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45)
암살검가 로이넨-145화(145/258)
제145화. 마나 폭발과 후폭풍 (3)
언뜻 보면 1급 마적석은 붉은 색채의 평범한 보석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 작은 돌멩이엔 수많은 마법을 설계해둘 수 있었고, 그 용량에도 제한이 없었다.
‘마적석 안에 마법을 내장하는 건 자유. 따로 제한이 없지. 그러나 설계된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는 건 오직 황족뿐이었다.
전생에는 마적석을 활용할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던 루빈이었다. 애초에 마나와 마법에 대한 지식조차 얕은 때였으니.
그러나 이번 생은 달랐다. 복수를 위해 모든 걸 이용할 작정이었다. 비록 그것이 증오하기만 했던 황족의 피라고 하더라도.
루빈이 마적석을 막 쥐려는 그때였다.
프스스스스!
“……!”
마적석의 붉은빛이 한층 짙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파열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폭발?’
분명했다. 암연에 느껴지는 폭발의 조짐.
심지어 폭발의 피해의 정도가 근방에 국한되지 않을 것 같았다. 마탑구역 너머, 어쩌면 도시 전체에까지 물리적인 피해를 입힐 만한 폭발처럼 느껴졌다.
‘특정 상황에 맞춰 예정되어 있었던 건가?’
그렇다면 수호마물의 처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수호마물의 핵이 강제적으로 제거당할 시, 마적석에 미리 내장해두었던 별개의 폭발마법이 발현하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시험 시작에 앞서 마도구를 작동시키면서 황족의 핏방울을 떨어트려 놨을 테니, 그에 따른 발현 조건이 아직 유효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폭발을 멈출 수 있지?’
해답이 나오지 않았지만, 루빈은 먼저 행동했다. 핏빛서리의 칼날을 반대쪽 손바닥에 가져다 댔다.
후두둑!
단숨에 손을 그어버렸다. 피가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폭발마법을 무효화시킬 수 있는 건 황족의 피일까? 확신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해보는 수밖에.
뚝뚝뚝뚝…….
마적석 위로 루빈의 핏방울이 떨어져 내렸다. 핏방울이 더해지자 마적석의 붉은 기가 더욱 깊어지는 것 같았지만, 파열음은 여전했다.
-지금이라도 피해야 하지 않겠나?
그러나 루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게 핏방울이 떨어진 지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루빈의 눈동자에서 긴장감이 쓸려나갔다.
‘피하지 않아도 될 거 같아요. 다행히 제 추측이 맞았나 봅니다.’
-흐음……?
‘폭발의 조짐이 가라앉았어요. 마법 발현이 무효화된 겁니다.
루빈이 흘린 핏방울은 어느새 마적석 내부로 흡수되었다. 루빈의 피를 황족의 증거로 받아들이고, 폭발을 멈춘 것이라 해석할 수 있었다.
‘이 마적석이 저를 각인한 느낌을 받았어요. 아마 다음부터는 굳이 핏방울을 떨어트릴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그때. 루빈의 귓가에 발소리가 들려왔다.
‘교수들이군.’
원래대로라면 방벽을 부수기 위해 수 시간을 쏟아야 했을 터. 그러나 수호마물이 처리되면서 놈이 만들었던 방벽도 사라진 상태였다.
“루든 생도!”
베니테즈가 가장 먼저 루빈 쪽으로 다가왔다. 루빈은 어느새 1급 마적석 두 개와 핏빛서리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어둔 뒤였다.
베니테즈를 향해 느릿하게 돌아섰다. 그때를 시작으로, 피곤하고 두려운 상태를 연기하기 시작했다.
“루든,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베니테즈 교수가 수호마물의 잔해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뒤늦게 폰드리안의 시체를 발견했다.
“이, 이게 어떻게……?”
“폰드리안 위장님과 함께 수호마물에 맞섰습니다. 놈이 위장님한테 집중하는 사이, 핵을 찾아 제거했고요”
“정말 핵을 제거했다고요?”
“네, 폰드리안 위장님이 짚어주셨거든요.”
