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32)
암살검가 로이넨-132화(132/258)
제132화. 장교육성위 (1)
‘협곡 감옥’에서는 대소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베야네그로에선 축제가 한창이었다. 행진하는 악단이 거리를 누비고, 하늘엔 폭죽이 순간순간 수놓아졌다.
팰리스틴 가주는 도시의 축제를 맞이하여 인근에서 찾아준 귀빈들을 대접한 뒤, 밤늦게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
사람들을 상대하면서도 가주의 관심은 온통 다른 데 매여 있었다.
‘협곡 감옥.’
그곳을 떠올리는 순간, 그는 위장 신분, 팰리스틴 가주가 아닌 네이프 그리어스로 돌아왔다.
그는 초조하게 기다렸다.
자정이 지나고, 새벽이 더 깊어지기를.
“왔느냐?”
드디어 그리어스가의 첫째 아들이 그의 방에 들어섰다. 어느덧 암살자로 독립한 지 5년째에 접어든 아들, 칸 그리어스.
원칙적으로는 독립하면 대륙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지만, 거점창고를 관리하는 가문이라는 이유로 그리어스의 자제들은 모두 베야네그로에 머무르고 있었다.
장남 칸은 들어서자마자 아버지가 원하는 소식부터 내놓았다.
“트레스덴에 나가 있는 가신들로부터 보고가 왔습니다. 루빈 도련님이 무사히 ‘협곡 감옥’을 빠져나갔다 합니다.”
“후…….”
사실, 최악의 상황까지 대비해 두고 있었다.
가동할 수 있는 가신들을 모두 ‘협곡 감옥’ 인근에 배치해 두고, 혹시라도 루빈이 위험해질 경우 감옥에 진입시킬 작정이었다.
“역시 괜한 걱정을 했던 건가. 감옥 상황은 어떻더냐?”
“말 그대로 아비규환입니다. 가신들이 파악한 바로는 1급 죄수가 둘 탈출했다고 합니다. 덩달아 일반 죄수들의 감방까지 뒤집어졌고요.”
“1급 죄수가 둘이나? 그게 누구더냐.”
“이명 ‘절멸악공(絶滅樂工)’과 ‘투흔의 바람’입니다. 둘 다 감옥을 헤집어놓은 다음 사라졌습니다. 아무래도 도련님이 그들을 풀어준 것 같습니다.”
탈주한 둘 다 5성의 괴인들이었고, 곧 사형이 집행될 사형수들이었다.
무엇보다 ‘투흔의 바람’이라는 놈은 유목민족 투흔족에서 영웅처럼 떠받드는 놈이었다.
만인에게 그들의 죽음을 전시하며 법의 위엄을 보여주려던 제국의 얼굴에 제대로 먹칠한 셈.
“칙명부 놈들도 곤란해지겠군.”
감옥의 소장인 히탄이 실은 칙명부 소속이라는 건 미리 파악해 두었던 사실이었다.
다만 그가 암살검가까지 속여 가며 마법사 하나를 잡아두고 있었던 것은 이번에 루빈을 통해서 알게 된 것이다.
“마법사까지 잃고 탈옥수까지 발생했으니 결국 히탄이 그 대가를 치를 듯합니다.”
“조만간 너나 나한테 새로운 임무가 내려올 수도 있겠구나. 아니면 칙명부 안에서 해결할 수도 있고.”
히탄은 그만한 체급이었다. 게다가 마법사와 관련된 일은 칙명부가 공들이는 작업이었던 것 같았다. 이 모든 걸 루빈이 제대로 헤집어놓은 것이다.
‘호언했던 그대로로군.’
문득, 마법사를 구출할 뿐만 아니라 감옥을 뒤집어 놓을 거라 했던 루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다시 울리는 듯했다.
“저, 그런데… 가주님.”
“음?”
“루빈 도련님이 구출해 낸 그 마법사는 저희 정보망에 없었던 인물입니다. 아직까지 정체도 파악되지 않았고요. 무엇보다, 칙명부와 엮여 있는 인물입니다. 저희가 후속으로 조치해 두어야 하지 않을지…….”
“후속으로 뭘 어떻게 해두기를 원하느냐?”
“…그 마법사가 왜 칙명부에 붙들려 있었는지, 도련님은 왜 그를 구해낸 것인지… 그런 것들을 알아두어야 할 것 같습니다.”
네이프는 고개를 내저었다. 합당하긴 하지만, 좋은 생각은 아니다.
“도리언 도련님이나 매피스 도련님이었다면, 난 그리하라 지시했을 거다. 하지만 이번에 만난 본가의 자제는 앞선 두 형들과는 격이 달라.”
