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ter Assassin of the Ronan RAW novel - Chapter (147)
암살검가 로이넨-147화(147/258)
제147화. 새벽의 특별 수업 (1)
랩소디관 속 엔조의 비밀 공간.
“…흠.”
루빈으로부터 충분한 설명을 듣고, 쿠제의 정리본을 살펴본 엔조는 침음을 흘렸다.
개념에 대한 이해는 충분했고, 결론적으로 이 기술이 실현 불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저 ‘능력’이라고, 다소 모호하게 표현된 부분이 걸리긴 했지만, 설명에 따라 지물과의 조응만 확실히 이뤄질 수 있다면야, 문제 될 건 없었다.
“건축술에 쓰이는 마법만 잘 이용한다면, 불가능한 건 아니야.”
쿠제의 예상대로, 암연이 지물과의 일차적인 조응을 이루고, 마법건축술이 이차적인 조응을 이루면, 충분히 지물 속에 마나큐브를 순간적으로 집어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엔조의 걱정 어린 말이 이어졌다.
“마나큐브에 성질 변화를 일으켜서 재질을 물로 바꾼다고 해도, 목적이 은신이라며? 그러면 최소 삼십 분 동안은 잠수해야 한다는 뜻인데.”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다 방법이 있거든요.”
“역시 마도무인이라는 건가?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두 번째 문제는…….”
역시 마적석이었다. 엔조는 자기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4급 마적석 하나를 쥐곤 루빈에게 건넸다.
“마나큐브를 만들려면 8개의 마적석이 필요하지. 네가 말한 것처럼 작전 중에 설치와 해체를 반복할 거라면, 3급 이하 마적석으로는 어림도 없어.”
“2급 마적석은 가능하단 말씀인가요?”
“…그 정도면 충분히 가능하긴 할 거야. 그래도 네다섯 번 정도 쓰는 게 고작이겠지만.”
네다섯 번에 불과하다면 이 역시 비효율적이었다. 1급 마적석에 비해 상대적으로 구하기 쉬울 뿐이지, 2급 마적석 또한 희귀했다.
루빈은 아쉬움 속에 머리를 쓸어 넘겼다.
“엔조.”
“음?”
“만약 1급 마적석이라면요? 말도 안 되겠지만, 1급 마적석 8개로 마나큐브를 만들었다고 가정해보는 거예요. 그럼 충분할까요?”
루빈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처럼, 미간을 찡그린 채 잠시 대답을 미루는 엔조. 그러다가 끝내 피식 웃어버렸다.
“루든. 1급 마적석은 2급과 비교할 만한 물건이 아냐. 사실, 애초부터 ‘마적석’이라는 동류로 묶는 거 자체가 잘못됐다고.”
“정답만 알려주시죠. 충분하다는 말이죠?”
“아니.”
“아니라고요?”
“오히려 차고 넘치지. 8개까지도 필요 없어. 딱 하나면 충분할 테니까.”
루빈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고, 그게 엔조에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뭔가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 같아 엔조는 루빈을 진정부터 시키려 했다.
“네가 모르나 본데, 1급 마적석은 황족만이 쓸 수 있는 거야. 마적석 안에 마법을 내장하는 건 누구나 가능하지. 다만, 그걸 발현하는 권한은 오직 황족에게만 있다고. 애초에 만들어질 때부터 그들만 인식하도록 되어 있거든.”
“그건 저도 압니다. 그러니까 일단 설명 좀 해주시죠. 한 개만으로 어떻게 마나큐브를 설계할 수 있는지.”
엔조는 이런 대화가 무슨 소용인가 싶으면서도, 마지못해 입을 열었다.
“1급 마적석을 일시적으로 8개로 복제할 수 있어. 마적석 안에 복제마법을 걸어두면 되거든. 그러면 큐브 형태가 될 거고, ‘성질 변화’도 마찬가지로 실행시킬 수 있지.”
“그거면 된다는 거죠?”
“그거면 된다니? 그 전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니깐? 황족이 아니면…….”
한참 말을 이어가려 하는데, 루빈이 갑자기 아공간 주머니를 펼쳐 보였다.
둥둥 떠 있는 주머니 안의 물건들 틈으로, 루빈이 팔을 쑥 집어넣었다.
“뭘 꺼내려고?”
루빈이 주머니에서 꺼낸 게 무엇인지 가만히 살펴보던 엔조는, 순간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엔조, 이게 뭔지 아시죠?”
알다마다!
엔조는 자신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1급 마적석을 내려다봤다. 얼마나 놀랐는지, 그의 손은 떨리기까지 했다.
꽤 오래전 일이다. 엔조가 본격적으로 마법건축가로 활동하기 전, 제도에 견학을 갔던 날이 있었다.
