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19)
암살검가 로이넨-119화(119/258)
제119화. 검은 잎 (1)
가이젠 교수가 얼굴을 잔뜩 구기며 교실을 나간 뒤,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생도들은 식당이 있는 아르페지오관으로 이동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들 신기한 눈으로 루빈을 쳐다봤다.
“쟤가 걔야? 조금 전에 가이젠을 똥 씹은 표정으로 만들었다는?”
“나 좀 전에 복도에서 가이젠 교수님 봤잖아. 몸을 아주 부르르 떠는 게 엄청 화났던데. 그게 쟤 때문이야? 대체 뭔 일이 있었던 거야?”
“마법약 저항력이 교수 예상을 뛰어넘었대.”
“…아! 그러고 보니까, 쟤가 어제 걘가 보다! C반 애들 밀가루 안 맞게 해준 애!”
가장 먼저 루빈의 소문을 옮긴 건 B반 생도들이었다. 모두들 에겔러 교수의 첫 수업을 막 끝냈다는 표시로 머리에 밀가루를 뒤집어쓴 상태였다. 그래선지 루빈을 힐끔힐끔 쳐다보는 눈길엔 부러움마저 묻어났다.
“와… 루든, 너 벌써 유명해졌잖아? 아, 원래부터 유명했었지. 클로이랑 춤을 춘 놈으로. 이러다 식당 도착하기 전에 D반까지 다 소문나겠네.”
오스카의 장난스러운 말에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그리고 잠시 후.
“와! 여기가 그 유명한 ‘공중통로’!”
오스카의 감탄이었다. C반 생도들은 ‘공중통로’에 들어서고 있었다. 마탑과 마탑을 잇는 다리로, 투명다리라고도 불리는 카포티니의 명물이었다.
그 이름처럼, 공중통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순 안 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스응, 스응, 스응.
생도들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에 작은 진동이 울린다.
발이 밑으로 빠지지 않는 것은 발이 일정 높이 아래로 내려갈 때, 저절로 공기가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아래에서 위쪽으로 힘이 작용하는 거지.’
루빈으로서도 인상적이었다. 이건 결계 마법의 역이용이었다. 일부 공간을 결계로 구획해 두고, 발이 닿을 때마다 결계를 작동시키는 시스템.
마법도 마법이지만, 발상이 참신했다.
‘작동 조건도 오직 삼휘 마법사로 두었다는 것도 교묘하군.’
삼휘 마법사가 아닌 자가 발을 내디디면, 결계는 작동하지 않는다. 즉, 발이 푹 꺼지며 지상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된다는 뜻이다.
“와 진짜 대박이다. 내가 공중을 날고 있다고!”
들뜬 오스카와는 달리, 클로이는 조금 걱정스러운 얼굴이었다. 물론 자기가 아닌 루빈이.
“루든, 괜찮아?”
클로이가 조심스레 물어왔다. 루빈은 고개를 돌려 자신의 옆에 떠 있는 클로이를 바라봤다.
클로이는 공중통로에 들어설 때마다, 염동마법으로 두꺼운 전공 서적을 띄웠다. 그녀는 삼휘의 마법사가 아니었기에 결계 마법이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는 대부분, 책 위에 다소곳이 앉아 책을 움직이는 식으로 이동했다. 마법의 양탄자처럼 말이다.
어쩔 땐 두 권의 전공 서적을 번갈아 이동시키며 징검돌을 놓듯이 밟고 건너가기도 했다.
‘마법 재능 하나만큼은 정말 대단하군.’
루빈은 그렇게 생각하며 태연하게 대답했다.
“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
“해코지하진 않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그녀가 걱정하는 건, 바로 직전에 있었던 가이젠 교수와의 일 때문이었다. 하지만 루빈은 진심이었다.
그때 오스카가 끼어들었다.
“설마 쪼잔하게 그러겠어? 근데 다른 애들은 좀 걱정하는 것 같더라.”