간신히 목숨을 건진 것처럼, 숨을 그럴싸하게 헐떡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베니테즈로서는 좀처럼 믿기지 않는 이야기일 게 분명했다.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나마 이게 가장 믿을 만한 이야기인 것도 사실이었다.
루빈 혼자서 여유롭게 마물의 핵을 제거했다는 것보다는, 훨씬 현실적이었으니까.
“…루든 생도는 괜찮아요?”
루빈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키건 교장을 비롯한 다른 교수들과 시험관들이 모여들었다. 예상치 못한 비극에 사람들은 크게 놀란 듯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말도 안 돼.”
“지금 바로 여단장님께 보고를……!”
반면 루빈은 연기를 계속했다.
“저, 교수님. 다른 친구들은요? 달리아하고 에릭이요.”
암연을 통해 그들 모두 깨어나 안전하게 이동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루빈은 모르는 척 물었다.
“시험관들와 응시생도들 모두 일시적인 기절이었어요. 모두 깨어나 밖으로 나갔어요.”
“왜… 왜 이렇게 된 거죠?”
“마나 폭발 사고예요. 어째서 일어났는지는 저로서도 알 수 없어요. 장교육성위에서 그 원인을 밝히겠죠. 이게,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건지…….”
베니테즈의 탄식 어린 대답이었다.
루빈은 슬쩍 장교육성위의 직속부관을 바라봤다. 나이 지긋한 부관의 표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절망적이었다.
하긴, 지금 저들은 조직의 존폐 갈림길에 놓인 거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시험마도구는 파괴됐고, 위장은 사망했다. 앞으로 차출시험은 영영 치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마법사여단에서 이전과 비슷한 조직을 창설한다 해도, 그게 제대로 작동하리라는 보장은 없었다.
위장의 사망은 둘째 치고, 가장 치명적인 건 역시 마도구의 파괴. 위더스푼 가문이 또다시 적극 협조한다 하더라도 이전과 동일한 수준의 마도구를 만들어내리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수호마물은 예상 밖이었지만, 소득 자체는 나쁘지 않군.’
루빈은 속으로 성과를 계산해보았다. 1급 마적석 두 개를 얻었고, 시험마도구는 파괴됐다. 눈엣가시였던 폰드리안의 죽음은 덤이랄까.
게다가 수호마물의 핵 또한 얻었다. 지금 당장은 핵의 쓸모가 어디에 있을지 모르긴 해도, 단순한 마물이 아닌 만큼 언젠가 요긴하게 쓰일 게 분명했다.
‘물론, 한동안 귀찮아지는 건 피할 수 없겠군.’
아니나 다를까, 루빈 곁으로 다가온 키건 교장도 그 주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루든 포이넨. 괜찮지?”
“네, 교장님.”
“너는 아마… 한 2주 동안은 수업에 들어올 수 없을 거다. 마법사여단이 사건을 조사하겠다며, 널 열심히 불러댈 테니까.”
예상했던 바였기에, 루빈은 무덤덤했다. 다만 그런 반응이 키건이 보기엔 겁에 질려 보였던 모양이다. 거구의 마법사는 제 가슴팍을 퉁퉁 두드렸다.
“물론 걱정할 거 없다. 네가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내가 최대한 도와주마. 너는 그냥 솔직하게, 본 것만 얘기하면 돼.”
“감사합니다, 교장님.”
딱히 걱정될 것도 없었다. 키건 교장이 아니래도, 루빈을 위해 알아서 해결해줄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었다.
그중 가장 만만한 것은 역시나.
‘칙명부가 알아서 처리해주겠지.’
* * *
2주는 금방 지나갔다.
그동안 루빈은 마법학교나 카포티니와는 철저하게 분리되어 생활해야만 했다.
마법사여단의 조사단은 카포티니와 근접한 마을에 임시 심문소를 구축한 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각도로 조사를 진행했다.
에릭과 달리아는 의심할 만한 혐의가 없었기에 이틀 만에 풀려나간 반면, 폰드리안 죽음의 유일한 목격자인 루빈은 일주일이 넘도록 벗어날 수 없었다.
