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3)
암살검가 로이넨-13화(13/258)
제13화. 우승자의 특권 (1)
‘1차 선택’의 우승자는 루빈 로이넨이었다.
루빈의 승리감은 단순히 우승 조건을 충족한 것 그 이상이었다.
도시 안에 포진한 관찰자들을 속이는 것, 칙명부 수장과 가주들을 속이는 것까지 모조리 성공했으니 말이다.
“괜찮니, 꼬마야? 부모님은 어디에 계시니?”
아, 일단 자리를 옮겨야겠군.
루빈은 꽃집 주인에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 다음, 골목을 채운 인파 속으로 뛰어들었다.
“루빈!”
근처 공원에 도착했을 때, 뒤를 쫓던 쿤이 소리쳤다. 뒤이어 하밀도 도착.
쿤과 하밀의 시선은 루빈이 들고 있는 빨간 표식에 고정되어 있었다.
‘우승하니까 이런 얼굴들도 구경할 수 있구나.’
그저 부러워하는 아이 하나. 그리고 미칠 것처럼 굴욕적인 아이 하나.
회귀 전에는 루빈의 처지가 딱 저랬다. 본가의 자제라는 명예는 처참히 짓밟혔고, 치욕감과 열등감으로 쿤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었다.
“내가 너보다 나았어! 훨씬 나았다고!”
억울하다는 듯이 쿤이 소리쳤다. 이제 회귀 전과 정반대의 상황이 되었다.
“정말 그랬다면 승자는 네가 됐겠지.”
“너는 도망만 다녔잖아!”
루빈은 쿤 쪽으로 다가갔다. 관찰자들이 듣지 못하도록 목소리를 낮추는 걸 잊지 않은 채.
“잘 기억해 봐, 쿤. 넌 오늘 나한테 단 한 번의 공격도 성공시키지 못했어.”
“그, 그건!”
“다른 시험이었어도 내가 널 이겼을 거야. 격투나 검투였다 해도 마찬가지. 내가 오늘 너를 쓰러트리지 않은 건, 시험의 우승 조건이 그게 아니었기 때문이야.”
그러면서 이렇게 덧붙였다.
“내가 이겨야 할 사람은 너 말고도 아주 많거든. 오늘은 그 시작일 뿐이야.”
“둘이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
루빈과 쿤 사이의 일을 알지 못하는 하밀이 끼어들었지만, 때마침 대화가 끊기고 말았다. 시험의 생존자들을 태우기 위한 마차가 공원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트룸벨 시장의 전용 마차보다도 크고 화려한 마차의 등장에 시민들이 눈을 떼지 못했다.
“타시지요.”
마차 안쪽에서 문이 열리며, 칙명부의 안내자가 손짓했다. 세 사람이 마차 안에 올라타자, 그는 말을 출발시켰다.
목적지로 가는 길. 마차 안은 한참 동안 적막만 흘렀다.
루빈은 다른 둘을 관찰했다. 쿤은 여전히 씩씩대는 중이었고, 하밀은 의외로 차분했다.
그러다가 침묵을 깨는 소리.
끼기기, 끼기기기기!
유령쥐가 아직 있었나?
“아, 맞다.”
하밀이 주머니에서 마지막 유령쥐를 꺼냈다. 루빈과 쿤을 쫓던 유령쥐가 아닌, 다른 참가자를 추적하는 녀석이었다.
“흠, 이 유령쥐는 아무래도 레인크로키 가문의 참가자를 쫓던 놈인 것 같군요.”
안내자가 말했다.
지금 그들이 가는 곳에는 앞서 탈락한 다른 가문의 자제들이 모여 있을 것이다. 그곳에 가까워지면서 유령쥐가 반응하는 것이다.
“그 유령쥐. 좋은 수였어, 하밀.”
“감사합니다, 루빈 도련님.”
“네 유령쥐 때문에 하마터면 승리를 놓칠 뻔했어.”