“뭘?”
“마법약이 듣지 않았잖아. 그것 때문에 불안해 하는 거 같더라고.”
루빈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틀렸다. 그건 가이젠 교수의 앙갚음이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나 때문에 위더스푼가 영애의 자존심이 상하진 않았을까 눈치 보는 거지.’
마지막 단계에서까지 마법약이 발현하지 않자 C반 생도들 대부분은 두 가지 반응을 동시에 보였다.
감탄과 초조.
모두들 앞선 단계에서 속절없이 발현됐던 터라, 이게 얼마나 대단한 능력인지 잘 알았다. 루빈의 저항력은 그야말로 괴물 같았으니까.
하지만 무조건 감탄할 수만도 없었다. 무려 5대 제국귀족 가문 중 하나인 위더스푼을 뛰어넘는 저항력이었으니 말이다.
그건 일반적인 생도들의 개념을 깨트리는 일이어서, 몇몇은 클로이가 날을 세우지는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무려 위더스푼가의 영애가 품는 경계심이라니! 만약 그렇게 되면, 루든 포이넨은 물론이고 모든 생도들이 살얼음판 속에서 수업을 들어야 할 판이었다.
물론 당사자인 클로이는 그런 주변의 걱정조차 인지하지 못할 만큼 순수했다. 루빈 또한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았다.
오스카는 뭐, 그렇다 해도 여전히 해맑을 것이다. 원래 성격이 저런 것인지, 아니면 연기하고 있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오늘 점심은 뭐가 나올까나? 안 궁금해, 달리아?”
“별로. 넌 꼭 먹기 위해 입학한 것 같네?”
“뭐라고! 말이 심하잖아. 그리고 말투도 너무 고압적이고! 그거, 완전 귀족적인 언사라고!”
“혹시, 지금 화낸 거니? 나한테?”
“물론… 농담이지.”
심지어 오스카는 달리아 델린과도 어색함 없이 지냈다. 달리아의 생각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보였다.
“하아. 근데 이놈의 학교는 왜 이렇게 큰 거야? 날 품기에 충분한 크기란 건 이미 알고 있다고!”
옹기종기 모여 걸어가던 생도들이 오스카의 과장된 반응에 키득거렸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아무리 공중통로를 이용하더라도, 바로 옆에 있는 마탑에 가는 데만도 한참을 걸어야 했다. 그만큼 구조물들의 규모는 거대했다.
오가는 시간을 더하면 두 시간이라는 점심시간 자체는 그리 넉넉하다고 할 수 없을 정도. 그래서인지 공중통로를 이용하는 건 신입생도들뿐이었다.
고학년들의 식당이 위치한 아르페지오관으로 이동하는 방법은 완전히 달랐다.
“와, 역시 고학년들은 다르네. 이 정도면 신입생도 차별하는 거 아니야?”
오스카가 공중통로 너머를 가리키며 불평했다. 고학년들의 남다른 이동 방식이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휘이이이잉!
골렘제작학을 이수한 고학년들은 펌프질이 반복되는 탄력 기반의 골렘을 타고서 지상을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다.
마법생명학을 이수한 생도들은 직접 길러낸 마법생물을 타고 다녔고, 열기구를 활용하여 공중으로 이동하는 생도도 있었다.
“헐. 저기 봐! 저거 호랑이 아니야?”
“뭐? 호랑이가 여기 왜 있어?”
“진짜라고! 저것 봐!”
지상에서는 쏜살같이 튀어 나가는 거대한 녹색의 맹수가 보였다. 물론 호랑이는 아니었다. 자세히 보니, 털이 아니라 녹색 잎으로 뒤덮인 표범이었다.
오스카의 감탄은 끊이지 않았다.
“와…. 저 사람 봐. 열쇠벌레를 커다랗게 만들었어. 저걸 타고 다니네.”
“저건 ‘확대’ 마법이라는 거야, 오스카.”
