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30)
암살검가 로이넨-130화(130/258)
제130화. 구출 작전 (3)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는 인영.
페르란 이름이 들리자마자, 엔조는 공격마법을 준비했다. 뭐가 됐든, 눈앞의 이 암살자를 제압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
그런데 이상했다. 공격마법이 시전되지 않는다. 마법을 제한하던 수갑은 감방에 들어오면서 이미 푼 상태인데.
엔조가 머뭇대는 사이, 얼굴을 가린 루빈이 다가왔다. 몸을 낮추고 엔조를 마주했다.
‘오스카랑 똑같이 생겼네.’
웃음이 나올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페르가 초록색으로 염색한 머리만 빼면 너무도 닮은 두 사람에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저는 당신을 해치려는 게 아닙니다. 구출해 주려고 온 거예요.”
물론 곧바로 받아들여질 리는 없겠지. 엔조 입장에서는 선량한 동료 죄수들을 잃고, 안전한 감옥에서 강제로 쫓겨나는 꼴이었으니.
“저는 오스카… 아니, 페르의 친구입니다.”
루빈은 복면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체구와 음성만으로는 당연히 성인인 줄 알았던 암살자의 정체가 아이라는 사실에, 엔조의 눈동자가 더 심하게 떨렸다.
“카포티니에서 왔다는 말이냐?”
“네, 페르의 룸메이트이기도 하고요. 페르에게서 들었습니다. ‘각성의 사슬’ 얘기 그리고 황제한테 쫓기는 몸이란 말도요.”
“그게 무슨……!”
그럴 리가 없다.
페르가 그걸 밝힐 리가 없는데?
“여기 있는 죄수들을 다… 네가 죽인 거냐?”
“한 명은 빼놓고요. 당신을 설득할 때 필요할 것 같아서.”
루빈은 고개를 돌려 한쪽 벽에 몸을 기대어 앉아 있는 죄수를 가리켰다.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입이 틀어 막힌 채로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엔조의 눈에는 두려움에 떠는 불쌍한 죄수로만 보였다.
“참고로 이들은 첩자들입니다. 당신을 감시할 목적으로 고용된 자들이요.”
“뭐, 뭐라고?”
받아들이기 힘든 말이었다.
“평소에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페르에 대한 정보를 캐내려고 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
“…….”
“여긴 위험합니다. 당신을 보호한다는 것도 다 거짓말이고요. 당신을 여기 숨겨준 사람이 누구죠?”
히탄의 얼굴이 떠올랐지만, 섣불리 그 이름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 사람이 누구든, 그 사람은 황제의 사람입니다. 당신을 지켜주고 있는 게 아니라, 움켜쥐고 있는 거고요.”
페르에 관해 궁금해했던 건 같은 감방의 죄수들뿐만이 아니었다.
히탄도 꾸준히 페르에 관해 물어왔다. 지난밤만 해도 카포티니에 무슨 일이 생길 거라며 불안감을 자극했고.
“혹시 그 사람한테, 페르가 카포티니에 있다고 말했었나요?”
“…….”
“말했군요. 그래도 아직 페르가 오스카라는 건 말하지 않았겠죠. 제가 짐작한 대로네요.”
“대체 그걸 어떻게……?”
“그들은 아직 페르의 정체를 모릅니다. 카포티니에 숨어 있다는 것만 알고 있죠.”
“…지금 그 말을 믿으라는 거냐?”
루빈은 어깨를 으쓱였다.
“시간이 없습니다. 만약 상황이 더 급해지면 당신을 기절시켜서 데려갈 수밖에 없어요. 선택은 당신이 직접 하는 겁니다.”
루빈은 얼굴을 가리곤, 아직 목숨이 붙어 있는 죄수에게 다가갔다. 죄수가 덜덜 몸을 떨었다. 눈앞에서 넷이 절명하는 걸 모두 지켜봤던 터였다.
막혀 있던 입이 자유로워지는 순간. 죄수는 소리를 내질러 간수를 부르려고 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루빈의 암연이 숨통을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커, 커허헉…….”