네이프는 킬리언의 당부를 또렷이 기억했다. 어쩌면 세이렌 로이넨을 뛰어넘을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는. 그러니, 무슨 일이든 도와주라는 당부 말이다.
지금은 가만히 있어야 했다. 괜히 나섰다가 루빈이 원했던 바를 방해할 수 있고, 그렇게 되면 그 작은 불씨가 얼마큼의 후폭풍을 만들어낼지 모르니까.
“이만 나가거라.”
“예, 가주님.”
첫째 아들을 내보내고, 네이프는 또 다른 보고가 뒤이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두 시간쯤 흘렀을까.
이번에 방에 들어선 건 팰리스틴가의 집사였다. 집사의 본래 신분은 그리어스가의 직속가신.
“캔시온 상황은?”
캔시온은 루빈이 카포티니에 가기 전에 잠시 들르기로 한 작은 마을이었다.
저가 먼저 물어볼 정도로 네이프는 루빈의 행보가 궁금했다.
“현재 장교육성위의 선발대가 머물면서, 본대가 도착하기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루빈 도련님도 그쪽으로 방향을 잡으신 건가?”
“예, 마음을 바꾸시지 않은 것 같습니다.”
네이프는 심각한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펴기를 반복했다.
루빈에게 장교육성위에 대해 말해준 건, 네이프 본인. 그런데 그게 잘한 결정인지 확신이 들지는 않았다.
제국군의 산하 조직 ‘장교육성위’.
엄밀하게 말하자면, 장교육성위는 대장군부가 아닌, 마법사여단 소속이다.
전대 대장군 하네케가 대장군부에 창설했다가, 무인 귀족 가문들의 반발에 가로막혀 사장될 뻔했던 조직.
이들은 훗날 마법사여단으로 편입됐다. 이들의 역할은, 마법사여단의 장교가 될 만한 아이들을 차출하는 것이었다.
장교육성위는 3년에 한 번씩, 대륙 곳곳의 마법학교를 돌아다니며 기습적인 차출시험을 단행했다.
사실상 반강제적으로 진행되는 시험이었지만, 차출되기만 하면 마법사여단의 고위장교로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었기에, 대개 마법사들에겐 꿈이나 다름없었다.
‘그저 대비하라고 알려줬던 건데…….’
카포티니에 있는 동안 시험에 휩쓸리지 않도록 잠시 외부로 떠나 있거나, 거짓 부상이라도 꾸며두라는 의도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루빈은 그의 예상을 빗나가는 결정을 내렸다. 약간의 오차도 아닌, 네이프로서는 차마 상상할 수도 없는 계획을 밝히면서.
‘이해할 수 없군. 차라리 장교육성위의 시험에 진지하게 임해서 장교생도로 차출되는 게 목적이었다면 모를까.’
하지만, 루빈의 계획은 그리 단순하지 않았다.
‘대체 어떤 계획이시길래…….’
네이프의 미간이 좁혀졌다. 그 앞에서 형형한 눈빛을 드러내며, 제 계획을 털어놓았던 루빈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네이프. 하나만 더 알려줘.’
‘말씀하시죠, 도련님.’
‘카포티니에 도착하기 전에 장교육성위와 마주치려면, 어디로 가야 하지?’
‘…그걸 묻는 연유를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설마 장교육성위의 시험관들을 죽이기라도 할 생각이십니까?’
‘당연히 그럴 순 없지.’
‘그러면……?’
‘장교육성위를 뿌리째 흔들 생각이거든. 격식 있는 방식으로 말야.’
시험관들을 제거하는 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들의 뿌리를 흔든다는 거지? 격식 있는 방식은 또 뭐고?
네이프는 도저히 상상되지 않았다.
‘차출시험의 핵심을 부숴 버릴 거야. 다신 치르지 못하도록.’
‘핵심이라면… 설마, ‘시험마도구’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
장교육성위의 토대는 차출시험을 가능하게 하는 마도구에 있었다.
세기에 한 번 만들어질까 말까 한 마도구. 그것은 대륙의 어디서든, 동일한 시험장을 구축할 수 있는 ‘현상마법’의 절정이었다.
그게 부숴지면, 장교육성위의 운용에 상당한 지장이 있으리라는 건 네이프도 잘 알았다.
하지만 왜?
킬리언의 말처럼 정말 제국에 엿이라도 먹일 작정이신가? 그러나 그보다 더 궁금한 것은 따로 있었다.
‘대체 어떻게?’
그 마도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마법의 영역이라 알 수 없어도, 그 안에 1급 마적석이 내장되어 있다는 것만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그건 누구도 부수겠다고 호언할 수 없는 마도구인데.
‘…속을 헤아릴 수 없는 도련님이구나.’
* * *
루빈은 확신했다. 장교육성위의 ‘시험마도구’를 파괴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 아님을 말이다.