“확대? 흠, 왠지 탐나는 마법이구만.”
고개만 돌려도 신기한 장면이 넘쳐났다. 이곳이 마법학교라는 사실이 다시금 물씬 느껴졌다.
* * *
똑똑똑.
모든 수업이 끝난 저녁.
누군가, 불 꺼진 ‘포이넨 서점’의 문을 두드렸다. 펑퍼짐한 로브로 얼굴을 가린 사람. 그는 서점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쿠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쿠제 님. 한참 걸리시는군요.”
“…….”
문밖에 서 있는 사람을 알아보고 순간적으로 흠칫거렸던 쿠제. 그러나 곧 얼굴에 여유가 번졌다.
“재미없어요.”
“재미없다니요? 상당히 언짢은 언사군요.”
“아무리 연기해도 안 통합니다, 티나 님.”
“티나…라고요?”
안으로 들어온 손님이 뒤집어쓴 로브를 내렸다. 드러난 얼굴은 셀레스네였지만, 쿠제는 전혀 놀라지 않았다. 팔짱을 낀 채로 어깨만 으쓱일 뿐.
“그게 누구죠? 여하튼, 전혀 놀라질 않으시네요, 쿠제 님?”
“셀레스네 님으로 변신하시려면 더 연구가 필요하겠습니다. 그, 지금 보여주는 그런 냉담함은 뭐랄까, 가슴 저 밑에서부터 똘똘 뭉쳐서 표출되는, 그런 냉담함이 아니란 말입니다.”
“네? 당최 무슨 말씀이신지?”
“그러니 그만하시죠, 티나 님.”
셀레스네는 특유의 차가운 눈빛으로 쿠제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윽고 패배를 인정했다는 듯, 그녀의 눈동자가 민트색으로 물들었다.
“쳇, 셀레스네로 쿠제를 속여 먹는 건 불가능한 건가. 하긴, 짝사랑하는 사람이니 가짜가 어떻게 나대겠냐마는.”
“짜, 짝사랑이라니요? 무슨 소리십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안 건데?”
“말했잖아요. 음, 뭐랄까. 저를 향한 모멸감에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그리고…….”
“그리고?”
“사실 그 여자는 이미 두 시간 전에 왔다 갔거든요.”
그 말에 티나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티나는 재빨리 고양이로 변신하며 진열된 책들 위에 유유히 올라앉았다. 그렇게 꼬리로 풀썩 내리쳐 먼지를 한번 일으키고는.
“셀레스네가 왔었다니! 둘이 이미 그렇고 그런 사이였어?”
티나의 장난이 지겨운지, 쿠제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한숨을 내뱉었다.
“그게 아니라, 오늘 학교에서 도련님과 관련해서 무슨 일이 있었던가 봐요.”
“무슨 일? 설마, 꼬맹이가 쌈질이라도 했대?”
“그럴 리는 없겠죠. 잘은 몰라도, 도련님이 필요 이상으로 뭔가를 드러냈나 봐요.”
“뭘? 그 시녀가 뭐라고 했는데?”
“셀레스네 님이 저한테 자세히 말해줄 리는 없죠. ‘그 정도의 저항력을 갖춘 몸이었을 줄은 몰랐다. 자신이 뭔가를 놓친 건 아닌지 차근히 생각해 봐야겠다’라고만 했어요. 그리고 책을 몇 권 사 갔고요. 그게 끝.”
“흠? 왠지 협박처럼 들리는 말이네?”
“다행히 루빈 도련님께선 아직 걱정할 거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당장은 위더스푼 가문보다 다른 쪽에 신경 써야 한다고도요.”
루빈이 이미 판단을 내린 부분이라는 사실에 티나의 날 선 태도도 간단히 수긍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녀는 고양이의 몸으로 깜깜한 서점 내부를 자연스럽게 돌아다녔다. 그러다 거리낌 없이 어느 책장과 책장 사이에 발을 비집어 넣었다.