그날, 건축학도들은 특별한 경험을 해볼 수 있었는데, 바로 제도의 새 마탑의 건축 현장을 관람한 것이었다.
‘황족만의 통행로를 만든다고 했었지.’
운이 좋게도, 그날 건축학도는 1급 마적석이 내장되는 걸 눈으로 직접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어느 너그러운 황족의 배려 덕에, 마적석을 한 번씩 만져보기까지 했다. 지금 생각하면 꿈에서도 상상 못 할 일이었지만.
‘저게 그 1급 마적석?’
너무 오래된 기억이다. 그때의 기억만으로는 지금 루든이 들고 있는 게 1급 마적석이라고 장담할 수 없었다.
어떻게 확인하지?
1급 마적석을 생산하는 제국 공인 제작자들은, 마적석에 1급임을 구별하는 그 어떤 표식도 남기지 않는다고 들었다.
애초부터 그럴 필요가 없다. 철통같은 보안으로 분실의 위험도 없고, 제작 첫 단계 때 들어가는 황족의 피 덕분에 위조품을 만들 수도 없으니까.
“엔조, 확인해 보시죠”
“…….”
하지만 엔조는 쉬이 대답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곧장 뜯어보고 싶다만, 혹시 모르지 않나? 마적석 안에 추적마법이 은밀하게 감춰져 있을지.
마법건축가로서 최상위 마적석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과, 제국에게 쫓기는 현실 사이의 간격은, 그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그건 뭐지?”
루빈이 건넨 건 유리병이었다. 그것도 손가락만큼 작은 병. 가볍게 흔들자, 그 안에 담긴 검붉은 액체가 부드럽게 찰랑거렸다.
“설마, 그 안에 들어 있는 게 황족의 피라는 말이냐?”
“맞아요, 황족의 피.”
“말도 안 돼. 그걸 대체 어디서…….”
“그것까진 밝힐 수 없고요. 제가 궁금한 건, 1급 마적석에 내장된 마법을 발현시키려면 매번 이 피를 떨어뜨려야 하는 건지예요.”
“…꼭 그런 건 아니지. 사실 피는, 황족이 직접 마적석을 작동시킬 수 없을 때를 위한 임시방편이거든. 근데, 잠시 그것좀 살펴봐도 될까?”
루빈은 스스럼없이 유리병을 건넸다.
“오, 이게 황족의 피라고? 믿기지 않는군. 이거, 합법적으로 취득한 건가? 제국군한테 들키면 곧장 사형이라고.”
“걱정 마세요.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 아무튼, 황족의 피는 임시방편이라는 말이죠?”
“그래, 맞아.”
“뭐, 달리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니 당분간은 그 피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겠네요.”
문득, 엔조는 궁금증 하나가 떠올랐다.
“루든. 너, 혹시 황족과 피가 섞인 건가? 먼 친척이라든지, 아니면 건너서라도…….”
물으면서도, 시원한 대답이 이어지지 않으리라는 것은 엔조도 잘 알았다. 역시나 루든은 입술을 붙인 채 잔잔하게 웃을 뿐이다.
대답은 해줄 수 없고, 대답을 해줘서는 더 위험해질 거라는 뜻이 숨어 있는 듯했다.
“1급 마적석이 맞는지부터 확인해 보시죠.”
“그, 그래. 그러지. 그래야지.”
엔조는 침을 꿀꺽 삼키곤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손을 최대한 진정시키며 유리병을 기울였다.
마침내, 피 한 방울이 붉은색 마적석 위에 떨어졌다.
똑.
그와 동시에 마적석 위로 얇은 장막처럼 붉은빛이 퍼져나갔다. 잠시 후, 그위로 뭔가가 둥둥 떠올랐다.
“마법 휘식이네요?”
마적석에 내장된 휘식이었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원휘, 모휘, 삼휘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마법들이 내장되어 있었다.
“처음 보는 마법들도 많아요.”
루빈은 덤덤했지만, 엔조는 그럴 수 없었다. 이것으로 눈앞의 물건이 1급 마적석이라는 게 확인됐기 때문이다.
“지, 지금 그게 중요한가? 이 엄청난 용량… 마법들을 서로 연계하는 것까지 가능하겠어. 이 작은 돌 안에 엄청난 힘이……!”
가만히 놔둔다면, 엔조는 1급 마적석의 내부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만 같았다.
“이제 확인된 거죠?”
“그, 그래. 이젠 정말 믿을 수밖에 없구나. 이게 1급 마적석이라는 것도, 이 유리병 안에 든 피가 황족의 피라는 것도!”
“그럼, 작업해 주시죠. 아까 말씀하신 대로요.”
“성질 변화가 가능한 마나큐브. 맞지?”
