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29)
암살검가 로이넨-129화(129/258)
제129화. 구출 작전 (2)
“아, 베야네그로에서 오셨군. 어째 오늘은 좀 서둘러서 온 것 같소?”
“시체가 많아서요.”
“흠… 그러네. 나 정도 짬이 되면 냄새만 맡아도 알지. 이런 날씨엔 얼려 놓아봐야 다 소용없고.”
시체소각장 출입구를 지키는 간부는 수레 주변을 한 바퀴 돌고는, 인상을 쓰며 코를 틀어막았다.
‘협곡 감옥’의 시체소각장. 트레스덴 인근에서 이름도 없고 신분도 낮은 시체들이 모여드는 곳.
“기름으로 다시 태어날 시체들이라. 자, 들어가슈.”
닫혀 있던 문이 열리면서, 가신은 소를 출발시켰다. 덜커덩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소각장은 감옥의 최하층부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길, 가신은 버릇처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는 풍경이다.
협곡 벽면 곳곳에 수백 개의 굴이 뚫려 있었다. 거기가 바로 죄수들의 감방이었다.
촘촘하게 박혀있는 쇠창살엔, 당연하게도 고차원의 결계마법이 내장되어 있었다.
‘…….’
시체무더기의 틈으로 루빈은 협곡의 무수한 감방들을 바라봤다. 수레 소리가 들리자, 쇠창살 사이로 형형한 눈빛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모두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다.
‘1급 감옥답군.’
대륙 곳곳에 이름을 떨친 죄수들이 하나둘이 아니다. 결계마법이 가로막고 있긴 했지만, 넓게 펼친 암연으로 수준급 무인들의 명징한 기운이 섞여들었다.
-황제는 왜 저들을 죽이지 않는 걸까요?
눈빛이 한껏 날카로워진 쿠제의 전음이었다.
-살아 있어야 황제한테 쓸모가 있을 테니까. 이 심층부에 있는 놈들은 특히 쓰임새가 많거든.
이들이 아무리 강하다 한들, 황제에겐 그저 불법적인 일에 사용될 도구들에 지나지 않는다. 이해했다는 듯 쿠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절벽 아래층의 감방에는 통로가 연결되어 있었지만, 심층부라 할 만한 부분에는 허공뿐이었다.
시야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허공, 그러나 고차원의 공격마법이 장전된 곳.
-절대 빠져 나올 수 없는 구조군요. 정말 끔찍한 곳입니다.
저들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바깥에서 누군가 결계를 부수는 수밖에 없었다.
루빈은 감방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엔조 로렌치니가 이곳에 있는지를 확인했다. 여기서 빼내려면 꽤 힘든 일이 될 텐데.
‘다행히 이곳엔 없구나.’
최악은 면한 셈이었다.
* * *
“건축가 님! 어서 이리로 오십시오. 다리도 편찮으신 분이 왜 이리 고집이 셀까.”
“E103이 그렇게 부지런하면 간수들이 저희를 구박합니다. 제발 가만히 지휘만 해주세요.”
“그러게 말이에요. 이렇게 자기 몸 내버리는 마법사는 처음이라니까.”
걸걸한 목소리들이 일제히 한 남자를 향한다.
푸른색의 짧은 머리. 중년 남자는 멋쩍게 웃었다. 결국 동료 죄수들의 성화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죄수번호 E103은 양손으로 힘겹게 들고 있던 정육면체의 ‘마나큐브’를 조심히 내려놓았다.
“알겠습니다. 여러분을 곤란하게 할 수는 없죠.”
E103은 오른발을 절뚝이며 죄수들 곁으로 다가갔다. 다섯 명의 죄수는 가운데에 빵을 쌓아놓고 E103을 기다리던 중이었다.
식감도 별로인 빵이었지만, 이곳 ‘협곡 감옥’에서는 이마저도 엄청난 특혜였다. 그걸 모를 리 없는 죄수들이었기에, 그들은 E103을 극진히 대접하는 것이다.
“오늘도 건축가님 덕분에 이렇게 편하게 하루를 보내네요. 정말 감사합니다.”
“매일 빵 먹을 때마다 저한테 감사의 기도를 올리실 겁니까? 어서들 드세요.”
그 말을 기다렸던지, 죄수들이 일제히 빵으로 손을 뻗었다.
우걱우걱.
“…….”
E103은 허겁지겁 빵을 먹는 죄수들을 가만히 쳐다봤다.
그의 본래 이름은 엔조 로렌치니. 그는 새삼 감옥에 들어온 시간이 꽤 묵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몇 달째지?’