진심이었다. 회귀 전 똑같은 시험에서, 루빈은 하밀을 상대하지 않았었다. 즉, 하밀과의 모든 일이 돌발 상황이었다는 뜻이다.
하밀은 루빈의 말을 그저 겸손으로만 생각했다. 루빈은 분명 빠르고 강했다. 쿤은커녕 하밀 본인과 비교해도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하지만 전력을 다하고 있다는 느낌은 확실히 아니었다.
‘어째서 모든 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걸까?’
루빈의 의도를 추측해 보려 해도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마음 한구석 존경심이 솟아났지만, 그렇다고 마냥 굴복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그녀 또한 촉망받는 암살검가의 자제였기에.
“빚을 갚은 거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수수께끼 단서에 대한 빚 말이에요.”
그때, 씩씩거리던 쿤이 갑자기 거친 태도로 나섰다.
“야, 그거 줘봐.”
쿤은 하밀에게서 유령쥐를 빼앗다시피 받아내더니 한 손으로 꽉 쥐었다.
“빌어먹을 쥐새끼!”
그걸로 유령쥐의 생명은 끝이었다.
추적해야 할 대상이 아닌 자에게 유령쥐는 그저 한낱 쥐. 방금까지 유령쥐‘였던’ 그것의 내장과 눈알이 비어져 나왔다.
“야! 뭐 하는 거야? 지금 화풀이하냐?”
하밀이 소리쳤다. 난데없는 상황에 안내자는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쿤은 마차 문을 열어 손을 내밀고, 죽은 유령쥐의 잔해를 털어냈다.
“쥐새끼가 시끄럽게 찍찍대잖아!”
쿤은 ‘쥐새끼’에 힘주어 발음하며 루빈을 노려봤다.
무슨 뜻인지 알겠군.
회귀 전, 1차 선택에서 우승했던 그 쿤은 얼마나 오만했던가. 그때의 얼굴 위에 지금 이 순간의 분노 어린 표정이 겹치니, 루빈은 그저 웃음만 나왔다.
‘소인배 자식.’
한차례 소란이 가시고, 하밀이 칙명부 안내자에게 물었다.
“저희는 어디로 가는 건가요?”
“그랑버드로 갑니다.”
“그리고 어딜 가는데요?”
안내자는 세 아이가 대견하다는 듯 씩 웃으며 대답해 주었다.
“시험에 통과했으니 보상받으셔야죠.”
* * *
반나절.
저택을 나가 있던 건 고작 그 정도였지만, 루빈에 대한 인식이 바뀌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루빈은 앞선 두 형들이 이뤄내지 못한 ‘1차 선택’의 우승자였다.
세이렌은 어릴 적부터 천재로 주목받아 왔으나 그 아들들은 그렇지 못했다. 로이넨 가문 내부에서도 루빈의 우승을 예상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던 터라, 그 소식의 파장은 컸다.
그랬기에 짧은 준비 시간이었음에도 어스름홀에서 열리는 연회는 유독 성대했다.
“긴장을 풀고 오늘은 마음껏 먹도록 하거라.”
로이넨 가주의 한마디가 있었지만, 참가자들은 모처럼 만에 주어진 만찬 기회를 누릴 수 없었다.
시험이 끝나고도 이어지는 긴장감.
만찬 이후에 있을 보상 때문이었다.
이 보상 때문에, 암살검가의 첫 시험 명칭이 다름 아닌 ‘1차 선택’이었던 것이다.
매해 ‘1차 선택’이 있을 때마다 주최자로 나서는 가문은 창고를 개방했다.
모든 암살검가는 임무를 수행할 때마다 암살 표적의 보구를 획득해 왔으니, 그 종류와 양이 어마어마했다.
그래서 어떤 암살검가든 창고에 일국의 왕들도 탐낼 만한 갖가지 희귀하고 치명적인 보구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1차 선택’은 결국 주최 가문의 창고에서 보구를 하나 선택할 권리를 획득하는 시험이었다.