“몇 가지만 묻겠다. 너희들에게 엔조를 감시하라고 시킨 자가 누구지? 그 대가는?”
대답한다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말은 없었다. 하지만 죄수는 그렇게 받아들였다. 진실을 털어놓는 게 살아나는 유일한 길이라고 여겼다.
“히탄 소장…! 그가 시켰습니다. E103의 건축 작업을 도와주면서 계속 물어보라고요. 그를 감시하면서 알아낸 것들을 빠짐없이 보고하라고요…….”
이제껏 선량한 동료라 여겼던 자의 입에서 나온 충격적인 말에, 엔조는 다리를 절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을 지켜본 루빈은 질문 하나를 추가했다.
“엔조의 다리는? 이것도 네놈들 짓이냐?”
“그, 그건…….”
설마 내 다리까지? 엔조는 눈을 부릅뜨고 죄수의 입술만 노려봤다.
엔조가 부상당한 건, 한 달 전이었다. 관문을 짓는 작업 도중, 동료 죄수의 실수 때문이었다. 이젠 그게 실수가 아니었단 걸 깨달았지만.
치유마법이면 간단하게 해결될 부상이었지만, 감옥 안에는 그런 체계가 없다며 물리적인 수술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이후, 엔조는 계속 발을 절뚝이게 됐다.
“일부러 내 다리를 이렇게 만든 거라고?”
“저희가… 소장한테 요구했습니다. 마법사랑 같은 방에 있는 게 불안하다고요.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불안하다고요.”
“그래서?”
“다리에 마법을 제한하는 마적석을 심어놓겠다고… 그러면 안심해도 좋을 거라고…….”
엔조는 벽에 기댄 채 자신의 머리를 움켜쥐었다.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저들 손아귀에서 놀아난 꼴이었다.
“젠장!”
협곡 감옥에서 마법사가 있는 감방은 마나가 차단된다.
그러나 엔조는 죄수가 아니라며 일반 감방에서 지내도록 해주었던 히탄 소장이었다. 불편할 거라며, 마법을 제한하는 수갑조차 풀어주지 않았던가.
물론 엔조로서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동료 죄수들이 마법사를 두려워한다는 걸 알고 있기에, 마법을 써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술한다는 핑계로, 다리에 마적석을 심어놨다고?
“우… 우웁!”
루빈은 다시 헝겊으로 죄수의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곤 엔조에게 다가갔다.
마적석이 심어진 그의 다리 쪽으로 몸을 수그리는 순간, 엔조는 경계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엔조. 당신 다리에 있는 마적석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시죠. 당장 제거하지 않으면, 마나 제한뿐만 아니라 당신의 위치까지 추적당할 겁니다.”
“…….”
“가리키기만 하세요, 제거는 제가 할 테니까.”
여전히 망설이는 엔조. 하지만.
“아, 찾았습니다. 잠시만요.”
대퇴부 아래쪽에서 마적석을 감지한 루빈은, 곧바로 조치를 취했다. 냉기를 머금은 그의 ‘핏빛서리’가 잔광을 남기며 슥 그어진 것이다.
고통을 느낄 새도 없었다. 수술 부위의 실밥 자국이 나란히 뜯기면서 마적석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그 순간, 엔조는 얼어붙어 있던 ‘마나의 환’이 빠르게 해방되는 걸 느꼈다.
“여기요.”
루빈이 건네는 마적석을 받아든 엔조. 곧바로 확인에 들어갔다.
예상처럼, 마적석에 내장된 마법은 ‘추적’과 ‘마나 제한’이었다.
감방 안에서는 마나가 제한되고, 감방을 나가는 순간부터는 위치가 추적되는 식이었다.
“부수진 마세요. 나중에 추적에 혼선을 주려면 꼭 필요하니까.”
그때였다.
피이잉. 피이이잉.
“흠…….”
루빈은 자신의 주변으로 날카로운 빙격살 여러 발이 돋아나는 걸 느꼈다.
마나를 제한하는 마적석이 제거되자, 엔조가 공격마법을 시전한 것이다. 빙격살은 모두 루빈을 겨누고 있었다.