페르를 카포티니로 보낸 직후에 이곳으로 들어왔으니, 계절 하나 정도는 보낸 것 같은데.
불쑥 아들에 대한 걱정도 끼어들었다.
‘페르는 잘 지내겠지?’
익살스럽고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아들.
동시에 그 누구보다 마법적 재능이 뛰어난 녀석이다. 아이를 떠올릴 때마다 엔조의 얼굴엔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떠올랐다.
“크, 우리 건축가님. 도대체 누굴 떠올리시는 걸까? 인제 그만 말해주시면 안 됩니까?”
“…아무것도 아닙니다, 하하.”
“제발 저한테만 말씀해 주세요. 누구를 떠올리는지. 애인? 가족?”
“에이, 다들 건축가님 좀 그만 괴롭혀요. 이미 제가 뻔질나게 물어봤다니까요. 절대 안 가르쳐 주시더라고요, 절대로.”
엔조는 멋쩍게 머리를 매만졌다.
다섯 명의 동료 죄수들.
감옥에서 워낙 오래 산 사람들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남에 대한 참견이 많아진 건지는 몰라도, 하루도 빠짐없이 이것저것 물어온다.
그런 질문들이 귀찮기는 해도 엔조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들은 좋은 사람이다.
감방에 들어오는 사람치고, 그것도 여기 ‘협곡 감옥’에 들어오는 사람치고 좋은 사람이 있을 수 없다지만, 엔조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엔조 본인이 그러한데, 이 중에 숨을 곳을 찾아 여기로 들어온 사람이 없을까. 아니면 억울하게 누명 쓴 사람이 없을까.
‘흠, 그것도 여기 3급 감옥에서나 가능한 소리이려나.’
빵을 우물우물 씹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가고 있을 때.
“그나저나 이제 관문이 하나째 완성되는 거죠?”
죄수 하나가 물어왔다.
“예, 아마도 모레쯤 완성이겠네요. 그래봤자 열두 개 중 하나일 뿐이지만.”
“두 달 만에 하나라! 앞으로 열한 개 남았으니까 이게 얼마야. 수감 기간 다 채우는 동안 절대 건축가님이랑 떨어지지 말아야지.”
여섯 사람이 쉬고 있는 자리 옆으로, 아치형의 관문이 세워지고 있었다.
보이기에는 특이할 것 없는 석재 관문이지만, 내부는 ‘마나큐브’로 채워지는 중이었다.
마나큐브.
마적석 여덟 개를 띄워놓은 상태로 구획한 정육면체. 마법건축술의 일종으로, 마나큐브를 이용할 때 더 고차원의 설계마법이 가능해진다.
대표적인 건물이 바로 카포티니의 랩소디관이었다. 오래된 마법건물이었기에, 개보수 공사 속도를 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그래서 수십 년에 걸쳐 여러 명의 마법건축가의 손을 거쳤다.
개중 하나가 바로 엔조 로렌치니였다. 그가 자신의 모교의 공사에 참여한 건 13년 전. 바로 아내 릴리가 페르를 임신했을 때였다.
참으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이 모든 불행이 시작된 순간이기도 했다.
‘그곳에 ‘각성의 사슬’이 있었을 줄은.’
유서 깊은 기숙사 건물의 내부에, 그런 끔찍한 저주가 숨어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다음에야 알게 되었다.
아내 릴리가 카포티니 공사 현장에 왔던 날. 엔조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페르가 서로 ‘각성의 사슬’로 엮이게 됐다는 것을.
더구나 아내가 아닌, 그녀 배 속에 있던 아들과 사슬로 묶였다는 사실을.
‘그래, 그건 저주야. 저주가 맞아.’
5년 전. 그때가 비극의 시작이었다. 제국군의 군사시설을 보수하기 위해 제도에 갔던 날이었다.
제도의 건물을 공사한다는 건 삼휘 마법사로서는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이력의 중요한 기점이 될 줄 알고 참여했던 공사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엔조는 아들과 자신이 ‘각성의 사슬’로 연결되어 있다는 걸 처음 깨달았다. 마법사들이 가끔 앓는 질병, ‘마나 발작’ 때문이었다.
그날, 엔조에게 우연히 일어난 마나 발작에 숨어 있던 ‘각성의 사슬’이 꿈틀거리면서, 그 실체가 밝혀졌다.
만약 그때 목격자가 없었더라면. 하필 그날 황궁에서 확인차 파견 나온 마법부 고위관리가 없었더라면.
부자(父子)의 인생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엔조의 머릿속에는 마나 발작을 수습하던 마법부 관리의 목소리가 울렸다.
