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2)
암살검가 로이넨-12화(12/258)
제12화. 첫 번째 시험 (6)
“여보, 이것 봐! 시장님께서 축제 예복을 보냈어! 이번엔 시민들 모두 이걸 입으라네.”
“흠, 이렇게 쓰여 있군. ‘축제기간 중에 각자 전달받은 축제 예복을 무조건 입을 것.’ 자, 봐봐. 어때, 어울려?”
트룸벨의 선량한 시민 도로시. 그녀는 이 도시에 있는 여러 꽃집 주인 중 한 명이었다.
평화로운 트룸벨에서 태어나고 자라, 몇 년 전부터 물려받은 꽃집을 착실하게 운영 중이었다.
축제 예복을 전달받은 날, 그녀는 옷을 입어보곤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근데 도로시, 당신 옷은 나랑 좀 다른데? 왜 등 쪽 목깃에 빨갛게 수가 놓여 있지?”
축제 당일.
도로시는 아주 바빴다. 꽃집은 매년 축제 때마다 바쁠 수밖에 없었다.
검은색 꽃잎과 빨간색 꽃잎이 교차로 피어난 트룸벨꽃이 불티나게 팔리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은 시장에게서 전달받은 예복을 입고 가슴팍에 트룸벨꽃을 꽂고 다녔다.
술을 마시며 노래와 춤을 즐기는 하루.
트룸벨꽃의 꽃말인 ‘침묵’과는 정반대의 날.
“그런데 어째 올해엔 이 골목에 경비병들이 많은 것처럼 느껴지지?”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트룸벨꽃을 팔며 남편이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도로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꽃집들이 모여 있는 골목 어귀부터 유난히 경비병들이 많이 돌아다녔다.
하지만 그런 것에 맘 편히 신경 쓸 상황이 아니었다. 도로시 부부는 한낮이 다 지나가도록 열심히 꽃을 팔며 대목을 누렸다.
해 질 녘.
준비한 트룸벨꽃이 다 팔려 나갔다.
녹초가 되어 가게 앞 벤치에 앉아 쉬던 도로시. 어깨를 툭툭 두드리고 있던 그녀는, 맞은편 좁은 골목에서 어쩐지 이상한 광경을 목격한다.
두 아이가 뛰어노는 모습.
덩치가 큰 남자아이 하나와 긴 머리를 뒤로 묶은 여자아이 하나.
처음엔 뛰어노는 것처럼 보였는데, 자세히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쟤네들… 싸우는 건가?”
드리운 그늘 때문에 잘 안 보였지만, 골목의 분위기는 분명 유쾌해 보이진 않았다.
담벼락에 발을 차며 도약하고, 팔을 휘젓고, 주먹을 내지르는 소년과 소녀의 모습은 어쩐지 싸우는 것처럼 보였다.
“…아닌가?”
하지만 도로시 눈으로는 소년과 소녀의 과격한 움직임이 선명하게 구별되지 않았다. 그만큼 빠르고 날렵한 몸놀림들.
그때.
“아, 아줌마.”
도로시는 두 아이가 싸우는 골목 옆쪽에서 걸어 나오는 또 다른 소년을 발견했다.
“어머, 어머!”
아이는 새빨간 액체를 몸에 뒤집어쓴 채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측은함이 절로 느껴지는 모습이었다. 심지어 울먹이기까지 했으니.
“너, 괜찮니?”
도로시가 벤치에서 일어나서 아이 쪽으로 걸어간다. 골목 안에서 싸우던 두 아이 중에서 덩치 큰 소년이 이쪽을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 것도 바로 그때.
덩치 큰 소년이 뭐라고 소리치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는다.
“루빈, …같은 새끼야!”
도로시는 덩치 큰 소년을 무시하고 울먹이는 소년 앞으로 다가갔다.
“울지 마, 얘야. 어머, 이게 무슨 일이니?”
* * *
15분 전.
꽃집 골목으로 들어올 때까지, 루빈은 하밀의 뒤를 밟는 중이었다.
도시 곳곳에 퍼져 있는 암살검가의 관찰자들이 보기에, 하밀을 미행하는 루빈의 모습은 표적의 정체를 유추한 하밀의 덕을 보려는 것 같았다.
그들 중 누구도 루빈이 하밀의 방향을 유도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루빈의 손에는 뭔가가 불룩하게 들어 있는 가죽 주머니가 들려 있었다.
루빈은 암연을 통해 이 골목에 암살검가의 가신들, 칙명부의 병사들, 시장의 경비병들이 가장 촘촘하게 포진해 있다는 걸 알았다.
확실하다. 여기에 표적이 있다.
‘쿤도 와 있잖아?’