“쿠제, 여기 문 좀 열어줘.”
쿠제가 다가와 암연을 주입하자, 비밀 공간의 출입구가 움직였다.
책장 뒤편으로 쿠제의 개인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 암연을 기반으로 했기에 마법사들에게도 들키지 않는 공간이었다.
익숙한 곳으로 들어오자 더 편안해진 티나. 가벼운 몸놀림으로 내부를 돌아다녔다.
“그래서 지금 루빈은?”
“지하에 계십니다.”
“지하? 아, 저번에 수련장 하나 만든다고 했지.”
“네, 완성되어서 거길 이용하고 계세요.”
쿠제의 비밀 공간과 연결되어 있는 지하 공동(空洞). 오래전에 도시의 지하 통로가 폐쇄되면서 만들어진, 사방이 막히고 널찍한 공간이었다.
전 주인은 있는지조차 몰랐겠지만, 루빈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 이곳을 택했다. 하여간 도통 알 수 없는 도련님이다.
아무튼, 루빈과 로이넨서에게는 요긴한 공간이었다. 이목을 끌지 않으면서 암연과 오러를 연공하고, 함께 암술을 연구할 장소였으니.
“그나저나 넌 뭐 하고 있었어?”
티나가 쿠제의 작업대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곳에는 실험실을 연상케 하는 작업물들이 너저분하게 깔려 있었다.
뭔가를 만들고 있었던 것 같다. 유리병 속에 담긴 각종 재료들이 용해(溶解)되는 중이었다.
“뭐야? 너도 이제 마법사로 전향하려…….”
티나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장난스럽게 말하던 그녀의 눈동자가 빠르게 오그라들었다.
그녀의 눈에, 그녀에게 익숙한 무언가가 들어왔기 때문이다.
‘저건?’
본능. 암연을 통한 본능이 작동되었다. 훅 끼쳐오는 불쾌함과 함께, 티나는 흠칫 뒤로 물러섰다. 쿠제가 설명했다.
“얼마 전에 도련님께서 제게 지시하신 일이에요.”
“루빈이?”
“네. 거점창고에 있는 재료들을 이쪽으로 공수해 놓으라고 하셨죠.”
“이거 ‘검은 잎’이잖아, 맞지? 꼬맹이가 이런 불길한 걸 어디다 쓰려는 거지? 누굴 심문하려고?”
쿠제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로선 오히려 티나에게 묻고 싶던 차였다.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 루빈과 가장 가까이 있는 건 티나였으니까.
“대체 검은 잎을 왜……?”
암살검가에서 검은 잎을 모르는 암살자는 없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가신이 되기 위한 통과의례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검은 잎 단계’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누구도 암살검가의 가신이 될 수 없다는 가칙은, 암살검가 일원이라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갑자기 궁금해지네. 본가의 자제들도 검은 잎 단계를 거쳐야 하나?”
“모든 자제들은, 암살자로 독립할 수 있는 17세부터 20세 사이에 ‘검은 잎 단계’를 거치게 되어 있습니다.”
“역시 로이넨서답네. 우리 가신들이 겪는 것과는 좀 다르겠지, 아마도?”
“네, 제가 알기론 그래요. 비약의 농도가 훨씬 세다고 했습니다. 그분들은 우리처럼 인위적인 암연이 아닌, 선천적인 암연을 타고났으니까요.”
뚝, 뚝, 뚝.
쿠제는 액체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소리를 귀에 담으며, 완성되어 가는 ‘검은 잎’을 바라봤다.
거점창고, 혹은 암살검가 각 가문들에서만 구할 수 있는 특수한 재료들. 증류와 용해를 비롯한 복잡하고 미묘한 제조 과정.
유리관 끝으로 한 방울씩 떨어트리는 방식을 통해,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만들어지는 비약.
“…….”
쿠제는 자신이 거쳤던 ‘검은 잎 단계’ 때가 떠올랐는지, 잠시 인상을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