시험마도구가 복구 불가능할 정도로 파괴되는 사건. 이건 머지않은 미래에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었으니까.
‘물론 카포티니에서 진행될 시험 때는 아니지만.’
지금으로부터 10년쯤 지나, 대륙 남부의 모휘 마법학교 ‘쿠아트로닉’에서 차출시험을 단행하던 중에 벌어지는 사고였다.
대륙을 떠들썩하게 할 ‘마나 재해’의 한 사례로 자리 잡는 사고.
엄청난 마나 폭발로 인해 당시 시험을 치르던 모휘 마법생도 상당수가 죽게 되는 대형 참사였다.
‘가동되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시험마도구의 마나는 압력을 가중시킨다. 10년만 일찍 파괴됐어도 폭발의 정도는 1,000분의 1도 안 됐을 거라 했지.’
당시 루빈의 암살 대상이 제국군의 감찰부원이었기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제거 대상은 쿠아트로닉 폭발 사고의 원인을 너무 깊이 알고 있었고, 취합한 사실들을 쿠아트로닉 마법학교가 위치한 파무크 왕국에 전달하려 했기 때문에 암살 표적이 되었다.
그때 루빈은, 비릿한 진실 위에 거짓을 한 겹 덮으려는 황제를 어쩔 수 없이 따랐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네이프에게 선언했던 대로, 루빈은 시험마도구를 파괴할 작정이었다.
10년 뒤 쿠아트로닉 마법학교에 벌어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아니다.
마법사여단이 배출해 내는 고위장교의 맥을 미리 끊어내려고?
그 의도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루빈은 그 효과가 미미할 거라는 것을 잘 알았다.
시험마도구가 파괴된다고 해도, 마법사여단은 또 다른 방법을 강구할 테니까. 그들이 이전 수준의 장교생도들을 차출할 방법을 찾아내는 데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터였다. 그러니 이 역시 부차적인 이득으로 봐야 했다.
정말로 루빈이 원하는 건 따로 있었다.
‘1급 마적석을 얻을 기회.’
마법을 무제한적으로 내장하게 해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1급 마적석. 최상급의 마적석이자 황족의 피에만 반응하는 보물.
장교육성위의 시험마도구 안에는 1급 마적석이 무려 두 개나 박혀 있었다.
장교육성위 책임자가 황족의 피를 몇 방울씩 따로 보관하여 소지하는 이유도 내부에 있는 1급 마적석 때문이었다.
1급 마적석을 작동시키지 않으면 시험마도구 운용 자체가 불가능했으니.
‘1급 마적석…. 이번을 시작으로 하나씩 모아야겠어.’
어쨌거나, 루빈의 몸속에 황족의 피가 흐르는 건 사실이었다. 혐오스러워 지워 버리고 싶지만, 복수를 위해서라면 이 또한 이용해야 했다.
게다가 1급 마적석을 차차 모아나간다면, 쿠제가 창조해 내는 창의적인 암술들도 실현할 수 있을 테고.
‘우선 파괴하기 전에 장교육성위와 시험마도구부터 살펴봐야 해.’
부수는 것은 오늘이 아니다. 내일, 학교에서 기습적으로 치러질 차출시험 중, 적당한 때를 노릴 것이다.
터덕, 터덕, 터덕.
루빈을 태운 말이 느긋한 속도로 나아갔다. 때마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쿠제, 엔조와 헤어진 지 네 시간째. 두 사람은 지금쯤 카포티니 인근에 다다랐겠지.
잠시 후, 루빈 앞으로 불편한 숲길이 끝나면서 한적하고 편평한 흙길이 나왔다. 길 한쪽으로 ‘캔시온’이라는 마을 이름이 새겨진 바위도 나왔다.
‘저기인가. 완전 시골 마을이군.’
네이프가 알려준 대로, 마을은 굉장히 작았다.
언제나 비밀리에 움직여야 하는 장교육성위다. 이 정도 마을 규모라면, 그들이 마음만 먹으면 주민 전부를 포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심해야겠어.’
우선 말을 숨겨둘 만한 장소를 찾아 매어두었다. 그리고 혹시 모를 수색에 대비해, 암술을 사용해 기척을 완전히 숨겼다.
그후 찬찬히 주변을 확인했다. 인가는 얼마 없었고, 꽤 큼직한 축사만 여러 개 있었다. 저 중 어딘가에 장교육성위 선발대가 묵고 있겠지.
지이잉.
루빈은 암연을 더욱 넓게 펼쳤다. 얇고 넓은 암연의 장막에, 아주 작고 미세한 것들까지 세세하게 감지되었다.
‘시험마도구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건가.’
루빈은 수풀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 시험마도구를 운반하는 후발대가 나타날 때까지, 일단은 기다려 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