 뻔했네.’
가이젠 마법약의 5단계가 ‘질식’인 것은 다행이었다. 암연을 이용해 무방비 상태에 있는 대상의 숨통을 움켜쥐는 것은 루빈에겐 간단한 일이었으니까.
다만 퀴닝 조교 때문에 약간의 시간적 오차가 있었다. 범위 마법은 예상 밖이었다. 그로 인해 숨통을 틀어쥘 순간을 늦출 수밖에 없었다.
그림자 익사(溺死).
루빈은 암술을 펼쳤다. 암연이 오스카의 내부로 스며들어 목을 감쌌다. 망설이지 않고 숨결을 틀어쥐었던 것이다.
마법약의 효과가 숨이 막히는 느낌에 불과하다면, ‘그림자 익사’는 정말로 숨결을 막아버리는 암술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가이젠은 루빈의 암술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퀴닝의 치유 마법 때문에 마법약 효과가 지연됐다고만 생각했을 뿐.
오스카의 몸을 살핀 퀴닝이 의아해하긴 했지만 안심해도 좋았다. 이 세상에 암살검가의 존재가 밝혀지지 않은 이상, 비슷한 개념조차 떠올리지 못할 것이다.
“루든! 네가 이렇게 성장한 줄 몰랐어! 지금까지 버틴 오스카의 마나도 대단하지만, 그걸 넘어선 네가 더 대단한 거야!”
맞은편에 앉아 있던 클로이가 해맑게 말했다.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마법약 저항력. 이 능력의 견고함은 선천적인 마나의 풍부함에서 나온다. 클로이나 달리아가 이 경우였다.
한편으로는, 지속적으로 수련하면서 체계적으로 방책을 쌓듯 성장시킬 수도 있었다. 가이젠 교수가 여기에 속할 터.
“언제 그렇게 저항력을 수련한 거야?”
루빈은 클로이의 속삭임에 또다시 어깨를 으쓱였다. 루빈의 마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클로이였기에 그렇게 판단한 것이다.
루빈이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이유가 마법약에 대한 수련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때, 달리아가 팔짱을 끼며 날카롭게 말했다.
“간혹 이런 별종이 있대. 비정상적으로 마법약 내성이 강한 체질.”
“달리아. 지금 루든의 체질이 특이하다는 거야? 수련 때문이 아니라?”
“내가 보기에는 그래.”
체질이라. 어찌 보면 달리아의 말이 아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체질’이라는 단어에 온전히 담을 수도 없었다.
모든 게 암연의 힘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암살검가 본연의 힘. 순수하면 순수할수록, 암연은 독을 온순한 짐승 다루듯이 다룰 수 있다. 독이 그러한데, 마법약은 더욱 간단할 수밖에.
암연과 마나는 서로 배척한다. 하나의 환에 암연과 마나를 함께 담을 수 없는 것이 그 이유다.
같은 맥락으로, 암연을 지닌 암살자는 마법약을 마셔도 약효가 덜하다. 마법약에 담긴 마나를 몸 밖으로 튕겨내는 것이다.
‘물론 정신없는 전투 상황에서는 좀 다를 수도 있겠지만.’
가만히 앉아 있는 지금처럼 암연을 다루기 좋은 환경에서는 더더욱 간단했다.
“슬슬 마음의 준비를 해라.”
가이젠 교수의 한마디가 울렸다. 어느덧 여섯 번째 단계.
“이번에는 쉽지 않을 거다.”
“…….”
“실명(失明). 마법약의 이번 효과다. 역시 경미한 수준이니, 눈앞이 어두워져도 당황하지 마라. 가만히 손을 들어.”
스스스스.
모래가 내려온다.
“자존심 때문에라도 실명되지 않은 척하지 마라. 그러다 괜히 치명적인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으니.”
달리아라면 그럴 만도 했지만,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 그녀도 모르지는 않겠지.
루빈은 가만히 두 명의 마법생도를 지켜봤다. 마치 입을 먼저 열지 않는 놀이라도 하는 것처럼, 세 사람 모두 각자 눈앞에 있는 두 사람 얼굴만 번갈아 쳐다보았다.
스으윽.
모래가 모두 내려왔다. 서서히 발현되고 있을 마법약.
루빈 또한 혹시 모를 약효에 대비했다. 그의 몸속엔 이미 두 개의 암연의 환이 뿌리내렸다. 웬만큼 강력한 마법약이 아니고서야, 그를 취하게 만들 수 없다. 하지만 이번엔 어떨지, 섣불리 확신할 수 없었다.
반면, 다른 두 사람은 그러지 않은 것 같았다. 평온이 깨져가는 게 확연히 보인다. 루빈이 방사한 암연 위에서, 그들의 흔들림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다.
마치 댐이 무너지듯이, 클로이와 달리아의 눈앞으로 어둠이 쏟아지는 중이다.
“……!”
“크흡.”
클로이는 입을 다물었고, 달리아는 자신도 모르게 침음을 흘렸다.
그러나 둘의 상태는 똑같았다. 시야가 칠흑에 매몰된 상태.
“루든 생도.”
“네, 교수님.”
루빈은 고개를 돌리지 않고 가이젠에게 대답했다.
클로이의 눈동자, 달리아의 눈동자. 두 사람의 눈동자에서 상(狀)이 사라졌다. 죽은 자의 눈처럼 말이다.
저벅저벅.
상황을 판단한 가이젠 교수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 뒤로 퀴닝 조교가 바짝 따라왔다.
가이젠이 고갯짓을 했다. 클로이와 달리아의 일시적 실명을 치유하라는 뜻이었다.
퀴닝이 두 사람 머리 위쪽에 간격을 두고 양손을 펼쳤을 때.
“저, 저, 저는 괜찮습니다.”
이번에도 자존심에 심각한 타격을 입은 달리아가 괜히 고집을 부렸다. 달리아는 초점을 맞추지도 못하면서 계속 고개만 내저었다.
그런 달리아를 향해, 클로이의 담담한 말이 이어졌다.
“달리아, 괜찮아.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실명됐어. 와, 역시 교수님이구나. 마법약 수준이 엄청나.”
“뭐? 너도……?”
“응. 나도.”
“그러면 루든은?”
“어! 맞다. 루든은 어떻게 됐지? 루든! 내 말 들려? 지금 상태 어때?”
거기에 대답해 줄 틈은 없었다.
가이젠이 루빈 바로 앞에 다가와 다리를 굽히더니 눈을 마주했다. 교수의 눈빛에는 왠지 모를 서늘함이 서렸지만, 그건 루빈 역시 마찬가지였다.
둘은 서로를 바라봤다.
“루든 생도.”
교수는 다시 한번 루빈을 불렀다.
“내가 보이나? 이게 몇 개지, 내 손가락 말이야.”
적어도 이 순간. 가이젠의 머릿속에는 페르 로렌치니라는 의문의 생도가 지워져 있었다. 지금은 그 생도를 찾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교수는 초조했다. 담담하게 묻고 있었지만 왠지 모를 두려움이 앞섰다. 왜냐하면 7단계까지 가는 생도가 있으리라고는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으니까.
마침내 루빈의 대답이 이어졌다. 생도들이 숨죽인 교실 안으로 울리는 단 하나의 목소리.
“교수님은 지금 손가락을 펼치고 있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