‘…공격마법 앞에서도 아무렇지 않다는 건가?’
엔조는 미간을 좁혔다. 당장에라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데, 눈앞의 암살자는 태연했다. 오히려 관심없다는 듯 고개를 돌려, 창살 밖을 내다볼 뿐이다.
“아직까진 괜찮습니다. 간수가 이쪽을 신경 쓰지 않고 있거든요.”
엔조는 암살자의 저 태도가 연기가 아니라는 걸 확신했다.
하지만 아직 가장 중요한 게 남아 있었다.
“넌 대체 누구지? 각성의 힘을 원하는 거냐?”
“제가 그 힘을 원했다면 이미 ‘각성의 사슬’을 끊어버리고, 남은 사람을 회유했겠죠.”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는 엔조와 페르의 소재를 모두 알고 있으니까.
스으응. 스으응.
빙격살이 루빈 주변을 빠르게 맴돌았다. 언제든지 발사될 준비가 되었다는 듯.
“만약 네가 내 아들이 신뢰하는 사람이 맞는다면, 그걸 증명할 수 있겠지.”
엔조는 아들에게 알려준 증표를 떠올렸다. 함부로 남을 믿지 말되, 정말로 믿을 만한 자가 있다면 알려주라고 했던 증표였다.
네가 믿는 사람이라면, 나 역시 그를 믿겠다고.
“그렇게 나올 줄 알았습니다, 엔조.”
두 사람 사이로 마나선이 피어났다. 루빈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
루빈은 정신을 집중해서 마나선을 움직여 나갔다. 이 마나선은 마법 시전이 아닌, 오로지 특정 ‘문양’을 그리기 위한 것이었다.
“좀 힘드네요.”
간단한 문양이 아니었기에, 마나의 경지가 형편없는 루빈은 땀까지 흘려야 했다.
그리고 이윽고.
“됐죠?”
완성된 문양을 확인한 엔조는, 눈을 지그시 감았다.
그 순간, 빙격살이 일제히 발사됐다.
푸슉. 푸슉. 푸슉.
루빈이 아닌, 뒤쪽의 죄수를 향해.
죄수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온 몸이 꿰뚫려 그대로 절명했다.
“이제야 선택했군요, 엔조 로렌치니.”
엔조가 아니었더라도 결국엔 루빈 손에 죽었을 자였다. 쓰러진 죄수를 보며 엔조가 물었다.
“이제 대답해. 넌 누구지? 정체가 뭐야?”
“궁금하겠지만 아직 제 진짜 정체를 밝힐 수 없습니다. 저도 오스카처럼 위장 신분으로 카포티니에 들어와 있는 거거든요. 다만, 당신과 목적이 같다는 것 정도는 말해줄 수 있습니다.”
“목적이 같다고?”
“황제로부터 벗어나려 한다는 것. 아, 완전히 똑같지는 않겠네요. 당신과 페르는 그 정도까지 바라지 않을지 모르지만… 전 황제의 죽음을 원하거든요.”
* * *
“검술명가 중에… 나를 돕는 가문이 있나?”
엔조는 루빈이 죽인 네 명의 죄수를 살피며 물었다. 저들을 죽음에 이르게 한 건, 일반적인 검이 아니었다.
저게 오러의 흔적이라는 것쯤은 엔조도 알았다. 비록 그 오러가 브리온 오러라는 것까지는 알아보지 못했지만.
“벌써 오러를 다룰 줄 안다는 건, 그만한 교육을 받았다는 뜻인데.”
오러로 인한 착각. 이건 루빈이 의도한 것이기도 했다. 엔조를 속이는 것뿐만 아니라, 칙명부까지 혼란에 빠트리기 위해서.
칙명부가 암살검가를 의심하더라도 그 의심은 오러의 흔적을 마주하면서 사그라질 터.
오러가 발견되면 용의자 목록에서 암살검가는 완전히 제외될 것이다. 대신 다른 검술가문들을 의심하겠지.
“아무튼, 날 돕는다고 했지? 그럼 우선 히탄 소장을 죽여야 해. 안 그럼 위험해질 거야.”