“힘든 점 있나?”
“갇혀있는 것 같아서 답답하네요. 카포티니에 있는 친구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그래, 그럴 만도 하지. 하지만 아직 조사할 게 남아서.”
마법사여단에서 파견 나온 조사관은 백발이 성성한 마법사 장교였다. 말투 하나하나에서 은은한 중후함과 기품이 느껴지는 자였다.
조사관답게 그의 전문 분야는 심층마법이었다. 그는 루빈을 대상으로 현혹과 혼란 등, 진실을 토해내게 하는 마법을 주기적으로 시전했지만, 암연으로 둘러싸인 루빈의 심층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자네가 특히 시간이 더 걸리는 걸세. 마도무인은 마법과 마법약 모두에 내성이 강하거든.”
그게 사실은 암연 때문이라는 걸, 조사관은 죽을 때까지도 모를 것이다.
그래도 그는 꽤 인간적이었다. 마법사여단 소속치고는 사담이 많은 편이었다. 물론, 루빈이 평범한 꼬맹이일 거라는 느슨한 생각 때문이었겠지만, 어쨌든 루빈이 묻는 말에도 상냥하게 답해주었다.
“폰드리안 위장님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생전에 그분은 어떤 분이셨나요?”
“마법사여단에서도 기대가 많았던 장교였지. 특히 현 여단장님의 신뢰를 받던 자였어. 하지만 내가 봤던 바로는, 자만심이 태도에서 드러나는 부류였달까. 뭐, 그래도 유망한 마법생도를 구하다가 사망했으니, 귀감이 될 만하겠지.”
폰드리안의 시신은 제도로 옮겨져 군인으로서는 상당한 예우 속에 장례가 치러질 거라고 했다. 아무래도 영웅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였으니, 루빈을 둘러싼 조사에도 탄력이 떨어질 수밖에.
회귀 전에는 엄청난 사망자가 나왔던 마나 폭발이었지만, 이번에는 직접적인 사망자가 없으니 황궁 감찰단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다.
이대로라면, 사건은 마법사여단 내에서 일단락될 터였다.
“루든 포이넨 생도는 아마 내일쯤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걸세.”
“그렇군요, 다행이네요.”
“키건이 얼마나 닦달했는지 아나? 사실 ‘드디어 끝났구나’란 생각이 드는 건, 자네가 아니라 나일세.”
늙은 조사관은 키건이 마법사여단에 있을 때부터 서로 친교를 맺어왔던 사이였다. 키건이 교장으로서 자신의 학생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모르지 않았다.
“아무튼, 인기가 많더군.”
“네?”
한결 날카로워지는 조사관의 태도였다.
“루든 포이넨, 자넬 두고 얼마나 많은 이들이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네만. 개중엔 부담스러운 사람들도 있었네. 뭐랄까. 위더스푼가 영애의 압박 정도는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랄까.”
“클로이가 찾아왔었군요.”
“시녀가 영애를 말리는 모습이 꽤 고되 보이더라고.”
클로이와 셀레스네의 실랑이하는 장면이 떠올라, 루빈은 피식 웃음이 날 뻔한 걸 겨우 참았다.
“또 누가 있었나요? 클로이가 장난으로 느껴질 정도였다면 아마 엄청 대단한 사람들일 것 같은데요.”
분명 칙명부겠지만, 루빈은 짐짓 모르는 척 물었다. 조사관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졌다.
“그렇게 태연하게 나오니, 더 무서워지는군.”
“…….”
“…참고로, 지금의 이 대화는 아무런 증거로도 남지 않으니 안심해도 돼. 물론 그렇다고 자네가 더 솔직해지진 않겠지만.”
늙은 조사관은 고개를 앞으로 빼내어 루빈 가까이 얼굴을 가져다 댔다. 하얀 눈썹 아래에 있는 눈동자는 늙은 나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힘이 넘쳤다.
“솔직히 말하지. 남모르게 자네에 대한 신분 조회를 해보았다네. 참고로 말하자면, 내 조회 권한이면 어지간한 귀족들은 속속들이 들여다볼 수 있거든.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결과를 받았어.”