루든이 고갤 끄덕이자, 엔조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마적석 안에 마나 휘식을 어떤 식으로 내장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했다. 루빈의 부탁도 있지만, 순수한 열의도 엿보였다.
1급 마적석에 마법을 내장하는 건 흔히 경험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아니, 흔하다거나 드물다고 표현하는 것도 모자랐다.
‘내가 살아생전에 1급 마적석을 다뤄보다니.’
그뿐만 아니다. 지금 이 마적석 안에 내장된, 수많은 마법들만 해도 그랬다.
황족이라고 모두 마나의 환을 지닐 리는 없으므로, 마적석에는 그들만을 위한 수준높은 경지의 다양한 마법들이 내재해 있을 터.
모르긴 몰라도, 황궁의 고위마법사나 위더스푼가의 명망 있는 마법사 등. 그들이 손수 주입한 휘식들로 가득하겠지.
“이 안에 다양한 마법들이 있어. 이것들은 어쩌지? 다 지워버릴까? 그러려면 피를 좀 많이 써야 할 거 같긴 한데.”
“제가 원하는 마법을 우선적으로 쓸 수 있도록 조작할 수 있나요?”
“순서 조정은 가능하지만, 어쨌든 핏방울을 떨어트려야 하는 수고가 있어. 황족이라면 그냥 만지는 것만으로도 마법 발현이 가능할 테지만.”
“지금 그 상태로, 제 은신 암술을 넣는다면요? 마적석 안에 그럴 만한 용량이 남아 있을까요?”
“당연하지. 용량은 넘쳐 나. 넣어도 티도 안 날 거야.”
그렇다면 내장된 마법들을 모두 지워낼 필요가 없다. 오히려 써먹기에도 좋았다. 황족의 피가 흐르는 루빈은, 그저 ‘만지는 것만으로’ 저 마적석의 마법을 발현시킬 수 있으니까.
“그럼 기존 마법들은 지우지 말고, 모두 후순위로 밀어주세요. 그리고 말씀 안 드린 게 있는데, 제 가신도 원격으로 아저씨의 연구를 도울 겁니다.”
이건 마적석을 통한 마법 발현이지만, 한편으로는 암술이기도 했으니.
“네가 말한 그 특유의 ‘능력’ 때문이라면, 당연히 도움이 필요하지. 자네 가신과 의사소통이 가능했으면 좋겠는데.”
“네, 원격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놓을게요.”
“…저, 그런데, 루든.”
엔조는 루빈을 향해 황족의 피가 담긴 유리병을 흔들어 보였다.
“연구가 끝날 때까지 이걸론 좀 부족할 것 같은데.”
“아, 그건 수시로 가져다 드리죠. 연구가 끝날 때까지요.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러면 다행이군. 부디 자네가 황족을 납치해서 사육하고 있는 게 아니길, 진심으로 빌지.”
루빈은 그저 피식 웃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는 기숙사로 돌아갈 때였다. 2주 만이었으니 오스카가 얼마나 요란스러울지 눈에 훤했다.
그때, 루빈의 뇌리에 또 하나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은신 암술에 관한 문제가 쉽게 풀리면서 생겨난 또 하나의 이득. 암술에 쓰이는 것 말고도, 1급 마적석이 하나 남는다는 사실이었다.
“엔조.”
“음?”
“제가 알기로, 3급 마적석을 찾는 탐지 마도구가 따로 있다고 하던데요?”
설계마법학 첫 수업에서, 에겔러 교수가 했던 말이었다. 도시 건축물들 곳곳에 내장된 3급 마적석을 찾는 방법은 탐지 마도구를 이용하면 된다고. 다만, 2급 마적석은 탐지 마도구가 무용하다고 했었다.
“있지. 그런데 왜?”
“만약 1급 마적석으로 탐지 마도구를 만든다면, 제도에 내장된 1급 마적석을 찾을 수도 있을까요?”
1급 마적석으로 탐지 마도구를 만든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발상 자체는 흥미로웠다.
“어쩌면 가능하지도 모르겠군.”
“정확한 답이 필요해요. 가능하다는 말이죠?”
엔조는 손을 열심히 내저었다.
“불가능하지 않다는 가정일 뿐이지, 무조건 가능할 거라는 뜻은 아니야. 그리고 난 그만한 능력까진 없으니, 그런 부탁일랑은 하지 말고.”
하긴, 제작과 건축은 분야가 다르니.
엔조가 루빈을 위해 해주는 일만 해도 겉보기엔 제작과 비슷하지만, 결국은 어디까지나 건축술을 응용하는 것뿐이었다.
엔조가 덧붙여 말했다.
“그래도 또 모르지, 대륙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라면 가능할지도.”
대륙에서 손꼽히는 대장장이라.
루빈은 가만히 기억을 헤집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가장 뛰어나다고 할 수 있는 대장장이가 누구였더라?