‘흠, 일반적인 마나 발작이군. 다음부터는 몸 관리 잘하도록.’
그렇게 넘어가는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마법부 관리는 그 증상의 심상찮음을 상부에 보고했고, 그렇게 도피의 나날이 시작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아내가 죽어야 했고, 페르와 헤어져야 했다.
‘각성의 사슬’은 둘 중 하나가 죽임을 당해야만 발현되는 것.
각성해서 잠재력이 실현된다 한들, 아버지나 아들 중에 한 사람이 죽어야만 한다면 이건 그냥 저주일 뿐이었다.
“…….”
그때, 누군가가 엔조의 상념을 깨트렸다.
“죄수 E103.”
엔조는 고개를 들어 간수를 쳐다봤다.
“소장님 면담이오.”
“아, 예. 알겠습니다.”
엔조는 먹던 빵을 내려놓았다. 동료 죄수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멀어져가는 그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사나흘에 한 번씩 비밀스럽게 ‘협곡 감옥’의 책임자를 면담한다는 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모르지 않았으니까.
“다녀오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신 대로, 마나큐브를 좌, 우측에 하나씩 쌓아 올리시기만 하면 됩니다. 이따 면담 끝나고 제가 따로 확인하겠습니다.”
“예, 건축가님. 면담 잘하시고요. 소장님께 저희 감방 동료들 좀 잘 얘기해 주세요!”
잠시 후.
엔조는 간수들만이 오가는 통로를 이용해 소장실에 도착했다. 협곡 감옥의 황량한 풍경과 대비되는, 고풍스러운 내실이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소장은 엔조가 들어서자, 몸을 일으키며 반겼다.
“어서 오십시오.”
엔조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소장의 맞은편에 앉았다.
소장은 은은한 미소를 흘리며 엔조의 두 팔에 채워져 있는 수갑을 풀어주려 했다.
“아닙니다, 이러실 필요 없습니다.”
“죄수가 아니잖습니까. 당치도 않죠.”
“…감사합니다, 매번.”
철컥.
“식사부터 하시지요.”
수갑을 한쪽에 내려놓고, 소장은 엔조에게 음식을 권했다. 철판에 오른 고기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형편없는 빵마저 귀한 죄수들로서는 꿈에서라도 먹어보고 싶을 만한 음식들. 엔조는 소장의 배려를 거절하지 않았다.
“조금만 버티세요.”
우물우물 음식을 먹는 엔조의 귓가에 소장의 목소리가 내려왔다. 소장은 말끝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엔조 님’이라는 이름을 덧붙였다.
엔조는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소장을 쳐다보는 그 눈빛엔 진심 어린 고마움이 담겼다.
대륙 서부권의 1급 감옥인 ‘협곡 감옥’의 책임자, 히탄. 그의 숨은 정체는 바로, 엔조 로렌치의 도피를 돕는 조력자라는 것이다.
감옥에 사람을 숨긴다는 게 뭔가 이상했지만, 달리 말하면 허점을 파고드는 일. 지금껏 문제없이 안전하기만 했다.
이 역시 히탄의 제안이었다.
“감사합니다. 히탄 님. 정말로 요즘처럼 편안히 두 발 뻗고 자는 적도 없습니다.”
그 말에 히탄이 부드럽게 웃었다.
“저번에는 두 번째라 하지 않았습니까? 일전에도 엔조 님을 도와주신 분들이 있었다고.”
“아, 그랬죠.”
“그때는 엔조 님께서 너무 성급하게 그들 곁을 떠났다고 하셨는데…….”
순간, 엔조는 경계 어린 눈빛으로 히탄을 쳐다봤다. 분위기가 살짝 어긋나는 듯했다.
히탄이 ‘그들의 정체를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어올 것만 같아서였다. 하지만 엔조는 그들 정체를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마음을 읽은 건지, 히탄은 말끝을 바꾸어 분위기를 수습했다.
“…이번에는 그러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제가 엔조 님을 도와드릴 수 있도록 말이죠.”
“알겠습니다.”
이윽고, 식사를 마친 엔조는 이어서 나온 달콤한 후식까지 먹었다.
그때. 순간적으로 코를 찌르는 악취가 느껴졌다. 창밖에서부터 끼쳐오는 냄새였다.
아차차, 소리를 내면서 히탄이 얼른 일어나 창문을 닫았다.
“소장실은 다 좋은데, 시체 소각하는 냄새가 바로 올라옵니다. 마침 오늘이 시체 소각하는 날인 걸 깜빡 잊었군요. 식사하시는데 죄송합니다.”