하지만 루빈은 허락할 생각이 없었다. 그건 좋은 생각이 아니었다.
“당신을 빼내면, 그는 알아서 죽게 될 겁니다.”
칙명부 내에서 어느 정도 급인지는 몰라도, 이만한 실책에 목숨을 보전하기는 힘들 것이다.
암살검가를 시키든 칙명부 내부에서 처리하든, 룰포의 분노를 피해 가지는 못할 게 틀림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냥 이대로 빠져나갈 순 없지.
“대신 그놈을 더 곤란하게 할 필요는 있겠죠.”
“……?”
“저기 오네요.”
기다리던 쿠제가 나타났다. 그는 루빈처럼 복면을 쓴 상태였다. 엔조에게 간단한 목례를 하고는, 루빈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쿠제.
“도련님, 탈출로는 확보해 놨습니다. 그리고 심층부에 갇혀 있는 놈들 중 도움이 될 만한 놈들을 추려놨습니다.”
쿠제가 건넨 종이에는 심층부 죄수들의 감방 배치가 적혀 있었다.
히탄 소장을 죽이는 것보다 더 쉽고 효과적인 방법은, 죄수들 중 일부를 탈옥시키는 것.
“좋아. 이 녀석들이라면 감옥을 떠들썩하게 만들 수 있겠네. 쿠제, 엔조를 데리고 먼저 나가. 곧 따라갈게.”
“그럼 소각장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래.”
루빈이 먼저 움직여, 곧바로 심층부로 향했다.
움직임을 섬세하게 할 필요는 없었다. 간수를 마주칠 때마다 흑칠의 오러를 대놓고 드러내며 베어 나갔다.
다만 죽이지는 않았다. 그건 그간 고통받아 온 죄수들의 몫으로 남겨놓으면 그만이다.
‘여기군.’
절벽의 아득한 높이에 위치한 감옥의 심층부. 그중에서 처음으로 고른 감방이었다.
루빈은 투명하게 숨겨져 있는 공격마법부터 안전하게 파쇄한 뒤, 창살에 달라붙었다.
어둠에 잠겨 있는 거대한 몸.
괴수라고 해도 될 만한 체구를 지닌 자가 거칠게 숨을 내쉰다.
프스으으.
그 숨결에 감방 바닥이 살짝 들썩였다.
“어이.”
루빈의 부름에 어둠을 찢는 두 개의 눈동자가 나타났다. 눈빛만으로도 싸늘한 기운을 내뿜는다.
“지금 내가 문을 반쯤 부숴놨거든. 나머진 알아서 할 수 있지?”
“폭동인가?”
굵직하면서 어쩐지 아득한 목소리가 창살을 타고 넘어온다.
루빈은 피식 웃었다. 복면에 가려져 그 웃음이 보이지 않을 테지만, 마치 따라 웃는 것처럼 감방 안에서도 괴괴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폭동은 앞으로 네가 벌일 일이고. 나는 두 놈 더 빼내야 해서 바쁘거든.”
“잠깐, 넌 누구지?”
감방 안의 1급 죄수가 쇠사슬을 끌며 창살 앞까지 다가왔을 때. 그는 직전까지 여기 있던 대화 상대가 사라졌다는 걸 깨달았다.
죄수는 거대한 손으로 창살을 움켜쥐었다. 정말로 문이 반쯤 부서져 있었다.
“크크크.”
갑자기 이게 무슨 행운인가. 그런 생각과 함께 죄수는 잠시 창살 틈으로 밖을 내다봤다.
기이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복면의 사내. 어느새 또 다른 감방 문을 부수고 있었다.
“그렇단 말이지…….”
드디어 갇혀 있던 분노마저 풀어낼 수 있겠군. 웃음이 절로 나온다. 입꼬리를 귀 가까이 내건 죄수는, 망설이지 않고 행동에 나섰다.
그렇게 루빈이 소각장으로 향할 즈음, 협곡 감옥은 누구도 손쓸 수 없을 만큼 혼란에 빠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