쿤 주위에는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은 암연이 미약하게 퍼져 있었다. 불안정하게 들썩이는 암연으로 보건대, 지금 상황이 몹시 답답한 것 같았다.
‘딱 보니까, 수수께끼도 못 푼 것 같네.’
그럼에도 여기까지 와 있다는 건, 쳐부술 건 쳐부수고 부러뜨릴 건 부러뜨렸다는 뜻이겠지.
‘이제 슬슬 끝내야겠군.’
표적의 범위가 좁혀졌으니 이대로 머뭇거릴 필요는 없었다.
루빈은 일단 쿤의 주의부터 뺏을 생각으로 그쪽으로 다가갔다.
“루빈?”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표적을 찾던 쿤이 드디어 루빈과 눈이 마주쳤다. 하지만 멀찍이 떨어져 있어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루빈은 쿤이 쫓아올 수 있도록 더 좁은 골목 안으로 들어갔다. 지나치는 사람들을 헤치며 루빈에게 다가오는 쿤.
타닷, 타닷, 타닷!
골목에 쌓인 나무상자들을 하나씩 밟는다.
점점 가까워지는 쿤이 느껴졌다. 루빈은 나무상자들을 계단 삼아 지붕 위로 훌쩍 올라갔다.
“루빈!”
대답을 해주지 않아야 더 화가 나겠지.
아니나 다를까, 잔뜩 화난 쿤이 루빈을 뒤따라 지붕으로 뛰어올랐다.
적갈색 벽돌로 뒤덮인 지붕 위에서 쿤과 마주했다. 단둘이 마주하는 건 1년 만.
루빈은 구덩이에서 굴욕적으로 짓밟혔던 쿤이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나한테 복수하고 싶겠지. 하지만 영원히 그럴 기회는 없을 거야, 쿤.’
곧 쿤의 공격이 시작됐다. 루빈은 쇄도하는 공격을 피하기만 했다. 공격을 피하는 그 동작도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뭐냐! 그 어설픈 동작들은.”
보는 눈들이 많았기에.
“으으으으!”
쿤은 자신의 공격들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자 화가 나 미칠 지경이었다. 가끔 루빈이 발을 헛디디곤 했지만, 그것들은 실수가 아니라 그럴듯하게 공격을 피하기 위한 연기일 뿐이었다.
“헉, 허억.”
땀이 송골송골 맺힌 쿤에 비해 루빈은 평온하기만 했다.
“그건 또 뭐냐!”
쿤이 루빈이 들고 있는 불룩한 가죽 주머니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아, 이거? 돼지 피야.”
“돼지 피? 또 무슨 꿍꿍이야!”
그러나 쿤은 루빈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루빈은 다시 몸을 돌려 쿤에게서 도망치는 것처럼 유인하기 시작했다.
슈우우우, 탁!
두 사람은 건물과 건물 사이를 뛰어넘었다.
격한 분노 때문에 쿤의 동작에선 부드러움이 사라진 지 오래. 착지할 때마다 천장의 벽돌들이 뜯기며 바닥으로 후두둑 떨어졌다.
“암살자 맞냐? 무슨 코끼리도 아니고.”
루빈은 다시 한번 쿤을 도발하고는 골목으로 뛰어내렸다.
이번엔 하밀이 있는 쪽으로.
쿤도, 하밀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갑자기 눈앞에 루빈이 나타나자 하밀은 놀라 소리쳤다.
“루빈 도련님?”
“하밀, 친구 소개해 줄까?”
루빈의 장난기 가득한 웃음.
그러거나 말거나, 하밀은 주머니 안에서 아무런 반응도 없는 루빈의 유령쥐들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잠자코 있는 유령쥐들. 원래대로라면 미친 듯이 찍찍거려야 하는데?
“왜 도련님한테 반응하지 않는 거죠?”
루빈은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내보이며 말한다.
“돼지 피. 유령쥐의 추적을 막는 유일한 방법이지.”
“돼지 피가 추적을 막아준다고요?”
“그뿐일까. 그게 날 승자로 만들어줄 거거든.”
“아니 그게 무슨…….”
더 이상 대화는 불가능했다. 하밀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쿤이 달려들었으니까.
쿵.
“윽!”
루빈은 쿤의 공격을 미리 알고 피했지만, 하밀은 그렇지 못했다. 하밀은 옆구리를 가격당해 한쪽 벽으로 나가떨어졌다.
“크윽…. 도련님, 저놈이 소개해 주겠다는 그 친구?”
“서로 이름은 알고 있지?”
“루빈, 이 새끼!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쿤은 하밀 따위는 상대가 아니라는 듯이 그녀를 무시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 안에서 루빈만을 노리고 계속 달려들었다.