시험 성적은 곧 창고의 출입 순서. 그러니 가장 먼저 창고에 들어가는 사람이 더 훌륭한 보구를 집어 들기 마련이다.
“이럴 수가! 케르기티 가문의 단검, 세크니알 가문의 로브, 피니티 왕가의 장갑…. 행방불명된 보물들이 모두 여기에 있었군.”
주최 가문은 창고를 개방하기 전, 몇몇 보구 목록을 참가자들에게 고지했다. 그걸 본 누군가의 감탄이었다.
뒤이어 술렁이기 시작하는 어스름홀.
“역시 본가의 창고는 수준이 다르군요.”
“올해엔 역대 최고의 보구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겠습니다.”
올해 주최 가문은 다름 아닌 로이넨가.
암살검가의 모든 역사를 품고 있는 본가의 창고답게, 추려낸 핵심 품목 열 개부터 차원이 달랐다. 다른 가문들 입장에선 루빈에게 선점할 기회를 놓쳤다고 해도, 사실상 순서가 상관없을 정도였다.
오늘 선택하는 보구가 무엇이건 간에, 참가자들로서는 평생 동안 임무를 함께할 전설적인 장비를 얻는 셈이었다.
“루빈 도련님, 뭘 고르실 건가요?”
닭고기를 뜯던 하밀이 슬쩍 질문했지만, 루빈은 고지 목록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루빈의 그런 모습은 마치 엄청난 고심에 빠진 것처럼 보였다.
아닌 척 지켜보는 다른 가문의 가주들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저 녀석, 무슨 무구를 고를까?’
‘그것만은 안 골랐으면 좋겠는데.’
그때 세이렌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자, 다들 식사가 끝난 것 같군요. 이제 자리를 옮기도록 하지요.”
세이렌은 참가자들을 창고로 안내했다. 창고는 로이넨 저택 지하 깊숙한 곳에 자리했다.
별다른 함정도, 방어 수단도 없었다. 대신, 출입하는 자의 암연 유무를 탐지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암연 없이는, 이곳을 드나들 수 없도록 설계된 장소.
아이들이 각 가주의 뒤에 딱 붙어서는 이유도, 자신들의 가주가 없으면 창고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 만약 암연 없이 이곳에 발을 들이면 어떻게 되나요?”
한 아이가 속삭이듯 묻자, 아버지가 황급히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다. 루빈은 그 답을 알고 있었다.
‘온몸이 갈기갈기 찢어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게 되겠지.’
쿵.
거대한 창고의 문이 닫혔다. 이제 눈앞의 어두운 통로만 지나면 꿈에 그리던 무구를 고를 수 있다.
긴장감과 기대감에 모두가 숨죽이는 가운데, 세이렌이 우승자를 호명했다.
“루빈 로이넨.”
아들의 이름을 부르는 것치고는 너무 냉랭한 목소리. 어둠이 내리깔린 통로를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첫 번째다. 들어가거라.”
루빈은 보구를 담을 펑퍼짐한 자루를 한 손에 들고, 통로를 향해 발을 내디뎠다.
다음 순간, 루빈의 모습은 지켜보는 모두의 눈앞에서 감쪽같이 사라졌다.
적막과 고요, 침묵.
그리고 칠흑 같은 어둠.
루빈은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디며 생각했다.
‘자, 어디에 계십니까.’
* * *
이미 자정을 넘긴 시간.
첫 번째 참가자부터 마지막 참가자까지, 모두가 창고에서 나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세 시간가량.
참가자들은 각자 가지고 들어갔던 자루를 자기 앞에 내려두었다.
자루를 펼쳐 공개하지 않는 한, 가문의 가주들도 자신의 아이가 어떤 무기를 골라 왔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아이들 모두 커다란 무기는 아예 배제한 모양이군요.”
“그런 것들은 가져와 봐야 써먹지도 못 하니까요.”
창고 입구 맞은편에 정렬해 있는 아이들을 보며, 가주들이 한마디씩 했다.
“그런데, 본가 도련님의 자루엔 보구가 들어 있긴 한 건가요?”