“그럴 리가요. 이것마저도 호사인걸요.”
“아, 그리고…….”
히탄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는 차를 홀짝이며 뜸을 들였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엔조는 괜히 불안해졌다.
“최근에 저희 조직에서 첩보 하나를 받았는데, 그걸 엔조 님에게 말씀드려야 할지 고민이군요.”
“말씀해 주십시오. 저와 관련된 것이라면.”
“그게 말이죠…. 다음 주쯤 카포티니 마법학교에서 무슨 일이 있을 거랍니다. 제국군과 관련해서요.”
‘카포티니’와 ‘제국군’이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엔조의 심장이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
“황제가 군대를 움직이는 겁니까?”
“아뇨, 아뇨. 그 정도 일까지는 아닐 겁니다. 첩보상으론 말이죠. 어쩌면 엔조 님의 아드님도 평안히 지나갈 수도 있습니다. 저는 단지 미리 말씀드리는 거고요. 만약… 엔조 님께서 아드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할 수 있으면, 그리하셔도 됩니다.”
후식의 달콤함은 이미 잊어버렸고, 엔조의 표정은 어둡기만 했다.
히탄에게 아들의 안위까지 맡겨도 될까?
현재 히탄은 페르가 카포티니 마법학교에 위장 신분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만 알고 있었다.
‘이자는 믿어도 될지도 몰라. 내 눈앞에서 제국군을 섬멸하기까지 했으니…….’
어쩌면 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
카포티니에 무슨 일이 생길 거라는 말에 목 끝까지 말이 차올랐지만, 결국 엔조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
“너무 걱정하실 건 없습니다. 지금까지 아드님에 대해서는 밝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히탄 소장은 다시 엔조의 팔에 수갑을 채웠다. 이 수갑은 마법사의 행동을 제한하기 위한 특별 수갑이었다.
채워지는 순간, 엔조는 마나의 환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답답하시겠지만, 절차는 절차니까요. 조금만 더 고생해 주십시오, 엔조 님.”
“감사합니다.”
이후 엔조는 간수와 함께 감방으로 내려갔다.
“…….”
엔조가 떠난 뒤.
히탄 소장은 식사의 흔적을 내려다봤다. 이내 그의 눈빛에 분노가 담겼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그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젠장할!”
창문으로 다가가 문을 열자, 시체를 소각하는 냄새가 빠르게 올라왔다. 이상한 취향일지 몰라도, 시체를 태우는 냄새가 나쁘지 않은 히탄 소장이었다.
“아들이 위험할 수 있다고 말했는데도, 말을 안 해? 독한 새끼.”
소장은 신경질이 뻗쳐 바닥에 침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로젠탈러랑 가이젠은 왜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는 거야?”
* * *
밤이 깊었다.
잠들기 전까지 3급 감옥의 죄수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살아온 이야기, 감방을 나가면 누릴 것들, 가족을 만들고 깨끗하게 살겠다는 다짐 등등.
엔조와 같은 방이 되었다는 이유로, 히탄 소장으로부터 이런저런 특혜를 받는 다섯 죄수는, 히히거리며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이따금 엔조에게 이야기를 청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는 정중히 사양했다.
“죄송합니다. 저는 할 만한 이야기가 없네요.”
“뭐, 괜찮습니다. 건축가님 덕분에 이렇게 발 뻗고 잘 수 있는 게 어딥니까. 내일도 열심히 일하겠습니다, 건축가님.”
“전 먼저 자겠습니다.”
엔조는 눈을 감은 채 말했다.
그의 머릿속엔 히탄 소장이 들려준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말.
그렇게 불안과 함께 스르륵 잠이 들었다.
새벽쯤 되었을까?
저절로 눈이 떠진 엔조는 부스스 몸을 일으켰다. 아주 잠깐 존 것 같은데, 동료 죄수들의 수다가 그새 끝나 있었다.
‘평소 이렇게 조용할 리 없는 사람들인데……?’
그런 생각과 함께 몸을 돌렸을 때.
엔조는 하마터면 큰 소리를 낼 뻔했다.
목을 움켜쥐고 죽어 있는 네 명의 죄수.
“뭐, 무슨 일이……?”
잠깐 잠든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저 불쌍한 죄수들에게 무슨 일이?
“설마.”
황제가 드디어 날 찾아냈구나, 싶은 그때.
“엔조 로렌치니. 페르의 아버지 맞죠?”
어둠만이 있는 줄 알았던 곳에서, 불쑥 사람 목소리가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