“어떤 결과죠?”
“접근 금지.”
그러면서 조사관은 눈길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서류의 모서리 부분만 만지작댔다.
“오랜 조사관 생활 중 처음 있는 일이었지. 솔직히 말해, 호기심이 일더군. 말년에 생겨난 도전정신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에 전혀 예상치 못한 경로로 압박이 들어왔다네. 내가 자네 신분을 열람하려 했다는 게 감지된 거지.”
칙명부가 틀림없었다.
칙명부의 권력은 막강했다. 그들은 단순 암살검가만을 관리하는 조직이 아니었다. 관절 인형을 조작하듯, 대륙 곳곳에 실을 달아놓고 있는 것이다.
더 무서운 것은, 이 모든 게 비밀리에 행해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황궁 내에 ‘칙명부’라는 조직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칙명부 수장 룰포 역시 ‘왕국통합부’라는, 겉으로는 아무 권력도 없어 보이는 책임자로 제 실체를 감추고 있었다.
“황궁 내 영향력이 가장 센 조직은 대장군부와 마법부야. 어느 쪽일까? 마법부 대관의 사람일까? 대장군의 사람일까? 아니면, 타국의 왕족? 권세가문?”
“조사관님, 저는 그저 출판사업으로 성공해서 돈을 모아 귀족의 자격을 얻은 3등귀족의 아들일 뿐입니다.”
조사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음료수를 가만히 홀짝였다. 자세히 보면 그 손길은 조금씩 떨리고 있었다.
“흐음.”
조금 전까지 강건했던 그의 태도는 빠르게 움츠러들었다.
견고함. 애초부터 그건 루든 맞은편에 앉으며 그가 스스로를 힘겹게 다그쳤던 결과였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까지가 한계였다.
“루든 포이넨.”
“네, 조사관님.”
“내가 왜 이 모든 걸 자네한테 털어놓는지 알겠나?”
“모르겠습니다.”
“나는 내년이면, 여단에서 은퇴하여 쿠아트로닉 마법학교에서 심층마법학과 마법약제조학을 가르칠 예정이네.”
“쿠아트로닉 마법학교라면, 모휘 마법학교군요.”
“나의 모교라네. 내 후년쯤엔 내 손자와 손녀도 입학할 테고… 아직도 내가 왜 이 말을 자네한테 하는지 모르겠나?”
“모르겠습니다, 정말로.”
루빈은 고개를 내저었지만,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 않았다. 자신 앞에 앉아있는 저 나약한 노마법사의 눈빛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수십 년 동안 마법사여단의 조사관으로 있으면서 내 감각은 무인의 그것처럼 날카로워졌다네. 더는 접근하면 안 되는, 무시무시한 뭔가가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는 본능이라 해야겠지.”
말을 잇기 전,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나는 자네가 폰드리안 죽음에 얼마큼의 관여가 되어 있는지 궁금하지 않다네. 내가 잠깐 품었던 의문은 평생 동안 내 입안에서 썩어갈 거라 약속하겠네.”
“제 결백을 말씀해 주신다니 감사하지만, 제게 그리 말씀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다만 나는 내 삶이 이제는 정말로 막바지에 있다는 것, 내년에 은퇴하면 손자, 손녀와 함께 조용히 살 거라는 것만 말해주는 걸세. 그것만 생각해 줬으면 좋겠군.”
살려달라는 말이 발화되지만 않았을 뿐, 조사관은 그 말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루빈은 이 늙은 조사관에게 무엇도 장담해줄 수는 없었다. 그의 생사여탈권에는 루빈 말고도 여러 사람이 개입할 수 있었으니.
“14일 동안 고생 많았네. 날이 밝는 대로, 카포티니로 돌아갈 수 있을 거야.”
“드디어 끝났군요. 감사합니다, 조사관님.”
루빈은 의자에서 일어나 예를 표했다. 늙은 마법사가 미세하게 몸을 떨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루빈은 아무 말 없이 밖으로 나왔다.
그의 운명은, 오로지 황제만이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