쿤의 연이은 주먹질.
그리고 여전히 엉성한 움직임으로 힘겹게 피하는 것처럼 보이는 루빈.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하밀은 이미 루빈의 능력을 알고 있었기에, 이 모든 게 루빈의 눈속임이라는 걸 알았다.
루빈과의 한없는 격차.
공격하는 쿤도 절망적으로 깨닫는 중이었다.
“하밀, 보고만 있을 거야?”
루빈이 장난스럽게 웃으며 몸을 하밀 쪽으로 갖다 댔다. 쿤의 공격을 하밀의 몸뚱이로 막아내는 꼴이었다.
공격을 가까스로 피한 하밀이 다급히 외쳤다.
“이봐, 쿤! 어차피 도련님한테 안 된다는 거 너도 알잖아.”
“개소리! 넌 끼어들지 마!”
“말이 안 통하네. 어쩔 수 없지.”
하밀이 쿤을 향한 공격을 시도했다. 쿤의 허벅지를 노리고 들어간 주먹. 그러나 상대는 옆으로 간단히 피한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반격.
옆으로 들어오는 쿤의 발길질을 막아내긴 했지만, 힘의 차이로 몸이 밀리는 건 어쩌지 못한다.
“하, 엄청나네.”
공격을 막아낸 부위를 쓸어내리며 하밀이 자세를 고쳤다. 그사이 루빈은 유유히 담벼락 위로 뛰어오르며 쿤을 향해 말했다.
“쿤. 유령쥐 조심해.”
“뭔 소리야, 갑자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드디어 하밀의 주머니에서 쿤을 쫓는 유령쥐가 튀어나왔다. 두 마리의 유령쥐와 함께 반격을 시작하는 하밀.
“보자 보자 하니까. 제대로 상대해 주지.”
“비켜! 조그만 게!”
이제 쿤과 하밀의 싸움은 비등해졌다.
담벼락 위에서 두 사람의 전투를 내려다보던 루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좋아, 여기까지는 계획대로였다.
이제 다음 단계.
수수께끼의 정답, ‘침묵’이 가리키는 표적을 찾으면 된다. 시간이 얼마 없었다.
골목길을 빠르게 훑는 루빈의 눈에 곧 무언가가 띄었다. 꽃집 앞에 나와 있는 한 여자……!
‘표적!’
예상했던 것처럼, 표적은 트룸벨꽃과 관련이 있었다. 1차 선택의 표적, 꽃집 주인은 지친 얼굴로 벤치에 앉아 있었다.
이대로 달려가 표식만 떼어내면 되는 상황.
하지만.
‘이대로는 안 되지.’
루빈은 들고 있던 가죽 주머니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런 다음, 망설이지 않고 손을 펼쳤다.
푸드덩.
유령쥐의 추적을 피하기 위해 지녔던 돼지 피가 루빈의 몸 위로 쏟아졌다.
“뭐 하는…….”
“루빈, 또 무슨 꿍꿍이……!”
서로에 대한 공격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두 사람이 루빈의 돌발 행동에 소리쳤다.
루빈은 두 사람을 향해 씩, 웃어줄 뿐 대답하지 않았다.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루빈은 싸우는 두 사람을 놔둔 채 골목 밖으로 나갔다. 그러곤 꽃집 주인을 향해 느릿하게 걸었다.
장난기 많았던 얼굴은 순식간에 울음기로 채워진다. 정말로 사고라도 당한 것처럼.
“아, 아줌마…….”
벤치에 앉아 있던 꽃집 주인이 루빈을 발견하고 놀라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 어머!”
루빈은 조금씩 다가간다.
싸움의 양상이 정리된 것인지, 골목 저쪽에서 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루빈, 이 여우 같은 새끼야!”
그렇게 소리친들, 이미 상황은 늦었다.
루빈은 이미 꽃집 주인 품에 안긴 상태. 루빈은 슬쩍 손을 뻗었다. 손에 잡힌 건 표적의 빨간 표식이었다.
뜨드득.
‘1차 선택’이란 명칭에 담긴 의미는 여러 가지다. 이번 시험의 취지는, 표적을 상대하는 여러 가지 전략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었음을, 루빈은 잘 알았다.
그리고 그가 선택한 전략은, 지금껏 그 어떤 아이도 쉽게 떠올리지 못한,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안전한 방법.
‘인간애에 반응하도록 마음을 공략하는 것. 이 또한 암살자의 전략이지.’
마음속으로는 웃으면서도, 루빈은 정말로 울음을 터뜨렸다. 뜯어낸 표식을 손에 쥐곤 살며시 흔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