스토네가 옆에 있는 본도그에게 속삭였다. 다른 가주들 역시 똑같은 의문을 품고 있었다.
우승자의 자격으로 누구보다 먼저 들어갔던 루빈의 자루는 홀쭉했다.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은 것처럼.
누군가 가볍게 추측을 던졌다.
“어쩌면 굉장히 작은 보구일 수도 있죠.”
“예를 들면?”
“왜, 그런 거 있잖습니까. 저 머나먼 동방의 살수들이 쓴다는, 그 둥글고 뾰족뾰족한 암기(暗器)요.”
“아, 표창 말씀이군요. 글쎄요, 목록에는 없던데.”
“목록에 없어도 고를 수는 있잖습니까. 목록에 있는 보구들보다는 질이 떨어지겠지만.”
굳이 그럴 이유가 있을까, 하는 소리였다.
그 말에 쿤이 슬쩍 고개를 돌려 루빈의 자루를 쳐다보았다. 바로 옆자리에서 보아도 루빈의 자루는 아무 윤곽도 드러내지 않았다.
반면 쿤의 자루는 조그맣게 단검의 윤곽이 드러나 있었다. 쿤은 이미 크로키슨 가주와 무엇을 가져올지 의견을 맞춘 상태였으니.
‘잘 들어라, 쿤. 녹색 빛을 띠는 단검이다. 케르기티의 단검 말이야.’
질리도록 강조하던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며 쿤은 씩 웃었다.
‘케르기티의 단검’은 약 200년 전 멸망한 가문의 보구였다. 이들 가문은 해독제가 없는 독을 창조해 낸 것으로 유명했다.
이 단검은 바로 그 독으로 10년간 벼린, 치명적인 무기였다. 모든 암살검가가 원하는 전설적인 무구이기도 했고.
그래서 우승을 놓쳤을 때, 쿤은 실망했다. 루빈이 고를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신 ‘세크니알의 로브’를 고르리라 차선책까지 생각해 놓은 것도 그 이유였다..
하지만 쿤이 들어갔을 때, 그의 차선책은 쓸모가 없어졌다. 루빈이 선점할 거라 예상했던 게르기티의 단검이 떡하니 남아 있었으니까.
쿤은 이를 갈며 루빈의 표정을 살폈다.
‘도대체 뭘 고른 거냐, 루빈.’
루빈의 선택을 궁금해하는 다른 한 사람, 세이렌 로이넨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역시 아들이 케르기티 단검이나 세크니알 로브, 아니면 적어도 피니티 장갑을 고르리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자루의 윤곽으로 보니, 그것들은 이미 각각 크로키슨, 쿠니틀리, 레인크로키 가문이 차지했다.
결국 공개 절차를 거쳐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 드러내거라.”
아이들은 자루 안에서 자신의 보구를 꺼냈다.
루빈을 빼고 다른 여덟 명의 선택에는 예외란 없었다. 모두 미리 고지한 열 개의 특별 품목 안에서 고른 것들이었다.
그걸 본 가주들의 얼굴에서 희비가 엇갈렸지만, 모두 예상한 것들이기에 별다른 소란은 없었다.
그리고 마지막.
“루빈, 어서 너의 보구를 드러내거라.”
세이렌이 다그쳤다. 루빈의 손에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다른 가주들도 궁금하단 얼굴로 루빈을 주목했다.
“루빈?”
세이렌의 두 번째 재촉.
루빈은 담담히 대꾸했다.
“가주님. 제 손 위에 있습니다.”
“뭐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가주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번졌다. 대체 얼마나 작고 하찮은 것이기에?
바로 옆에 있던 쿤이 루빈의 손바닥을 쳐다봤다. 처음에는 잘 분간이 가지 않았다. 너무 작았고 모양도 평범하지 않았다.
표창도 아니고, 비수도 아니다.
그렇다면 대체…….
그때, 쿤이 큰 소리로 외쳤다.
“저게 뭐야? 부러진 검날 조각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